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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261화 (261/375)

나 빼고 다 젊은이 261화

제261화

이곳은 갈대숲이 만연하게 펼쳐진 들판.

나를 비롯한 한국의 일행들은 그곳 어딘가에 숨어서 조용히 숨을 골랐다.

"헉. 허억…."

"후우. 헉."

"허어억."

이번 맵은 갈대 속에 숨어 있으면 자동으로 '투명화'와 '결계' 마법이 적용되기에 은폐하기에는 무척이나 용이했다.

어차피 이 넓은 들판의 절반 이상이 갈대였고, 또 띄엄띄엄 위치해 있었기에 어느 곳에 숨어 있는지 적들은 직접 이곳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알 길이 없었다.

"비와 풍요의 여신, 마야시여…."

쿠르릉.

난데없이 하늘에 비구름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마야의 비구름이 생성되는 중입니다.]

[비구름 아래에 있는 있으면 생명력이 회복됩니다.]

몽크 김해일이 팀원들을 향해 광역 힐을 시전했다.

그가 만들어낸 비구름은 작은 소나기를 머리 위로 떨구었고, 곧장 눈에 띄게 생명력이 차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마치 성수처럼 느껴졌다.

…저 친구는 마야의 사도였군.

언젠가 말했듯이 이곳 세상에는 많은 신들이 있다.

비와 풍요의 여신인 마야는 풍요를 관장하기에 굉장히 온순한 성격을 지닌 신이었다.

바람과 소생의 여신인 후에라와 단짝이라고 할 수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것이다.

"역시 저희가 밀리는 것 같은데요?"

주장 임창용이 나를 보면서 말했다.

그런 그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차피 예상했던 것 아니냐. 지금은 이렇게 참았다가 한 번에 터트려야 한다. 딱 한 번이야. 그 한 번에 밀어붙이지 못하면 우린 지고 말 거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임사라가 말한 것은 그때였다.

"이번엔 가까스로 살아남았는데 다음번에는 괜찮을까요?"

"…으음."

나와 한국팀은 경기가 시작되고 3분 만에 위기에 맞닥뜨렸다.

역시나 문제는 제임스였다.

그에겐 적을 탐지하는 지뢰가 있었고, 그것에 걸린 우리들은 여지없이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내가 혼자 남아 녀석을 유인해 '그림자놀이'를 사용해 도망치지 않았다면 따돌리기 어려웠으리라.

"미도 얘는 왜 이렇게 늦는 거야.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빨리 골라야지. 귓속말이라도 해야 하나."

"동생아. 아직 경기 시작한 지 5분밖에 안 됐거든."

"에휴. 답답해서 그래. 답답해서."

그런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조용히 허공에 떠 있는 전광판을 보았다.

그곳엔 지금까지 모은 마력 코어의 개수가 고스란히 떠 있었다.

[현재 모은 마력 코어의 개수]

[미국 – 16개]

[한국 – 12개]

[골렘의 소환까지 남은 시간: 4분 17초]

"……."

대략 4분 남은 건가.

앞으로 4분이 지나면 저 멀리 있는 미국의 성에서 골렘이 생성된다.

지금까지 미국이 16개를 모았으니, 쉽게 말하면 16개의 마력 코어에 해당하는 골렘이 생성되는 셈이다.

물론, 더 모은다면 더 강한 골렘이 생성되겠지.

그렇게 우리 한국의 성을 무너트린다면 미국의 승리가 되겠지만, 당연히 나는 그렇게 둘 생각이 없다.

첫 공격을 막으면 미국의 마력 코어는 초기화되어 처음부터 다시 모아야 할 것이고, 나는 이미 막았을 때의 경우의 수를 계산하며 지금의 작전을 짰다.

그러니 막기만 한다면 우리에겐 한 방 먹일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난 그것에 모든 것을 걸 생각이다.

"오빠는 뭐가 그리 맨날 태평해? 지금 우리 상황이 어떤지 알아? 지금 우리 1위인데 엄청 간당간당해. 한 번만 실수해도 바로 2위로 떨어진다구."

"아니, 그건 아는데 사라야. 우리 작전이…."

"아는 사람이 그래? 어휴. 진짜 답답하다. 나도 모르겠다. 이젠."

"하하, 두 분 그만하세요. 하느님이 지켜보고 계십니다."

스킬의 사용을 마친 김해일이 임창용, 임사라 남매의 싸움을 중재했다.

그런 남매의 싸움에 익숙한지 다른 일행들은 그저 피식 웃을 뿐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불길함을 감지합니다.]

"…쉿. 다들 조용."

그와 동시에 모든 팀원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눈앞의 젊은이들에겐 그저 탐지 스킬을 하나 가지고 있다고 얼버무렸지만, 어쨌든 사실이었으니 거짓말은 아닌 셈이다.

어쨌든 지금 프로메테우스가 또 불길함을 감지했다. 아마도….

사박사박.

발소리.

"……."

"……."

"……."

모두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어차피 갈대 속이라 들키진 않겠지만, 그래도 조심스럽게 갈대를 손으로 치우며 누군지 살폈다.

…제기랄. 또 저놈이구만.

"흠, 분명 여기 어딘가에서 신호가 끊겼는데."

나는 옅게 한숨을 쉬며 임창용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저놈은 내가 유인할 테니. 너희는 미국이 의심하지 않도록 천천히 마력 코어를 수집해라.

뭐, 이런 내용들.

임창용은 알아듣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팀원들에게 내 뜻을 전달하고 있었다.

"…프로메테우스. 버프."

[사도 버프를 받았습니다.]

[당신의 모든 능력치가 20% 증가합니다.]

오랜만에 받는 프로메테우스의 사도 버프.

충만한 힘이 온몸에 감도는 것이 그리운 고향에 온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팀원들 전원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한 나는, 손에 쥔 포크 숟가락을 강하게 잡았다.

그리고 지체없이 제임스의 뒤를 급습했다.

* * *

한편, 데미안은 미국의 주장답게 착실하게 팀원들을 이끌고 마력 코어를 모아가고 있었다.

[마력 코어를 획득하였습니다.]

'딱 20개를 맞췄군.'

이제 남은 시간은 1분이다. 곧 있으면 골렘이 성채에서 튀어나와 한국의 성을 향해 진격을 할 테지.

그리고 자신과 마이클을 필두로 한 공격에 한국의 성채는 무너지고 말리라.

- 제임스: 할아버지를 찾았습니다. 지금 싸우는 중입니다.

- 데미안: 위치가 어디냐.

- 제임스: 좌표 보내드릴게요.

치열한 싸움을 하는 중인지 제임스에게선 조금 뒤늦게 좌표가 도착했다.

데미안은 그것을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서 가장 위험한 변수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데미안은 최춘택 할아버지를 꼽을 것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백무열은 오늘 나오지 않았기에 그로서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최춘택을 먼저 로그아웃시킬 필요가 있었다.

"마이클."

"왜."

"좌표 불러줄 테니. 제임스 좀 도와주겠어? 할아버지랑 싸우는 중이라는데. 여기 좌표."

"알았다."

마이클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뜻을 따르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데미안은 그런 마이클의 면모가 좋았다.

그는 항상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남자였으니까.

"갔다 오지."

그렇게 마이클이 모래를 타고 사라지자, 눈앞엔 어느새 또 다른 메시지가 뜨고 있었다.

[골렘이 생성됩니다.]

[미국의 마력 코어 수는 20개입니다.]

[성에서 'Lv.20 골렘'이 생성됩니다.]

그오오오.

가운데 위치한 마력 코어를 에너지 삼은 골렘이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가 들판에 내려앉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World. 새로운 전설이 깨어났습니다!]

[그녀의 성호는 '화가 성애자(星愛者)'입니다.]

"뭐…?"

예상치 못한 메시지가 데미안의 뒤통수를 강하게 때렸다.

* * *

같은 시각.

자웅을 겨루고 있던 나와 제임스도 같은 메시지를 보고 있었다.

"뭐야. 새로운 전설…?"

경악 어린 제임스의 눈이 내가 있는 쪽을 향했다. 건너편에 있던 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다행히 미도가 결심을 굳힌 모양이지만, 이렇게 웃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이젠 내가 그녀의 시간을 끌어줄 차례니까.

"우리 손녀가 결심을 굳힌 모양이군."

"손녀라면 미도…."

"그래. 그리고 네놈은 우리 손녀를 아주 잘 알겠지."

"그, 그걸 어떻게…."

"알 거 없다. 이 호랑말코 같은 놈아. 그리고 네 녀석은 이 자리에서 내게 죽어줘야겠다."

그렇게 말하며 곧장 제임스에게 달려들었다.

그가 속사로 내 머리를 노렸으나, 이미 내 눈은 '혜안'이 발동되어있었다.

가볍게 피하며 나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쯤 미도가 골렘을 죽일 준비를 마쳤을 게야. 네놈은 쉽사리 도우러 가지 못할 거다."

"설마. 미도가 스타 프루츠를 먹었습니까?"

"그래."

"…최미도."

흡사 함정에 빠진 개구리처럼 휘둥그레진 제임스의 눈이 사시나무 떨듯이 떨렸다.

그는 곧장 어딘가로 말을 하는 듯했다. 아마 데미안인지 하는 놈한테 하는 것이겠지.

이대로 놈이 골렘이 있는 곳으로 가주면….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불길함을 감지합니다.]

"……!"

바로 그 순간.

쐐애애액!

전방에서 거대한 반월 형태의 모래의 칼이 날아들었다.

마침 칼바람을 사용하고 있던 나는 곧장 바람을 운용해 피해냈다.

그리고 재빨리 그곳으로 수십 번의 발차기를 휘둘렀다.

쉬쉬쉬쉭!

날카롭게 벼려진 작은 바람 수십 개가 공격의 근원지를 향해 날아가 폭음을 만들어냈다.

퍼퍼퍼퍼퍽!

마치 모래에 파묻히는 소리.

공격을 한 당사자가 누구인지, 나는 얼굴을 보지 않았음에도 알 수 있었다.

모래 먼지 너머로 걸어오는 그림자.

"…마이클이냐."

건너편의 마이클이 말없이 쌍검을 빼내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대답해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고얀 놈. 어른이 말씀 하시는데 대답이 없구나."

바로 그때.=

제임스가 마이클에게 소리쳤다.

"마이클. 여기로 오시면 안 됩니다! 함정입니다!"

우뚝.

그제야 걸어오던 마이클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그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임스는 지체하지 않고 말했다.

"골렘이 위험합니다! 아까 새로운 전설이 떴다는 메시지 보셨죠?"

"설마, 유인책?"

"네! 전 먼저 골렘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렇게 제임스가 도망치듯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아무래도 저번처럼 어딘가로 이동한 모양이다.

그런 눈앞의 마이클을 바라보며 나는 바람의 힘을 끌어올렸다.

이른바 허장성세(虛張聲勢)라는 거다.

"어딜 가려는 게냐. 넌 여기에 남아야지."

"……."

마이클이 분한 듯 이를 갈며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나는 그런 그를 쫓아가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러자 마이클이 빠르게 칼을 휘두르더니, 현란한 모래로 이루어진 공격들을 쏟아냈다.

그 속도와 파괴력이 역시나 만만치 않았다.

…확실히 이놈은 제임스보다 한 수 위구만.

하긴 그렇기에 헤라클레스를 성좌로 둔 백무열을 그 지경으로 몰고 갔던 것이겠지.

콰콰콰쾅!

뿌연 흙먼지가 눈앞을 뒤덮었다.

"놈…!"

그렇게 바람을 이용해 모래 먼지를 걷어내자, 이미 그 자리에 마이클은 없었다.

그는 이미 저 멀리 있을 골렘을 향해 모래를 타고 빠르게 질주하고 있었다.

그런 마이클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껄껄거리며 웃었다.

"낚였구먼."

사실 지금 골렘이 위험할 것이라는 건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또한 거짓말이 아니다.

오랜만의 월척이라는 듯 껄껄 웃으며, 나는 다시 허공에 손짓해 바람을 매만졌다.

이제 다음 단계로 들어갈 차례였다.

쉬이이익!

"이제 물고기를 몰았으니 그물을 건져 올려야겠지."

후우웅-.

그리고 나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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