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298화
제298화
루이 카셀은 리치의 눈을 통해 전장의 상황을 주시하기 바빴다.
리치의 눈은 보지 못하는 곳이 없었다.
언데드가 있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든 리치의 눈이 닿아 있었고, 그것은 카를로스의 곁이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판도라의 힘으로 더욱 강력해진 죽음의 권능을 손에 넣은 루이 카셀은 수십의 리치의 눈을 통해 광범위한 범위에서 일어나는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것은 무척이나 흡족한 광경이었다.
"후후후."
죽음의 군세가 살아있는 것들을 짓밟으며 진군하는 것은, 죽음의 왕이라 불리는 자신에게 무척이나 어울리는 광경이 아니던가.
'하하하. 모든 것을 죽음으로 물들여라. 나의 군대들아…!'
이제 자신의 이름인 '루이 카셀'은 잊을 생각이었다.
그는 이제 아크 대륙에서 죽음의 왕 '네크론'이 되어 모든 이들의 정점에 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공포와 경외감에 젖은 유저들이 자신을 올려다보며 그렇게 외치리라.
그렇게 그의 광기가 절정에 달했을 즈음.
- 잠깐 언데드 군단을 멈춰주시오.
갑작스러운 카를로스의 전언이 리치의 눈을 통해 전달되었다.
네크론은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하지만 곧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최춘택…?'
리치의 눈을 통해 전장의 상황을 훑던 그는 저 멀리 전투태세에 돌입한 유저들 사이에 서 있는 최춘택을 발견 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고 말았다.
"하…!"
설마하니 이렇게 빨리 만날 줄이야.
네크론은 광기에 젖은 웃음을 낮게 흘리며 웃었다.
손녀를 사로잡아 인질로 쓰려 했던 계획에는 차질이 생겼지만, 애초에 목적이었던 최춘택을 찾았으니 오히려 상황은 전화위복이 된 셈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복수뿐.
우우웅!
목에 걸고 있던 판도라의 구슬이 그런 네크론의 감정에 공명하듯 울기 시작했다.
마치 끝없는 죽음과 어둠을 마주한 것 같은 감각이 전신을 오싹하게 훑었다.
동시에 차오르는 힘은 더할 나위 없는 충족감을 네크론에게 선사하고 있었다.
"흐아…! 하…!"
흡사 마약에 취한 느낌이 이러할까?
TV에서나 보던 마약범들이 왜 그렇게 몸에도 좋지 않은 마약을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는데, 네크론은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칠 순 없지."
네크론은 곧장 들고 있는 해골 지팡이를 휘두르며, 전장의 가장 끝에 있는 스켈레톤 하나와 자리 바꾸기를 시전했다.
곧 흑색 구름이 전신을 감싸더니, 나타난 곳은 리치의 눈으로 보았던 전장의 가장 끝.
도착하자마자 들려온 것은 카를로스와 최춘택의 쓸데없는 말싸움이었다.
"또 처맞으러 왔냐!"
"큭, 빌어먹을 영감탱이…!"
"오늘 네놈을 포함해 뒤에서 깔짝거리는 해골들도 마저 두들겨주마!"
"후회하지나 마라!"
설마 이것을 하려고 자신의 군단을 멈추라 했던 것인가.
네크론은 다시금 짜증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며, 카를로스의 뒤통수를 째려봤다.
"전군. 돌격-!"
그러나 다행히 카를로스는 금세 다시 싸울 생각인지 손을 앞으로 뻗으며 돌격 명령을 내렸다.
뭔가 그의 말뜻을 따르는 것 같아 기분이 언짢긴 했지만, 그래도 이왕 이곳으로 왔고, 잠깐 서로 손을 잡기로 했으니, 최춘택을 잡는데 사력을 다하는 것이 좋으리라.
[판도라의 힘이 죽음과 어둠의 힘을 강화시킵니다.]
[당신 주변의 언데드가 판도라와 공명합니다.]
[소환한 언데드들이 '죽음의 군단'이라는 소속감이 생깁니다.]
[현재 당신은 '죽음의 군단'을 이끄는 수장입니다.]
강력해진 언데드들의 능력치를 굽어보던 네크론의 시선이 최춘택에게로 향했다.
그는 웬 담배를 핀 채 우두커니 서서 자신의 군단을 맞이하고 있었다.
'한가하게 담배나 피우다니. 오늘 그 오만한 콧대를 꺾어 납작하게 만들어주겠다…!'
그렇게 네크론이 속으로 다짐하던 바로 그 순간.
콰아아아-!
갑자기 어마어마한 뭉게구름이 전방을 초토화시키며 일직선으로 이곳을 향해 내달려 오기 시작했다.
"뭐, 뭐야!"
그 경로에 있던 듀라한과 데스 나이트들이 무참히 박살났고, 호기롭게 나섰던 카를로스는 단 한 번의 공격조차 시도하지 못한 채, 그대로 로그아웃 당해버렸다.
* * *
"어, 음…."
갑작스러운 상황에 전투는 잠깐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달려들던 데스 나이트와 듀라한들이 내가 뻗어낸 [아틀라스의 구름 과자].
내가 '여의초'라 명명한 그것의 파괴력을 감당하지 못한 채 바스러져 버렸기 때문이다.
또 그 어마어마한 크기와 위력에 놀란 유저들이 입을 쩍 벌리며 사방에서 시선이 쏟아졌다.
"이, 이게 무슨…?"
얼마나 놀랐는지 미도는 말까지 더듬는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다독여줄 시간도 없이 떠오르는 메시지를 마주했다.
[시동어, '커져라. 여의초.'가 등록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아틀라스의 구름과자'는 시동어를 외칠 때마다 당신의 무기가 되어 줄 것입니다.]
…맙소사. 설마 진짜로 이런 무기일 줄은 몰랐는데.
이것은 유명한 손오공의 무기인 여의봉과 닮아있는 능력이었다.
어째서 이런 것이 아틀라스의 구름 과자에 숨겨져 있었던 걸까?
이유는 모르겠다.
이따가 아틀라스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어쨌든 이 자식. 이런 엄청난 담배를 주다니. 무지하게 고맙네.
"…훌륭한 돗대다. 아틀라스."
나는 아무도 듣지 못하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도, '하늘을 짊어진 골초'가 흡족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입니다.]
와아아아-!
그때. 우리 쪽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최춘택'이라는 이름 석 자가 그들 사이에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와, 할아버지 진짜!"
미도 또한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무언가 감격스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거짓말 같기도 하면서, 가슴 벅찬 뭐 그런 표정이랄까.
어쨌든 미도는 평소처럼 엄지를 척 들어주었다.
"역시 할아버지 짱이에요! 완전 최고! 지금 녹화 중인데 이거 올리면 조회수가 엄청날 거예요!"
…아, 녹화를 하고 있었구나.
어쨌든 그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나는 언제나처럼 미도의 칭찬을 들으며 기분이 좋으면 그만이었다.
다 필요 없고 손녀의 칭찬이 최고인 거다.
인생 뭐 별거 없다.
"흡!"
나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응원에 힘입어 앞으로 뻗었던 여의초의 끝부분을 잡고 들어 올려 길이를 줄였다.
역시나 구름이라 그 무게가 무척이나 가벼웠다.
그러나 적들에게는 이것만큼 무거운 것도 없을 것이다.
애초에 지니의 구름으로 만들었기에 적과 아군이 분명하게 갈릴 터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다들 돌격해라! 이 구름은 아군에겐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
그런 내 외침과 동시에 주변의 유저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와아아아-!"
"가즈아-!"
"다 죽여버려-!"
유저들과 죽음의 군단이 뒤섞이며 한바탕 전쟁이 벌어졌다.
사실 이런 전쟁은 기세가 중요했다.
과거 내가 무각회의 회장이었던 시절.
거리의 불량배들과 여러 조직들을 쓸어버릴 때 중요했던 건 이런 기세였다.
즉, 다시 말해.
흐름을 타면 이긴다는 거다.
"오오오-!"
나는 우렁찬 고함과 함께 여의초를 휘두르며 전방의 언데드들을 박살내며 돌진했다.
그러나 적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엄청난 부활 속도를 바탕으로 한 언데드들은 죽여도 계속해서 일어나며 유저들을 몰아세웠다.
완전한 모습이 된 임모탈 나이트는 무척이나 강력한 힘을 선보이며 유저들을 곤경에 처하게 만들었는데, 저 멀리 월드 대항전에서 만났던 데이비드가 목룡을 소환해 그런 임모탈 나이트를 견제하는 것이 보였다.
…저놈도 있었나?
데이비드는 임모탈 나이트를 상대하는 것이 무척이나 힘에 부친 것처럼 보였다.
처참하게 부서진 목룡의 나무 파편이 여기저기 떨어져나갔다.
"펜릴!"
고오오오-!
내 주변에서 흑야가 휘돌며 하늘과 땅을 검게 물들였다.
그리고 검은 땅에서 펜릴이 팔짱을 낀 채 일어섰다.
"저기를 부탁한다!"
"크르륵! 또 저놈인가. 더 강해졌군. 또 한 번 찢어주마!"
펜릴은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임모탈 나이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펜릴이 가세하자, 임모탈 나이트가 살짝 당황했지만, 목룡이 있어서 균형이 어느 정도 맞아들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건 소환자를 없애는 것.
소환자를 없애지 못하면 임모탈 나이트는 언제고 다시 일어날 테니, 그것은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할 수 있었다.
"…놈은 어딨지?"
나는 바쁘게 여의초로 언데드들을 쓰러트리는 한편, 좌우로 눈을 굴리며 소환자를 찾기 시작했다.
분명 임모탈 나이트를 소환할 수 있는 건 한 명뿐이었다.
이름이 '루이 카셀'이었던가….
"빌어먹을. 코쟁이 놈."
그러나 내가 찾는 코쟁이 놈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하긴 최전방에 있을 이유가 없기도 했다.
그렇다면 놈은 아마 최후방에 있다는 얘기일 터.
나는 곧장 '구름 밟기'를 이용해 허공을 박차며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파파팟-!
몇몇 유저들이 경이롭다는 시선을 밑에서 보냈다.
그러나 나는 애써 무시하며 계속해서 올라갔다.
그렇게 모든 언데드가 시야에 가득 담길 때, 곧장 초감각을 시력으로 끌어올려 최후방을 살폈다.
콰콰쾅-!
옆에선 한창 치열하게 목룡과 펜릴.
그리고 임모탈 나이트가 뒤엉켜 싸움을 펼치고 있었다.
놀랍게도 목룡과 펜릴이 밀리고 있었다.
이 정도로 강해지다니.
이건 마치….
"에이, 아니겠지."
잠깐이지만 과거 라그나로크가 이끌었던 플루토의 죽음의 군단이 다시금 부활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최근 어두운 빛이 하늘로 치솟았고, 만약 그것을 바탕으로 판도라의 구슬 조각을 모았다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다.
"저긴가."
바로 그때. 초감각으로 확장된 시야에 후방에서 언데드들을 이끌고 있는 네크로멘서 하나가 보였다.
익숙한 복장이 저번에 보았던 그 녀석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에게선 끝을 알 수 없는 죽음의 기운이 등 뒤로 넘실거리며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건 분명 판도라의 힘이다.
"…흐음. 진짜였네."
나는 구름을 밟은 채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아틀라스와 프로메테우스를 보는 것이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사도, '하늘을 짊어진 골초'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강력한 한방이 필요하다. 힘 좀 빌려줄래?"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사도, '하늘을 짊어진 골초'가 알겠다고 말합니다.]
그와 동시에 내 좌우에서 뿅-! 하며 솔라와 지니가 나타났다.
둘의 눈은 푸른빛이 감돌았고, 두말할 것도 없이 두 신들이 강림한 것이었다.
나는 여의초를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커져라. 여의초."
슈우우욱-!
구름으로 이루어진 여의초의 굵기가 굵어졌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건 이 정도가 아니었다.
소환된 지니가 입을 후-! 하며 불었고, 지니의 구름이 더해지며 여의초의 굵기가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살짝이지만 무게가 조금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고, 단지 하늘을 가리는 것이 조금 어두워졌구나 싶을 정도였다.
아래에선 싸움을 하던 유저들이 갑자기 밀려드는 그림자에 하나 둘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만."
어느 정도 되었을 때 나는 지니에게 여의초를 크게 만드는 것을 멈추게 했다.
그리곤 기다리고 있을 솔라.
아니, 프로메테우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명한 프로메테우스는 내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화륵-!
솔라에게 강림한 프로메테우스가 여의초의 끝부분을 맴돌았고, 여의초는 말 그대로 거대한 하나의 담배가 되어 활활 타올랐다.
평소 내가 담배피우는 걸 많이 봐와서 그런지, 프로메테우스는 여의초의 끝에 거대한 태양을 집약시켜 놓는 센스까지 발휘했다.
"이걸 요즘 젊은이들 말로…."
나는 들고 있던 여의초를 오른손으로 옮기고는 한껏 몸을 뒤로 젖혔다.
마치 완벽한 투창을 위한 자세였다.
"담배 빵이라고 한다지?"
내 손에 쥐어진 여의초가 있는 힘껏 아래로 내던져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