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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277화 (277/375)

나 빼고 다 젊은이 277화

제277화

유니온 스퀘어, 한국팀 대기실.

유민석과의 대화를 마치고 대기실에 들어섰을 때.

백무열을 비롯한 일행들은 TV 앞에 모여앉아 지금 치러지는 미국과 스페인의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다.

뭐야, 근데 분위기가 왜 이래?

"오셨어요."

"몸은 좀 괜찮으세요?"

"여기 좀 앉으세요."

나는 김현우가 양보해주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하지만 일행들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낯빛을 하고 있었다.

"진짜 괜찮으니까 그렇게들 볼 필요 없어. 정말 안 괜찮았으면 내가 알아서 빠졌을 거야. 저번에 이 녀석이 몸살로 빠졌던 것처럼 말이야."

퉁명스레 대꾸한 나는 무안함을 털어내고자, 손가락으로 옆에 앉은 백무열을 가리켰다.

괜히 앉아 있던 백무열이 볼을 씰룩거리며 투덜거렸다.

"흥. 거기서 내 얘기가 왜 나와? 허약한 놈."

"사돈 남 말 하고 있네."

우리 둘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찌르르- 한 시선을 교환했다.

마치 스파크가 튈 것 같은 날카로운 기세였다.

바로 그때.

미도가 "큼큼."하며 헛기침을 하며 다가왔다.

그제야 우리는 서로의 반대편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아니, 아직도 그렇게 싸우세요? 진짜 애도 아니고. 자꾸 그러시면 두 분 다 제가 안 봐요? 얼른 손잡고 화해하세요. 얼른요."

짐짓 엄한 미도의 꾸중에 우리 둘은 억지로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주변에 있던 일행들은 억지로 웃음을 꾹 참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백무열의 손을 맞잡은 순간.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꽈아아악!

이건 뭐 악수가 아니라 거의 악력 싸움인데.

'먼저 놔라.'

'네가 먼저 놔.'

나와 백무열은 서로 눈을 부라리며 의견을 교환했다.

'그럼 셋하면 놓자.'

'좋아. 하나, 둘, 셋!'

꽈아아악!

"……."

"……."

이변은 없었다.

우리 두 사람은 서로의 이마에 힘줄을 늘어트리며 웃는 낯으로 더욱 세게 손을 꽉 잡았다.

백무열은 평생 목검을 손에서 놓지 않고 휘둘러서 그런지 악력도 상당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도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해보자.

이 썩을 놈아.

"흐읍…. 호오."

"…흡. 흐으음."

그렇게 갑작스레 시작된 힘겨루기는 30초가량 이어졌다.

일행들은 흥미진진한 이 상황을 즐기려는 듯 지켜보기만 했다.

이참에 여기서 아예 결판을 내고 싶지만, 역시 미도가 있어서 쉽지 가 않다.

"아, 진짜. 뭐하시는 거예요! 이럴 거면 그냥 팔씨름으로 하세요! 팔.씨.름!"

백무열과 내가 동시에 미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천잰데?"

"좋은 생각이다."

그렇게 갑자기 시작된 팔씨름 경기.

판은 금세 마련되었다.

중앙에 책상이 놓여졌고, 나와 백무열은 서로 반대편에서 마주보며 이죽거렸다.

"오늘 네놈과 나. 누가 더 허약한가 결판을 내자."

"흥. 방금까지 링거나 처맞다 온 놈이 할 소린 아니군."

"몸살 나서 경기에 못 나왔던 놈이 누구더라?"

"어허. 그건 그냥 가벼운 몸살이 아니야."

"그럼 무거운 몸살인가?"

"쯧. 그걸 개그라고 처하고 있다니."

"이게 할배 개그란 거다. 이 유행에 덜떨어진 놈아."

되도 않는 말싸움에 몇몇 일행들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제야 내가 처음 대기실에 들어섰을 때 느꼈던 묵직한 긴장감이 어느 정도 풀어진 듯 보였다.

사실 내가 이렇게 무열이와 투닥거리는 것도, 다 팀원들이 긴장을 풀라고 하는 행동이었다.

물론, 백무열도 그 사실을 알고 쿵짝을 맞춰주는 것이었고.

"자, 어디 한번 붙어보자. 이 미련한 곰탱아."

"지는 놈이 담배 내기다."

"그거 좋지."

우리 두 사람은 팔씨름 자세를 하며 손을 맞잡았다.

미도가 체념한 듯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담배는 안돼요. 내기는 다른 거로 하세요."

TV에서는 연신 카푸치노와 토레즈의 싸움을 보여주었다.

- 대단합니다! 카푸치노 선수의 컨트롤이 그야말로 신의 경지입니다!

* * *

휘이이잉-!

휘황한 듯 불어오는 바람은 시리도록 차가웠다.

주변은 온통 물과 얼음 투성이였고, 토레즈는 눈앞에 서 있는 카푸치노라는 이름의 사내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저런 미세한 컨트롤이 가능하단 말인가.'

카푸치노의 컨트롤은 그야말로 신의 경지에 가까웠다.

그가 희귀 클래스를 가진 사람이란 것은 아크스타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을 보라.

속성의 상관관계로 인한 영향도 있겠으나, 그는 오직 컨트롤만으로 자신과 동률을 이루었다.

지금 토레즈는 놀라움에 술이 다 깨버린 상태였다.

"…당신, 강하군."

"아, 그래요? 하하. 고맙습니다."

"왜 작년에 나오지 않은 거지? 그때 나왔다면 아마 마이클이나 나보다 더 유명해졌을 텐데. 나 또한 그 당시의 상황이라면 그대를 이기기 쉽지 않았을 거다."

그것은 진심이었다.

토레즈는 카푸치노와 싸우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카푸치노가 보여준 얼음에 대한 컨트롤은 차원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빙결의 지배자라는 거창한 이름에 어울리는 실력이었다.

'저자는 평범한 마법사라고 볼 수 없어. 공수 밸런스가 그야말로 완벽한 전투형 마법사다.'

카푸치노는 얼음을 미세하게 벼려내 다양한 무기들을 만들어내 자신을 괴롭혔다.

순백의 칼날을 자랑하는 빙결 검, 그리고 날카로운 이빨의 빙결 창, 활과 화살은 물론이고, 심지어 거대한 얼음 덩어리를 한 손에 뭉쳐 커다랗게 내리찍었다.

그 파괴력은 거대한 해머를 마주하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더욱 무서운 것은….

'컨트롤이 마이클보다 좋아. 만약 이 자가 스타 프루츠를 먹어 능력자가 된다면 아마 순식간에 정상에 올랐을 거야. 그리고 얼음을 이용한 범위 마법도 무척이나 까다로워.'

카푸치노의 본질은 마법사라는데 있었다.

그가 일으키는 두 개의 얼음 폭풍과 쏘아내는 얼음송곳의 세례는 닿을 때마다 자신의 공격을 무력화시키곤 했다.

물의 결계인 아쿠아 에리어스는 아예 처음부터 쓸 수가 없었고, 수경 보르도를 이용한 물의 분신과 수룡 블라쉬는 나서지 조차 못했다.

자신이 물을 움직이면 카푸치노는 무심한 듯 손쉽게 얼려버렸다.

컨트롤을 한다고 했는데도 도저히 통하지가 않았다.

근접전으로 몰고 가도 카푸치노의 매서운 눈은 자신을 꿰뚫고 있었다.

[수병궁, 데우칼리온이 준비가 끝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직 자신 또한 비장의 한 수가 남아있다.

'이건 그 망할 영감탱이나 마이클과 싸울 때 쓰려고 했었던 건데…. 어쩔 수 없지. 마력의 소모가 크겠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단 나을 테지.'

토레즈가 등에 메고 있던 자신의 수병을 내려놓더니, 하늘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수병이 한 번 번쩍이더니 황금색으로 변모했다.

토레즈는 자신의 머리 위로 수병을 뒤집었다.

쏴아아아-.

그러자 쏟아지는 붉은 포도주.

평소에 담겨 있던 투명한 술이 아닌 그것은 바로 넥타르였다.

데우칼리온은 성좌가 되어 천궁에서 신들의 넥타르를 자신의 수병에 담던 일을 했었다.

그가 가진 수병이 넣기만 하면 양이 늘어나는 신묘한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데우칼리온에겐 넥타르와 관련된 궁좌 스킬이 생겨났다.

[궁좌 스킬, '부어지는 넥타르'가 시전됩니다!]

[당신은 넥타르의 향에 취했습니다.]

[5분간 모든 능력치가 2배로 상승합니다.]

[그러나 5분이 지나면 당신은 잠에 빠져들고 맙니다.]

[당신이 가진 물의 권능이 5분간 봉인됩니다.]

성좌 스킬을 뛰어넘어 궁좌가 되어야만 얻을 수 있는 비기.

토레즈 또한 이런 궁좌 스킬이 있다는 것을 안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알게 된 건 지난번에 있었던 최춘택과의 싸움 도중.

그때는 쓸 여력이 없어서 못 썼지만, 지금은 아니다.

"간다."

"…이런."

토레즈가 눈 깜짝할 사이에 신형을 감추더니, 카푸치노의 앞에 나타났다.

카푸치노는 얼음 망치를 만들어내어 토레즈의 주먹을 맞받아쳤다.

콰자작-!

그러나 깨어진 것은 토레즈의 주먹이 아니라, 카푸치노의 얼음 망치였다.

* * *

[다음 출전 선수를 내보내 주십시오.]

"…결국 이렇게 됐군."

"역시 토레즈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네."

각각 마이클과 데미안의 말이었다.

카푸치노는 선전했지만, 1분도 버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그러나 성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카푸치노가 이길 수 있었는데 정말 아까웠어."

"아마 녀석은 스타 프루츠만 먹었다면 나보다 강했을 거다."

순순히 인정하는 마이클을 보며 데미안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의 그였다면 전혀 내뱉지 않았을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데미안의 의중을 눈치챘는지 마이클이 말을 이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백번 이긴다는 뜻이야."

그러나 그런 마이클의 말에도 데미안은 여전히 머리에 물음표를 띄웠다.

하긴 너무 갑작스럽기도 했다.

"그분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적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며 가르쳐 주시더군."

"그분이 누군데?"

"있다. 그런 사람이."

마이클은 피식 웃으며 뒷말을 삼켰다.

이것은 백무열과 함께 지내며 배웠던 말이었다.

아버지의 정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왔던 마이클에겐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르침.

마이클은 언제나 싸움에 임하기 전 이 말을 되새겼다.

그리고 전보다 작전 회의를 할 때는 적극적으로 선수의 프로필에 관한 것들을 새겨들었다.

오만했던 마이클은 전보다 한 발자국 진보한 것이었다.

'성장했구나.'

그리고 그런 마이클을 데미안은 흐뭇하게 쳐다보았다.

데미안은 곧바로 마이클에게 말했다.

"내가 나갈게."

"이길 수 있나?"

"물론."

데미안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데미안 또한 오늘 토레즈를 상대하기 위해 비장의 한 수를 준비해둔 참이었다.

그리고 아직 추측일 뿐이지만, 토레즈가 물의 능력을 쓰지 못하게 된 것 같다고 카푸치노가 말해주었다.

그렇다면 방법이 있다.

"갔다 올게."

위우웅.

[유저, '데미안'이 입장합니다.]

데미안의 몸이 사라지며 나타난 곳은 이제는 폐허가 되어버린 허허벌판의 경기장.

[10초 뒤 경기를 시작합니다.]

[10, 9, 8….]

데미안은 카운트가 시작되는 동안 머릿속으로 싸움을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할지 떠올렸다.

자신의 장기인 전략과 전술을 이용해 싸울 요량이었다.

삐이이-!

시작과 동시에 토레즈의 신형이 빠른 속도로 자신을 향해 돌진했다.

그는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다급해 보였다.

데미안은 내질러지는 토레즈의 주먹을 은을 이용해 만든 방패로 막았다.

쿠우웅!

"……!"

어마어마한 힘.

지금 토레즈의 힘은 데미안이 상정한 범위를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다.

어쩌면 아까 카푸치노가 당황한 기색을 보였던 것도 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뒤로 튕겨져 나가며 간신히 막아낸 은 방패는 단 한 번의 주먹질에 금이 가 쓰지를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정도는 은의 연금술사인 자신에겐 그리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다.

데미안은 곧장 은 방패를 흐물흐물하게 녹여 만든 은 채찍을 중거리에서 휘둘렀다.

짜악-! 짜악-!

토레즈의 신형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더니, 자신의 뒤에서 나타났다.

또 한 번 데미안은 은 방패를 이용해 막아냈다.

쿠웅!

이번엔 간신히 뒤로 튕겨나지 않았다.

확실히 토레즈는 물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작게 벼려낸 은창을 내질러 거리를 벌린 데미안이 굳게 결심을 굳혔다.

'좋아. 그럼 지금 써도 되겠어.'

파파파팟!

사방에서 빠른 속도로 토레즈의 주먹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졌다.

마치 주먹으로 이루어진 비를 맞는 것만 같음 심정이었다.

데미안은 은 방패와 은창을 이용해 공수를 주고받으면서도 자신의 전신을 두꺼운 은 갑옷으로 감쌌다. 그리고 이어서 더욱 많은 은을 마력으로 부렸다.

"…무슨 속셈이지?"

그렇게 토레즈가 물었을 때, 이미 자신은 거대한 '실버 골렘'이 되어 있었다.

"…글쎄. 어쩔 셈일까."

묵직한 은을 닮은 데미안의 음성이 토레즈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이것은 데미안이 지난 골렘 공성전에서 힌트를 얻어 새롭게 창조해낸 스킬인 실버 골렘.

튼튼한 내구성은 물론이고, 묵직한 파괴력이 완벽한 공수 밸런스를 자랑했다.

앞으로의 사냥에 큰 보탬이 될 것이었다.

"능구렁이 같은 면은 여전해."

토레즈가 남은 마력을 쥐어 짜내 내지른 주먹이 골렘의 약점인 핵을 때려냈다.

콰앙-!

실버 골렘의 가슴 한가운데가 패이며 본체인 데미안의 모습이 드러냈다.

실버 골렘이 천천히 앞으로 고꾸라지고 있었지만, 이것은 데미안이 유도한 것이었다.

"훗."

"뭐가 그렇게 좋지?"

"혹시 산화수은이라고 알아?"

덥썩!

마치 그 순간을 노린 것처럼 실버 골렘의 양손이 토레즈의 양손을 붙잡았다.

실버골렘의 손이 흐물흐물 녹더니 토레즈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이런."

당황한 토레즈의 얼굴에 대고 데미안이 난데없는 과학 지식을 쏟아냈다.

"산화수은은 핵 폭발물을 만드는데 쓰는 재료 중 하나지. 빨간 수은이라고도 불리는데 사실 그리 위험한 물질은 아니야. 연고에도 쓰이는 물질이기도 하고."

"…갑자기 뭔 개소리냐."

"하지만 그걸 급속 냉각시켜서 최대한 압축시킨 다음, 한순간에 마력으로 녹여낼 수 있다면."

데미안이 품속에서 자그마한 얼음 조각을 꺼냈다.

그것은 자신의 은술로 녹여 만든 수은을 마이클의 능력을 이용해 산화시켜 압착시킨 다음.

오늘 만난 카푸치노에게 부탁해 절대 영도로 급속 냉각을 한 것이었다.

말 그대로 제우스 길드를 이끌어가는 3인방의 힘이 고스란히 집약된 집합체.

"인공적인 핵폭발이 일어나지 않을까?"

바로 그 순간.

찌이잉-!

데미안의 손에 있던 산화수은이 새하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한순간이지만 엄청난 고열이 그의 손끝에서 타올랐다.

"자, 잠깐만…."

"함께 가자. 토레즈."

곧이어 어마어마한 섬광을 뿜어내며 거대한 화력이 세상을 집어삼켰다.

쿠아아아앙-!

하늘 위로 버섯구름이 치솟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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