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255화
제255화
서울, 잠실 유니온스퀘어 경기장.
- 대단합니다! 미국에 숨겨져 있던 다이아몬드 원석이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그는 바로 새로운 스타 프루츠 능력자이자, 권총 성애자(星愛者)인 '제임스 리'입니다!
와아아아아-!
끝을 모를 정도로 거대한 함성이 경기장 구석구석을 가득 메우며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그것은 때로 파도처럼 굽이치며 관객들을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 단신의 힘으로 프랑스를 궤멸시킨 그의 힘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 새로운 신성의 탄생입니다!
- 마치 작년 월드 대항전 때 마이클을 다시 보는 것과 같은 모습이군요. 미국이 이런 선수를 숨기고 있었나요!
- 아, 이렇게 되면 미국의 전력이 한층 상승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에게는 그리 썩 달가운 소식은 아니겠군요.
비행기를 타고 경기장을 찾아와 응원하던 프랑스 관객들은 이미 사기가 꺾여 모조리 풀이 죽은 상태였다.
몇몇은 얼굴을 거머쥐며 탄식을 흘렸다.
작년에 이어 올해는 두 번이나 한 사람에게 몰살을 당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는 작년을 통틀어 총 세 명에게 치욕을 얻었다.
첫 번째는 마이클.
두 번째는 최춘택.
그리고 세 번째는 아까 전 어마어마한 무위를 선보인 제임스 리였다.
"우우우우우-!"
로그아웃되어 바깥으로 나온 루이 카셀을 필두로한 프랑스 대표팀에게 각 나라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그 중엔 같은 프랑스 시민도 있었다.
"너희는 대표팀 자격도 없다!"
"우리는 약골이 필요 없다!"
"응원하러 온 돈이 아깝다!"
몇몇은 먹고 있던 치킨 뼈를 던졌고, 또 몇몇은 빈 음료수통을 던지기도 했다.
루이 카셀은 그런 관객들을 보며 작게 이를 갈았다.
"큭…."
흑장미라고 극찬을 하며 떠받칠 때는 언제고, 이렇게 갑자기 말을 바꿔버리는 건 무슨 경우란 말인가.
그는 프랑스 관객들을 보며 참을 수 없는 깊은 모욕감을 느꼈다.
'마이클, 최춘택, 제임스 리…! 망할…!'
까드득.
잇몸이 부러져라 이를 갈며 루이 카셀은 반드시 이 세 명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저번 경기도 그렇고, 이번 경기도 그렇고, 그는 아직 비장의 카드를 꺼내지도 않았다.
조금 불리할 때쯤 회심의 카드로 한꺼풀 진화한 임모탈 나이트를 꺼낼 생각이었지만, 방금 전 상황에서는 그것을 꺼내 캐스팅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랬다면 필히 빈틈이 노출되어 더 빨리 죽었을 테니까.
'다음 경기부터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가자."
"예."
반드시 다음 경기에서 설욕할 것을 다짐하며, 루이 카셀은 천천히 어둠 너머 대기실 속을 걸었다.
* * *
퉁퉁! 퉁! 퉁퉁!
"대~한민국~!"
한국 대표팀의 가족들을 모아둔 귀빈석.
스크린과 가까운 가장 앞자리에 위치한 그곳에서 김미경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한민국~!"
그녀의 손에 쥐어진 붉은 막대풍선이 유독 돋보였다.
그런 그녀의 바로 옆에 앉은 최정도는 부끄러움에 몸서리치며 얼굴을 붉혔다.
"엄마 쫌! 야구장 왔어요?!"
"어머, 얘는 무슨 소리니. 지금 네 누나랑 아버님이 열심히 싸우고 있는데 응원해야지."
그렇게 말하며 김미경은 계속해서 응원봉을 두드리며 "대한민국." 넉자를 외쳤다.
그런 그녀를 알아본 다른 선수들의 가족들이 말을 걸어왔다.
"최춘택 할아버지 가족분들이신가 봐요~ 호호. 팬이에요."
"엇, 정말요? 고맙습니다. 호호호."
"전 김현우 선수의 엄마랍니다."
"어머, 그럼 우리 미도 선배네요? 얘기 많이 들었어요!"
"전 정혁이 엄마에요."
"어머~ 반가워요~"
"저두요~"
호호호호. 깔깔깔깔.
갑작스레 시작된 어머니들의 반상회에 최정도는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우리 가족이 무려 2명의 국가 대표 선수들을 배출했다보니, 얼굴이 안 알려지려야 안 알려질 수가 없었다.
심지어 아까 선수들이 입장하기 전에는 막간의 시간을 이용해 가족들의 인터뷰도 하지 않았던가.
왠지 엄마는 지금 연예인 병에 걸린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옆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응애응애-!"
"찬아, 조금 시끄럽지? 혹시 배고프니~? 음, 여보. 젖병 좀."
옆에선 고모인 최서현이 어린 민찬이에게 젖병을 물리고 있었다.
민찬이는 젖병에 든 우유를 맛있게도 먹었다.
쭙쭙-. 쫩쫩-.
이쁘기도 해라.
"까꿍-!"
최정도가 웃긴 표정과 함께 민찬이를 어르자, 민찬이가 재밌는지 꺄르르-! 거리며 웃었다.
"민찬이가 네가 좋은 가보다."
"그러게요. 녀석 귀엽네."
민찬이는 자신의 손가락을 꼭 잡은 채 놓지 않고, 어머니인 최서현이 주는 우유를 말똥말똥하게 눈을 빛내며 마셨다.
그렇게 강한 인상을 쓰듯, 미간을 찌푸리며 갑자기 자신을 보기를 잠깐.
민찬이를 보던 최정도가 문득 생각난 말을 툭 내뱉었다.
"얘, 근데 할아버지 엄청 닮았네요."
"그래? 너도 그렇게 생각해?"
"네. 완전요. 그래서 할아버지가 좋아하셨나 봐요."
정말로 민찬이는 그 이목구비를 비롯해, 튼튼한 팔다리가 할아버지인 최춘택을 많이 닮아 있었다.
어쩌면 그렇기에 할아버지가 민찬이를 그렇게 예뻐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최정도는 생각했다.
'하긴, 그러니까 어제 그렇게 계속 안고 계셨던 거겠지.'
어제 있었던 온 가족의 식사 후.
할아버지는 계속 민찬이를 안고 싶다며 잠들기 전까지도 계속 안고 어르고 달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런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느낀 것은 왠지 모르게 샘솟는 질투였다.
"호호, 네가 어렸을 때도 할아버지가 엄청 좋아하셨어."
"네? 정말요?"
"그럼~ 어제 우리 민찬이 안으시는 거 봤지? 너희 땐 진짜 하루 종일 안고 계셨을 걸~?"
"에이, 거짓말."
"믿건 말건 진짜야. 호호호."
그런 최서현의 말에 최정도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지금은 이렇게 자신이 머리도 굵어지고 성인이 되어서 할아버지와 장난도 치며 몇 대 맞기도 했지만,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자신을 민찬이처럼 예뻐했단 사실이 믿겨지지는 않았다.
'미도 누나는 몰라도 나도 그랬었다고…?'
"진짜다. 나도 봤으니까."
"삼촌도요?"
바로 옆에 앉은 둘째 삼촌 최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미도도 그랬지만, 정도 너도 그랬어. 아버지가 자신을 닮은 것 같다면서 그렇게 좋아하셨지. 아직도 그때 웃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긴 하네. 그때 아버지 참 젊으셨을 때야. 물론, 지금도 정정하신 것 같지만 말이야."
그렇게 말한 최정현이 스크린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선 독가스에 둘러싸인 각국의 선수들이 중앙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이미 경기는 막바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마침 한국도 있었다.
"흐음."
최정도는 그런 화면 속의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바로 그때. 최정현의 옆에 앉은 최서희가 앙증맞은 손으로 막대풍선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퉁퉁퉁퉁!
"대에-항밍쿠!"
* * *
어느새 경기는 막바지를 향해 내달리며 점점 외곽에서부터 다가오던 독가스의 포위망이 좁혀졌다.
급기야 독가스에 노출된 공룡들마저도 미쳐 날뛰기 시작했고, 육식 공룡은 눈앞의 초식 공룡을 잡아먹으며 중앙으로 파격적인 진군을 했다.
그렇게 중앙으로 모여든 것은 먹이사슬의 정점인 난폭한 육식 공룡들 밖에 없었다.
"…호오."
그리고 그런 육식 공룡들의 치열한 싸움을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스페인의 토레즈는 등에 멘 항아리 같은 물병을 한 손으로 들어 그 안에 든 술을 꿀꺽꿀꺽 마셨다.
"크하아. 취한다."
지금 토레즈가 먹고 있는 술은 저 먼 동대륙에 놀러 갔다가 그곳에서 얻어온 천년 명주였다.
참고로 지금 자신이 타고 있는 수룡 '블라쉬' 또한 이 천년 명주로 이루어져 있다.
작은 양의 술을 이런 어마어마한 양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성좌인 '데우칼리온'만이 가진 특별한 권능이었다.
[수병궁, 데우칼리온이 천년 명주를 꿀꺽거리며 마십니다.]
데우칼리온은 그런 자신의 오래된 술친구이기도 했다.
현실에서 이 게임을 오픈한지는 이제 갓 1년을 넘어간 상태이지만, 이곳은 현실보다 시간개념이 4배는 느리니 4년이나 된 친구나 다름없었다.
"딸꾹-! 그하아. 어이, 페드로."
하지만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페드로…?"
토레즈가 블라쉬의 등을 살펴보았지만, 등에 타고 있던 스페인 선수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토레즈는 갑자기 사라져버린 선수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크흐, 언제 내렸지…? 딸꾹-!"
대답해준 것은 자신의 성좌인 데우칼리온이었다.
[수병궁, 데우칼리온이 수룡의 방향전환을 감당하지 못하고 떨어져 버렸다고 말합니다.]
"아, 그래…? 크흠. 거, 미안하게 됐구만. 으하하."
그제야 자신이 음주운전을 했음을 깨달은 토레즈가 호탕하게 웃었다.
수룡 블라쉬는 자신이 조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술에 취한 채 몰면 음주운전이 되는 것이었다.
뭐, 어차피 경찰이 잡을 일은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 게임이 좋은 것이기도 하고.
"…뭐, 어차피 있으면 걸리적거리니까 잘 됐네."
사실 스페인은 토레즈의 원맨팀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제외하고는 전부 레벨이 낮거나 어떻게 이런 놈들이 국가대표가 되었나 싶을 정도로 한심한 이들뿐이었다.
그런 떨거지들을 챙기며 싸워야 하는 토레즈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편할 뿐이었다.
당장에 첫날에 있었던 다크울프와의 싸움에서도 그랬으니까.
'흠, 다음부턴 따로 다니자고 해야겠군.'
그렇게 결심한 토레즈가 고개를 끄덕이는 그때.
밑에서 난폭한 싸움 끝에 살아남은 티라노사우루스의 포효가 아래에서 들려왔다.
콰오오오-!
"오, 저놈이 살아남았나?"
슬슬 독가스가 좁아지고 있으니 중앙으로 자리를 옮길 때가 되었다. 아마 그곳에서 또 한 번 최종전을 치르게 되겠지.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음?"
갑자기 티라노가 "크르릉."거리며 쿵쾅거리더니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토레즈의 시선이 티라노가 뛰는 방향으로 옮겨졌다.
어마어마한 괴성이 티라노의 강함을 증명해주었다.
콰오오오-!
그런데 그곳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음, 한국이네? 그 영감탱이잖아."
그런 한국의 뒤에서는 또 다른 티라노가 달려들고 있었다.
지금 한국은 앞과 뒤 모두 티라노에 막혀 궁지에 몰린 상태였다.
저대로 두면 한국은 티라노의 밥이 되고 말리라.
"저대로면 죽겠는데."
츠츠츳!
바로 그때. 허공에서 스파크가 치며 데우칼리온의 메시지가 보였다.
[수병궁, 데우칼리온이 미간을 찌푸리며 저 영감을 구하라고 말합니다.]
"음? 뭐야. 언제는 죽이라고 그렇게 난리를 치더니. 갑자기 사이라도 좋아진 거야? 딸꾹-!"
첫날 있었던 저 영감탱이와의 만남에서 토레즈는 얌전하던 데우칼리온이 처음으로 흥분해 날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사이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저 영감의 성좌와 데우칼리온이 아주 사이가 나쁜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수병궁, 데우칼리온이 저자는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쓰러트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하, 애증이구만 애증. 히끅."
딸꾹질을 동반한 붉은 토레즈의 얼굴이 하늘을 응시하며 씩 웃고 있었다.
[수병궁, 데우칼리온이 미간을 찌푸리며 당신을 노려봅니다.]
"아아, 알았다. 알았어. 구하면 되는 거지?"
데우칼리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삐진 듯싶었다.
"소심하긴."
[수병궁, 데우칼리온이 당신을 노려봅니다.]
"알았다. 알았어. 안 놀릴게."
어깨를 으쓱인 토레즈가 수룡 블라쉬의 목에 걸린 물의 고삐를 움직였다.
이어진 블라쉬의 입이 쩍 벌어지더니, 그곳에 가공할만한 물의 기운이 맺히기 시작했다.
위이잉-!
그것은 마치 에너지를 모으는 것처럼 모여들며 뭉쳐지기 시작했고, 토레즈는 그런 블라쉬에게 명령하듯 선언했다.
"블라쉬. 아쿠아 브레스."
블라쉬가 투레질하듯 "크릉."거리더니 입을 더 크게 쩌억 벌렸다.
순간 입 주변에 빛이 모여들며 번쩍이더니, 콰아아아아-! 뿜어내진 아쿠아 브레스가 엄청난 속도로 뻗어 나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