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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278화 (278/375)

나 빼고 다 젊은이 278화

제278화

유니온 스퀘어, 중국팀 대기실.

"…역시 미국은 강하군요."

당랑권의 고수 주양천의 짧게 중얼거렸다.

과연 미국은 선수 개인의 기량은 물론이거니와 전략 또한 기가 막히게 탁월했다.

설마 미국의 주장인 데미안이 그 순간에 거대한 자폭을 감행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정말이지 허를 찌르는 병법이 아닐 수 없었다.

"으음, 과연 우리 중화인민의 상대가 될 만하오."

"중국 무술의 위대함을 콧대 높은 서양인들에게 보여주겠소!"

"나의 칠호권으로 마이클을 박살 내 버리리다!"

중국팀의 기개와 당당함은 놀라우리만치 컸고, 그 사실을 주양천 또한 부정할 생각이 없었다.

이미 중국의 팀원들은 미국을 결승전 상대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을 벌벌 떨게 만들 뇌신 아수라가 그들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주양천은 천군만마를 등에 업은 것처럼 의기양양했다.

"……."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견소룡은 무심했다.

대기실 한구석에서 가부좌를 튼 채 명상에 집중하고 있던 견소룡은 천천히 눈을 떴다.

항상 경기에 나가기 전 머릿속으로 상대를 떠올리며 대련을 펼치는 걸 상상하곤 했는데, 오늘 그가 떠올린 상대는 다름 아닌 최춘택이었다.

"…다들 방심하지 마십시오. 한국은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뼈가 있는 견소룡의 지적에 중국의 팀원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중국의 뇌신을 향해 가벼운 포권을 취했다.

끝없는 존경과 따끔한 조언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소."

"한국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깨달음을 주신 뇌신께 감사드립니다."

견소룡 또한 그런 그들을 향해 겸손하게 포권을 취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선배였기에 공손하게 대하는 것이 도리였다.

"별말씀을."

견소룡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다음 경기를 준비할 차례가 되었다.

남은 경기는 보나 마나 마이클이 남은 스페인 선수들을 학살할 것이었기에 볼 것도 없을 테지.

때마침 똑똑-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 너머에서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 곧 나가게 될 것 같습니다! 중국 대표팀은 미리 준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스읍. 후우-.

견소룡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심호흡을 했다.

갑자기 형님과 싸울 생각을 하니, 심장이 뛰는 것 같았다.

쿵! 쿵!

긴장이 되는지 들숨과 날숨을 포함해 심장 소리까지 귀로 들린다.

'천하의 견소룡이 긴장을 하다니.'

그만큼 최춘택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아까 상상으로 대련을 펼쳤을 때도 뇌신이 된 자신은 겨우 형님과 나란히 섰다고 할 정도였다.

그만큼 한국과의 싸움은 치열한 접전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견소룡은 언제나 최선을 다할 뿐.

그것이 잠깐이나마 만났던 스승 양문에 대한 도리일 터였다.

'스승님….'

견소룡은 자신의 오른 주먹을 쥐었다 펴며 생각했다.

오늘 밤이야말로 천둥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는 날이었다.

* * *

한편, 나를 비롯한 한국 대표팀은 전부 TV 앞에 앉아 있었다.

아까 있었던 팔씨름은 결국 무승부로 끝나고 말았다.

가운데 있던 탁자가 힘을 버티지 못하고 반으로 쪼개져 버렸기 때문이다.

- 데미안 선수의 자폭이 성공했습니다!

- 토레즈 선수와 데미안 선수가 동시에 탈락했습니다!

- 정말 주장으로서 언제나 최고의 전략을 선택하는 그의 용단이 놀랍기만 합니다!

- 이러면 스페인은 이제 미국에겐 식은 죽 먹기가 되죠.

- 왜냐하면 미국엔 아직 마이클이 남아있으니까요.

그리고 지금 우리들은 미국과 스페인의 경기를 관람했다.

저 데미안이라는 놈이 영악하게도 아주 절묘한 회심의 한 방을 날렸다.

허 참. 자폭이라니.

어이가 없군.

"…스페인은 끝났네."

백무열이 짧게 선고를 내렸다.

말 그대로였다. 스페인은 끝났다.

이제 미국에서 누가 나올지는 뻔했으니까.

- 아, 역시 예상대로 미국에선 마이클이 나왔습니다!

와아아아-!

쏟아지는 관객들의 함성이 이곳 대기실까지 들려왔다.

과연 관객들은 세계 최고의 선수에게 그에 걸맞는 환대를 보내고 있었다.

바로 그때.

누군가 문을 벌컥 열었다.

"……."

모두의 시선이 들어온 남자에게 꽂혔다.

직원은 무안했는지 말을 살짝 더듬었다.

"…큼. 저, 저기. 이제 나가실 시간인데요."

"벌써?"

"예. 4강전부터는 상대편과 함께 입장하도록 되어 있어서요."

심드렁한 표정으로 직원에게 물었던 백무열이 내게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는데?"

"그럼 가야지. 다들 일어나자."

그렇게 나를 비롯한 한국팀 전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가 결기가 어린 표정들이었다.

어쩌면 아까 견소룡이 싸우는 모습을 보았기에 그런 걸지도.

확실히 지금의 녀석은 나도 쉽게 장담을 할 수가 없는 상대였다.

* * *

그렇게 10분 뒤.

우리들은 경기장으로 올라가는 통로에 중국의 선수들과 나란히 섰다.

미국과 스페인의 대결은 당연히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선두에는 견소룡을 필두로 한가락 할 것 같은 남자들이 기다랗게 서 있었고, 한국은 내가 가장 앞에 섰다.

원래는 임창용의 자리였지만, 그가 오늘은 내가 앞에 서주길 부탁해왔다.

"……."

"……."

하지만 정작 나와 견소룡 사이엔 침묵이 가득했다.

현실에서 만난 견소룡은 분명 반가웠지만, 통역이 문제였다.

난 중국어는 전혀 하지 못했고, 반대로 견소룡은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몇 번 대화를 시도해보았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나는 얼른 무대로 올라가 통역으로 대화를 했으면 싶었다.

바로 그때.

"취팔러마-?"

모두의 시선이 뒤에 자리해 있던 미도에게 향했다.

미도는 바로 옆에 있는 선수에게 연신 "취팔러마!"하고 상냥하게 말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것은 칠호권의 고수로 알려진 양범.

양범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흡족하게 "취인러-."라고 대답했다.

"미도야. 중국어를 할 줄 아냐?"

내가 미도에게 묻자, 미도는 화들짝 놀라며 손사레를 쳤다.

"아뇨. 그냥 아는 게 이거 뿐이라서요. 친구가 그러는데 밥 먹었냐라는 뜻이라던데요?"

"오. 그래?"

나는 다시 시선을 옮겨 견소룡에게 말했다.

"취팔러마-?"

그와 동시에 일행들이 일제히 옆에 있는 중국 선수에게 한 명씩 "취팔러마-?"라고 물었다.

그 사이엔 백무열도 끼어 있었다.

백무열은 발음이 세서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처럼 들렸다.

중국의 선수들이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모두 "취인러-."라고 대답했다.

아마 추측하기로 "먹었다."라는 대답이 아닐까 싶었다.

견소룡이 내 손을 맞잡으며 빙그레 웃었다.

"취인러-."

긴말은 필요 없었다.

* * *

잠시 후. 나는 게임에 접속했다.

나와 견소룡은 무대에 올라 통역을 통해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역시나 그는 게임 속에서 보았던 모습 그대로 좋은 동생이었고, 우리 두 사람은 정정당당하게 싸울 것을 서로 약속했다.

나와 견소룡이 캡슐에 들어가기 전 포옹을 나누었는데, 기자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사진을 찰칵거렸다.

"…킥킥킥."

"풉. 푸흐흡."

"아, 웃지 마! 콱씨."

미도가 김현우와 은정혁에게 화를 내자 선수들 사이에서 일제히 폭소가 터져 나왔다.

이유는 바로 그녀가 가르쳐준 "취팔러마-."라는 말 때문이었다.

통역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 사실 그건 한국인들이 중국인을 비하할 때 쓰는 단어라고 한다.

발음이 한국의 욕과 비슷하기 때문이란다.

제길.

어쩐지 무열이 발음이 그렇게 찰지더라니.

"푸하하하-!"

"프하하하-!"

기어이 임창용과 임사라 남매마저 폭소가 터졌다.

미도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것이 마치 한 그루의 단풍나무 같았다.

사실 나도 억지로 웃음을 참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큼. 크흠…."

"어험! 험!"

바로 옆에 선 백무열도 웃음을 참으려는 지 먼 곳을 쳐다보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떨리는 입술을 꿈틀거리는 것이 무지하게 참기 힘들어 보였다.

"할아버지들도 미워-!"

붉어진 얼굴로 양손을 끌어 모아쥐며 빼액- 소리를 지른 미도가 돌연 허공을 조작하더니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유저, '미도' 님이 경기장에 입장하였습니다.]

그렇게 도망치듯 첫 주자로 나선 것은 미도.

상대는 공교롭게도 아까 미도가 처음으로 "취팔러마-!"를 소리쳤던 칠호권의 고수인 양범이었다.

하필이면 또 절묘한 광경에 선수들이 또 한 번 폭소를 터트렸다.

호호호호! 깔깔깔깔!

그런 그들에게 나는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이 녀석들아!"

"……."

"크흠. 큼…."

그제야 주변이 좀 조용해졌다.

짜식들이 할아버지인 나도 안 웃고 있는데, 좋다고 웃어대기는.

콱씨.

그렇게 한 번 눈을 부라리자, 일행들의 눈빛이 다시 천천히 돌아왔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중국과의 대결이었다.

절대로 중국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 * *

"아깐 죄송했어요. 전 정말 그런 뜻인 줄 정말 몰랐어요."

"괜찮소. 그대의 표정을 보니, 정말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소. 나를 비롯한 중국의 선수들은 이런 일로 괘념치 않으니 신경 쓰지 마시오."

미도의 사과를 받은 양범이 포권을 취했다.

그 태도가 무척이나 공손하기 그지없어서 미도 또한 감사함과 죄송한 마음을 담아 양범에게 포권을 취했다.

언젠가 본 중국의 무협 영화에서 이렇게 했던 것 같은데, 맞는지 모르겠다.

'아, 몰라. 맞겠지.'

어색한 미도의 모습에 양범은 빙그레 웃을 뿐이다.

[경기를 시작합니다.]

[10, 9, 8….]

"…후우."

미도는 속으로 아까 있었던 일을 머리에서 지웠다.

실수는 실수고, 사과 또한 양범이 받아주었다.

이제 남은 것은 오로지 경기에 집중해 이기는 것뿐.

그것이 아까 무대에서 할아버지에게 정정당당하게 싸우자고 했던 견소룡의 말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미도는 그런 대단한 선수와 형님 아우 하는 할아버지가 부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자랑스러웠다.

무려 중국의 뇌신이 형님으로 모시는 사람이라니.

그리고 그런 사람이 내 할아버지라니.

기쁨에 절로 몸서리쳐지며 춤을 추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삐이이이-!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미도가 뒤로 스텝을 밟으며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는 곧장 스케치 마인드를 사용해 그림자 붓을 허공에 띄웠다.

[그림자 붓으로 그림자 잉크 병사를 그립니다….]

유려한 선을 그리며 허공에 병사들이 빠른 속도로 그려졌다.

잉크 하트로 전직하며 더욱 빨리 그릴 수 있게 된 것은 무척이나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이걸 두고 볼 양범이 아니다.

"……!"

양범은 칠호권(七虎拳)의 고수답게 파괴적인 무투를 추구하는 격투가 클래스가지고 있었다.

양범의 두 주먹이 붉게 물들더니, 호랑이의 형상을 띄며 먹이를 낚아채는 것처럼 미도를 향해 날아들었다.

퍼퍼퍼퍽!

"…끄흣!"

그 속도가 너무나 날렵하고 포악해서, 미도는 차마 칼을 뽑아 들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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