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289화
제289화
시상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렸고, 전 세계인들이 단상에 올라선 미국, 한국, 중국의 선수들을 향해 환호성을 쏟아냈다.
그 사이엔 나와 백무열이 함께 있었는데, 역시나 미국은 금메달의 영광을 누렸다.
조금 부럽긴 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 따윈 없다.
이어지는 폐막식이 끝났고, 나는 일행들과 함께 유니온에서 주최한 성대한 파티에 참석하게 되었다.
다른 나라의 선수들도 모두 참가하는 그런 파티였다.
"오랜만에 이런 옷을 입으니까 어색한데…."
고요하게 움직이는 리무진 안.
어색해하는 날 보며 미도가 양 엄지를 치켜들었다.
"할아버지, 지금 진짜 멋있어요. 완전 짱이에요. 짱!"
유니온에서 친히 보내준 리무진 안은 무척이나 아늑하고 화려했다.
건너편에 앉은 미도는 붉은 융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마치 게임 속 캐릭터처럼 보일 정도로 미도는 아름다웠다.
젊은 시절의 아내가 저렇게 입었다면 아마 눈에 하트가 피어올랐을 거다.
"너도 멋있다. 아니, 완전 이쁘구나. 미스코리아 같다."
"정말요? 헤헷. 이게 다 드레인 할아버지 덕이죠 뭐."
미도가 양손을 얼굴에 대며 얼굴을 붉혔다.
참고로 우리가 입은 옷은 드레인이 보내준 것이었는데, 요즘 한창 게임 속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서 연락도 못 했다고 한다.
그러다 문득 시상식 잘 봤다면서 연락이 먼저 온 것이다.
내가 파티에 간다고 했더니,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겠다면서 디자이너를 보내 옷을 입혔다.
괜히 번거롭게 만드는 거 아닌가 싶어서 찾아온 디자이너에게 미안함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멋진 모습을 하고 파티에 나갈 생각을 하니 설레는 것도 사실이었다.
"커험. 나는 안 멋있고?"
그때. 옆에 앉은 백무열이 헛기침을 하며 투덜거렸다.
"무열이 할아버지도 멋있어요. 최고! 지금 되게 인싸 같아요."
바로 옆에서 투덜거리는 백무열에게 미도는 또 한 번 엄지를 들어주었다.
백무열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인싸? 그게 뭐냐?"
"음, 엄청 인맥도 넓고 잘 노는 그런 사람들을 뜻하는 말?"
"흠, 요즘 젊은이들은 희한한 말을 많이 쓴단 말이야. 하여튼 젊어 보인다는 그런 뜻이렸다?"
"맞아요. 그런 거예요."
백무열과 미도가 서로 깔깔거리며 웃었다.
하여튼 둘은 만나면 이상하게 죽이 척척 맞는다.
스승과 제자의 모습이 썩 보기 좋달까.
끙, 근데 이상하게 질투가 나네.
"1분 뒤 도착입니다."
리무진 운전사의 말이 이어진 건 그때였다.
곧이어 성대한 만찬이 진행될 예정인 호텔 앞에 차가 멈춰섰고, 창밖을 바라본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곳엔 상상을 뛰어넘는 인파가 몰려 있었다.
"허어."
"이게 뭔 일이라냐."
"헐! 뭐가 이렇게 많지?"
깔려진 레드 카펫을 사이에 두고 수많은 취재진과 카메라들이 즐비했다.
그런 레드 카펫 주위에는 경호원들이 양쪽으로 줄을 선 채, 관객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모두 우리를 보러 온 사람들인가 봐요."
미도의 말에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백무열은 여전히 이런 상황을 즐기는 듯 들뜬 표정이었다.
하지만 난 역시나 이런 건 좀 어색하다.
그래도 미도랑 함께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나가자."
그렇게 굳은 결심으로 가장 먼저 리무진의 문을 열어젖혔다.
촤촤촤촥!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엄청난 플래시 세례가 곳곳에서 쏟아졌다. 이어지는 사람들의 환호성.
"최춘택 할아버지!"
"팬이에요!"
"너무 멋있어요-!"
"여기 좀 봐주세요-!"
나만 내렸을 뿐인데 이런 환호성이다.
이어서 미도와 백무열이 내리자, 환호성은 더욱 커졌다.
"최미도다!"
"꺄악! 언니, 너무 예뻐요!"
"백무열 할아버지 멋있어요!"
"사랑해요-!"
미도는 우아하고 매혹적인 자태로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 준 뒤, 나와 백무열을 양쪽에 낀 채 우아하게 레드카펫을 걸었다.
그렇게 우리는 포토라인을 지나 호텔 입구로 들어섰고, 관계자로 보이는 직원이 다가오더니, 조그만 무언가를 내밀었다.
"유니온이 개발한 자동으로 통역해주는 이어폰입니다."
"호오."
"신기하네. 세상 참 좋아졌어."
"빨리 끼고 올라가요. 우리."
미도의 재촉에 나와 백무열이 빠르게 통역 이어폰을 장착했다.
나는 눈앞의 직원에게 물었다.
"파티는 몇 층이지?"
"13층입니다."
* * *
띵-!
13층에 도착했다는 알림음과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활짝 열렸다.
입구에는 여전히 레드카펫이 깔려있었는데, 그것은 안쪽의 연회장까지 이어져 있었다.
미도는 나와 백무열을 양쪽에 낀 채 우아하게 연회장 안으로 들어섰다.
또각또각.
고요한 구두 소리와 함께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우리는 마치 파티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뜨거운 시선을 받았고, 그도 그럴 것이 드레인이 만들어준 연미복은 다른 선수들이 입은 것에 비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렇게 우리는 웨이터가 건네주는 칵테일을 하나씩 들었다.
"미도야!"
바로 그때. 건너편에서 나름 나쁘지 않은 드레스를 입은 임사라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그녀는 가슴에 손을 올리더니, 우리를 향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다른 녀석들은 아직 안 온 건가?
"사라 언니!"
미도 또한 그런 임사라를 향해 마주 웃으며 달려갔고, 둘은 서로가 너무 이쁘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동시에 각국의 선수들이 이곳으로 다가오며 한 사람씩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이상한 외국어로 샬라샬라 거리는데 뭐라는 건지 모르겠다.
백무열이 대뜸 물었다.
"뭐라는 건지 알아?"
"아니, 모르겠는데."
그 순간 귓속으로 [통역이 시작됩니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갑자기 외국인 선수들의 말이 전부 통역되더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와 백무열은 동시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거 참. 신기하네."
"그러게 말이야."
아무튼 그렇게 다른 나라 선수들과 친목을 도모하는 사이.
한국 대표팀 일행들이 도착했다.
모두 괜찮은 정장을 찾느라 늦었다고 한다.
"어르신. 오늘 완전 멋있습니다."
"와. 진짜 엄청 멋진 노신사 같은데요?"
"모델을 하셔도 되겠어요!"
그렇게 우리는 친목을 위한 파티를 마음껏 즐겼다.
늦게 등장한 견소룡과도 마음껏 이야기를 나누었고, 제우스 길드에 속한 라인하르트, 레이나, 마이클, 데미안, 카푸치노도 만날 수 있었다.
그중 레이나의 고혹적인 드레스는 단연 모두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맛있는 것을 먹으며 파티가 무르익어 갈 때 즈음….
"잠깐 이야기 괜찮으십니까?"
"……?"
난데없이 들려오는 한국말에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유민석이 서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라서 일단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자. 어차피 곧 갈 예정이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백무열에게 미도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연회장을 빠져 나왔다.
백무열은 걱정 말라는 당부를 하며 나를 먼저 보냈는데, 뭐가 그리 좋은지 원.
어쩌면 미도의 말대로 저 녀석은 '인싸'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제가 댁까지 모셔드리겠습니다."
"음, 그럴래?"
유니온에서 준비해준 택시를 타려고 했는데 잘 되었다.
어차피 유민석이 할 말이 있다고 했고, 데려다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는 거다.
그렇게 나는 유민석의 차에 올라탔고, 전에 타봤던 고급 세단이 조심스럽게 출발했다.
부릉-.
"그래. 할 말이 뭐냐."
"잠시만요."
유민석은 차를 몰아 대로변에 들어서더니, 천천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보름달이 아름다운 밤이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사흘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새해가 밝으며 나는 먹기 싫은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
가족들과 해도 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각종 매체를 비롯한 커뮤니티 사이트에선 저번에 치솟았던 빛의 정체가 스타 프루츠라는 것이 밝혀지며 수많은 논란을 낳았다.
특히 각종 인증샷들이 커뮤니티를 돌아다녔고, 많은 유저들이 스타 프루츠를 찾으러 떠나겠다며 열의를 밝혔다.
그리고 유민석이 지원을 해주겠다고 말한 캡슐이 집에 도착했다.
이것은 미도를 위한 것이었는데, 우리만 받은 게 아니고, 한국 대표팀 전원이 받는 것이라고 했다.
어쨌든 최신식 캡슐이라 안 받을 이유는 없었고, 미도는 입이 귀에 찢어질 듯이 좋아했다.
"아싸! 진짜 왔다-!"
보다시피 지금 눈에 하트가 띄워진 상태다.
저리도 좋을까.
"그렇게 좋냐?"
"당연하죠! 이제 할아버지랑 같이 게임 할 수 있잖아요!"
세상에서 제일 해맑은 미소를 보는 것 같았다.
그만큼 미도가 웃는 건 내 인생의 낙이었다.
그나저나 정도가 이걸 보면 배가 좀 아프겠는데.
"앗, 벌써 두 시에요! 이제 대규모 패치가 끝났겠는데요?"
"음, 그럼 접속해야지. 게임 속에서 보자 미도야."
"알았어요. 이번엔 귓속말 피하시면 안 돼요? 아셨죠?"
"허허. 알았다. 알았어."
미도와 나는 그간 있었던 오해를 이번 월드 대항전을 통해 풀었다.
다크 울프인 척하느라 일부러 귓속말을 피했다는 사실도 이제 미도는 안다.
너무했다고 조금 혼나긴 했지만, 어쨌든 이제 불편할 건 없는 거다.
"그 불칸 화산지대인가 거기로 가면 되는 거죠?"
"그래. 애들 전부 데리고 와라. 거기에 스타 프루츠가 4개나 있다."
"알았어요. 오빠들도 지금 들어올 거라고 했으니까. 데리고 같이 갈게요."
"그래. 도착하면 연락하거라."
"네. 그럴게요."
그렇게 나는 내 방에 있는 캡슐로 향했고, 미도는 자기 방에 있는 캡슐로 들어갔다.
* * *
[대규모 패치가 적용되었습니다.]
[신규 기능, SNS 시스템 '아크스타그램'이 추가되었습니다.]
[아크스타그램에 관한 설명을 들으시겠습니까?]
접속하자마자 나를 반기는 것은 대규모 패치에 관한 내용이었다.
사흘 전 유민석의 차를 타고 오면서 들었던 내용이었기에 굳이 설명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아크스타그램의 설명을 취소합니다.]
[당신의 아이디를 스캔해서 계정을 만드는 중입니다….]
유민석은 내게 아크스타그램을 만든 경위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것은 언젠가 있을 재앙에 대비하기 위한 방책.
아직 정체도 모르는 재앙의 정체를 유저들의 SNS를 통해 조금이라도 빠르게 알아내는 것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내가 많은 이들과 소통을 통해 재앙이 닥친다면 유저들을 하나로 모아 이끌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러기 위해선 소통이 필수라나 뭐라나.
"흠. 귀찮은데…."
[당신의 계정이 등록되었습니다.]
[지금 바로 확인하시겠습니까?]
나는 곧장 아크스타그램을 켰다.
띄워진 화면은 간단했다.
최춘택(69세)[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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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당신을 소개해보세요.)
유민석이 말한 대로 계정은 실명으로 만들어졌다.
아직 아무런 활동을 안 한 상태라 그런지 사진도 없고,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우선 나는 프로필 사진부터 등록하기로 했다.
찰칵-!
스크린샷 기능을 이용해 브이를 하고 있는 사진을 프로필로 넣었다.
내 유일한 자랑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강한 치아가 두드러진 개구쟁이 같은 미소가 담긴 사진이었다.
[프로필 사진이 등록되었습니다.]
"…어디보자."
이제 남은 것은 인사말.
근데 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나를 소개하자니 이미 세상 사람들은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당장 뉴스나 신문 또는 커뮤니티만 들어가도 내가 월운정이라는 요리사 출신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흐음…."
한참을 고민한 끝에 나는 몇 글자를 적어넣었다.
타닥. 탁탁.
오랜만에 하는 독수리 타법.
긴 글은 아니었다.
고작 네 글자의 완성된 인사말.
그것을 나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보았다.
최춘택(69세)[한국]
[게시물 0][팔로워 0][팔로잉 0]
-염병하네.
[이대로 유저들과 소통을 진행하시겠습니까?]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