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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263화 (263/375)

나 빼고 다 젊은이 263화

제263화

너무나 소름끼치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어깨를 흠칫거리며 뒤돌았다.

그곳엔 정말 예상치 못한 존재가 포효하고 있었다.

"잉크 드래곤…?"

아무래도 미도가 성공한 듯싶었다.

내가 미도에게 말했던 '빛의 모방가'의 필살기.

한낱 성좌가 인공적으로 드래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나 다름없었다.

빛을 그리던 화가였던 다빈치가 빛을 잃어버리고, 빛을 모방한 그림자 잉크로 만들어낸 필살의 비기.

원래 그림자 잉크로 추출할 수 있는 병사는 100명이 최대이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잉크 드래곤은 무려 50이라는 숫자를 소모한다.

다행히 다빈치는 미도에게 호의적인 듯싶다.

콰오오오-!

잉크 드래곤이 또 한 번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그러나 이번 괴성엔 웅혼한 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지이이잉.

이명 같은 것이 귀를 울림과 동시에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크윽."

[잉크 드래곤의 피어에 당했습니다.]

[공포심에 모든 능력치가 20% 감소합니다.]

[약 5초간 제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습니다.]

"뭐야. 왜 우리를 공격…."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피하라며 소리칩니다!]

"……!"

정말 눈 깜짝할 사이였다.

포효하던 잉크 드래곤이 입을 쩍 벌리더니, 이곳을 향해 브레스를 쏘아 보냈다.

피유웅-!

한 줄기의 검은 광선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쿠쿠쿠쿵!

일직선을 초토화 시키는 검은 폭발의 잉크 브레스.

드래곤 피어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는데, 다행히 타겟은 내가 아니었다.

타겟은 얼음이 녹아서 상체를 허우적거리던 골렘이었다.

가슴이 뻥 뚫린 골렘은 부실 공사한 건축물처럼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오오오-!

한이 서린 골렘이 울부짖으며 무너졌다.

[미국의 골렘이 파괴되었습니다.]

[다음 골렘의 소환까지 남은 시간은 10분입니다.]

[10:00]

"후우."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어쩐지 불길했다고 말합니다.]

"아직 미도가 처음이라 드래곤을 조종하지 못하는 거겠지."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아직도 불길하다고 말합니다.]

"쯧. 찝찝한 소리 그만해라."

나는 천천히 다가오는 잉크 병사들을 향해 걸어갔다.

마침 그 사이로 검을 늘어트린 채 걸어오는 미도의 모습이 보였다.

한국의 일행들이 도착한 것은 그때였다.

그들은 미도의 옆쪽에서 불쑥 나타나더니 그녀를 향해 뛰어갔다.

"미도야. 그게 네 능력이야? 대단하다!"

"뭐야. 또 귀티야? 하여튼 귀티 사랑은 여전하다니깐."

"그린 걸 병사로 만드는 능력인가? 신기한데?"

"저기 좀 봐. 미국팀이 몽땅 얼어있어!"

"헐. 할아버지. 대박."

나보다 그들이 앞서 미도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그들이 모은 마력 코어는 어느새 30개가 넘어있었다.

이 정도면 다음 공격에 미국의 성을 무너트리기는 충분하다.

"미도야. 나도 귀티…."

스칵-.

무언가를 베는 소리가 앞서가던 임사라를 스쳤다.

그녀는 무슨 일이 벌어진지도 모른 채 입에서 피를 뿜으며 고꾸라졌다.

"……!"

"……!"

"……!"

나를 비롯한 모두가 당황스러운 눈길을 미도에게 보냈다.

그와 동시에 미도의 검이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그것은 정말로 찰나였다.

핏빛의 검격이 그들 사이를 종횡무진 누볐다.

촤악. 촤악. 촤아아악-!

눈앞의 젊은이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봤을 땐 이미 치명상을 입은 뒤였다.

그들의 등 뒤로 검상이 번지더니 차례대로 피 분수를 만들어냈다.

촤아아아악.

그 모습이 마치 피의 꽃이 피는 것을 보는 것 같았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이럴 줄 알았다고 말합니다.]

젠장. 대체 뭐가 어떻게 된….

"……!"

미도가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순식간에 원거리 검격을 쏟아냈다.

날카로운 반월형의 핏빛 검기가 수차례 내게로 쏟아졌다.

나는 재빨리 칼바람을 운용해 빠른 속도로 피해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눈을 살폈다.

그녀의 눈동자가 허공에 맺힌 채 공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설마, 조종당하는 건가?

나는 바람처럼 움직이며 그녀의 손에 쥐어진 검을 보았다.

저건 분명 '피의 도살자'였는데 그 모양새가 조금 달라져 있었다.

마치 피를 머금고 자란 기괴한 형태.

도대체 뭐 어떻게 된 거지?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통찰을 써보라고 말합니다.]

"통찰."

하도 오랜만에 쓰는 거라 있는지도 까먹고 있었다.

미도의 능력치가 바로 눈앞에 떴고, 일단 다 집어치우고 가장 밑에 있는 것을 보았다.

[*현재 성좌에게 조종을 당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조종을 당해?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미간을 찌푸립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분명 3등성인 다빈치에게 이런 능력은 없었다.

"……!"

바로 그때.

미도가 공허한 표정으로 한 손을 들더니, 주변에 떨어진 피를 끌어모으며, 강맹한 회전이 담긴 토네이도를 전방으로 쏟아냈다.

콰콰콰콰-!

"미친."

블러드 토네이도는 마치 내 움직임을 예측한 것처럼 순식간에 다가왔다.

바로 그때 푸른 눈의 솔라가 눈앞에 뿅하며 나타나더니, 빛을 뿜어내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콰앙-!

다행히 불의 내성이 있었기에 데미지는 없었지만, 폭발의 반동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간신히 바닥을 뒹굴며 재빨리 일어섰고, 블러드 토네이도는 폭발에 상쇄되어 이미 사라져 있었다.

솔라에 빙의한 프로메테우스가 소리쳤다.

"이 멍청한 영감탱이야! 그러게 내가 아까부터 계속 불길하다고 말했잖아!"

"시끄럽다. 욘석아. 귀청 떨어지겠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각각의 병장기를 든 귀티 병사들이 이곳을 향해 달려들었다.

"프로메테우스. 저놈들 좀 맡아다오."

"영감은 어쩌려고?"

"미도를 막아봐야지."

그 말과 동시에 바람을 타고 미도의 뒤편으로 나타났다.

가슴 아프지만 미도를 막기 위해 일단 상처를 입히기로 했다.

바람처럼 날아든 칼바람의 묘리가 그녀에게 퍼부어졌다.

우선은 손에 쥔 검부터 놓게 할 작정이었다.

오른팔을 노린 공격이 미도를 향해 날아들었다.

피피피핏!

수십의 자상이 미도의 오른팔에 새겨지며 피를 뿜어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피가 다시 날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

갑작스레 날아든 피의 가시에 나는 팔을 교차해 막아냈고, 이어지는 미도의 검을 요리조리 피해냈다.

그러나 전부 피할 수는 없었다.

벌어진 상처에서 피의 꽃이 피어났다.

[당신의 상처에서 피안화가 피어납니다.]

[피안화는 당신의 피를 머금고 자라 상처를 계속 벌립니다]

[강제로 출혈이 지속됩니다.]

…뭐, 이딴. 설마, 다빈치가 더 강해진 건가?

미도의 오른팔은 이미 피가 멎은 채 순식간에 상처가 재생되어 있었다.

[피가 모자라….]

그것은 미도와 어떤 존재의 목소리가 뒤섞인 음성이었다.

[피가 필요해….]

미도의 눈이 붉은빛으로 번들거렸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다빈치 또한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다빈치. 정신 차려라."

[피….]

모네트 다빈치는 본디 그가 가진 그림자 잉크 능력을 이용해 뱀파이어들의 왕이 되었으나, 본래 타고난 종족은 인간이었다.

그는 타고난 인내력으로 단 한 번도 흡혈한 적이 없는 뱀파이어였고, 아무래도 지난 세월 동안 무언가 잘못된 것 같았다.

지금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뱀파이어였다.

번들거리는 눈은 분명 피를 갈망하고 있었다.

"영감!"

프로메테우스의 부름에 재빨리 그곳을 보았다.

귀티 병사들은 이미 흩어져 그림으로 돌아간 뒤였지만, 문제는 프로메테우스가 있는 장소였다.

투둑. 투두둑.

"거의 다 풀렸군."

"아, 죽는 줄 알았네."

"저 드래곤은 또 뭐야?"

"이거 아무래도 엄청난 능력자인 것 같은데."

영구동토에서 풀려난 미국의 선수들이 목을 두둑거리며 풀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아직 느렸다.

아직 슬로우 효과가 걸려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 5초만 지나면 모두 풀리고 말리라.

하지만 바로 그때.

미도가 움직였다.

스스스스슥!

눈 깜짝할 사이에 미국의 선수들을 지나쳐 뒤편에서 나타난 미도의 뒤로 다시 한번 피의 꽃이 피어났다.

푸화악!

나는 이때다 싶은 표정으로 지체하지 않고, 그녀의 뒤편으로 나타나 목 뒤를 당수로 내려쳤다.

탁!

"……!"

눈을 부릅뜬 미도는 이내 스르륵 눈을 감았다.

날뛰며 포효하던 잉크 드래곤도 흩어지며 사라졌다.

그리고 메시지가 떴다.

[미국 팀에 살아남은 유저가 없습니다.]

[한국의 승리입니다.]

[5초 뒤, 화면이 꺼집니다.]

[5, 4….]

내 눈은 힘없이 늘어진 미도의 뒤통수로 향했다.

지금 내 심정은 그야말로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 * *

30분 뒤, 유니온스퀘어 부근에 위치한 병원.

경기가 끝나고 대기실로 돌아온 직후.

미도는 갑작스레 정신을 잃었다.

황급히 직원을 호출해 의료팀을 불렀고, 잠시 정신을 잃었을 것이란 진단을 받았지만, 혹시 모르니 정밀 검사를 해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지금 내가 자리한 곳은 미도가 누워있는 병실.

주변엔 가족들을 비롯한 한국의 대표 선수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그들 모두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누워있던 미도가 작은 신음을 흘린 것은 그때였다.

"으음…."

"미도야!"

"정신이 들어?!"

모두가 걱정을 내비치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김미경은 화들짝 놀라며 미도의 손을 양손으로 꽉 잡았다.

눈을 뜬 미도의 동공이 제자리를 찾자,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엄마…?"

"그래. 엄마야. 괜찮니?"

"분명 난 대기실에 있었는데…?"

김미경은 그녀가 쓰러진 경위를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이어서 의사가 들어오더니, 정밀 검사 결과 이상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는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아마 무슨 문제가 생겼었다면 나는 죄책감에 몸 둘 바를 몰랐을 것이다.

그녀에게 스타 프루츠를 건넸던 것은 나였으니까.

"아차, 경기!"

미도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포기하기로 했다. 여기 이 친구들과도 상의했다. 어차피 우리가 기권해도 미국도 탈락했기 때문에 다른 나라가 우승을 하더라도 아직 우리가 최종적으로 1위인 건 변하지 않아. 깨끗하게 기권하고 내일 있을 경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

미도가 팀원들을 돌아보자, 그들은 서글서글하게 웃기만 했다.

임창용이 입을 연 건 그때였다.

"자자, 다들 미도가 일어난 걸 봤으니까. 우린 돌아가자. 내일 경기 준비해야지."

그들은 이미 아까 있었던 일은 깨끗하게 잊은 것 같았다.

아까 전 상황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미도의 말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로그아웃 당하자마자 바깥에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미도가 무언가에 씌인 것 같았다고 한다.

"미도야. 우린 괜찮아. 그러니까 푹 쉬고 내일 보자."

"언니…."

미도가 임사라를 보며 눈을 글썽거렸다.

"으이그. 미안하면 내일 멀쩡히 돌아오셔. 우리 갈게~! 푹 쉬어!"

임사라가 팀원들의 등을 떠밀며 멀어졌다.

그렇게 그들이 사라지자, 김미경이 갑자기 박수를 치며 맛있는 것을 사오겠다고 했다.

잠시 후. 병실에 남은 것은 나와 미도 뿐이었다.

"아빠는요?"

"음, 여기 병원에 친한 의사가 있다더구나. 그 친구가 신경외과 전문의라서 좀 더 널 신경 써달라고 부탁을 할 모양이야."

"안 그려서도 되는데…."

"아마 곧 올라올게다. 네가 일어났으니 말이야."

"흐흐. 아빠 또 엄청 설레발치셨겠네요."

"아마 지금도 그럴걸?"

그 말과 동시에 바깥에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병실 문이 갑자기 확 열리더니.

"미도야 괜찮니!"

최강현이 나타났다.

그럼 그렇지.

나와 미도는 동시에 눈이 마주치며 풀썩 웃고 말았다.

"프흐흐."

"푸흐흐."

할아버지와 손녀가 웃는 모습이 참으로 닮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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