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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284화 (284/375)

나 빼고 다 젊은이 284화

제284화

같은 시각.

경기장에서 헹가래를 받던 나와 일행들은 갑작스레 시작된 속보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속보, '아크 대륙'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빛이 솟는 중.]

밑에 적힌 자막과 함께 카메라의 시점이 전환되며 드넓은 아크 대륙을 담은 영상이 나타났다.

마치 위성에서 찍은 것처럼 넓은 시야각의 정경이 화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러나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저게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김현우와 은정혁이 차례대로 입을 벌린 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와아, 이쁘다아."

"무슨 이벤트 같은데?"

미도와 임사라도 신기하면서도 아름답다는 얼굴을 했다.

그만큼 지금 화면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함께 지켜보는 관객들도 숨을 죽인 채 지켜보았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 고함을 질렀다.

"유니온의 이벤트다!"

그의 말처럼 누군가 월드 대항전 마지막 날에 맞춰 유니온에서 준비한 새로운 이벤트 같은 것이라고 관객들은 착각했다.

관객석에서 일제히 박수와 환호성.

그리고 휘파람이 쏟아져 나왔다.

와아아아-!

모두가 흥분이 가시지 않는다는 듯 소리를 질러댔지만, 나만은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화면 속에서 치솟고 있는 두 개의 빛.

하나는 밝고, 하나는 어두운 빛의 기둥.

그것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은 아마 나뿐이기 때문일 것이었다.

"이런 말도 안되는…."

그런 내 중얼거림을 들은 미도가 물었다.

"할아버지. 저 빛의 정체를 아세요?"

하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방금 화면에서 또 하나의 빛이 올랐기 때문이다.

아크 대륙의 상황은 실시간으로 변했다.

어떤 곳은 하얀빛이, 어떤 곳은 어두운 빛이 올랐다.

그것은 계속해서 올라왔고, 마치 세계의 종말을 보는 것 같은 기분에 오싹함 마저 들었다.

어쩌면 이제부터 아크 스타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되리라.

'아무래도 안 되겠군.'

그만큼 지금 일어나는 일은 대사건이 될 것이었다.

아마 내일 신문은 물론 모든 매체에서 이것에 대한 사실을 다루게 될 테지.

저 빛들은 그 시작을 알리는 전조라고 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 어디 가세요!"

누가 뭐랄 새도 없이 나는 빠르게 뒤돌아 대기실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달리면서 미도에게 크게 소리쳤다.

"대기실! 게임에 접속하러!"

* * *

늦은 밤.

메테우스 부근에 자리한 강가.

"아, 좋다."

"그렇게 좋아?"

"응! 너무 좋아."

키스와 헬레나가 서로에게 어깨를 의지한 채 강가에 비친 달을 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가지는 둘만의 시간에 키스도 행복했고, 헬레나도 지친 서류 더미 속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한껏 느꼈다.

퐁당-!

강가에 드리운 낚싯대 끝이 첨벙거리는 소리가 났다.

소리의 원인은 갑작스레 뛰어오른 물고기.

물고기가 일으킨 수면의 파동이 잔잔하게 강가에 드리운 달빛을 흐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조차도 아름다움이라는 듯, 달빛은 고고함을 잃지 않았다.

"다친 머리는 이제 좀 괜찮아?"

"응, 많이 좋아졌어."

다부진 키스의 말에 헬레나가 싱글벙글 웃었다.

그러면서도 크리스탈이 치료를 해주었던 키스의 뒤통수를 호호 불며 쓰다듬었다.

아직 상처의 자국은 그대로 남아있었지만, 그래도 거의 다 아문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마 메테우스의 성녀라 불리는 크리스탈이 아니었다면 정말 큰일 났으리라.

더불어 자신 또한 이 세상을 살아갈 힘이 부족했을 것이다.

크리스탈은 그런 헬레나의 은인이었다.

'나중에 함께 포트렌에 쇼핑하러 가자고 해야겠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최근 헬레나는 저항군의 수장인 아렌에게 포트렌의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경영과 사업을 시도해볼 것을 권유받았다.

처음엔 부담스러워서 거절했지만, 계속된 아렌의 설득 끝에 헬레나는 그것을 허락했다.

헬레나가 영주 집무실에 틀어박혀 서류만 쳐다보는 것도 다 그 이유 때문이다.

사실 메테우스의 것만 관리한다면 그렇게 바쁠 이유도 없었다.

'아렌 님은 왜 내게 이렇게 큰일을 맡기시는 걸까?'

이유는 모르겠다.

그저 헬레나가 아렌을 볼 때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이것을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키스랑 이렇게 노는 것도 오늘이 끝이려나?'

오늘이 지나면 헬레나는 다시 업무에 치이느라 키스를 보지 못한다.

물론 다 내팽개칠 순 있겠지만, 그러기엔 이미 자신의 어깨에 짊어진 책임감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키스에게 찾아오라고 하기엔 뭔가 구속하는 느낌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 남자는 구속하면 오히려 도망을 칠 위인이니까.

'그렇다면 오늘 밤…?'

헬레나는 키스의 어깨에 기댄 채, 달빛을 받아 찰랑거리는 키스의 머릿결을 올려보았다.

구불거리며 내려오는 앞머리와 그 사이로 비친 별빛이 담긴 눈동자는 사랑에 빠지기 충분했다.

"…키스."

"응…?"

낚싯대 끝에 시선을 두었던 키스가 고개를 돌렸다.

달빛을 닮은 헬레나의 눈동자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왜."

"오늘 밤 나랑…."

헬레나의 얼굴이 키스의 앞으로 다가왔다.

갑작스러운 헬레나의 행동에 키스의 심장이 요동치는 듯 떨렸다.

두근! 두근!

뛰는 심장의 고동 소리가 귀 너머로 선명하게 들려왔다.

이것은 설렘이다.

도대체 그녀가 다음에 꺼낼 말이 무엇이기에 이러는 것일까.

어쩌면 지금 자신이 떠올린 것과 헬레나가 내뱉을 말이 같은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키스는 생각했다.

그녀의 얼굴이 천천히 더 다가왔고, 그렇게 두 사람의 입술이 겹쳐지려는 순간….

"우리 같이…."

찌이이잉-!

"흐익!"

"엄마야!"

화들짝 놀란 키스와 헬레나가 앉아있던 나무 의자를 내팽개치듯 화들짝 일어섰다.

두 사람의 시선은 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바로 옆에 위치한 호수 속에서 새하얀 빛이 치솟고 있었다.

* * *

시작의 마을, 뮬란.

머머리와 타르모는 오랜만에 뮬란으로 돌아와 훈련소장 쿤타를 비롯한 교관 동기들과 술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윈디아를 지나 메테우스에 정착했다는 얘기를 해주었고, 그곳에서 꽤 보람된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을 해주었다.

최근 둘은 마력 이발기를 이용해 메테우스에 이발소를 차려 동업을 해볼까 고민이라는 말도 털어놓았는데, 쿤타를 비롯한 동기들은 그런 두 사람에게 잘 어울린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더불어 너무 빡빡 밀지는 말라는 농담도 함께였다.

그렇게 웃고 떠들며 이발소에 대해 한껏 자신감을 얻은 머머리와 타르모는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뮬란의 길거리를 거닐었다.

한적하면서도 적적한 야경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고향이었다.

"역시 고향이 최고야. 그렇지? 타르모."

"그래. 근데 우리 지금 어디 가냐? 머머리. 크하하."

"어딜 가긴. 여관을 가는 중이었지. 푸흐흐흐."

"아, 그랬지. 가자-! 여관으로-!"

난데없는 고성방가가 이어졌고, 머머리와 타르모의 얼굴은 홍당무를 먹다가 체한 토끼처럼 불콰했다.

취한 두 사람은 어디로 가고 움직이는지도 몰랐다.

그만큼 술을 많이 먹은 탓이었다.

그렇게 둘은 무작정 북쪽으로 들어섰다.

"어우 몬스터 더럽게 많네."

"머리를 밀어버릴라."

가는 길에 나오는 몬스터는 식은 죽 먹기.

메테우스의 몬스터들에 비하면 여기는 정말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하긴 그렇기에 뮬란의 병사들의 수준이 낮은 것이기도 했다.

약한 병사가 약한 곳을 지키고, 강한 병사가 강한 곳을 지키는 게 이 세계의 법칙이니 말이다.

"이번엔 저기 가보자!"

"조오아써! 또 어떤 몬스터 머리를 밀어볼까!"

그렇게 두 사람이 향한 곳은 뮬란의 북쪽에 자리한 어딘지 모를 동굴.

머머리와 타르모는 하염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몬스터들이 나오는 숫자가 범상치가 않았다.

마치 이곳을 들어와서 공격을 하는 게 아니라, 안쪽에서 도망을 쳐서 나오는 것 같은 느낌?

그래. 꼭 그런 느낌이었다.

"타르모. 뭔가 이상하지 않아?"

"음, 솔직히 나도 그래. 뭐지? 딸꾹-!"

퀭한 눈을 한 타르모가 미간을 찌푸리며 어둠 너머를 응시했다.

"저기 뭐가 있는데?"

"음, 가보자고."

그렇게 몬스터를 모두 정리한 두 사람은 드디어 동굴의 끝에 다다랐다.

"이건…."

"그거지?"

"그래. 그거야."

머머리와 타르모의 시선이 눈앞에 있는 빛과 어둠으로 향했다.

그것은 마치 공명을 하는 것처럼 울고 있었다.

* * *

한편. 김수정은 마석두의 자경단을 이끌고 윈디아의 풀숲에 있었다.

"오빠들! 저기에서부터 여기까지 약초 좀 뜯어줘요! 아이, 참. 거기가 아니라니까! 여기라구. 여기!"

시간이 조금 많이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럼에도 마석두를 비롯한 자경단의 일원들은 군소리 없이 김수정의 말을 따랐다.

덩치 큰 남자들이 가녀린 여인의 말 한마디에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는 꼴이 조금 웃긴 것 같긴 했지만, 이상하게 김수정은 그런 그들을 아주 쉽게 휘어잡고 있었다.

"아니야. 그거 말고 다른 거야! 이걸 뜯으란 말이야. 이거!"

김수정이 당차게 손에 쥔 약초를 들어 올리며 보여주듯 소리쳤다.

자경단의 일원들은 김수정이 말한 약초를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 진짜. 귀찮아 죽겠네."

"시끄러. 인마. 어차피 이거 다 우리 치료할 때 쓸 텐데 뭐. 우리뿐이냐. 아픈 병자들한테도 쓰일 테니까. 군소리 말고 주워."

"쳇. 형수님만 아니었어도 그냥 돌아갔다."

이미 그들 사이에서 김수정은 형수님으로 통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수정이 마석두를 좋아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기 때문이다.

다만 미련한 곰탱이 같은 마석두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을 뿐.

"아오, 이 곰탱아! 그거 아니라고 했잖아!"

찰싹!

마석두가 또 실수를 했는지 김수정에게 등짝을 얻어맞았다.

마석두는 그저 미련한 곰탱이처럼 웃을 뿐이다.

무슨 저런 괴팍한 미소를 짓는 건지.

자경단의 일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던 바로 그때.

"저게 뭐지?"

찌이이잉-!

난데없이 새하얀 빛 하나가 치솟았다.

장소는 이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

마석두가 미간을 찌푸리며 건너편의 숲을 보았다.

"뭐야?"

마침 그곳은 마석두가 있는 곳 근처였다.

마석두는 재빨리 달려가 빛의 정체를 확인했다.

"이건…?"

그것은 바로 스타 프루츠였다.

먹으면 능력자가 되어 강한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진 이 게임에서 가장 귀하다고 알려진 과일.

'이거 먹으면 나도 강해질 수 있는 건가?'

꿀꺽-.

마석두가 침을 삼켰다.

얼마 전 월드 대항전에서 최춘택과 백무열이 싸우는 모습을 보았던 마석두였다.

멋지게 싸우는 두 사람을 보며 얼마나 피가 끓었던가.

솔직히 마석두도 스타 프루츠 능력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스타 프루츠를 먹고 말리라.

그런데 그 기회가 이렇게 찾아왔다.

좀 갑작스러운 감이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좀 당황스러웠다.

"크흠. 큼큼."

마석두는 괜히 찔려서 고개를 좌우로 두리번거리고는 스타 프루츠를 입에 넣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오빠!"

"컥. 커억!"

깜짝 놀란 마석두가 스타 프루츠를 목으로 삼키려다 말고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김수정이 있었다.

"오빠. 뭐야? 수상한데? 혹시 아까 그 빛. 스타 프루츠 아니야?"

도리도리.

마석두는 대답하지 못한 채 고개를 저었다.

"뭐가 아니야. 맞을래? 콱씨. 카미유가 스타 프루츠랬거든? 잠깐 내놔봐. 어딨어?"

도리도리.

마석두는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왠지 지금 스타 프루츠를 내뱉었다가는 더럽다며 한 대 얻어맞고, 김수정에게 빼앗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김수정은 때리기 좋은 몸이라며 늘 자신을 두들기는 것이 일상인 여자였다.

"아니, 진짜 어딨냐니까? 말 안 해?"

도리도리.

"아이. 진짜! 이래도 안 내놔? 내놓으라고!"

김수정의 주먹이 난데없이 마석두의 하복부를 후려쳤다.

퍼억-!

마석두가 아무리 튼튼해도 지금은 무거운 갑옷을 입을 이유가 없었기에 그 힘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끄옵…."

꿀꺽-?

"……?"

김수정이 고개를 갸웃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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