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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254화 (254/375)

나 빼고 다 젊은이 254화

제254화

그 무렵.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선수들과 떨어져 단독 행동을 하게 된 제임스는 입을 삐죽 내밀고 있었다.

"아, 재미없네. 진짜."

높은 나무에 올라 누운 채로 투덜거리는 제임스는 입에 강아지풀을 문 채 질겅거리고 있었다.

그는 지금 숨어서 적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아까 사전에 데미안이 자신에게 맡긴 임무.

생존에 특화된 스킬이 많았던 제임스였기에 가능한 작전이었다.

그는 혼자 돌아다니며 적의 암살 및 정찰을 담당하며 미국의 눈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칼이 되어 적들을 요격하는, 말하자면 게릴라 플레이를 펼치는 역할이었다.

"…좀 더 화끈한 일이 필요한데."

물론,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의 막중함이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제임스는 좀 더 활약하고 싶었다.

그래서 유명해져서 광고도 찍으면, 미국에서 힘들게 자신을 뒷바라지하시는 부모님을 호강시켜드릴 수 있으리라 여겼다.

'에휴. 미쳤지. 내가 왜 그때 거기서 방아쇠를 당기지 못해서….'

[적이 감지되었습니다.]

[탐지 지뢰가 파괴되었습니다.]

"……!"

갑작스레 등장한 메시지를 보며 놀란 제임스는 재빠르게 총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설치한 마도 공학 스킬 '탐지 지뢰'가 발동한 방향이 어딘지 살폈다.

여기서 북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있는 나타나는 널따란 평야가 드러나는 풀숲.

"누군지는 몰라도 잘 걸렸다."

찰칵.

빠르게 권총을 장전한 제임스는 적이 나타난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저 멀리서부터 달려오는 언데드들의 군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뭐야. 프랑스였어?"

제임스는 곧장 차고 있던 고글을 확대해 그들의 공격 대상을 확인했다.

마도 공학의 정수가 깃든 고글이었기에 마력조차도 들지 않았다.

마법보다는 오히려 과학에 가까운 문명의 이기.

프랑스의 공격 목표를 확인한 제임스의 눈은 금세 휘둥그레졌다.

'미도?'

그곳엔 미도를 비롯한 한국 팀 전원이 언데드를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먼저 움직인 한국의 백무열이 언데드들을 향해 가공할만한 검기를 바닥으로 쏘아 보냈다.

콰콰콰콰-!

그것은 마치 들소처럼 땅을 가로지르며 언데드들을 뚫어내고 부수어냈다.

그러나 생각보다 언데드들이 막강했다.

루이 카셀이 부리는 언데드의 강함은 과연 랭킹 1위의 네크로맨서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고, 되살아나는 속도 또한 빨랐다.

저대로 두면 한국은 위험에 빠지리라.

제임스는 잠깐 고민에 빠졌다.

'최미도. 또 너냐….'

그녀를 잊으려 애쓰는 제임스에게 최미도는 그리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가까스로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전보다 훨씬 성숙하고 아름다워져 있었다.

최미도는 그의 뇌리에 박혀 쉽사리 떠나가질 않았다.

'이대로면 위험할 텐데….'

제임스가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곧 결정을 내리며 누구도 듣지 못할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최미도. 넌 진짜 전 남친 하나는 잘 뒀다."

사실 이 힘은 절대로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제우스 길드에 들어온 이유가 이것을 얻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어쩌면 퇴출당할 수도 있었으니까.

"어이, 약속은 잊지 않았지? 강한 힘을 주겠다는 거."

제임스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누군가를 향해 물었다.

인벤토리에서 한 자루의 총을 더 꺼낸 제임스가 그것을 장전하며 온몸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1등성, '황야의 여행자'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황야의 여행자.

우연히 얻게 된 스타 프루츠를 먹고 난 뒤, 꾸준히 자신에게 관심을 표해 오던 성좌.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꾸준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황야의 여행자밖에 없었다.

제임스는 그와 제법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좋아. 그럼 널 나의 성좌로 선택할게."

그의 끄덕임과 동시에 메시지가 허공에 떠올랐다.

[World. 새로운 전설이 깨어났습니다!]

[그의 성호는 권총 성애자(星愛者)입니다.]

[당신이 손에 쥔 스타피스가 해당 성좌의 성유물입니다.]

[스타피스가 당신의 몸에 별자리를 새깁니다.]

츠츠츳.

제임스의 오른쪽 팔뚝에 별자리가 아로새겨졌다.

[이제부터 해당 스타피스는 당신에게 영구적으로 종속됩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마력에 반응한 새로운 총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지금 제임스의 손에 쥐어진 것은 저번 미노타 레이드 때 데미안이 썼던 [☆스파티스, '황야의 여행자'가 쓰던 리볼버]였다.

[해당 스타피스에 봉인된 스킬들이 해제되기 시작합니다.]

곧이어 제임스의 머리 위로 별 하나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스으윽. 제임스의 신형이 천천히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 * *

"…투명화 해제."

[투명화가 해제됩니다.]

제임스라는 청년이 땅으로 사라져 없어지자마자, 나는 순간적으로 온몸의 힘이 쭉 빠지며 휘청거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무에 등을 기댄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후우. 간신히 안 들켰군."

처음 이곳에 발을 내디뎠을 땐 또 한바탕 전쟁을 치르겠구나 싶었다.

하필이면 탐지용 지뢰에 걸리고 말았으니까.

곧장 지뢰를 부숴버린 나는 소란을 피하기 위해 투명화를 사용했다.

과연 이 자리에 지뢰를 설치한 몹쓸 놈이 누구인가 확인하고 싶어서.

그리고 나타난 것이 저 청년이었다.

다행히 그는 지뢰가 탐지한 것이 자신이 아니라 저 멀리 언데드 대군을 이끌고 온 프랑스로 착각한 듯 보였다.

"……."

나는 저 멀리서 총을 사방으로 쏘아대는 제임스를 착잡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황야의 여행자를 성좌로 선택한 그의 힘은 가공할 만했다.

등 뒤에 자리한 그림자 악령을 조종해 접근하는 언데드를 찢어발겼고, 날카로운 악령의 발톱은 새카만 밤을 불러왔다.

쿠구구구구.

먹구름이 몰려오며 그 일대에 일시적인 밤이 찾아왔다.

"저건 대체 누구야!"

"갑자기 날씨가 깜깜해!"

"어서 막아!"

하지만 프랑스는 제임스를 막지 못했다.

아마 스타피스까지 있으니, 현재 그의 힘은 궁좌의 선택을 받은 마이클에 버금간다고 보아야 했다.

제임스는 그림자 속에 스며들며 프랑스가 이끄는 언데드 대군을 종횡무진 쓰러트렸다.

그의 속사와 끝없는 그림자의 탄환이 만나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낳고 있었다.

지금의 그는 어쩌면 자신보다 강할 것이었다.

타타타탕-!

"……."

그러나 그런 그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아까 제임스가 땅으로 스며들기 전 내뱉었던 말 때문이었다.

"…전 남친이라고?"

남친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다.

그러나 미도에게 남자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나 다름없었다.

한 번도 가족들에게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으니까.

전 남친이라는 말을 쓰는 것을 보면 현재는 사귀는 사이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한편으로는 다행인데, 오히려 그렇기에 더 열 받기도 했다.

"괘씸한 놈…! 감히 우리 미도를 울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주먹을 까드득 거머쥡니다.]

수없이 많은 상상들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헤어졌으니 절대로 좋게 끝났을 리 없었다.

무릇, 요즘 젊은이들의 연애란 것이 그러했으니까.

당장 TV의 연예인들을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여기저기 들은 것들도 있고. 어쨌든 중요한 건 저 망할 놈이 미도와 사귀었었고, 울렸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건 피할 수 없는 불변의 진리였다.

"…이노오오옴."

나는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양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음 같아서는 저놈의 면상을 걷어차서 사지를 부러트리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지금 저놈은 무척이나 강하기에 내가 쉽게 볼 수 있는 상대도 아닐뿐더러, 지금은 프랑스 놈들을 도륙하며 위기에 처한 한국에 도움이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일단 저놈이 지쳤을 때를 노려야겠군.

그렇게 생각한 나는 다시 투명화를 이용해 몸을 숨기며 기회를 엿봤다.

그리고 잠시 뒤, 메시지가 떴다.

[프랑스 팀이 전원 탈락하였습니다.]

무려 5분도 안 되서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초감각을 극대화시켜 놈의 상태를 확인했다.

제임스는 한쪽 무릎을 굽힌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언데드들은 주인이 모두 죽자 그대로 검은 흙이 되어 땅으로 바스러졌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그는 지쳤다고 말합니다.]

"나도 안다."

하긴 그림자 악령이라 명명된 성좌 스킬이지만, 사실 황야의 여행자의 필살기나 마찬가지였다.

거기다가 스타피스에 깃든 그림자 탄까지 무차별적으로 쏟아내었으니, 마력 탈진이 일어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손에 쥔 그림자 단검으로 목표를 설정했다.

당연히 목표는 제임스.

"그림자놀이."

스륵.

잠시 잠깐 그림자의 세계에 있다가 나타난 곳은 제임스의 뒤편이었다.

나는 곧장 그의 움직임을 구속하기 위해 솔로몬의 반지를 사용했다.

거미줄은 다 써서 쓸 수가 없었다.

촤라락.

반지의 푸른빛이 실처럼 뻗어 나와 제임스를 구속했다.

"뭐, 뭐야 미도 할…!"

"시끄럽다. 이놈아."

"……."

[솔로몬의 반지가 판결의 눈을 준비합니다.]

[반지가 유저 '제임스'를 관찰합니다.]

…그래도 이놈의 마음에 미도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

하긴 그건 상관없나.

이놈의 마음속에 미도가 있어도 문제고, 없어도 문제다.

이놈은 오늘 내게 엉덩이를 걷어차일 것이다.

과연 이놈의 마음속엔 누가….

[제임스가 좋아하는 이성은 유저 '미도'입니다.]

틱!

내 이성을 간신히 붙잡고 있던 가는 실이 끊어지는 소리와 동시에 나는 노호성을 터트리며 고함을 질렀다.

"네 이노오오오옴!!!!"

[당신은 대상을 '커플'로 판결을 내렸습니다.]

[대상의 모든 능력치가 20% 하락합니다.]

"히이이익-?!"

갑작스러운 능력치 하락에 몸까지 무거워진 제임스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나는 놈을 커플로 판결 내렸다.

그래. '헤어진 커플'로.

"네 녀석이 감히-!!!!!"

나는 빠른 속도로 놈을 향해 360도로 돌아 뒤돌려차기를 날렸다.

화들짝 놀란 제임스가 차마 공격을 하지 못한 채 옆으로 몸을 날려 땅바닥을 뒹굴었다.

그의 검은 코트에 흙더미가 가득하다.

"저기, 할아버님? 그…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오해는 무슨 오해! 이놈의 자식을 그냥!! 내 오늘 네놈의 사지를 분지르고 말 것이야!!!"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당신을 응원합니다.]

그러나 싸움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제임스가 마력을 회복하자마자 그림자 속으로 도망을 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재빨리 손을 뻗었다.

"이놈…!"

"할아버님. 무언가 큰 오해를 하신 것 같습니다. 나중에 오해를 풀 수 있기를 바라면서 저는 이만…."

"거기 서라. 이 녀석!"

스륵.

나는 간발의 차이로 제임스를 놓치고 말았다.

내가 손을 뻗었던 곳엔 제임스가 아니라 흙이 쥐어져 있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후우우. 이 썩을 놈이 감히 도망을 가?"

바로 그때였다.

"할아버지이이-!"

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미도를 선두로 해서 한국팀이 뛰어오고 있었다.

미도는 도착하자마자, 해맑은 미소로 나를 보며 떠들어댔다.

"거봐. 오빠들. 우리 할아버지가 맞잖아! 아까 밤처럼 깜깜해졌던 건 할아버지가 '흑야강림'이라는 스킬을 쓴 거라니까?"

"역시 할아버지는 엄청 강하네요."

"그 많던 언데드 대군이 상대도 안 되네."

"아까 밤처럼 깜깜해졌던 건 그 이유 때문이었군."

"대단해요."

아무래도 이들은 아까의 싸움을 내가 싸웠던 것이라 오해를 하는 듯했다.

나는 괜히 변명은 하지 않기로 했다.

괜스레 사기를 떨어트릴 수 있으니까.

…어차피 경기가 끝나면 알게 될 테지.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아까 만났던 제임스라는 놈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미도를 겹쳐보았다.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

두 사람은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 저한테 할 말 있으세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다들 이동하자. 독가스가 몰려오는구나."

묻지 않기로 했다.

이건 두 사람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괜히 내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다.

"다들 체력이 많이 떨어졌구나. 잠시만 기다려라."

나는 인벤토리에서 요리도구를 꺼내기 시작했다.

우선 눈앞의 이 약골들에게 요리를 먹여서 버프를 줄 필요가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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