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297화
제297화
불칸 화산지대의 서쪽에 자리한 휴화산.
이곳엔 한 가지 비밀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휴화산의 꼭대기에 살고 있는 존재.
'신성한 둥지'라 명명된 이곳은 그 존재가 신성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 이름 또한 거룩하기 그지없었다.
"흐흐흐흐."
그리고 그런 그곳에 한 남자가 길게 웃음을 늘어트리며 나타났다.
그는 바로 나태의 사도라 불리는 남자였다.
[마왕, '나태한 옥염'이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립니다.]
본디 궁좌의 자리에 있었던 '나태한 옥염'은 천궁의 밭을 갈며 농사를 담당했던 소였다.
그는 과거 '폭염'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었으며, 라그나로크 전쟁이 끝난 직후 마계로 도망쳤고, 12궁좌의 자리에서 쫓겨났다.
원래의 별명은 '불꽃의 추종자'. 그 진명은 이제 '벨페고르'라는 마왕이 되어버렸다.
"나태한 옥염이시여. 이그누르의 둥지가 저기에 있나이다."
하지만 이제 그는 '폭염'이라는 호칭은 버린 지 오래였다.
정확히는 아들인 미노타에게 준 지 오래.
하지만 미노타는 얼마 전 한 인간에 의해 죽었다.
그때 벨페고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나태의 사도는 간신히 화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마왕 '나태한 옥염'이 하루 빨리 강림을 하고 싶어 합니다.]
"조금만 기다리시지요. 곧 이뤄질 것이니…. 흐흐흐."
나태의 사도가 낮게 웃으며 천천히 휴화산의 정상을 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그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바로 마계의 문을 열기 위해서였다.
가이아가 걸어놓은 '금제'는 동서남북 사방을 지키는 사계절의 성좌들이 수호하고 있었고, 나태의 사도는 그런 그들 중 하나인 서쪽을 수호하는 '이그누르'를 죽이기 위해 온 것이었다.
원래 그들은 불사의 존재라서 죽어도 다시 태어나지만, 그래도 죽는 찰나의 순간.
약 1분가량 금제의 저주가 풀릴 것이라는 정보를 얻었고, 그 사이 준비된 마계의 군대들이 넘어옴과 동시에, 일곱 마왕들이 오랜 시간 준비된 자신들의 몸에 강림을 하는 것이 그 계획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인 것은….
'어떻게 금제의 저주를 푸는 법을 알았지?'
대체 어떻게 오만의 사도가 금제의 저주를 풀 방법을 알았냐 하는 것이었다.
'뭐,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이지만.'
중요한 건 아니었다.
나태의 사도는 그저 벨페고르를 자신의 몸에 강림시키고, 벨페고르의 바람대로 아들인 미노타를 죽인 인간들에 대한 복수를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저 지금은 목적만 생각하기로 했다.
벨페고르가 원하는 것은 아들을 죽인 인간들에 대한 복수.
세상을 죽음으로 물들이길 원하는 플루토의 뜻과도 일치했다.
그렇게 얼마쯤 걸었을까.
[진한 죽음의 냄새가 진동을 하는 구나.]
어디선가 꾸짖는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어느새 꼭대기에 자리한 신성한 둥지에 도착한 나태의 사도는 얼굴을 가리던 로브를 벗어 던졌다.
거대한 뿔 두 개가 이마에 솟아 있는 거체.
등 뒤로 맨 쌍 도끼는 무척이나 위압적이었다.
나태의 사도가 위를 올려보았다.
그곳엔 무척이나 고고한 새.
피닉스라 불리는 '이그누르'가 활활 타오르는 안광과 함께 날개를 펄럭이며 존재감을 표출하고 있었다.
끼오오오-!
[피닉스성, '이그누르'가 당신을 경계합니다.]
휴화산은 다시금 용암이 꿈틀거리더니, 활화산이 되려는 듯 뜨겁게 타올랐다.
거대한 이그누르를 보며 나태의 사도가 씩 웃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벨페고르에게 하사받은 옥염의 권능을 끌어 올렸다.
지이잉-!
그는 얼굴 앞으로 뜨거운 옥염의 힘이 모아지는 것을 보며 말했다.
"오늘은 닭고기인가. 으흐흐흐. 옥염의 숨결."
동시에 나태의 사도가 입을 쩍 벌리더니, 피슈우웅-! 뜨거운 옥염의 브레스가 이그누르를 향해 뻗어 나가며 한쪽 날개를 꿰뚫었다.
이그누르가 통증을 느끼며 날개를 펄럭거렸다.
[큭, 이놈…!]
끼오오오-!
이그누르가 울었다.
* * *
"허억. 헉."
"후우. 허억."
미도와 데이비드는 일행들을 이끌고 가까스로 주변의 언데드들을 모두 소탕하는데 성공했다.
대부분 하급 언데드였고, 종중 사이사이에 중급이나 고급 언데드들이 한두 마리씩 섞여 있었지만, 큰 피해는 없었다.
다행히 이쪽에도 루페온의 사제가 있는 탓이었다.
루페온의 사제들은 일행들에게 언데드를 무찌를 수 있는 별의 힘을 무기에 버프 형식으로 걸어주었고, 그렇게 하급 언데드들은 속절없이 별의 힘 앞에 굴복하며 허물어졌다.
"야."
그리고 바로 지금.
데이비드가 자신이 소환한 나무에 기댄 채 숨을 고르며 미도를 불렀다.
그것은 '자연의 왕좌'라는 별명을 가진 왕관성좌.
엘프들의 왕이라 불렸던 '메르세데스'의 권능이었다.
"왜요."
미도 또한 그런 데이비드를 보며 숨을 골랐다.
치사하게 자기 길드원들만 나무를 만들어 그늘에서 쉬게 하고 있네.
그래도 같이 싸웠는데, 전우애라고는 도저히 느껴지지 않는 남자다.
"그 영감 온다면서. 근데 왜 안와?"
"말 좀 가려 하시죠? 할아버지라고 하세요."
"내 마음이다."
"당신, 진짜…!"
미도가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걷더니, 앉아서 쉬고 있는 데이비드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어, 어이, 미도야. 야. 왜 그래."
박태현이 미도의 오른쪽에서 말렸다.
"미도야 손 놓자. 이 사람도 잘못 한 게 없진 않지만, 그래도 너무 흥분한 건 너답지 않아."
왼쪽에서 김현우의 자상한 목소리가 미도를 말렸다.
미도는 데이비드의 눈을 노려보며 응시한 채 쥐고 있던 멱살을 아래로 내던졌다.
그리곤 그에게 한마디 했다.
"아서왕은 개뿔."
미도는 그 한 마디를 남기고 뒤돌아 이카루스 길드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데이비드는 그런 미도의 협박에 이를 갈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여기서 전쟁이라도 벌였다가는 쉽지 않은 싸움을 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제길. 능력자만 아니었어도.'
그녀가 그려낸 그림자 잉크 병사들은 하급 언데드를 쓸어버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거기다가 죽을 때마다 새로 그리면 되었기에 죽으면 더 강한 병사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마르지 않는 잉크처럼 시간만 걸릴 뿐.
그녀가 부리는 병사들은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하긴, 저번에 잉크 드래곤인가. 그것을 그렸던 것도 저 여자였으니까.'
어쩌면 그 엄청난 것을 다시 그려낼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데이비드는 우선 참기로 했다.
그렇게 데이비드가 목을 쓰다듬으며 불쾌함을 털어낼 때였다.
"엇, 저, 저기!"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모두의 고개가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모두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런, 젠장!"
"다들 전투 준비해!"
그곳엔 말을 타고 달려오는 듀라한과 데스 나이트.
그리고 월드 대항전에서 보았던 루이 카셀의 임모탈 나이트가 완전해진 듯한 모습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임모탈 나이트?"
"설마, 루이 카셀이 지금 우리를 죽이려는 거라고?"
"뭐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그러나 의문은 사치였다.
이미 그들은 거의 코앞까지 진격한 상황이었다.
그때, 또 한 번 누군가 외쳤다.
"카를로스다! 비스트 마스터가 선두에 있어!"
다시 한번 그들의 고개가 저 멀리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곳을 보았다.
정말로 그곳엔 비스트 마스터 카를로스가 붉은 안광을 빛내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이 전과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뭐야. 모습이 왜 저래?"
"기계? 사이보그야?"
"제길.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모두가 지레 겁을 먹은 것처럼 소리를 쳤고, 바로 그 순간.
"흐음, 저 썩을 놈이 또 맞으려고 왔나 보네."
공중에서 웬 구름을 탄 남자가 나타났다.
* * *
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주변엔 언데드들의 시체가 즐비해 있었다.
최춘택은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린 주변 지형을 보며 이마의 미간을 찌푸렸다.
"꼴이 말이 아니구만."
최춘택은 정말 빛의 속도라 할 정도로 빠르게 전장에 도착했다.
아마 이제 당분간 바람의 길을 타고 움직일 일은 없을 만큼, 지니의 속도는 무척이나 훌륭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
마침 자신을 발견한 미도가 이곳을 향해 뛰어왔다.
최춘택은 그런 미도에게 시선을 주지도 않은 채, 곧장 전방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상황이 급박해 보이는구나."
"네. 언데드들이 무척 강해요. 부활 속도도 무척 빠르구요, 하급 언데드도 저희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인데, 지금 달려오는 언데드는 도저히…."
미도가 말을 잇지 못한 채 뒷말을 삼켰다.
최춘택은 바로 초감각을 시력에 집중해 달려오는 데스 나이트와 듀라한을 보았다.
그리고 최전방에서 달려오는 건….
"저놈은 또 왜 로봇인 게야."
카를로스를 두고 한 말이었다.
도대체 저 꼴이 기계인지 동물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모습이 끔찍했다.
그렇게 달려오던 언데드 대군들은 갑작스레 진군을 멈추었다.
멀찍이 떨어진 채 있던 카를로스가 갑자기 앞으로 나선 것은 그때였다.
"영감!"
카를로스 또한 사이보그화로 인해 좋아진 시야로 전방에 최춘택이 나타났음을 알게 되었다.
손녀를 인질로 삼아 최춘택을 끌어들이려고 했는데, 수고를 덜게 된 것이 그는 무척이나 기뻤다.
"하하하하-! 제 무덤이 여긴 줄 알고 찾아온 건가?"
그런 카를로스에게 발끈하듯. 최춘택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카를로스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또 처맞으러 왔냐!"
이번엔 카를로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큭.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최춘택의 말이 이어졌다.
"오늘 네놈을 포함해 뒤에서 깔짝거리는 해골들도 마저 두들겨주마!"
카를로스가 한쪽 입꼬리를 씰룩 올렸다.
그리고는 다시 최춘택을 향해 소리쳤다.
"후회하지나 마라!"
카를로스는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어깨에 두둥실 떠다니는 눈동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루이 카셀이 가진 '리치의 눈'이라는 스킬이었다.
아마 그는 이곳의 상황을 모두 지켜보고 있을 것이었다.
카를로스가 언데드 군단을 멈출 수 있었던 것도, 옆에서 따라오는 리치의 눈에 대고 루이 카셀에게 부탁을 했기 때문이었다.
"전군. 돌격-!"
카를로스가 손을 앞으로 뻗음과 동시에 언데드 군단이 다시 한번 움직이기 시작했다.
히히히힝-!
죽음의 군마를 타고 돌진하는 데스 나이트와 듀라한들이 무서운 기세로 전방의 살아있는 것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카를로스도 지지 않겠다는 듯 그들의 뒤를 따랐다.
목표는 당연히 최춘택이엇다.
"……."
그리고 최춘택은 팔짱을 낀 채 달려드는 언데드 군단을 오시하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주변은 이미 나지막한 긴장감이 유저들 사이를 감돌고 있었다.
최춘택은 미도를 포함해 다른 일행들의 면면들을 훑어보고는 아까 피지 못했던 [아틀라스의 구름 과자]를 꺼내 입에 물었다.
아까 설명으로는 불을 붙일 필요는 없다고 했었다.
스읍. 후우-.
구름 과자의 연기는 목을 타고 내려가더니, 폐를 한 바퀴 돌았다가 다시 목을 타고 올라와 코와 입으로 내뿜어졌다.
상쾌한 향이 전신에 가득 차오른 느낌이었다.
"설탕 맛이네. 신기하구만."
[아틀라스의 구름 과자를 피웠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0% 증가합니다.]
역시 예상대로 모든 능력치가 상승했다.
두두두두-!
죽음의 군마들의 말발굽 소리가 더욱 가까이 들리며,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사도, '하늘을 짊어진 골초'가 조금 도와주겠다고 말합니다.]
뭐야…?
[아틀라스의 구름 과자에 봉인되어 있던 스킬이 해제됩니다.]
[당신은 이제부터 이것을 무기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츠츠츳-!
허공에 스파크가 튀더니 아틀라스가 '기억 전이'를 이용해 구름 과자의 사용법을 내게 알려주었다.
머릿속으로 무기로 썼을 때, 구름 과자의 성능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잠깐만, 이거 혹시…?
[무기로 사용할 때의 '시동어'를 설정해주십시오.]
[시동어를 말할 때만, 구름 과자를 무기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춘택은 곧장 입에 뻐끔 물고 있는 구름 과자를 검지와 중지로 들어서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는 달려드는 언데드들을 향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커져라. 여의초."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