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290화
제290화
간단한 계정 등록을 마친 나는 곧장 화면을 내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헤스페리데스에 위치한 구름의 신전 안.
그런데 이곳엔 아무도 없는지 무척이나 고요했다.
"다들 어디로 간 거지?"
어쩌면 밖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선은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바깥으로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누군가 당신을 팔로우했습니다.]
[누군가 당신을 팔로우했습니다.]
[누군가 당신을 팔로우했습니다.]
[누군가….]
"응?"
갑자기 어마어마한 메시지가 폭탄처럼 떠올랐다.
나는 너무 놀라서 눈을 껌뻑거렸다.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팔로우? 아, 혹시 그 아크스타그램인지 그거 말하는 건가?"
이렇게 말하는 와중에도 팔로우 메시지는 계속 떠올랐다.
정말 미쳤다는 말만 나올 정도로 무시무시한 속도로 메시지가 솟구쳤다.
에잉,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누군가 당신을….]
[누군가 당신을 팔로우….]
나는 애써 메시지를 무시하고 다시 아크스타그램을 켰다.
최춘택(69세)[한국]
[게시물 0][팔로워 1,284][팔로잉 0]
-염병하네.
"이건 또 무슨 조화냐."
난데없이 팔로워란 것이 1,200개가 넘어있었다.
근데 이게 뭔지 모르겠다.
유민석의 말에 따르면 채팅창 기능이란 것을 넣으려다 말았다는데, 이상하게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게 있었으면 하루도 바람 잘 날 없었겠군."
어쨌든 팔로워는 계속 올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2,500이 넘어 버렸고, 자꾸만 뜨는 메시지 알람도 짜증이 났다.
나는 아크스타그램의 메시지 알람을 아예 꺼버렸다.
"휴우.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그나저나 무열이 이놈은 어디서 뭘하는 게야."
그 순간.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친구, '백무열' 님이 접속하였습니다.]
"왔네."
호랑이도 제 말 한다면 온다더니.
백무열은 곧바로 내 근처에서 나타났다.
같은 곳에서 접속을 종료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오, 춘택아. 새해 복 많이 받아라."
"그래. 너도 많이 받자."
"근데 이거 뭐냐? SNS 시스템? 아크스타그램?"
"모르면 설명 읽고 계정 등록한 뒤에 천천히 나와. 난 먼저 밖에서 라레투사를 만나고 있을게. 아마 밖에 있는 거 같아."
그렇게 난 내팽개치듯 백무열을 버려놓고는 밖으로 나왔다.
뒤에선 여전히 끙끙대며 어려워하는 백무열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 도와줄 걸 그랬나?
뭐, 괜찮겠지. 애도 아니고.
"프로메테우스."
화륵-!
그 말과 동시에 옆에서 푸른 눈의 솔라가 나타났다.
말할 것도 없는 솔라에게 강림한 프로메테우스였다.
"아틀라스의 위치를 알아야 해."
"흥. 나도 그쯤은 알아. 영감."
이제는 두 손이 생겨서 그런지 팔짱을 낀 채 말하는 솔라는 무척이나 거만해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세 자매는 멀지 않은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프로메테우스의 기운을 느꼈는지 세 자매가 알아서 찾아온 것이다.
"큰 아빠-!"
세 자매 중 가장 애교가 많은 아이글레가 총총거리며 뛰어왔다.
저 큰 신장으로 저렇게 뛰어오니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귀여운 큰 아빠~"
"흐읍!"
아이글레가 솔라의 모습을 한 프로메테우스를 꼭 끌어안았다.
마치 네 살배기 아이에게 붙잡힌 곰 인형 신세 같아서 나도 모르게 웃음보가 터질 뻔했다.
"아이글레. 그만해. 큰 아빠가 숨을 못 쉬고 계시잖아."
"앗, 미안해요-!"
뒤에서 나타난 라레투사가 만류를 하고서야 아이글레가 프로메테우스를 놔주었다.
프로메테우스가 크게 숨을 헐떡였다.
"헉. 허억-. 아니야. 괜, 괜찮아."
저렇게 불쌍한 프로메테우스는 또 처음이구만.
"라레투사."
"……?"
나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아틀라스의 위치를 알려줄 수 있겠나?"
지금 나는 아이글레도 에리테리아도 아닌 라레투사에게 말하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세 자매 중에서 가장 결정권이 커 보이는 것은 라레투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맞다는 듯….
"알려주지. 아버지도 좋아하실 거 같으니까."
라레투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안색은 한눈에 밝아졌다.
그것은 프로메테우스도 마찬가지.
"대신 조건이 하나 있다."
"조건…?"
그리고 바로 그때.
뒤에서 투덜거리며 걸어오는 백무열의 목소리가 들렸다.
"끙, 뭐가 이렇게 어려워? 하여간 개발자란 놈들 머릿속은 알 수가 없다니까. 왜 이런 쓰잘데기 없는 것들을 만들어놨누. 쯧쯧."
라레투사가 걸어오는 백무열을 응시하며 나직하게 말했다.
"저 남자를 내게 맡겨줬으면 싶다."
* * *
메테우스의 텅 빈 훈련장.
최춘택과 동시에 접속을 했던 미도는 역시나 아크스타그램 계정 등록을 끝마쳤다.
평소 SNS를 즐겨 하던 그녀였기에 어려운 것은 없었다.
역시나 미도를 팔로우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적지 않았고, 그녀는 바로 알람을 꺼버렸다.
하아. 인기녀는 언제나 이렇게 피곤한 거구나.
"아, 맞아. 나도 팔로우해야지."
미도는 신세대답게 곧장 익숙하게 아크스타그램의 기능을 파악했다.
그녀는 곧장 검색창을 열었다.
첫 번째 검색은 바로 할아버지.
그녀는 검색창에 '최춘택' 세 글자를 써넣었다.
잠시 뒤, 최춘택의 프로필 사진이 나왔다.
"풉. 뭐야. 귀여워."
브이를 한 채 치아를 보이며 씩 웃는 최춘택의 얼굴은 무척이나 귀여웠다.
미도는 바로 최춘택에게 팔로우 신청을 했다.
신청을 보냈으니 이제 기다리면 될 일. 어려울 건 없었다.
"와, 근데 할아버지 팔로워 숫자가 벌써 5천을 돌파했어? 미쳤다."
미도는 자신의 팔로워 숫자를 보았다.
이제 고작 2천을 넘은 수준.
할아버지에 비하면 무척이나 초라한 숫자에 미도는 괜스레 심통이 났다.
"치. 나도 할아버지만큼 인기 많아질 거야."
그렇게 투덜거리며 미도는 어떻게 하면 자신의 계정이 인기가 있을지 생각했다.
아크스타그램은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는데, 유튜브 계정과 연동이 되기 때문에 방송한 것을 이곳에 올릴 수도 있었고, 사진이나 실시간 라이브 방송을 할 수도 있었다.
어쨌든 이런 방송들을 많이 해본 미도였기에 가장 중요한 것이 뭔지 잘 알고 있었다.
"새로운 컨텐츠가 필요한데. 괜찮은 거 없나…?"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미도의 머릿속으로 난데없이 번개가 쳤다.
"맞아! 그 방법이 있었지!"
미도의 동공은 놀라운 발견을 한 사람처럼 커다래졌다.
말 그대로 유레카였다.
왜 이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녀는 자신이 천재라는 생각을 했다.
[친구, '김현우' 님이 접속하였습니다.]
[친구, '은정혁' 님이 접속하였습니다.]
[친구, '박태현' 님이 접속하였습니다.]
"아, 오빠들도 왔네?"
마침 약속 시간에 맞춰 이카루스 길드원들이 접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흐흐흐. 만약 이 컨텐츠가 통한다면 나는 물론이고, 할아버지까지 대박이 터질 거야."
그렇게 부푼 대박의 꿈을 안은 채, 미도는 실실 웃으며 할아버지에게 귓속말을 했다.
* * *
그 시각.
나는 홀로 헤스페리데스 영역 바깥으로 나오고 있었다.
아이글레가 권능인 수호의 구름을 이용해 결계를 열어주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어쨌든 지금 내 옆에 있는 것은 솔라의 몸에 강림한 프로메테우스뿐이었다.
[큰][아][빠][잘][가][♡]
아이글레가 만들어낸 것으로 추정되는 구름으로 쓰인 글자가 결계 입구에 떡 하니 있다.
나와 프로메테우스는 그것을 보는 순간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인기가 많아서 좋겠다."
"피곤한 조카들이지."
"그래도 보기 좋다."
"뭐, 가족인데 당연하잖아?"
프로메테우스가 별 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솔라의 모습으로 저러고 있으니 조금 어색하기도 하다.
음, 그나저나….
"다시 돌아갈 생각하니까 허탈한데."
"어쩔 수 없잖아. 나도 거기에 아틀라스가 있는 줄은 정말 몰랐다고."
라레투사에게 들은 아틀라스의 위치는 무척이나 의외였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나쁜 소식도 있었다.
"아틀라스가 구름과 형벌의 신이 되었다니…."
프로메테우스가 솔라의 얼굴로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저러고 있으니까 진짜 적응이 안 된다.
"송화산에서 하늘을 들고 있었다니, 정말이지 가혹한 형벌이야."
아틀라스는 송화산에서 명계의 입구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 영혼들의 형벌을 결정하는 일을 한다나 뭐라나.
그것도 구름을 훔친 벌로 평생 하늘을 들어 올리면서 하고 있단다.
"유피테르…!"
프로메테우스가 분한 표정으로 이를 갈았다.
그의 생각이 내 머릿속으로까지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분노, 서러움, 슬픔 등이 복합적으로 뒤섞인 감정.
어쨌든 지금 프로메테우스가 무척이나 화나 있다는 건 잘 알겠다.
얼마나 화났는지 태양열이 조금 뜨거워진 것 같았으니까.
"빨리 가자. 아틀라스도 널 기다리고 있을 거야."
"후우. 그래."
"바람을 타고 달릴 거니까 그만 돌아가."
"흥. 그럴 참이었어."
그렇게 솔라가 불꽃으로 흩어지며 사라졌다.
"…쯧. 말본새하고는."
하여튼 솔라는 프로메테우스를 닮은 게 틀림없다.
솔라의 말버릇이 나쁜 건 다 이놈 탓일 거다.
이제 프로메테우스는 다시 메시지로 내게 말을 걸겠지.
"흡."
그렇게 이어서 칼바람의 묘리를 펼치며 바람의 마력을 끌어올리자, 두 다리에 자그마한 태풍이 맺혔다.
이제 내 몸은 한결 가벼워진 것이 느껴졌다.
슬슬 가볼….
- 미도: 할아버지!
"음?"
- 잭슨: 그래. 벌써 화산지대에 도착했니?
- 미도: 아뇨! 이제 오빠들이랑 갈려구요. 근데 할아버지 저랑 맞팔 안 하실래요?
- 잭슨: 맞팔?
- 미도: 저한테 팔로우 신청하시면 맞팔 되는 거예요. 상단에 돋보기 모양 누르고, 제 이름 검색하시면 찾을 수 있어요.
- 잭슨: 아, 그래? 잠시만 기다려봐라.
나는 곧장 아크스타그램을 열었다.
"으잉? 언제 이렇게 팔로워가 많아졌지?"
놀라웠다.
아크스타그램의 내 팔로워 수가 순식간에 6천 명에 임박했다.
아니, 내가 뭐가 좋다고 이렇게 팔로워란 걸 하는 거지?
하여간 요즘 젊은이들 속은 알 수가 없다니까.
"어디 보자…."
일단은 미도가 말한 대로 상단의 검색창에 '최미도' 세 글자를 썼다.
그렇게 검색하자 손쉽게 손녀를 찾을 수 있었다.
우윳빛 피부와 인절미처럼 몽글한 볼살이 무척이나 귀여운 사진이었다.
"허허. 언제 봐도 귀엽구만."
그렇게 나는 오랜만에 손녀 바보 미소를 지으며 팔로우를 걸었다.
[최미도님을 팔로우합니다.]
[당신은 최미도 님과 서로 팔로워가 된 상태입니다.]
[이제부터 최미도 님이 올리는 게시물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흠. 도통 뭔 말인지."
뭐가 이렇게 어려운 건지 모르겠다.
내가 정말 이걸로 젊은이들이랑 소통이란 걸 할 수 있을까?
유민석은 다가올 재앙에 대비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유저들과 소통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솔직히 난 자신이 없었다.
지금은 이렇게 팔로워란 것이 늘고 있어도, 이게 평생 갈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이런 늙은이와 소통을 하려고 할지는 솔직히 의문이었다.
…뭐, 백무열은 다를 수도 있겠지. 그놈은 인싸니까.
그러고 보니, 그 녀석. 라레투사랑 잘 지내고 있으려나?
나는 아까 전 백무열을 라레투사에게 팔아넘긴 것이 떠올랐다.
멍한 표정으로 구름의 밧줄에 묶인 채 끌려가는 백무열의 뒷모습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에이, 뭐 잘 지내겠지. 라레투사도 그러겠다고 했고, 정 위험하면 그걸 쓰면 되니까."
어쨌든 미안한 건 사실이다.
무열이가 끌려가며 외쳤던 쌍욕들이 얼마나 찰지던지. 허허.
- 미도: 오, 우리 이제 맞팔 됐어요!
- 잭슨: 허허. 그래. 그렇구나.
그게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 미도: 할아버지. 이제 게시물 뭐 올릴 거예요?
- 잭슨: 게시물? 글쎄. 아직 생각해본 건 없는데.
- 미도: 그럼 우리 같이 컨셉 잡고 방송 안 해볼래요? 제가 할아버지 인싸 만들어 드릴게요! 이왕이면 무열이 할아버지도 같이하면 재밌을 거 같은데 어때요? 이거 완전 끝내주는 생각 같지 않아요? 꺄아아악-♡ 어떻게, 어떻게. 난 진짜 천잰가 봐. 미쳤엉.
…얘 뭐, 잘못 먹었나?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