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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301화 (301/375)

나 빼고 다 젊은이 301화

제301화

다음 날, 메테우스의 '요리 사절단'이 포트렌을 향해 길을 잡았다.

당연히 이끌고 가는 것은 나였고, 몇몇 기사들을 비롯한 케레노스가 호위를 맡았다.

그 뒤로는 얼마 전부터 모집한 메테우스 출신 요리사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그 사이엔 유저도 있었고, NPC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제부터 그들과 함께 밤새 요리를 하느라 눈이 퀭했다.

수백 인분의 날씨 요리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좀 괜찮으세요? 주무셔도 되는데."

건너편에 앉은 헬레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았다.

그녀는 어제 밤새 내가 요리를 만드는 것을 모두 지켜본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아니다. 견딜 만해."

사실 대충 만들려면 사흘 전에 미리 만들어도 되었는데, 그래도 이왕 만드는 거 최대한 따뜻하게 요리를 대접하고 싶었다.

그래서 난 어제 요리를 한 것이었다.

그래도 힘든 건 사실이다.

…빨리 지니에게 눈의 힘을 얻게 하든가 해야지.

지니가 눈의 힘을 얻는다면, 그때부터는 날씨 요리를 하면서 신선도와 유통기한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쉽게 말하면 냉장고 같은 기능을 한다고 보면 된다.

"좀 주무세요. 많이 피곤해 보이세요."

그리고 그런 헬레나의 바로 옆엔 김수정이 있었다.

그녀가 함께 있는 이유는 헬레나가 같이 가자고 했기 때문이었다.

둘이 쇼핑을 하기로 했다나 뭐라나.

"아빠, 아빠! 풍희가 잠이 솔솔 오게 산들바람 만들어줄까?"

바로 옆에 앉은 풍희가 새하얀 머리칼을 늘어트리며 사슴 같은 눈동자를 글썽였다.

그 모습이 너무도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괜찮다니까."

그렇게 말하며 풍희의 새하얀 머리칼을 손으로 흩트렸다.

풍희는 "우으으."하며 찰랑거리는 머리칼을 정리했다.

그때 김수정이 말했다.

"풍희야. 언니가 머리 묶어줄까?"

"정말? 그러면 편해?"

"그럼~ 언니가 묶어줄게. 이리와 봐."

그 말과 동시에 풍희가 김수정의 옆으로 냉큼 앉았다.

김수정이 어디서 낫는지 빗을 꺼내서는 풍희의 머릿결을 빗었다.

비단결 같은 것이 무척이나 고급스러운 머릿결이었다.

"풍희야. 너 머릿결 진짜 좋다~ 비결이 뭐야?"

"음, 잘 먹고 잘 자는 거?"

헬레나도 흥미롭다는 눈을 하더니 풍희 곁으로 다가왔다.

"넌 좋겠다~ 잘 먹고 잘 자서. 나도 잘 먹고 쉬고 싶은데."

그렇게 헬레나는 요즘 힘들다는 푸념을 내게 돌리면서 말했다.

나는 괜스레 찔리는 것 같아서 모른 척 지니를 소환했다.

내가 앉아있는 마차의 의자를 푹신한 구름으로 채우기 위해서였다.

슈우욱-!

순식간에 내가 앉은 곳에 구름 쿠션이 생겼다.

어우, 푹신해라. 진작 이렇게 할걸.

"빗 줘봐. 우리 세계에선 이렇게 묶어."

갑자기 헬레나가 김수정의 빗을 뺏더니, 자신이 머리를 묶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과연 헬레나는 귀족으로 지낸 적이 있어서 그런지 다양한 방식으로 머리를 묶는 법을 알았다.

김수정은 감탄하며 그것을 보았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본 풍희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그런 세 사람이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아서 나도 모르게 눈웃음을 지었다.

나는 푹신한 구름 의자에 기댄 채 창에 머리를 대었고, 내리쬐는 햇살에 나른함과 노곤함이 밀려오는 것 같아서, 나는 그만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

한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포트렌의 왕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절단을 이끌고 가느라 시간이 지체된 것도 있었고, 애초에 포트렌의 왕성이 조금 멀리 있는 탓도 있었다.

가는 길에 요리 사절단들에게 무료 시식을 하는 형식으로 포장마차를 운영하며 포트렌의 백성들에게 요리를 대접하도록 했다.

가난한 사람이건, 돈이 많은 부자이건, 가리지 않고 받으라고 지시했기에 차별은 없었다.

특히 가난한 백성들은 요리를 먹고는 나를 칭송하며 심지어 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나는 지금 포트렌의 왕성에서 상왕 '키리우스'를 만날 수 있었다.

뒤로 묶은 기다란 백발에 기다란 턱수염.

상투만 틀었다면 영락없는 조선 시대 사람 같을 모양새의 그는, 각종 보석이 치장된 옥좌에서 나를 내려보고 있었고, 바로 옆에는 귀족 신하들이 도열해 있었다.

옥좌엔 신분을 상징하는 다이아몬드 수저가 떡하니 박혀있었다.

"그대가 보낸 요리 사절단에 대한 소문이 포트렌에 가득하더군. 능력이 부족해 살피지 못한 백성들을 돌봐주신 점에 대해 상왕으로 깊은 감사를 표하는 바이오."

"황공하옵니다. 폐하."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중대한 NPC를 만나면 진행되는 이벤트처럼 내 몸과 입은 저절로 움직이며 키리우스에게 극진한 예를 표했다.

그런 키리우스의 옆에는 내가 잘 아는 아렌이 함께 서 있었다.

"먼 길을 와주어서 고맙소. 내가 친히 차라도 대접하고자 하니 그대는 부디 청을 거절하지 말길 바라오."

내가 고개를 들자, 바로 옆에선 아렌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하라는 뜻이었다.

"감사합니다. 폐하.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나와 아렌. 그리고 키리우스가 자리를 옮겼다.

알현실이라 할 수 있는 조용한 방에서, 우리는 서로를 마주한 채 차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키리우스였다.

"음, 차 맛이 아주 좋구려. 최근 메테우스에서 가장 비싼 차라더군. 드시오."

누가 자본주의 아니랄까 봐 가장 비싼 차를 내왔다.

키리우스가 먼저 권하자 나와 아렌이 동시에 차를 들었다.

역시나 차 맛은 훌륭했다.

나는 문득 궁금증이 일어 물었다.

"얼마짜리 차입니까?"

"흐음. 2천만 달러였나…."

순간 속으로 헉- 소리를 내며 헛바람을 삼켰다.

뭔 놈의 차가 2천만 달러나 한다냐.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키리우스가 껄껄거리며 웃었다.

"괘념치 말고 드시오. 내 그대에게 돈을 청구하는 일은 없을 테니."

그렇게 키리우스의 농담에 분위기는 조금씩 풀어졌다.

그러나 이제는 용건을 물을 차례였다.

"저를 만나고 싶다고 하셨다 들었습니다만…."

나는 조심스럽게 운을 떼며 키리우스를 보았다.

그는 차를 마시며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천천히 한모금 머금고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최근 아크 대륙 곳곳에서 빛이 솟아오른 걸 알고 있소?"

"물론입니다."

"우리 포트렌에도 몇 개가 치솟았었지. 여기 있는 아렌이 빠르게 움직여 다행히 다른 이들의 손에 들어가는 건 막을 수 있었소."

그렇게 말하더니 키리우스가 아렌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렌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이 모셔놓은 보석 상자를 가져왔다.

나는 곧장 상자를 열어젖혔다.

그곳에 들어있는 것은 역시 예상대로 스타 프루츠와 판도라의 조각.

그때, 키리우스가 말했다.

"이걸 그대에게 주겠소."

"……!"

나는 화들짝 놀란 얼굴로 황급히 얼굴을 들어 키리우스를 보았다.

키리우스는 다시 한번 껄껄 웃었다.

"그렇게 놀랄 것까지야."

"그냥 주시는 겁니까? 아니면 원하는 게 있으신 겁니까. 원하는 게 있으시다면 들어드리겠습니다."

"호오, 과연 아렌의 말대로 눈치가 빠른 사람이군. 나는 상왕의 자리에 있는 몸. 절대로 이득이 되지 않는 것을 그냥 내어주는 일은 없지. 내가 부탁하고 싶은 건 하나요."

"……?"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키리우스가 아렌을 슥 한 번 보더니, 다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곧 선거가 있을 것이오. 아마 아렌이 내 뒤를 이어 다음 대 상왕이 되겠지. 나는 그대에게 아렌의 든든한 우방이 되어줄 것을 부탁하고 싶소. 이건 그것을 위한 내 작은 성의 표시라고 봐도 좋소."

키리우스의 눈빛은 진지했다.

과연 한 나라의 왕이라는 자리에 어울리는 카리스마랄가.

그런 키리우스의 부탁을 나는 거절할 수 없었다.

사실 아렌과는 계속 이대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도 컸으니, 어쩌면 당연한 선택일 것이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맙구려."

키리우스가 다시 운을 뗀 것은 그때였다.

"음, 그리고 한 가지 또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키리우스가 눈을 빛냈다.

"파르타 공국이 멸망했다는 걸 아시오?"

***

그 시각.

헬레나는 아렌의 저택에 와 있었다.

오랜만에 와보는 아렌의 저택은 무척이나 고풍스러운 것들이 많았다.

대부분이 오래된 골동품처럼 낡은 것들이었고, 포트렌의 서열 2위라 불리는 아렌의 검소함은 이미 소문이 날만큼 나서 정평이 나있는 상황이었기에 크게 놀라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헬레나는 그런 아렌의 저택을 거닐면서 아렌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 커지는 것을 느꼈다.

사람이 돈을 많이 벌면 쓰고 싶은 것이 정상인데, 아렌은 그러지 않았음을 아는 탓이었다.

그는 뒤로 칼슈타인 저항군을 만들어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몰래 돕는 일을 했고, 아렌의 행적을 하나부터 열까지 알아왔던 헬레나였기에 그녀는 저택에 거미줄이 쳐진 곳이 보여도 멋있게만 느껴졌다.

그 흔한 하인도 많이 두지 않고, 오직 한 명만 두는 건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헬레나는 이런 사람의 밑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기만 했다.

"아, 여기다."

무척이나 오랜만에 와보는 곳이어서 그런지 헬레나는 아렌의 방을 찾지 못하고 조금 헤매었다.

그러나 걷다 보니 어느새 눈앞엔 아렌의 방이 있었다.

똑똑-.

헬레나는 지체하지 않고 문을 두드렸고, 잠시 뒤. 끼익- 하며 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노신사가 나타났다.

헬레나도 아는 사람.

그는 알프레드라는 아렌의 하나뿐인 집사였다.

헬레나는 그런 알프레드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알프레드님."

"오, 헬레나 아니냐. 아렌 님을 뵈러 왔니?"

"네. 오라고 하셔서요."

"그래. 그럼 들어와서 기다려야지."

아렌이 문을 열며 비켜주었고, 헬레나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는 온통 책들이 가득했다.

그것을 보며 헬레나는 또 한 번 감탄했다.

'내가 힘든 건 힘든 것도 아니었구나.'

그동안 쌓인 서류 더미와 일에 치이며 힘들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정작 아렌의 책상에 올려진 각종 책과 서류, 종이들을 보는 순간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었다.

정말로 내가 힘든 건 힘든 게 아니었다.

"차는 어떤 걸로…?"

"…어, 저는 홍차를 좋아하니까. 그걸로 주세요. 혹시 있나요?"

그러자 갑자기 알프레드가 빙그레 미소를 짓더니, 눈웃음을 지었다.

"아렌 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게 홍차지."

"어머, 정말요?"

"그래. 정말이지. 넌…. 아니다."

알프레드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자신을 보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차를 준비하러 사라졌다.

헬레나는 그런 알프레드의 반응이 의아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그러나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헬레나는 벽에 있는 각종 서적들로 눈길이 갔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었던 그녀였기에 흥미가 동한 탓이었다.

헬레나는 조심스럽게 발을 디디며 벽장을 훑었고, 대부분 경제와 관련된 서적들이었다.

중간중간 군주론에 대한 것과 아크 대륙의 정세에 대한 것들도 있었다.

그렇게 걷던 중 헬레나의 흥미를 잡는 책이 있었다.

"어? 나랑 이름이 같네?"

그것은 '세인트 헬레나'라는 책이었다.

헬레나는 곧장 그 책을 꺼냈다.

하늘색 표지에 화려한 금박 모양이 새겨진 책.

끄트머리가 살짝 낡아 있는 것이 꽤 오래된 것인 듯 보였다.

헬레나는 첫 장을 넘겼다.

"시집인가…?"

헬레나는 천천히 시를 음미하며 읽기 시작했다.

책은 얇은 편이었기에 다 읽는데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마지막 장을 읽었을 즈음.

-항상 빛나던 천사는 나의 기쁨이었음을 영원히 기억하겠노라.

무척이나 감동적인 글귀였다.

밑에는 '사라'라는 사람이 적었는지 그녀의 글씨체로 이름도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사진도 함께….

"예쁘다~"

사라라는 여자는 자신과 같은 붉은 머리를 가진 아름다운 여자였다.

오똑한 코와 눈망울을 보며 헬레나는 그녀가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자라고 생각했다.

"근데 누구지…?"

알 길은 없었다.

그렇기에 헬레나는 그저 책을 덮으려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마지막 장인 줄 알았던 페이지에는 숨겨진 장이 하나가 더 있었다.

"……."

헬레나는 바로 그것을 펼쳤다.

그리고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곳엔 '사라'라는 여인과 어떤 남자가 오두막 앞에서 사이좋게 찍은 사진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 사이엔 웃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

두세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시절의 헬레나가 웃고 있었다.

"이, 이게 대체…."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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