나 빼고 다 젊은이 304화
제304화
이틀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바쁜 시간을 보냈다. 헬레나에게 휴식이 필요할 것 같아서, 그녀가 하던 업무들을 내가 보았다.
그런데 그 업무의 양이 내 상상을 가뿐히 초월했다.
이 정도로 힘든 일일 줄이야.
그녀는 그동안 잘도 이런 일을 해왔던 건가.
"끙. 뭐가 이렇게 많아."
나는 밤새 업무에 시달렸고, 중간중간 솔라가 피닉스의 알을 깨우는 작업도 살폈다.
풍희와 춘자가 함께 사냥을 나가 성장을 했고, 그 덕에 나는 일에 매진하면서도 저절로 경험치가 오르는 기이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중간에 한 번 레벨업도 했지만, 모든 일이 순조로운 것처럼 보여도 역시 고난도 있었다.
[메테우스의 공성전 기능이 오픈됩니다!]
[이제부터 메테우스는 적들의 침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공성전을 신청한 성이 1곳 있습니다.]
[곧 적의 군대가 침입할 것입니다.]
"……?"
갑작스러운 메시지에 나도 모르게 멍을 때렸다.
원래 내가 알기로는 공성전을 신청한 성이 많았는데, 내가 얼마 전 여의초로 적들을 쓸어버리는 동영상이 커뮤니티에 뜨고 나서는 하나둘씩 꽁무니를 뺐다고 헬레나에게 들었다.
그런데 아직 한 곳이 남아 있었다고?
땡땡땡땡-!
바로 그때.
긴박한 타종 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혔다.
그것은 적이나 침입자가 쳐들어 왔을 때만 울리는 종이었다.
그 말이란 즉.
"군대가 온다!"
"적들이 몰려오고 있다!"
"공격에 대비하라!"
진짜 적이 쳐들어 왔다는 얘기였다.
영주성 부근이 시끌벅적해지자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달렸다.
이어서 지니를 불러 위에 올라탔고, 나는 순식간에 외성의 성벽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아래에는 꽤 많은 군대가 각종 병장기와 은빛 갑옷을 입은 채 도열 해 있었는데, 마침 적장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가 말을 타고 앞으로 나섰다.
당연하게도 유저였다.
"으하하하! 이 멍청한 메테우스의 병사들아!"
저 썩을 놈이?
"내 이름은 다리우스다! 오늘 메테우스를 무너트려 내 명성을 아크 대륙에 널리 퍼트려주겠다! 그 첫 번째 희생양으로 다크 울프가 아주 제격이지!"
"……."
너무나 어이가 없는 말에 나도 모르게 할 말을 잃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생각이 없어 보이는 놈이 틀림없었다.
요즘 젊은이들의 말을 빌리자면, 저런 놈을 또라이라고 부른다지….
"흠. 어떤 멍청한 놈인지 보러왔더니. 역시는 역시군."
그때 내 뒤편에서 가벼운 갑주에 저격총을 든 채 걸어오는 레슬리가 보였다.
나는 그를 보며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왔냐. 총사령관."
얼마 전 나는 레슬리를 메테우스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그는 그러기에 충분한 능력을 지닌 NPC였고, 지난번 포트렌에 방문했을 때. 아렌에게도 허락을 받은 일이었다.
어쨌든 그의 뒤로 케레노스를 비롯한 실피드 기사단도 도착해 있었다.
레슬리의 뒤편으로 칼슈타인 저항군이 각자 총을 거머쥔 채 도열해 있었다.
레슬리가 턱짓으로 물었다.
"쏴버릴까?"
레슬리가 들고 있는 저격 총을 들어 보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사실 2천 명도 넘는 대군이었지만, 그동안 메테우스는 헬레나의 지시 아래 꾸준히 군사를 보강하고 키워왔기에 싸우는 데 그리 부담스러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나 혼자 싸우겠다."
"음?"
레슬리가 고개를 갸웃거렸고, 바로 옆에 있는 케레노스와 병사들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꽂힌 바로 그때.
나는 나직하게 말을 뱉었다.
"마침 시험해 봐야 할 게 있어서 말이야."
그 말과 동시에 나는 품속에서 [시간의 화살]을 꺼냈다.
그것은 얼마 전 브라질의 카를로스를 잡고 얻은 것이었다.
그때 나는 이것에 무척이나 허무하게 당했었다.
"다들 구경이나 해."
그렇게 말한 나는 곧장 절벽과도 같은 높이의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뒤에선 병사들의 놀란 외침이 들려왔다.
대부분 "영주님!"이라고 소리쳤지만, 놀라는 얼굴들이 분명할 것이었다.
하지만 내겐 이번에 새로 얻은 비천기상무의 능력인 '구름 밟기'가 있다.
탓. 탓탓. 탓.
나는 허공의 구름을 지그재그로 밟으며 무척이나 우아한 몸짓으로 땅바닥에 착지했다.
적의 우두머리인 다리우스가 이끌고 온 NPC 병사들이 놀라운 표정을 짓는 것이 보였다.
이어진 것은 성 위쪽에서 들려온 함성.
"와아아아-!"
일제히 쏟아진 함성은 들불처럼 번져나가더니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
사실 이런 걸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병사들의 사기가 올랐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큭. 궁수는 어디 있어! 쏴라! 저 영감을 먼저 죽여!"
나는 전방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내 옆엔 [시간의 화살]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적군에 있던 궁수병들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일제히 내게 활시위를 걸어 쏠 준비를 마쳤다.
그와 동시에 나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미도가 이런 일 있으면 방송을 키랬는데."
미도는 내게 앞으로 싸울 일이 있으면 실시간 라이브 방송이란 것을 켜라고 했었다.
그러면 팔로워 숫자가 늘 것이라나 뭐라나.
어쨌든 지금 내 팔로워는 5만을 넘은 상황이다.
"흠. 어디 보자…. 이건가?"
[실시간 라이브 방송을 시작합니다.]
"맞네."
나는 피식 웃으며 다시 전방을 바라봤다.
마침 실시간 방송이라 그런지, 채팅이란 걸 하며 떠드는 메시지가 주르륵 올라왔다.
나는 눈앞의 화면을 끈 채 앞의 상황에 집중했다.
"발사!"
퓨퓨퓨퓻-!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은 화살.
나는 손가락을 살짝 움직여 바람을 움직인 다음 오히려 화살의 방향을 반대로 돌려 버렸다.
이어진 것은 재앙이었다.
적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화살비에 피해가 속출했다.
"미친. 이게 대체 무슨 조화야!"
무슨 조화긴.
오늘 날씨가 미친 게지.
* * *
북극, 이름 모를 어딘가.
미도와 함께 있다가 중간 경유지에서 배를 갈아탄 제임스는 곧장 북극으로 향했다.
도착한 북극은 과연 커뮤니티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절경을 자랑했다.
낮의 마을 디야는 찾아오는 인간들에게 관대했고, 수인들은 각종 북극에서 살아남는 법을 인간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이곳은 엄청나게 강한 추위 때문에 오래 돌아다닐 순 없었는데, 제임스는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수인들의 약초를 사거나, 몸에 바르는 약을 사서 북극을 돌아다니곤 했다.
솔직히 북극은 볼만한 것이 온통 눈밖에 없었기에, 제임스는 점점 질려가는 것 같았다.
낮의 마을 디야와 밤의 마을 누체가 곧 합쳐질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왔고, 제임스는 그저 그러려니 할 뿐. 큰 관심은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북극을 돌아다니며 얻은 스타 프루츠는 총 5개.
"…후. 이만하면 더 찾을 스타 프루츠는 없는 것 같은데."
소식에 의하면 이곳에서 솟아올랐던 빛의 수는 12개였다고 한다.
지금 자신이 조금 늦게 도착했던 것을 생각하면, 사실 이 정도의 스타 프루츠를 얻은 것도 기적이라고 할 만했다.
지금 얻은 7개 중 3개는 강탈 스크롤을 찢어 유저들을 기습해 죽여서 얻은 것이었다.
아마 찾지 못한 나머지 스타 프루츠는 발 빠른 유저들이 이미 먹었으리라.
"이제 돌아가야겠다."
제임스는 그렇게 결정하고, 데미안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북극에 있던 스타 프루츠는 거의 다 찾은 것 같으니, 돌아가겠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데미안의 답장은 빨랐다.
- 데미안: 그동안 고생 많았다. 이만 돌아오도록 해. 올 때 몸조심하고.
데미안의 자상한 한마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는 몰라도, 월드 대항전 이후로 데미안은 자신에게 좀 더 잘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제임스로서도 나쁜 일은 아니었으니 그냥 이대로만 지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할 때였다.
"어?"
제임스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그는 지금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북극의 한복판에 있었다.
그런데 그가 가진 패시브 스킬인 명사수의 시야에 어떤 거대한 그림자가 언뜻 비치는 것이 보였다.
'얼음성?'
그때 메시지가 도착했다.
[권총성, 데스페라도가 저곳은 사계절 성좌가 살고 있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사계절 성좌? 그게 뭐야…?"
데스페라도는 친절하게 사계절 성좌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짧은 설명이었다.
그들은 마이클의 궁좌보다도 위에 있는 존재들.
그저 데스페라도는 저곳에 있는 것이 빙설계 최강의 성좌인 '툰드라 드래곤'이라는 거북이가 살고 있다는 말을 해주었다.
터틀 드래곤이라는 녀석이라나 뭐라나.
어쨌든 대단히 성격이 괴팍하니 데스페라도는 계속해서 가지 않는 것을 추천했다.
"호오, 그래?"
하지만 제임스는 왠지 구미가 당기는 것을 느꼈다.
저곳에 가면 무언가 건질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원래 저런 곳이 엄청난 아이템들이 숨겨진 법 아니겠나.
"가봐야겠어."
[권총성, 데스페라도가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에이 위험해 봐야. 얼마나 위험하겠어. 그림자 이동!"
슈우우욱-.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제임스는 순식간에 얼음성의 근처에 와 있었다.
그 어떤 그림자에서 솟아오를 수 있는 데스페라도의 권능 때문이었다.
어쨌든 제임스는 곧장 얼음성에 잠입했다.
'스타 프루츠가 없으면 좋은 아이템이라도 건질 수 있을 거야. 데미안 형님이 좋아하시겠지?'
그렇게 제임스는 얼음성의 이곳저곳을 뒤적거렸다.
요즘 부쩍이나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데미안에게 줄 선물을 이곳에서 가져가고 싶었다.
물론 그것이 좋으리란 법은 없지만, 본디 선물이란 정성이 중요한 법이니까.
"여긴 대전인가…?"
그렇게 들어선 곳은 거대한 대전.
제임스는 드넓은 대전을 둘러보며 크게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무척이나 거대해서 마치 자신이 걸리버 여행기의 난쟁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제임스는 조심스럽게 대전을 돌아다녔고, 그러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건…."
갑자기 제임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것은 얼음 동상이었다.
근처엔 수십 개의 얼음 동상들이 하나하나 표정이 살아있는 채로 얼어 있었다.
그런데 그 표정들이 가지각색이었다.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분노하고, 또 누군가는 놀란….
순간 제임스의 등골이 찌릿 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거 설마. 산 채로 얼어버린…."
[호오. 재밌는 놈이 들어왔구나.]
"……!"
제임스는 등골이 오싹한 기분을 느끼며 재빠르게 뒤를 돌았다.
그곳엔 새파란 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장발을 한 남자가 세상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오시하듯 내려보고 있었다.
제임스는 재빨리 남자와 거리를 벌렸다.
남자는 흥미로운 듯 입꼬리를 씰룩 거렸다.
[넌 그 총잡이 녀석의 성애자(星愛者)인가? 후후후. 재밌군.]
츠츠츠츳-!
허공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권총성, 데스페라도가 이 아이를 건드리지 말라고 말합니다.]
[호오. 데스페라도. 나와 같은 1등성이라고해서 이 몸에게 경고를 해도 좋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너도 잘 알 텐데?]
[권총성, 데스페라도가 이 아이는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훔쳐…? 아아, 너와 이 꼬마 녀석은 이곳에서 뭘 훔치려고 왔나 ? 후후후. 깜찍한지고.]
푸른 머리의 남자가 웃었다.
제임스는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눈앞의 이 남자가 바로 그 빙설계 최강의 성좌인 툰드라 드래곤이었다.
말실수에 당황한 데스페라도의 변명 같은 메시지가 이어졌다.
하지만 툰드라 드래곤은 그것을 무시하며 제임스에게 물었다.
[감히 이 몸의 성에 잠입해 물건을 훔치려고 하다니. 그래. 무엇을 훔치었느냐.]
"그, 그게 아직 아무것도…."
[으음, 아무것도라…. 재밌구나. 그럼 아직은 아니고, 내가 자리를 비웠다면 훔칠 생각이었다는 말이렸다.]
"그, 그게…."
[흠. 가뜩이나 피닉스에게 변고가 생긴 것 같아서 짜증 났는데….]
눈앞의 남자가 손가락을 흔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눈보라가 휘몰아치더니, 제임스를 감싸기 시작했다.
"뭐, 뭣…!"
그런 제임스의 표정을 본 툰드라 드래곤이 피식 웃었다.
[아아, 표정이 너무 좋구나. 당황하거라. 아해야. 그리고 이 반짝이는 건 내가 가져가마. 내가 반짝이는 걸 모으는 취미가 있거든.]
그렇게 제임스에게 있던 스타 프루츠 5개가 툰드라 드래곤의 손에 빨려가듯 넘어갔다.
제임스는 더욱 당황했다.
"아, 안 돼. 그건…!"
[주거침입죄는 꽤 큰 죄에 해당하지. 이건 내 보물상자에 넣어 놓도록 하마. 영광으로 알거라.]
"……!"
딱!
눈앞의 남자가 손가락을 튕긴 그 순간 제임스의 눈앞은 하얗게 얼었다.
[툰드라 드래곤의 '영원의 동결'에 걸렸습니다.]
[당신은 얼음이 녹지 않는 한 이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로그인 장소가 강제로 저장되었습니다.]
[가급적이면 새로 아이디를 만드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런 제엔자아아앙-!'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