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빼고 다 젊은이-282화 (282/375)

나 빼고 다 젊은이 282화

제282화

휘황한 벌판.

불어오는 바람.

흔들리는 갈대.

무성한 나무들.

온갖 마력의 생기가 넘치는 들판의 한 가운데에서 뜨거운 태양과 벼락의 축제가 한바탕 벌어졌다.

"흡!"

콰콰쾅!

태양의 힘이 실린 연속 돌려차기.

옷자락을 펄럭거리며 나는 견소룡이 피할 수 없도록 지그재그로 보법을 밟으며 허공을 날았다.

파라라락!

그러나 견소룡은 그것을 간파해내고 벼락같은 움직임을 선보이며 가볍게 파고들었다.

빗나간 발차기를 무마시키기 위해 나는 양손에 바람을 움켜쥐었다.

"……!"

갑작스레 생성된 바람의 벽에 견소룡이 더 다가오지 못하고 멈추었다.

하지만 양손으로 원거리 공격은 가능했다.

츠츠츠츳!

가공할 만한 힘이 실린 백색의 뇌전 세례가 견소룡의 양 주먹에서 펼쳐졌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벼락의 권격.

새로운 각성을 통해 이루어낸 좀 더 진화한 뇌룡연타였다.

백색의 뇌룡들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혜안으로 보아도 사각지대를 완벽하게 노린 공격이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뇌룡들을 막기 위해 나는 썬로드의 힘을 개방했다.

퍼엉!

양발에서 더욱 강대한 태양의 힘이 쏟아져 나왔고, 나는 오른발로 힘차게 진각을 밟았다.

꽈앙!

튀어 오르는 땅의 파편이 뜨거운 태양의 불기둥에 녹아들며 내 주위를 포위하듯 감쌌다.

이어서 나는 뇌룡이 접근하는 곳마다 불기둥을 세웠다.

정확한 타이밍이 중요했다.

쾅! 쾅! 콰앙!

날아드는 뇌룡이 태양의 불기둥에 아이스크림처럼 녹으며 사라졌고, 뇌전이 흩어지듯 산개하며 흩어졌다.

다행히 아직은 프로메테우스의 혜안이 있었기에 쉽게 무마하였지만, 혜안의 지속시간이 끝난다면 솔직히 몇 대는 얻어맞았을 공격이었다.

"역시, 형님이십니다…!"

이를 악문 견소룡이 오른 주먹을 응축해 나를 향해 쏘아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뇌룡이 일직선으로 포효하며 날아들었다.

"솔라!"

나는 곧장 솔라를 소환했다.

그리고 곧장 썬 익스플로전을 사용했다.

꽈앙!

요란하게 날아간 솔라가 거대한 뇌룡과 부딪히며 폭음을 만들어냈다.

그 사이로 나는 한줄기 섬광처럼 내달려, 연기를 뚫고 나가 견소룡과 부딪혔다.

내 손엔 어느새 포크 숟가락과 그림자 단검이 들려져 있었다.

빠른 속도로 움직인 양팔이 채찍처럼 휘둘러지며 견소룡을 위협했지만, 견소룡은 더욱 빨라진 반사신경을 이용해 영춘권으로 그런 내 공격을 모두 흘리며 반격을 했다.

나도 바로 혜안을 이용해 견소룡에게 맞섰다.

투다다다다닷!

우리는 빠른 속도로 공방을 주고받았다.

견소룡은 오직 주먹을.

나는 그런 견소룡의 주먹을 막기 위해 주먹과 발을 동시에 사용해야 했다.

그러다가 이번엔 흑야의 힘을 끌어올렸다.

고오오오!

"……!"

심상치 않은 힘을 감지한 듯 견소룡이 두 발자국 떨어졌다.

그런 그의 뒤로 흑야랑이 한 마리가 솟구쳤다.

"언제…!"

견소룡이 백색의 뇌전을 몸 주위로 폭사시키며 빛에 휩싸였다.

이어진 하늘에 흑야가 내려앉았고, 짙은 그림자가 깔리며 사방에 널브러졌다.

나는 솟아난 펜릴의 어깨에 올라 있었다.

펜릴이 말했다.

"그대는 언제나 싸움터에 있는 것 같군."

난데없는 펜릴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뭘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정말이지 그대는 못 말리겠다. 꽉 잡아라."

"야, 잠깐. 쟤는…."

"시끄럽다."

"이놈아. 어른 말 좀 들어!"

그런 내 말을 듣지도 않은 채 펜릴이 한눈에 적이 있는 곳을 포착하더니, 날카로운 냉독이 실린 오른팔로 세상을 할퀴듯 견소룡을 향해 휘둘렀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퍼어억!

"…음!"

펜릴의 오른팔이 터져나갔다.

너덜너덜하게 떨어져 사라진 오른쪽 어깨.

그곳엔 흑야가 가득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런 펜릴의 어깨를 날려버린 것은 십이지천 아수라를 개방한 견소룡.

동시에 내질러진 6개의 팔에서 쏟아진 벼락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위력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게 내가 어른 말 좀 들으라 했잖냐. 이놈아."

흑야의 힘은 어둠과 얼음의 속성이었다.

참고로 백색의 뇌전은 빛과 하늘의 신인 유피테르의 영향을 받아 빛과 벼락의 속성을 띠고 있다.

그 말이란 즉.

"저 녀석은 너의 천적이란 말이다."

크르륵!

신음을 흘리는 펜릴의 몸 위로 십이지 뇌수들이 뛰어올랐다.

용과 호랑이.

닭과 뱀.

토끼와 돼지.

그런 뇌수들을 막기 위해 수백의 흑야랑들이 다시 뇌수들과 견소룡을 향해 날아들었다.

빛과 어둠이 뒤엉키며 혼돈이 펼쳐졌다.

* * *

"으아아. 이거 뭐 괴수 대잔치도 아니고."

"장난 아니게 살벌하네."

"미친 거 아니냐 진짜. 으하하하."

김현우, 김해일, 박장소가 눈앞의 화면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보았다.

임사라와 미도는 긴장감에 굳은 얼굴이었다.

은정혁을 비롯한 다른 선수들은 주먹을 쥔 것도 모른 채 입술을 오물거리며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화면 속의 상황을 주시했다.

그것은 백무열도 마찬가지였다.

"…음."

옅은 백무열의 한숨이 벤치에 나지막하게 내려앉았다.

지금 백무열은 그 어느 때보다 눈이 번들거렸다.

'견소룡이라….'

아까 있었던 견소룡과의 싸움은 정말이지 오랜만에 호승심이 일었던 결투라고 할 만했다.

과연 견소룡은 강했고, 그에 맞는 실력과 인품을 갖춘 인물이었다.

그러나 백무열은 졌다.

그렇기에 더 분했다.

좀 더 독하게 강해지지 못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듣자 하니 수련에 미친놈이었다지.'

처음 최춘택에게 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최춘택은 그를 한마디로 정의했다.

그냥 미친놈.

수련에 미쳐버린 미치광이.

하지만 좋은 동생.

그러나 그 밑바탕에는 오로지 한길만을 집착해 정상에 다다른 고강한 무인의 신념이 자리해 있었다.

그것이 견소룡과 겨뤄보았던 백무열의 소감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지지 마라. 최춘택.'

최춘택의 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우상으로 남아주었으면 싶었다.

어쩌면 다 늙어빠진 몸을 가진 노망난 노인의 욕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욕심을 한번 부려보고 싶은 건 어쩔 수가 없다.

'후우. 하지만 견소룡이가 워낙 만만치 않단 말이지.'

백무열의 눈에 화면 속 최춘택이 바람을 타고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 * *

유니온 스퀘어, 미국 대표팀 대기실.

"어느 쪽이 이길 거라고 생각해?"

팔짱을 낀 채 화면을 지켜보던 데미안이 문득 옆에 선 마이클에게 물은 질문이었다.

"…아직은 모르겠다."

"그래도 굳이 골라 보자면?"

그래도 재촉하는 데미안의 질문에 마이클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자신이 지금 저 상황이라면.

싸우고 있는 것이 뇌신이라 불리는 견소룡이나 다크울프 최춘택이라면.

더 강한 것은 어느 쪽이 될 것인가.

생각을 머리로 정리한 마이클은 해답을 내렸다.

"신념이 더 강한 쪽."

"신념? 의외의 대답인데."

"둘 중 누구의 신념이 더 단단한가. 그게 키를 쥐고 있을 거다."

데미안이 그런 마이클을 보며 피식 웃었다.

누가 이길지 모르겠다는 소리를 뭐 저리 거창하게 돌려서 얘기하는지 원.

어깨를 으쓱인 데미안이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다시 TV로 시선을 옮겼다.

과연 누가 결승전에서 우리 미국의 상대가 될 것인지는 무척이나 중요했다.

'견소룡이 이긴다면 개인 기량이 뛰어난 중국에 맞춰서 전략을 짜야겠지. 하지만 만약 한국이 이긴다면….'

하아.

데미안이 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러나저러나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이긴다면 변수가 너무 많아져. 당장에 백무열만 봐도 그렇다.'

어느 쪽이든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건 분명했다.

그래서 데미안은 차라리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기는 싸움이길 바랐다.

그렇다면 지금 머릿속으로 전략을 짜고 있었을 테니까.

그러나 그런 데미안이 바람을 무참하게 짓밟듯 화면 속 최춘택과 견소룡은 비등하게 싸우고 있었다.

무슨 괴수들의 재난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과연 누구의 신념이 더 강할까….'

데미안의 머릿속이 꼬이고 꼬였다.

마치 풀리지 않는 숙제가 주어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 * *

싸움은 장기전으로 이어졌다.

거의 한 30분은 치고받은 것 같다.

사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

빠르게 날아든 칼바람이 순식간에 사방을 에워쌌다.

쉬쉬쉬쉿!

언제나 느끼지만, 형님의 바람의 비각술은 언제 보아도 감탄 밖에 나오지 않는다.

자신도 뇌신이 되어 능력의 각성을 이루어서야 형님이 달리는 바람을 간신히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번 콜로세움처럼 순식간에 난자가 되었을 테지.

"흡!"

견소룡이 또 한 번 뇌전을 개방했다.

바람 같은 공격을 벼락같은 움직임으로 피해낸 것이었다.

그것을 본 최춘택도 감탄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허."

한줄기 섬광 같은 견소룡을 보며 최춘택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왜냐면 이제 혜안의 지속시간이 끝나버려서 더 이상 쓸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믿을 것은 이제 극대화 시킨 자신의 초감각뿐.

펜릴은 십이지 뇌수들과 함께 산화하는 것을 택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 두 사람뿐이었다.

최춘택은 허공으로 뛰어올라 태양풍의 묘리를 개방시켰다.

화아아악-!

태양과 바람이 만나 일대에 끝없이 타오르는 화염을 노래했고, 이어진 것은 최춘택의 발에서 피어오른 거대한 태양룡이었다.

화르륵!

"음."

그런 최춘택의 기세에 지지 않겠다는 듯 견소룡도 오른손에 어마어마한 양의 뇌전을 끌어올렸다.

치지지직!

마치 수천 마리의 새가 지저귀는 것 같았다.

태양룡과 한 마리의 새가 되어 돌진하는 견소룡이 만났다.

서로를 향해 뻗어 나가 힘겨루기를 하는 것처럼 막상막하의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처절한 긴장감이 두 사람 사이에서 흘렀다.

콰콰콰콰-!

태양룡은 견소룡의 온몸을 감싸며 녹이려고 했고, 견소룡은 그런 태양룡을 찢어발기려는 듯 오로지 주먹에 모든 것을 실은 일격을 겨누었다.

그렇게 대치상태가 이어졌을 때였다.

'…스승님.'

문득 견소룡은 양문의 얼굴을 떠올렸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모든 것을 건 일격을 내지를 때일지도 몰랐다.

천둥이 되라는 스승님의 가르침이 가슴 속에서 계속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두근! 두근!

심장이 뛰었다.

머릿속에서 번개와 천둥의 차이가 요동쳤다.

번개는 그저 살갗을 태울 뿐이지만, 천둥은 살갗을 태우며 적들에게 공포를 선사한다는 양문의 가르침.

견소룡의 가슴에 무언가 새겨지는 것 같은 느낌과 동시였다.

쿠르릉!

견소룡의 주먹 끝에서 천둥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