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268화
제268화
'이게 대체…?'
마치 거대한 중력에 짓눌려 앞으로 끌려가는 느낌에 미우라는 등줄기의 소름이 끼쳤다.
이윽고, 그가 손에 쥔 손잡이를 뽑아내 쾌검을 내지르려는 순간.
"…흡!"
쥐도 새도 모르게 눈앞으로 들이닥친 임창용을 본 미우라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임창용은 검을 뽑으려는 미우라의 오른손을 밀쳐내고, 그대로 손에 쥔 단검을 뽑아 들었다.
키이잉!
시퍼런 에테르 블레이드가 귀신의 곡소리처럼 소름 끼친 소리를 냈다.
임창용은 그대로 단검을 미우라가 입고 있는 갑옷을 향해 찔렀다.
미우라는 해볼 테면 해보라는 표정이었다.
'흥. 조센징 놈. 조금 놀라긴 했다만 그까짓 걸로 우리가 입은 중갑을 베어낼 수 있으리라고 여긴다면 큰 오산….'
푸우욱!
"…억!"
미우라의 눈앞에 치명상을 입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 할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대일본 제국에서 지원해준 비싼 갑옷을 송곳처럼 뚫고 자신에게 치명상을 입혔는지 말이다.
미우라는 이를 으득 깨물며 임창용의 단검을 꽉 잡았다.
"고노야로…!(이놈…!)"
"……!"
파아아앙!
미우라가 내지르듯 뻗은 손바닥에서 풍압이 쏟아졌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임창용도 입에서 약간의 피를 쏟아냈다.
"쿨럭…!"
임창용은 고개를 털고 미우라를 보았다.
이미 미우라는 약간의 거리를 벌린 상태였다.
그 순간 머릿속으로 지난 시간 동안 있었던 레슬리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단번에 급소를 노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이 위험해질 것이다, 라는 가르침.
'너무 흥분했나.'
임창용이 미간을 찌푸릴 때, 미우라의 쾌검술이 날아들었다.
피피핏!
임창용이 몸을 좌우로 비틀어 치명상을 피했다.
이것 또한 레슬리의 가르침이었다.
'흥. 레슬리 영감이 쏜 총에 비하면 이까짓 검기 쯤은….'
정말이지 레슬리는 무시무시한 교관이었다.
그가 쏜 나선의 마탄에 죽었던 적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레슬리는 개의치 않았다.
자신들이 불사의 인간이라 다시 살아난다는 걸 이용해 폭풍처럼 몰아붙였다.
지난 사흘은 마치 지옥도에 들어선 것과 같은 시간이었다.
'내가 이대로 죽을 것 같아? 어?'
레슬리가 쏜 마탄 사이로 비치던 형형하게 빛나던 눈을 임창용은 잊을 수가 없었다.
마치 미래를 꿰뚫어보는 것 같은 서늘한 느낌.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총알을 정면에서 얻어맞는 느낌을 아는가?
레슬리의 총알이 바로 그러했다.
그에 비하면 이건 뭐 누워서 떡 먹기다.
피핏! 피핏!
임창용이 또 한 번 미우라의 쾌검을 정면에서 피해냈다.
"어, 어떻게…?!"
당황한 미우라의 낯빛이 하얘졌다.
임창용은 그저 이를 보이며 씩 웃었다.
먹이를 눈앞에 둔 하이에나의 심정이 이러할 것이다.
"빠가나…!(바보 같은…!)"
미우라가 다시 쾌검을 위한 자세를 잡았고, 곧장 마력을 끌어올린 임창용은 마스체니식 근접 격투술을 활성화시키며 돌진했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는 푸른 마력의 기운이 주변을 빨아들였다.
지지직.
마치 자석처럼 미우라에게 달라붙은 임창용이 피식 웃으며 총을 꺼냈다.
이번에 레슬리 영감의 권유로 바꾼 새로운 총.
샷건이었다.
철컥!
"조센…."
"닥쳐. 이 쪽바리 새끼야."
꽈아아아아아앙-!
샷건이 뜨거운 총구를 뿜어냈다.
전방이 하얗게 물들며 미우라의 몸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 *
- 한, 한국팀의 승리입니다!
- 압도적입니다. 너무나 압도적입니다!
- 한국과 일본의 주장전은 임창용 선수의 승리입니다!
와아아아아-!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져 내렸다.
생각지도 못했던 임창용의 활약에 모두가 놀라는 눈치였다.
한국의 응원단은 북을 치고 꽹가리를 쳤고, 일본의 응원단은 이를 갈며 얼굴을 붉히고는 침묵에 휩싸였다.
- 임창용 선수가 엄청난 근접전을 보여주었습니다. 과연 특수부대 출신다운 모습이었습니다.
- 아무래도 그가 새로운 스킬을 얻은 것 같습니다. 짧은 시간 사이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룩한 임창용 선수입니다.
- 그런데 임창용 선수의 머리 스타일이 바뀌었군요? 마치 이번 한일전을 이기고 말겠다는 다짐 같습니다!
- 과연 대한민국의 주장다운 모습입니다. 한일전의 첫 경기를 아주 멋지게 승리로 장식을 해주었습니다!
한국의 해설진들이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그만큼 임창용이 보여준 모습은 압도적이었다.
나름 일본에서 알아주는 랭커인 미우라의 쾌검을, 그것도 중거리에서 정면 돌파로 멋지게 깨부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정말이지 놀라운 반응속도라고 할 수 있었다.
- 도대체 어떻게 짧은 시간 사이 저런 힘을 갖췄는지 궁금합니다.
- 어쩌면 오늘을 위해 숨기고 있었던 걸까요?
- 아, 말씀드리는 순간. 선수 교체 메시지가 떴습니다.
경기장에 자리한 모두의 시선이 다시 화면의 스크린으로 향했다.
* * *
[한국팀의 승리입니다.]
단 한 줄의 메시지였지만, 나를 비롯한 한국팀 일행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동안의 지옥 훈련이 헛되지 않았다는 안심이 첫 번째였고, 두 번째는 임창용이 정말 화끈하게 미우라를 날려버렸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싸울 때 자꾸 내뱉던 '조센징'이라는 단어가 무척 거슬렸는데, 임창용이 아주 잘해주었다.
소화제를 한 움쿰 집어 들어서 콜라와 함께 삼킨 듯한 개운함이었다.
"어우, 속이 다 시원하네."
"주장이 엄청 화끈하게 폭죽을 쏴 버렸어."
"크으. 사이다."
박장소와 김철 그리고 임사라의 말이었다.
다른 일행들은 모두 입꼬리가 귀에 걸려서 흡족한 표정이었다.
아무도 미우라를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하긴 쪽바리 놈이 너무 까불었지.
"하느님. 오늘도 불쌍한 영혼이 하나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김해일은 이미 기도를 하고 있었다.
김현우는 은정혁과 말없이 하이파이브를 쳤다.
[1분 뒤에 다음 경기가 시작됩니다.]
[선수 교체를 하시겠습니까?]
메시지와 동시에 허공에 1분의 카운트다운이 나타났다.
"흠."
때마침 임창용에게 귓속말이 왔다.
- Sky-Dragon : 계속하겠습니다.
- 잭슨 : 괜찮겠냐?
- Sky-Dragon : 예.
임창용이 없을 땐 내가 주장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뭐, 긴말은 필요 없다.
- 잭슨: 알았다.
귓속말을 마친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마쳤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백무열이 까끌한 턱수염을 매만지며 물었다.
"뭐라냐."
"계속하겠다는데?"
"흠. 나쁘지 않지."
백무열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아까 전 보여준 임창용의 기량이라면 충분히 더 싸워도 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치. 나도 싸우고 싶었는데."
바로 옆에 선 미도가 입술 삐죽 거리며 투덜거렸다.
오리 같은 손녀의 표정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나는 손을 들어 미도의 머리칼을 흩트렸다.
"우윽."
"어차피 우린 브라질과 붙을 테니 그때 열심히 싸워보자. 힘을 비축한다고 생각해."
"크흠, 알았어요."
미도가 볼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팀원들도 말없이 내 뜻을 따르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1분의 카운트다운이 다 지났다.
[한국팀은 선수 교체를 하지 않습니다.]
[바로 다음 경기를 시작합니다.]
* * *
- 아, 임창용 선수 정말 아깝습니다. 결국, 여기서 지고 말았군요.
- 그래도 혼자서 5명의 일본 선수를 잡았습니다. 정말 대견합니다!
- 이번에 얻은 스킬이 일본에게 무척이나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특히나 샷건의 위력이 정말 대단합니다. 저건 정말 신의 한수라고 불러도 충분할 정도입니다.
한국의 응원단은 그야말로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북 치고, 장구 치며 '대한민국' 넉 자가 유니온 스퀘어 경기장을 뒤덮었다.
반대로 일본의 응원단은 그야말로 울상이었다.
공교롭게도 붉어진 얼굴이 일본의 국기 같았다.
- 정말 놀랍다는 말밖에 안 나옵니다. 대체 어디서 저런 스킬을 익혔을까요?
-상대편이 자석처럼 끌려가는 저런 스킬은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도발 계열의 스킬 같기도 하구요.
- 일본이 지금 무척이나 당황스러울 겁니다. 5연승을 한 한국에게 한 번만 더 지면 그대로 탈락이 확정되기 때문입니다.
- 아, 말씀드리는 순간 임창용 선수의 캡슐이 열렸습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가대표 주장입니다!
와아아아아-!
임창용은 캡슐을 나오자마자 쏟아지는 관객들의 함성을 들으며, 지난 사흘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괜스레 마음 한구석에 뿌듯함이 자리 잡는 것 같았다.
"하하."
이상하게 웃음부터 나온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주장으로써 느껴왔던 그동안의 부담감을 이제야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느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시간 부진했던 자신을 알았기에 더 그랬는지도.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자, 주변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계속해서 메아리쳤다.
그렇게 손을 흔들다가 문득, 이곳을 노려보는 건너편의 일본팀 벤치를 발견했다.
그곳엔 임창용에게 죽었던 미우라를 비롯한 5명의 일본 선수들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임창용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히죽 웃었다.
미우라가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갈며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그러게 왜 조센징이라고 그러냐고. 이 쪽바리야. 사람 열 받게.'
충분히 웃어준 임창용은 반대편에 마련된 한국팀 벤치로 돌아왔다.
새로 고용된 하동근 감독과 예비 선수들이 양손을 들어 하이파이브로 맞아주었다.
임창용은 벤치에 널브러진 채 무대를 바라봤다.
- 이제 한국팀의 다음 출전자는 누가 될까요.
- 저도 모르겠습니다. 상대는 일본의 부주장인 켄타 선수인데요. 예상외로 그의 전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 누가 되었든 임창용 선수가 보여준 파이팅을 이어가 주면 좋겠는데요.
- 말씀드리는 순간 카운트다운이 떴습니다. 이제 결정할 시간입니다.
임창용은 옅은 숨을 내쉬며 아까 전 자신이 죽었던 상황을 떠올렸다.
켄타는 그야말로 정통 사무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집중력을 끌어모아 단 한 번에 일도양단의 기세를 담아내 쏟아내는 '초발도'는 임창용으로서도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그 범위가 너무 넓고 광활해서 임창용은 단번에 몸통이 잘리고 말았고, 그렇게 로그아웃을 당했다.
그렇기에 완벽한 승리를 위해서는 다음번에 나갈 선수가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임창용은 생각했다.
- 아~ 이게 뭔가요! 한국 선수들이 가위바위보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 하하하, 일본 선수들이 약이 제대로 오를 것 같습니다.
- 엄청난 여유군요. 하하하.
말 그대로 벤치에 있던 일본 선수들이 주먹을 불끈 쥐며 수치심에 휩싸였다.
그들의 표정이 아주 볼만했다.
'큭큭. 꼴 좋다.'
9명이 동시에 진행을 해서 그런지 가위바위보는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주먹과 가위와 보자기가 차례대로 나왔고, 카운트가 한 10초 남겼을 때쯤 승자가 결정됐다.
- 아~! 승자가 결정됐습니다!
- 한국의 최종병기군요!
- 최춘택 선수입니다!
"흐."
임창용이 히죽 웃었다.
그가 나왔다면 이제 일본은 침몰하는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미우라의 침통한 표정이 스크린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