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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252화 (252/375)

나 빼고 다 젊은이 252화

제252화

2시간 뒤, 유니온 스퀘어 한국 팀 대기실.

함께 버스를 타고 도착한 나와 백무열과 미도는 도착하자마자 다른 한국 선수들을 만났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유니온에서는 비리가 없는 깨끗한 감독을 고용했고, 우리들은 함께 스타 필드의 룰과 전략에 대해 감독과 오랫동안 회의를 가졌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 우리들은 선수 입장을 앞두고 있었다.

"자, 다들 손을 모으자."

주장 임창용의 말에 한국의 선수들이 모여 손을 모았다.

웃긴 것은 그곳에 자리한 손 중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의 손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비웃지 않았다.

감히 어느 누구도 지금의 나와 백무열이 태극 마크를 단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대표라는 사실에 불만을 표하는 이는 없었다.

"두 분께서 한 마디씩 해주시겠습니까?"

임창용이 나와 백무열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그러자 백무열이 나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

"나보단 춘택이 네가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흠."

빠르게 바통을 넘겨버리는 백무열 덕분에 나는 깊은 수심에 잠겼다.

과연 지금 어떤 말을 하는 것이 좋을까.

그렇다고 내가 나이가 많은 늙은이라 허튼소리를 할 수도 없었다.

너무 진지하면 잔소리나 하는 할아버지로 비칠 것 같았고, 너무 가벼우면 또 그것대로 문제가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결심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어쩌면 우리는 질지도 모르겠다."

그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기록해줄 거다."

"……."

"……."

약 5초간 정적이 흘렀다.

멀뚱히 눈을 깜빡이던 백무열이 한 마디 툭 내뱉었다.

"…꼰대도 아니고."

그러자 눈앞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풉." 하며 실소가 터졌다.

실소는 폭소가 되어 킥킥거리기도 하고 쿡쿡거리기도 했다.

이내 모두가 배를 잡기 시작하자, 내 얼굴은 홍당무처럼 달아올랐다.

"에라이. 그냥 잘 싸우고 잘 뒤져라. 이 썩을 놈들아."

"푸하하하-!"

"하하하-!"

모두의 폭소가 진지했던 분위기를 단숨에 풀며 긴장감을 풀어주었다.

역시 나는 이런 진지한 말은 안 어울리는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이 말은 해야겠구나."

눈앞의 젊은이들이 다시 한번 진지해진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아까보다는 훨씬 좋아 보이는 눈들이었다.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로 그들의 면면을 하나씩 훑었고, 기꺼운 표정으로 나지막이 내뱉었다.

"최선을 다하자."

이 늙은이가 젊은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것뿐이었다.

"아자아자!"

임창용의 외침과 동시에 우리들의 손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화이팅-!"

그것은 마치 연꽃이 피는 것처럼 흩어졌다.

나는 가장 먼저 대기실의 문을 열어젖혀 경기장에 마련된 무대를 향해 뛰어갔고, 바로 뒤에는 백무열과 미도를 필두로 한 젊은이들이 함께였다.

그들은 내게 천군만마보다도 든든한 미래의 기둥들이었다.

* * *

미국 팀 대기실.

"스타필드는 단 한 경기만 시행된다. 그렇기에 강해지는 것에 전력을 집중해야 하고, 다들 알다시피 최선을 다해…."

미국의 주장 데미안이 선수들을 불러 모아놓고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전략을 하나하나 꺼내놓았다.

특이한 것은 미국엔 그들을 지휘하는 감독이 없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데미안이 감독 겸 선수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렇기에 데미안은 미국에서의 입지가 높은 편이었고, 당장에 그가 미국의 선수를 뽑는 권한을 가진 것만 해도 그것은 잘 알 수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선수들은 누구도 데미안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만큼 데미안이 구상한 전략과 전술이 미국을 세계 최고로 만들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임스. 듣고 있나?"

"네? 아, 네. 듣고 있습니다."

"방금 내가 뭐라고 그랬지?"

"아, 그게…. 죄송합니다."

데미안의 얼굴이 차가운 얼음장처럼 굳었다.

"정신 차려라. 제임스. 저번처럼 정신을 놓다가 지면 그땐 정말로 대표팀에서 퇴출이다."

"죄송합니다. 새겨듣겠습니다."

그제야 제임스의 표정이 한결 진지해졌다.

데미안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계속해서 다양한 전략을 설명했다.

하지만 제임스는 여전히 전략을 듣는 한편, 여전히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최미도….'

학교에서 항상 차가운 이미지로 각인되어,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던 자신에게 처음으로 다가왔었던 여자.

그녀는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한편, 아픈 사랑이었다.

'한국 대표가 되었구나…. 어쩌면 이것도 인연인가.'

부모님의 사정상 미국으로 이민을 가야 했던 자신에게 미도는 정말 아픈 손가락이었다.

어쩔 수 없이 제임스는 그녀에게 거짓말을 해야 했다.

이젠 네가 질려버렸다고.

어쩌면 그것은 몹쓸 짓이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박는 대못은 도리어 자신의 가슴에도 박혀 자리 잡았다.

그 몹쓸 짓은 부메랑처럼 다시 자신에게 돌아와 현재의 상황을 만들어냈다.

'어쩌면 이번 경기에서도 만나겠지.'

두 번째 경기에서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만 제임스는 데미안에게 근신처분을 받았다.

천우신조(天佑神助)의 기회를 날려 먹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제임스는 당시 어제 있었던 세 번째 경기에 참전하지 못했고, 그날은 그저 대기실에서 남은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오늘, 근신이 풀렸다. 그도 그럴 것이 제임스의 총과 생존 스킬은 이런 서바이벌 경기에서 무척이나 유용한 것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데미안은 자신에게 막중한 임무를 맡긴다고 했었다.

'이번엔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도야.'

제임스는 속으로 그렇게 다짐한 후, 작게 눈을 빛내며 데미안의 말을 새겨들었다.

어쨌든 이제 자신은 미국의 대표.

그렇다면 불필요한 감정 따위는 지워내야 마땅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위해서도 좋았다.

"나가자."

데미안과 에이스인 마이클을 필두로 한 미국팀이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 * *

[시합용 테스트 캡슐 코드네임 'T-32' 확인 완료.]

[모든 능력치가 일정 수치로 고정됩니다.]

[가지고 있는 스킬의 위력이 1/3으로 줄어듭니다.]

선수 입장이 끝나자마자, 나는 바로 캡슐에 올라 접속을 했다.

눈앞에 모든 능력치가 고정된다는 창이 떠올랐고, 이어서 스킬의 위력이 줄어든다는 메시지가 보였다.

그것은 저번에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치렀던 것의 연장선인 듯 보였다.

…하긴, 이렇게 위력을 줄여놓지 않으면 난감하겠군.

안 그래도 각국에서 모여든 세계 최고의 강자들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남아있는 맵이 없으리라.

더군다나 생존을 해야 하는 이번 종목의 특성상 어떠한 꼼수가 나타날지도 몰랐기에 공평성을 위해 유니온에서는 이런 수를 쓴 듯했다.

어쨌든 나쁘지 않았다.

슈우우욱.

빨려 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내 몸이 나타난 곳은 밀림이 우거진 곳이었다.

과연 영화에서 보았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재밌군."

이번 스타 필드의 맵은 특정 영화를 모티브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어서 미도를 포함한 한국 선수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와, 진짜 쥬라기 파크야?"

"대박.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데?"

"다들 방심은 금물이야. 영화 봤지?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저번 선발전의 맵이 제주도를 본 따 만든 것이었다면, 이번 맵은 영화 '쥬라기 파크'를 그대로 본 따 만든 섬이었다.

기본적인 룰은 비슷했기에 외곽에서부터 독가스가 올라오는 것도 같고, 마지막엔 중앙에 모여서 개싸움을 벌여야 하는 것도 같았지만, 하나 다른 것이 있었다.

"고, 공룡이다!"

겁에 질린 듯한 안승현의 손가락질에 모두의 고개가 그곳으로 돌아갔다.

그가 가리킨 곳엔 거대한 익룡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끼아아악-!

그 괴성이 무척이나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다.

"……."

"……."

"……."

모두가 그곳을 바라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물론, 나도 그랬다.

…젠장. 겁나 무섭게 생겼군.

이제야 이곳이 쥬라기 파크라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유니온에서는 좀 더 난이도를 높여 각종 육식 공룡들이 섬 곳곳에 위치하게 만들어 놓았다.

물론 우리들이 쉽게 잡을 수 없는 레벨로 설정해 놓은 듯했다.

당장 저 큰 익룡만 해도 레벨이 300이 넘었으니까.

"엄청 잘 도망 다녀야겠는데."

"망할. 유니온…."

"어쩌자고 이런 말도 안 되는 맵을 만든 거야."

다행이라고 한다면 아이템과 스킬은 그대로 유지를 해주는 것이라고 할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빛나시며…."

저 멀리 있는 몽크 김해일은 뜬금없이 기도문을 줄줄 읊고 있다.

듣자 하니 그는 진짜 천주교 신부라고 한다.

말 안 듣는 형제자매들을 볼 때마다 화를 주체할 수가 없어서 스트레스 풀려고 게임을 시작했는데, 국가 대표가 되어버렸다나 뭐라나.

어쨌든 재밌는 친구다.

"다들 모여 봐."

그 말에 나는 곧장 임창용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곧장 머리 위에 카운트다운이 뜨고 있었다.

[01:00]

약 1분 주어진 작전 회의 시간.

임창용이 입을 뗐다.

"다들 선발전을 치러봤으니 잘 알 거야."

나와 백무열을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팀으로 움직인다. 다들 공룡을 봐서 알겠지만, 레벨이 무척이나 높고 강해. 공룡만 없었다면 따로 개인적으로 움직여도 되겠지만, 표적이 되면 서로 힘을 합쳐야 살아남을 수 있을 거야."

나는 그저 그의 말을 들었다.

하나도 틀린 말이 없었다.

"설명을 들어서 알겠지만, 작은 초식 공룡 정도는 잡을 수 있을 거야. 가급적이면 전투를 안 하는 게 적에게 들킬 염려가 없겠지. 그리고 미도야."

"네."

"네가 만든 지도는 이곳에서 무척이나 유용할 거야. 넌 사냥하지 말고 지도를 만드는 것에 집중해줘."

"알았어요."

이어지는 말들은 아까 대기실에서 나누었던 것과 비슷했다.

그리고 마침내 1분의 시간이 모두 흘렀다.

[경기 시작합니다.]

[선수들의 건투를 빕니다.]

우리는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미도는 아까 말대로 지도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며 주변을 살폈고, 우리는 조심스럽게 앞을 보면서 중앙을 향해 뛰었다.

저번에 선발전에서 느꼈다시피 중앙의 자리에서 먼저 자리를 잡아 매복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가장 앞에서 은신을 쓰고 달리던 은정혁이 신호를 보냈다.

"정지."

모두의 움직임이 멈추며 많은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은정혁이 말했다.

"적이야."

"……."

순간 모두의 숨이 멈춘 것만 같은 정적이 흘렀다.

주변은 온통 새소리와 날벌레 소리만이 윙윙거리고 있었고, 우리는 서로의 눈치를 보며 어떻게 할지에 대한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임창용의 눈빛이 가라앉으며 전방을 살폈다.

하지만 은정혁의 말은 틀렸다.

내 초감각이 감지한 바에 의하면 벌써 놈들은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으니까.

쐐액-!

그때, 하늘에서 화살이 빠르게 쏘아졌다.

나는 오른손으로 빠르게 화살을 낚아챘다.

탁.

"위다!"

"적이야!"

"젠장. 포위된 거야?"

모두가 허둥지둥 대며 하늘을 향해 무기를 겨눴고, 나는 저 멀리서 웃고 있는 이들을 노려보았다.

…아랍이군.

바로 그때.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거대한 독수리의 얼굴을 한 사람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독수리 성좌 '호루스'의 선택을 받은 무하마드였다.

"크하하하! 미안하지만, 너희들은 포위됐다. 얌전히 우리 아랍의 제물이 되어줘야겠다."

누구 마음대로.

"너희는 나서지 마라."

"네? 할아버지!"

미도가 무슨 말이냐는 듯 동공이 커졌다.

그런 그녀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나는 그저 앞으로 나섰다.

"오늘은 내가 카레하마."

"캐리라니까요!"

오늘 저녁이 카레로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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