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267화
제267화
"…대단하군. 이 정도의 근접 격투술을 구사할 줄이야."
레슬리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씰룩거렸다.
그러나 정작 놀란 것은 나였다.
멀리서 총질만 해대는 줄 알았는데, 내 예상보다 뛰어난 근접 격투 실력을 숨기고 있어서였다.
"실력을 좀 더 보고 싶은데."
그렇게 말한 레슬리의 주변에 푸른 마력이 원을 그리며 휘돌았다.
푸른 마력은 잔상을 남겼고, 더욱 빠른 속도로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레슬리의 손에 쥐어진 에테르 블레이드도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우웅. 우웅.
주변에 있던 돌과 자갈들이 모조리 레슬리의 주변으로 천천히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 힘은 점점 더 거세어져,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이 만나 엄청난 인력으로 당기는 것만 같았다.
"마스체니식 근접 격투술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겠소."
그제야 나는 지금 발생 되는 블랙홀 같은 현상의 원인이 레슬리가 뿜어대는 푸른 마력 때문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저것이 마스체니식 근접 격투술의 진정한 모습임을 깨달았다.
우우웅.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갈 것처럼 내 몸이 점점 레슬리에게로 움직였다.
두 다리로 버텨보았지만, 질질 끌리며 모래 먼지만 일었다.
…대단해. 이 정도면 떨어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근접전만 펼치게 되겠어.
마스체니식 근접 격투술은 그런 것이었다.
적을 강제로 자신에게 종속시켜 근접전으로 싸우게 만드는 것.
일종의 도발과도 같은 계열의 스킬이었다.
만약 이걸 임창용을 비롯한 김철, 박장소에게 가르친다면 이번 대회 마지막 경기인 PVP에서 훌륭한 성적을 낼 수 있으리라.
"나도 최선을 다하지."
쒸이이이익-!
재빨리 해오름을 취소하고 두 다리에서 어마어마한 바람이 터져 나왔다.
주변의 바람을 손으로 잡아끌어서 진공 상태를 만들어냈다.
그제야 끌려가던 몸이 멈추는 느낌이었다.
레슬리는 재밌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녹색의 바람과 푸른 마력이 일으킨 만나 광풍을 만들어냈다.
마치 두 개의 태풍이 만나 격돌하는 것 같았다.
쿠와오오!.
"꺄악!"
"크윽!"
"으악!"
주변에서 일행들의 아우성이 들렸고, 나와 레슬리는 서로 멀찍이 노려본 채 웃고만 있었다.
서로 잠깐의 빈틈만 보여도 당장에라도 달려들 기세.
바로 그때였다.
콰콰콰콰-!
"……!"
"……!"
갑작스러운 공격에 나와 레슬리가 동시에 몸을 틀었다.
거칠게 휘몰아치던 광풍이 멈췄고, 짙은 모래 먼지가 자욱하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동시에 누군가의 발소리가 먼지를 뚫고 들려왔다.
나는 바람을 이용해 먼지를 모두 걷어냈다.
공격을 한 사람은 백무열이었다.
"쉬는 시간이다. 담배나 한 대 태우지."
나와 레슬리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는 것이었다.
우리는 동시에 어깨를 으쓱였다.
* * *
나, 백무열, 그리고 레슬리가 훈련장에 마련된 조그만 휴게실에 들어섰다.
우리 셋은 서로 의자를 끌고 와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먼저 적막을 깬 것은 백무열.
그가 품에서 담배를 꺼내더니 내게 주었다.
이 녀석이 이건 어디서 났지?
"자."
"……."
나는 말없이 일단 담배를 받았다.
"자네도."
"…고맙소."
백무열이 레슬리에게 담배를 권했고, 레슬리는 감사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며 받았다.
불을 붙이는 것은 내 몫이었다.
라이터로 불을 붙일 순 있겠지만, 이게 또 태양으로 피우는 담배는 또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나는 검지를 세워 만들어낸 태양의 불꽃을 두 사람에게 차례대로 내밀었다.
두 사람에게서 연기가 피어오르자, 마지막으로 내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게 연기를 마셨다.
"스읍. 후우."
침묵이 다시 한번 내려앉았다.
우리 셋은 말없이 서로를 번갈아 보며 담배나 뻑뻑 피워댔다.
레슬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확실히 싸우는 것을 보면 파르타 공국 출신은 아닌 것 같더군. 대체 어디서 그런 근접 격투술을 익혔지?"
"어렸을 때 배웠소. 정확히 어디서 배웠는지는 나도 모르겠군. 하도 오래된 기억이라."
"…흠. 그렇구만."
다시 오래된 침묵이 내려앉았다.
백무열은 나와 레슬리를 번갈아 보며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이번엔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밖에 있는 친구들에게 근접 격투술을 가르쳐줄 수 있겠나?"
"어디에 쓸 예정이지?"
"나라의 자존심이 걸린 대결이라고 해두지."
"나라의 자존심이라…."
레슬리가 깊어진 눈매로 담배꽁초의 타다만 끝부분을 보았다.
그의 입과 코에서 뿜어져 나온 연기가 빠져나가지 못한 채 허공에 머물고 있었다.
"나는 파르타 공국 최전방 국경 수비대에서 싸우던 군인이었다. 그때 당시의 파르타 공국은 끊이지 않는 전쟁들이 많았지. 안으로도, 밖으로도, 그곳은 전쟁터였다."
나는 레슬리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지금 그는 자신의 속내를 먼저 드러내 보인 것이었다.
"어느 날이었지. 당시 오르카 왕국이 쳐들어와 국경 수비대에 있던 내 동료들을 모조리 잡아갔다. 그러나 파르타 공국에선 전쟁을 치를 여유가 되지 않아서 그들을 외면했었어."
허공에 시선을 둔 레슬리가 당시를 회상하듯 말을 이었다.
"그때 난 파르타 공국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지. 그리고 오르카 왕국의 국경 수비대로 쳐들어가 그곳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포로로 잡힌 동료들을 구해왔지. 그리고 그들과 함께 도망쳐 이곳으로 왔다. 물론, 가족들도 함께."
그 뒤의 이야기는 아마 내 짐작대로 일 것이다.
아마도….
"그 과정에서 아내와 딸이 죽었다."
"……."
"파르타 공국에서 넘어온 우리를 스파이 취급한 에이단이 아내와 딸을 사격 연습한다는 빌미로 과녁으로 세워놓았다. 그렇게 아내와 딸이 죽었다."
나는 레슬리의 눈을 들여다보았고, 백무열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그의 말을 들었다.
"우리도 목숨이 위험했던 그 순간. 당시 저항군을 이끌던 아렌 공의 부인, 그러니까 사라 님이 우리를 구해주었다. 그렇게 난 저항군이 되었지. 그리고 이 자리에 올랐다."
레슬리가 잠시 말이 없더니, 담배를 밟아 짓이겨 끄고는 말했다.
"그러나 난 사라 님 또한 지키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지금 그가 말하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궁금했다.
"나라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도 중요해. 하지만 난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내가 쓰는 마스체니식 근접 격투술은 나라가 아니라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데 썼으면 좋겠군."
나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씩 웃었다.
그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사람이었다.
어쩐지 나와도 비슷한 점이 많아서 오히려 깊은 동질감이 느껴졌달까.
아무튼 그것은 아마 레슬리 또한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어느샌가 말을 놓고 있었다.
레슬리가 피식 웃었다.
"…덕분에 피가 끓었군. 소중한 이들을 잃어본 남자들의 눈을 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레슬리가 나를 보던 시선을 돌려 백무열을 힐끔 보았다.
그리고는 대뜸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로 훈련을 시작하지. 내가 지휘해도 상관없겠지?"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백무열 또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가 나가자, 백무열이 대뜸 코웃음을 쳤다.
"흥. 괴이한 친구가 하나 생겼군."
"괴이한 건 네가 더한 것 같은데?"
"너도 만만치 않아."
나와 백무열이 동시에 피식 웃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게임 속은 바깥세상과 시간 배율이 달라서 어느덧 사흘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나를 비롯한 한국 대표팀은 대인전을 위주로 연습하는데 주력 했고, 백무열은 열심히 일행들의 머리를 밀었다.
레슬리는 임창용, 김철, 박장소에게 근접 격투술을 전수했는데, 세 사람은 그야말로 이를 악물며 그것을 연마했다.
지켜보는 이들은 셋을 두고 독한 사람들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나는 백무열과 대련을 했고, 미도는 백성찬과 대련을 했다.
다른 일행들에겐 묵찌빠 삼형제와 대머리 형제 그리고 마석두의 자경단을 비롯한 실피드 기사단이 도움을 주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실전의 감각을 끌어올리는데 이만한 훈련은 없었다.
무엇보다 다양한 대련 상대가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어느덧 우리는 경기장 내에 자리한 한국팀 대기실에 모여 있었다.
"다들 긴장 풀었지?"
임창용이 원형으로 모인 팀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리고는 중앙으로 손을 내밀었다.
팀원들은 웃으며 손을 모았고, 나와 백무열도 그곳에 가세했다.
조금 유치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날이니까 이 정도 쯤은 나쁘지 않다.
"공교롭게도 한일전이야."
모두의 눈이 임창용에게로 향했다.
"첫 경기는 다들 봤을 거야. 브라질과 네덜란드의 경기였지. 브라질이 이겼고 말이야."
임창용이 이를 으득 갈았다.
그의 표정이 제법 볼만했다.
"난 아직도 브라질 놈들이 우리에게 주었던 치욕이 잊히지지 않아. 이번 한일전 우리가 승리 가져가고, 8강에서 그놈들에게 복수해준다. 이의 있는 사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저 그곳에 있는 모두의 눈빛에 독기가 가득했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피에 굶주린 군인들을 보는 것 같았다.
"하나, 둘, 셋."
"화이팅-!"
모두의 손이 하늘로 치솟더니, 흩날리는 벚꽃처럼 흩어졌다.
* * *
유니온 스퀘어 일본 대표팀 대기실.
"하잇! 하잇! 알겠습니다! 꼭 승리하겠습니다! 옙! 수고하십쇼!"
일본 대표팀의 주장 미우라가 차렷 자세로 허리를 곧추세우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받는 대상이 무척이나 높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설마하니 일본의 총리가 직접 전화를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후우.'
미우라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대충 설명하면 일본 국민들의 이목이 이번 대결에 모두 모여 있다는 내용이었다.
옛날부터 한일전은 양국의 자존심을 건 대결이었으니, 어쩌면 이번 경기에 모인 시선을 총리가 신경 쓰는 것은 당연했다.
가뜩이나 전 세계에 생방송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던가.
"미우라 상. 총리님이 뭐라십니까."
부주장 타케시가 눈을 빛내며 묻자, 미우라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라이의 정신을 전 세계에 보여주라고 하셨다. 주전을 뽑겠다. 타케시!"
"하잇!"
"켄타!"
"하잇!"
"요시모토!"
"하잇!"
미우라는 한 사람씩 주전 선수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렇게 마련된 주전 10명. 주전을 다 뽑고 나자, 유니온 관계자가 들어와 입장할 시간이라고 말해주었다.
미우라는 나가기 전 선수들을 향해 말했다.
"대 일본 제국은 조센징에게 패배하지 않는다!"
"하잇!"
"오늘 우리는 한국에게 본때를 보여줄 것이다!"
"하잇!"
"다들 사무라이 정신을 되새겨라!"
"하잇"
"요시! 다들 나간다."
미우라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무대로 앞장섰다.
자신을 비롯한 일본의 선수들은 모두 검을 쓰는 전사 계열의 클래스를 가지고 있었다.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쓰는 전통 검술을 접목시켰고, 그걸 토대로 일본 대표팀의 색깔을 완성했다.
하지만 단점 또한 분명히 존재했다.
'후후. 지난 중국과의 싸움이 도움이 되었지.'
첫날 있었던 깃발 쟁탈전에서 일본은 중국에 무참히 패배하고 말았다.
분석에 분석을 거듭했고, 드디어 단점을 보완했다.
단점은 가볍게 무장한 방어구에 있었다.
오늘 자신을 비롯한 일본의 선수들은 모두 수준 높은 방어구들을 앞세우는 작전을 펼치기로 했다.
평소엔 가죽을 입었지만, 오늘은 전부 단단한 중갑 계열을 입었다.
아마 조센징들도 무척이나 당황하리라.
'최춘택과 백무열만 피한다. 나머지는 우리가 이기면 돼.'
최근에 능력자가 된 최미도 또한 기피 대상이긴 했지만, 뭐 어차피 10번 치러지는 경기 중 6경기만 이기면 되는 룰이었다.
2번이나 3번 정도는 져주고 나머지는 충분히 우리가 이길 용의가 있었다.
그렇게 일본 팀이 경기장에 나타났다.
와아아아-!
우렁찬 관객들의 함성에 손을 들어 가볍게 화답했고, 빠르게 접속을 준비했다.
[아크스타에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바로 아래층에 위치한 원형의 경기장.
지금 있는 곳은 2층이었다.
속속들이 다른 일본 선수들도 입장을 마쳤고, 한국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마 보안 때문인 것 같았다.
[PVP 대결을 시작합니다.]
[첫 번째로 나갈 선수를 지정해주십시오.]
"음. 내가 제일 먼저 나가겠다."
미우라가 대일본 제국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가장 앞서서 나섰다.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저 '미우라'님이 첫 번째 경기에 나갑니다.]
스르륵.
몸이 환한 빛에 휩싸이더니 나타난 곳은 가운데 위치한 원형의 경기장이었다.
머리 위로 생명력을 나타내는 게이지 바가 나타났다.
미우라 고로는 건너편에 나타난 상대를 보았다.
[유저 'Sky-Dragon'이 첫 번째 경기에 나갑니다.]
"호오. 의도치 않게 주장전이 되었군. 조센징."
미우라가 가벼운 도발과 동시에 여유를 부리며 기다란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는 중거리에서 쾌검을 구사하는 스킬들을 여럿 가지고 있었다.
물론, 단거리로 들어가면 검의 길이가 길어서 조금 불리한 면이 있지만, 그것은 방어구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었다.
또한 검풍을 날려 적을 밀어내는 스킬도 가지고 있으니 걱정이 없을 터였다.
그는 어제 마탄에 대비한 훈련도 마쳤다.
쾌검으로 총알을 베는 훈련.
그렇기에 눈앞의 임창용이 쏘는 총도 무섭지 않았다.
[경기를 시작합니다. 3, 2, 1….]
삐이이익-!
울리는 버저비터 소리와 함께 미우라가 달려들었다.
하지만 임창용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건방진…!'
달려들던 미우라가 크게 발을 내딛고 중거리에서 검 손잡이를 쥔 채 쾌속의 발검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지지직-
"……!"
갑자기 미우라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며 끌려가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