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257화
제257화
그 무렵.
제임스는 다시 미국팀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데미안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고하고 있었다.
"그럼 아까 그 권총 성애자(星愛者)의 주인공이…."
"네. 저예요. 숨겨서 죄송합니다."
"……."
제임스는 자신이 왜 이곳 제우스 길드로 들어왔는지, 목적은 무엇이었는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사실대로 모두 말했다.
그리고 데미안이 주었던 스타피스가 지금 자신에게 종속되어 있어서 줄 수 없음 또한 고백했다.
역시나 데미안은 놀란 듯한 반응이었다.
"…그렇단 말이지."
"저 녀석이 새로운 능력자라고?"
"아직 애송이 녀석인데."
다른 미국의 선수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가 사실은 스타 프루츠를 먹은 능력자였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단신으로 프랑스를 괴멸시켰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작년 월드 대항전 때 있었던 마이클 말고는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일이었다.
'…스타피스가 주인을 찾으면 이만한 시너지를 내는 것이었나.'
그것은 데미안에게도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스타 프루츠에 대해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지식.
그러나 지금은 경기 중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미국의 대표이자 주장이었고, 자신의 말 한마디에 눈앞의 제임스가 미국의 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데미안은 귓속말로 다시 옆에 있는 마이클에게 물었다.
- 데미안: 네 성좌가 뭐라고 해?
- 마이클: 1등성의 강한 성좌 중 하나라는군. 스타피스를 가졌으니, 아마 지금의 나와 거의 동급이라고 할 수 있을 거다.
- 데미안: 그 정도라고?
- 마이클: 안타라스의 말로는 그렇다는군.
데미안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스타피스가 이미 제임스에게 영구적으로 종속되어서 자신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가 지금의 마이클과 동급의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렇다면 지금 눈앞의 이 청년을 용서하여 미국과 제우스 길드의 칼로 삼는 것이 옳으리라.
"어쩔 수 없지. 난 괜찮다. 제임스."
"네? 정말요?"
제임스는 놀란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데미안을 속이고 제우스에 가입했으니, 어쩔 수 없이 퇴출될 것이라 여겼다.
그래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니, 그가 나가라고 한다면 미련 없이 나갈 생각이었다.
그래도 지금의 자신이 가진 힘이면 새로운 길드도 세워 유명해질 수 있을 테니 상관없으리라 여겼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제우스 길드에서 유명해져서 광고를 찍으며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네가 강해지면 미국이 강해진 것이지. 난 너를 용서하겠다.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마."
데미안은 그런 자신을 포용하고 감싸 안고 있었다.
제임스는 그런 데미안의 넓은 아량이 마치 드넓은 바다와 같다고 느꼈다.
어쨌든 지금의 제임스에게 나쁜 상황은 아니다.
"감사합니다!"
그제야 밝아진 제임스의 얼굴.
그런 제임스를 보며 눈웃음을 지은 데미안이 물었다.
"그래서 한국은 지금 어디 있다고?"
"저쪽…. 아, 마침 오고 있네요."
제임스가 가리킨 곳엔 헐레벌떡 뛰어오는 한국팀이 있었다.
* * *
쿠쿵! 쿠쿠쿵!
계속해서 들려오는 폭음에 달려가던 미도가 뒤를 힐끔거렸다.
그녀는 또 한 번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희생한 할아버지가 걱정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세계 최고의 선수라고 알려진 마이클의 라이벌이라고 불리는 사람.
과연 할아버지가 토레즈를 이길 수 있을지 미도로서는 확신이 없었다.
"걱정하지 말거라."
그리고 그런 미도의 마음을 눈치챈 백무열은 달리면서 말했다.
"춘택이는 절대 지는 싸움을 할 놈이 아니야."
"그래도 상대가 너무…."
"네가 안 믿어주면 춘택이가 힘이 나겠냐."
"……."
백무열의 말에 미도는 할 말이 없었다.
전부 맞는 말이었으니까.
'그래. 내가 믿어야 해. 할아버지 힘내세요. 꼭 살아 돌아오셔야 해요.'
그렇게 다짐한 미도는 미련을 지우고 앞을 보며 뛰었다.
미도의 눈빛에 어린 결연한 의지를 본 백무열은 말없이 입꼬리를 올렸다.
'춘택아. 빨리 와라. 미도가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백무열을 비롯한 한국팀 일행은 미도의 지도를 이용해 빠르게 지름길로 섬의 가장 중앙 자리로 올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빨리 온 것은 아니었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역시나 함정이었으니까.
"어서 오십시오."
"……!"
"……!"
앞을 보며 달리던 한국 팀의 낯빛이 하얗게 물들었다.
"제길. 미국이네."
"망했다."
"그래도 해보는데 까진 해봐야지. 박장소."
"크하하. 옛썰!"
철컥.
박장소가 들고 있던 바주카포를 겨냥하더니 미국팀을 향해 지체하지 않고 발사했다.
퍼엉-!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바주카 탄은 정확히 미국팀의 중앙에 안착해 터지는 듯했다.
아니, 정확히는 터질 뻔했다.
스륵.
갑자기 나타난 모래가 바주카 탄을 감싸 공처럼 만들기 전에는.
쿠웅!
급기야 터진 바주카 탄은 너무나 손쉽게 와해되어 버렸다.
그야말로 아주 작은 폭발이었다.
"쳇. 다들 눈 감아!"
곧장 임창용이 허리춤에 차고있던 마도 공학의 정수가 깃든 섬광탄을 전방의 미국을 향해 던졌다.
찌이잉-!
하얀 휘광이 전방을 휘감으며 번쩍였다.
한국은 그 틈에 뒤로 도망치려고 했다.
척.
그러나 이미 미국은 사방을 포위한 뒤였다.
가장 앞에 있던 미도의 눈앞에 익숙한 남자가 나타났고, 그는 제임스 리.
아니, 그녀에겐 '이은성'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남자였다.
"안녕."
"…안녕."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본 채 그저 응시하기만 했다.
"안녕은 개뿔. 소개팅이야?"
그러나 그걸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임창용의 총구가 제임스에게 겨누어졌다.
하지만 임창용의 총은 발사되지 못했다.
피슝!
어마어마한 속사 실력을 가진 제임스는 임창용의 총을 튕겨낸 것도 모자라, 그의 머리를 꿰뚫어 버린 지 오래였다.
"빌어먹을…."
털썩-!
무릎 꿇은 임창용이 너무나 허무하게 쓰러져 로그아웃되었다.
그야말로 어마무시한 속도에 어느 누구도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백무열은 꺼져가는 섬광탄을 뚫고 걸어오는 미국팀을 보았다.
그곳엔 얼마 전까지 같이 사냥을 하며 친분을 쌓았던 마이클이 있었다.
마이클이 백무열을 향해 걸어왔다.
그는 이미 쌍검을 뽑아 늘어트린 채 스콜피온 소드를 전개한 뒤였다.
"오랜만입니다. 결국, 여기서 뵙네요."
"…그래. 네 녀석과는 한번 싸워보고 싶었지."
"저도 그렇습니다."
백무열은 마이클에게 목검을 겨누며 천천히 걸어갔다.
마이클이 데미안에게 말했다.
"저분은 건드리지 마."
"그래. 알았어."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의 신형이 사라지며 허공에서 맞붙었다.
콰앙!
공중에서 터진 폭음과 동시에 하늘에서 난데없는 모래비가 내렸다.
쏴아아-!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숲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불청객처럼 찾아와 한국과 미국을 포위하듯 나뭇가지를 뻗어갔다.
그리고 난데없는 웃음소리와 함께 찾아온 불청객이 정체를 드러냈다.
"하하하. 나의 킹덤에 온 것을 환영한다. 백성들이여."
그는 바로 영국의 스타 프루츠 능력자.
나무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능력을 지닌 왕관 성애자(星愛者) '데이비드'였다.
데이비드는 나무로 만든 왕좌에 앉은 채, 다리를 꼬며 오만하게 웃었다.
'나만 있지만, 상관없겠지.'
아까 중국과 한 차례 일전을 치러서 현재 영국에는 데이비드말고는 남아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는 오만했다.
"…과연 이런 함정이 있었던 건가."
데미안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는 것처럼 씩 웃었다.
그러나 그에겐 여유가 흘러넘쳐 보였다.
"이곳은 나에게 아주 유리한 곳이지. 나와라 목룡."
콰드드득!
근처에 있던 나무의 뿌리가 굵어지며 여기저기 얽히고 섥히더니, 거대한 목룡(木龍).
그 이름 그대로 나무로 된 용이 나타나 높게 솟은 왕좌를 휘감았다.
그것은 마치 수호자와 같은 모양새였다.
"하하하. 너희 모두 왕의 양분이 되리라."
데이비드는 그렇게 웃으며 이번에야말로 영국의 우세를 점쳤다.
마이클이 한눈이 팔린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으니까.
그렇게 미국과 한국을 없애고 마지막에 마이클마저 없앤다면 영국은 새로운 아크 스타의 강자로 떠오르리라.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쿠드득!
자신의 눈앞에 있던 목룡이 반으로 찢어지기 전에는 말이다.
"무, 무슨…!"
데이비드가 목룡을 찢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은 악령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그는 날카롭게 벼려낸 뿌리를 사방으로 감싸 눈앞의 적을 공격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엘레멘탈 불렛 활성화. 그림자 탄. 난사."
두르르르르르륵!
어마어마한 속사가 날아든 제임스에게서 펼쳐졌다.
흑색의 탄환은 사방에서 포위한 나무의 뿌리들을 순식간에 부수어 갈아버렸다.
이어진 것은 제임스의 독무대나 마찬가지였다.
"…화염탄 활성화."
철컥.
제임스가 쌍권총을 눈앞의 데이비드에게 겨누었다.
"잠…."
약간의 텀도 주지 않고, 그는 방아쇠를 당겼다.
콰콰콰콰쾅!
데이비드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마이클이 흡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제법인걸.'
백무열은 그런 마이클이 못 마땅했다.
"집중해라. 이놈아."
쉬쉬쉬쉭!
백무열의 검기가 마이클의 모래를 가르며 날아들었다.
허공에서 모래를 밟아 가까스로 피해낸 마이클이 미안하다는 것처럼 눈웃음 지었다.
어느새 하늘엔 그가 미리 만들어두었던 데저트 칼리버가 있었다.
마이클은 거대한 모래 손으로 그것을 움켜쥐었다.
"죄송합니다. 제대로 하겠습니다."
"그래야지."
백무열의 목검도 황금색의 몽둥이에 휘감겼다.
그것은 아직 찾지 못한 성유물인 올리브 나무 몽둥이를 일시적으로 소환하는 것.
백무열은 이미 싸움을 시작해버린 뒤쪽의 한국 선수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미안하다. 춘택아. 아무래도 미도를 지키는 건 여기까진 것 같다.'
* * *
"허억. 헉…."
한편.
그때쯤 나는 지쳐서 땅바닥에 '大'자로 누운 상태였다.
주변은 치열한 싸움의 흔적이 가득했다.
거대한 물웅덩이가 홍수처럼 펼쳐진 곳도 있었고, 어떤 곳은 딱딱하게 얼어서 빙판이 되어버린 곳도 있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고생했다고 말합니다.]
"그래. 엄청 고생했다."
나는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보며 껄껄 웃었다.
문득, 젊은 시절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그때는 치열한 싸움을 한 바탕 치르고 나면, 동료들과 함께 이렇게 하늘을 올려보곤 했었다.
"배고픈데."
곧장 인벤토리에서 미리 만들어둔 초식 공룡의 고기로 만든 바베큐를 베어 물었다.
천천히 회복되기 시작하는 생명력과 마력을 보던 중 난데없는 메시지가 뜨기 시작했다.
[유저, 'Sky-Dragon'님이 로그아웃되었습니다.]
"음."
내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유저, '박장대소'가 로그아웃되었습니다.]
[유저, '쓰나미'가 로그아웃되었습니다.]
[유저, '김현우'가 로그아웃되었습니다.]
…
그것들은 모두 한국 선수의 아이디였다.
차례대로 임창용, 박장소, 김해일, 김현우….
젠장. 아무래도 내가 없는 사이에 위험에 처한 것 같은데.
"펜릴."
그제야 나는 펜릴을 불렀다.
땅속에서 솟아오른 펜릴이 팔짱을 낀 채 올라왔고, 나는 그의 머리 위에 올라섰다.
높이 있으니 확실히 시야가 더 트이는 것 같았다.
"싸움인가."
"그래. 저쪽으로 가자."
그곳은 섬의 가장 중앙에 위치한 곳이었다.
어차피 싸움이 벌어진 곳이야 뻔하다.
주변에선 빠른 속도로 독가스가 잠식하고 있었고, 저곳에서 폭음이 들려오고 있으니 100% 저기였다.
"꽉 잡아라. 점프하겠다."
나는 펜릴의 갈기를 힘껏 움켜쥐었다.
그와 동시에 펜릴의 몸이 웅크려지더니 용수철처럼 하늘로 튀어 올랐다.
"큭."
하마터면 손을 놓칠 뻔했다.
쿠우우웅!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던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펜릴의 몸이 땅과 맞닿아 지진을 일으켰다.
쿠구구구.
요란하게 도착한 나는 피어오르는 흙먼지 사이로 사라지는 미도를 볼 수 있었다.
…제길. 늦었나.
그곳엔 쓰러진 백무열도 함께 있었다.
바로 그때.
주변을 포위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흙먼지가 모두 걷히자 나타난 것은 미국이었다.
그곳엔 아까 싸웠던 제임스도 함께 있었다.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자, 헛기침을 하기 바빴다.
"…너희들이 이렇게 만들었냐."
"예. 뭐, 그렇게 되었습니다. 적이니까요. 그나저나 이렇게 인사를 드리는군요. 반갑습니다. 다크울프. 아니, 최춘택 어르신."
데미안이 대표로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네왔다.
나는 말없이 뒤쪽의 백무열을 힐끔 보았다.
그리고 다시 데미안에게 시선을 옮겼다.
"무열이가 죽은 지 얼마나 됐지?"
"아, 그분이라면 안타깝게도 도착하시기 10초 전쯤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마이클의 검이 그분의 심장을 꿰뚫었죠. 그런데…."
나는 데미안의 말을 무시하며 백무열의 근처로 걸어갔다.
저벅저벅.
그리고 누워있는 백무열을 발로 툭 건드렸다.
"일어나. 안 죽은 거 다 아니까."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으음, 눈치 없는 놈. 죽은 척하고 있었는데. 쯧."
데미안을 비롯한 미국 팀 전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심장을 꿰뚫렸던 백무열이 멀쩡하게 목을 풀면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일어서는 그의 몸 주변엔 황금빛 오오라가 발현되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