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296화
제296화
나는 3일이 지나서야 영혼의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틀라스는 이곳을 자신이 만들었지만, 자칫 빠져나가는 것을 도와주려고 구조를 바꾸었다가는 명계로 향하는 영혼들이 폭주할 수 있기에 도와줄 수 없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다시 미궁을 돌아다녔고, 대신 아틀라스는 프로메테우스가 솔라에게 빙의하는 것처럼 지니에게도 빙의를 해서 밖을 나가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렇게 이번엔 나흘에서 하루를 줄여 3일 만에 나오게 된 것이었다.
"후우."
그리고 3일이 지난 지금.
다시금 밖으로 나왔을 땐, 화산 지대 특유의 매캐한 유황 냄새가 반기듯 달려들었다.
더불어 뜨거운 바람이 훅 끼치며 온몸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본연의 힘을 되찾습니다.]
흠. 그러고 보니 프로메테우스 녀석 꽤 답답했겠군.
"프로메테우스. 그래도 동생을 보니까 좋지 않냐?"
[사도, '하늘을 짊어진 골초'가 흐뭇하게 웃습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아틀라스와 함께 하늘을 드는 중입니다.]
원래 아틀라스의 별명은 '하늘을 짊어진 자'였다.
하지만 그가 피는 구름 과자.
아니, 담배를 보며 내가 골초라고 놀렸더니, 별명을 저렇게 바꾸어버렸다.
설마 저걸 바꿀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아틀라스. 그냥 별명 말고 이름으로 하면 안 되냐?"
[사도, '하늘을 짊어진 골초'가 자신은 이 별명이 마음에 든다고 말합니다.]
"……."
뭐, 지가 좋다는데 별수 있나.
"지니야."
"왜 부름-?"
나는 곧장 옆에 있는 지니를 불렀다.
몽글몽글한 지니는 마치 양을 만지는 것처럼 푹신했다.
나는 그런 지니의 등 위로 가볍게 올라탔고, 마치 편안한 쿠션에 앉은 듯 가부좌를 틀고 앉자 세상 편안함이 밀려들며 잠에 빠져들 뻔했다.
"어흠. 잠들면 안 되지. 지니야. 출발!"
황급히 고개를 틀며 잠을 털어낸 나는 곧장 지니를 타고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날았다.
애초에 내가 가진 프로메테우스의 기억 속 알렉서스는 이렇게 지니를 자가용으로 타고 다니곤 했었다.
따라서 나도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가만있어 보자. 동쪽이…?"
지니는 익숙한 듯 나를 태우며 동서남북 곳곳에 위치한 화산지대 꼭대기에 나를 데려다주었고, 나는 그곳에 있는 스타 프루츠 4개를 빠른 속도로 모을 수 있었다.
그렇게 모아진 것은 1등성 하나와 2등성 하나.
그리고 3등성 두 개.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성과였다.
이제 남은 것은 미도의 연락인데….
"바쁜가…?"
내가 영혼의 미궁을 빠져나오는 동안 무조건 게임만 한 것은 아니었다.
중간중간 휴식을 위해 캡슐을 나왔고, 그때 며느리가 내게 미도가 전해주라고 했던 쪽지를 받을 수 있었다.
별 내용은 아니었고, 배를 타고 가느라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릴 것 같으니 파르타 공국에 도착하면 연락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외에 귓속말이 안 되는 지역이라 걱정된다는 말도 있었는데, 어쨌든 나 또한 영혼의 미궁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기에 미도가 배를 타고 늦게 온다는 건 천만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오늘이 일주일 되는 날인데…."
나는 곧장 인벤토리에서 아틀라스가 떠나기 전 내게 주었던 것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바로 [아틀라스의 구름 과자]라 명명된 아이템.
떠나기 전 아틀라스가 내게 선물로 준 것이었다.
위험할 때 피우면 무지하게 도움이 될 거라나 뭐라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최초의 3신중 하나인 땅과 바다의 신 '넵튠'이 아틀라스가 하늘을 드는 형벌을 받으며 힘들면 이렇게 해보라고 권했었다고 한다.
[아틀라스의 구름 과자]
등급: 신화
구름과 형벌의 신, '아틀라스'가 하늘을 짊어지며 외로움과 고통을 잊기 위해 피던 것이다. 구름의 정령인 지니로 만든 것이라 부작용 따윈 일절 없으며, 오히려 능력치의 상승효과가 있다.
-이것을 피면 10분간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
-봉인된 스킬이 있습니다.
무려 신화 등급의 담배다.
아틀라스는 이것을 위험한 순간에 피우라고 했지만, 뭐 담배가 위험한 순간에 피워봤자 긴장이 풀리는 정도밖에 더 하겠나.
아마 아틀라스가 말한 위험한 순간에 피우라는 뜻은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한다는 것 때문일 테지.
어쨌든 이건 아틀라스가 남겨둔 마지막 구름 과자다.
이른바, 우리들 용어로 '돗대'라는 거다.
능력치 감소도 없고 완전 좋구만.
허허.
근데 봉인된 스킬은 또 뭐야?
"피워보면 알겠지."
그렇게 내가 구름 과자를 입에 물려는 순간.
- 미도: 할아버지. 저희 좀 살려주세요!
하마터면 들고 있는 걸 떨어트릴 뻔했다.
* * *
멸망한 파르타 공국의 서쪽 항구.
이미 이곳은 아수라장이었다.
데이비드는 150명가량의 유저들과 함께 달려드는 언데드를 헤쳐나갔고, 유저들은 '엑스칼리버'라는 길드에 가입하면서 소속감 넘치는 마음으로 힘을 합쳐 싸워나갔다.
길드장인 데이비드의 목룡은 언데드를 무차별적으로 죽여 나갔는데, 엑스칼리버 길드원들은 그런 위엄 있는 아서왕 데이비드의 뒤를 쫓아 내달렸다.
"가자-!"
"아서왕을 따르라-!"
그러나 데이비드는 연신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언데드가 살아나는 속도가 무척이나 빨랐고, 평소에 보고 느꼈던 네크로멘서들의 두 배라고 할 수 있는 부활 속도는 그런 데이비드를 무척이나 피곤하게 만들었다.
"제길, 끝이 없군!"
어쨌건 지금은 하급 언데드만 나와서 쉽게 헤쳐나가고는 있지만, 조금씩 몰려드는 중급 언데드와 고급 언데드를 만날 때마다 죽는 인원은 부지기수로 늘어났다.
"다들 조금만 참아요! 할아버지가 오신다고 했으니까!"
난데없는 고함 소리에 데이비드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목소리의 주인은 오른쪽에서 이카루스 길드를 이끈 채 싸우던 미도였다.
그녀는 월드 대항전에서 각성한 스타 프루츠 능력으로 그림자 잉크 병사들을 불려 나가고 있었다.
그 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순식간에 자신이 꾸린 길드원들을 웃돌 정도였다.
근데 왜 다 귀티인 거지.
"그 영감이 온다고?"
"당신, 말 좀 공손하게 해요! 내 할아버지란 말이야!"
"흥. 어쨌든 이곳의 왕은 나다."
"뭔 헛소리예요! 일단 힘을 합쳐요! 그래야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렇게 의도치 않게 두 세력은 눈앞의 적을 두고 연합을 결성하게 되었다.
일시적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데이비드도 고개를 끄덕이며 힘을 보탰다.
"잠깐의 연합이다."
"바라던 바예요."
그런 미도의 앞을 지키던 김현우가 달려들던 언데드를 방패로 때려눕히더니 돌연 외쳤다.
"길드장은 나야!"
* * *
멸망한 파르타 공국의 성벽 위.
마공학의 성지라고 불리던 파르타 공국의 성벽은 본디 침입자를 발견할 경우.
벽에 달린 레이저를 발사해 적을 말살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건전지를 잃어버린 기계 문명은 낡아서 버려진 고철 덩어리를 마주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이제 주변의 정경은 기존에 알던 파르타 공국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져 있었다.
"…아름다워."
루이 카셀이 성벽 위에서 진군하는 언데드 군단을 보며 내뱉은 말이었다.
과연 이곳은 죽음의 왕이 될 자신에게 어울리는 경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후후. 슬슬 제대로 움직여볼까."
루이 카셀이 다시금 지팡이를 흔들자, 성벽 아래에 고급 언데드들이 즐비하게 일어섰다.
머리가 없는 듀라한과 데스 나이트를 비롯한 언데드 기사들.
그리고 그런 기사들을 이끄는 것은 이젠 혼자서 일으킬 수 있게 된 '임모탈 나이트'였다.
커뮤니티에서는 늘 당하기만 하는 임모탈 나이트를 가리키며 탈모임 나이트라며 놀려댔지만, 그것은 그때의 자신이 나약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얘기가 다르다.
그아아아-!
이제는 완연한 죽음의 기사가 된 임모탈 나이트의 외양은 무척이나 화려하고 끔찍했다.
흑색의 갑주와 거대한 대검에 장식된 해골의 눈은 푸른 불꽃으로 일렁였고, 적을 공포에 떨게 만들기 충분할 정도였다.
"…가라. 가서 적들을 죽음으로 이끌어라."
루이 카셀은 흡족한 얼굴로 그들을 앞으로 진군시켰다.
이제 언데드 군단들은 한창 하급 언데드나 잡으며 승리에 취해있을 서쪽 항구의 유저들을 묵사발을 낼 것이었다.
하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카를로스. 움직일 수 있겠나?"
"…물론. 그 영감탱이의 손녀를 납치해서 데려오면 되는 거 아닌가?"
"후후. 맞아. 우리에겐 아주 좋은 패로 쓸 수 있겠지."
"갔다 오겠다."
철컥. 철커덕.
비스트 마스터로 불리던 카를로스의 몸은 이제 사이보그로서 완전해졌다.
그가 자주 변신했던 웨어울프의 몸 곳곳은 기계화되더니 무척이나 냉혹해 보였다.
"아우우우-!"
검게 물든 하늘 아래 늑대의 울음소리가 처량하게 울렸다.
카를로스가 날렵하게 성벽 아래로 뛰어내리더니, 멀리 있는 전장을 한 번 훑어보고는 쏜살같이 뛰쳐나갔다.
* * *
녹색의 아름드리가 드높게 솟은 들판.
아마존을 방불케하는 각양각색의 풀과 나무들이 자리한 이곳은 동대륙에서 유명한 녹림지대였다.
그리고 그런 녹림지대 부근에 자리한 어느 마을 한복판.
슈우우욱!
어두운 빛이 내려앉으며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바로 '폭식하는 질병'이라 불리는 마왕을 섬기는 폭식의 사도였다.
"누, 누구세요? 꺄악-!"
갑작스레 나타난 폭식의 사도에게 아낙네가 물었을 땐, 이미 아낙네는 질병에 걸린 것처럼 썩어 문드러져 있었다.
그런 아낙네의 주변엔 파리가 들끓었고, 폭식의 사도는 아낙네의 심장을 꺼내 손에 들고 있는 천칭에 매달았다.
덜커덩!
"…후후후. 모두 썩어 문드러져 버려라."
폭식의 사도가 손에 든 천칭이 한쪽으로 기움과 동시에 그가 역병의 군단이라는 스킬을 사용하며 파리들을 마을 곳곳으로 퍼트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의 모습은 거대한 파리로 변해 있었다.
우우우웅-!
죽음이 들끓는 소리가 곳곳에 메아리쳤다.
"너희들의 심장을 타락한 천칭에 매달아 주리라."
* * *
아크 대륙의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바다.
아틀란 해라고 불리는 이곳은 과거 넵튠이 홍수를 일으켜 아틀란 제국을 멸망에 이르게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곤 한다.
그리고 그런 바다의 한복판.
망망대해를 홀로 걷고 있는 남자가 로브를 벗으며 천천히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고오오오-!
동시에 그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다리는 문어처럼 8개의 다리를 가졌고, 머리는 용과 악어를 닮았으며, 손에는 물갈퀴가 있고,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
특히 거대한 크기의 몸집은 세상 그 어떤 바다 생물보다 포악하고 잔인해 보였다.
"떨어라. 바다여. 심연의 질투가 너희들을 집어삼킬 지어니…."
* * *
오르카 왕국, 왕성에 자리한 왕의 침실.
당대의 오르카 왕국의 통치자인 레오나르도는 늘 불안함을 안고 살았다.
갑작스레 나타난 불사의 인간들은 언제나 그에게 권좌를 위협하는 존재로 보였고, 종교임에도 왕권을 넘보는 시리야 교단의 교주 시리야는 항상 자신을 정치적으로 견제해왔다.
레오나르도는 그런 시리야에게서 권좌에 대한 욕망을 보았다.
늘 참고 인내하고 버티기만 했던 레오나르도의 일생은 언제나 무언가에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으으음…."
그리고 레오나르도는 침대에 누워 악몽을 꾸는 듯 몸을 뒤척였다.
그런 그의 곁에는 검은 로브를 뒤집어 쓴 사람이 있었다.
내리쬐는 달빛을 바라보며 남자는 로브를 벗어 모습을 드러냈다.
"……."
머리에 돌돌 말린 듯 솟아오른 뿔이 염소의 외향을 나타내었다.
"참으로 딱한 자로구나."
분노의 사도라 불리는 남자는 연민에 찬 표정으로 레오나르도의 머리에 살며시 손을 올렸다.
"내가 너의 분노를 깨워주겠노라. 나는 마계의 2인자. '나타스(Natas)'라는 이름을 버리고, 사탄(Satan)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노라. 레오나르도여. 분노하라. 내가 너의 안에 잠재된 분노를 깨워줄 것이다. 세상을 분노로 물들여라."
분노의 사도라 불리는 남자의 눈은 붉은 눈동자가 되더니, 달빛 아래서 형형하게 빛났다.
"아아악-! 아아아악-!"
귀를 찢는 레오나르도의 비명이 침실을 공포로 적셨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