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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251화 (251/375)

나 빼고 다 젊은이 251화

제251화

세 번째 경기는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나와 백무열을 필두로 한국은 필사적으로 싸웠고,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한국은 현재 최종적으로 2위를 거머쥐었다.

앞선 첫 경기에서 빵점을 얻었던 것이 컸기에 1위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괄목할 만한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현재 각국의 순위는 이러했다.

-제 2회 월드 대항전 순위표-

1위. 미국 – 9점

2위. 한국 – 8점

3위. 스페인 – 7점

4위. 중국 – 6점

5위. 러시아 – 5점

6위. 프랑스 – 4점

공동 12위. 우크라이나, 네덜란드, 아르헨티나, 아랍 – 2점

백무열이 함께했음에도 미국의 벽은 높았다.

스페인 또한 토레즈를 중심으로 뭉친 팀이었기에 만만치 않았고, 중국은 무술을 이용한 개개인의 강력함이 돋보였다.

어쨌든 모든 일정을 소화한 나와 가족들은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어느새 해가 저물고 저녁 먹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안 이래도 되는데, 이렇게 직접 집까지 데려다줘서 고맙네."

가족들을 먼저 집으로 들여보낸 후. 나는 유민석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러자 유민석이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제가 더 감사하지요. 덕분에 저도 회사 내에서 입지가 좀 더 좋아졌습니다. 어르신 덕이지요."

"음, 이런 걸 윈윈(Win-Win)이라고 한다지?"

"그런 말도 아십니까?"

"내 영어 선생이 알려주더군."

우리 두 사람은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유민석이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럼 전 이제 가보겠습니다.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음, 그래. 조심히 가."

"예. 내일 시간에 맞춰서 버스를 보내겠습니다. 그걸 타고 경기장까지 오시면 될 겁니다."

원래라면 나와 미도.

그리고 백무열은 다른 선수들처럼 각자의 숙소에서 다음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들이 집에서 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유민석의 배려 덕분이었다.

"정말 고맙구만."

"아닙니다. 그럼 전 이만."

그렇게 유민석이 다시 타고 왔던 차에 올라서려던 때였다.

"아, 참."

"……?"

"아마 내일부터 대통령님 특별 지시로 어르신 집 주변을 지키는 경호원들이 있을 겁니다."

"뭐야?"

갑자기 뚱딴지같은 말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경호원이라니.

대통령의 특별 지시?

이게 무슨 개뼉다구 같은 소리람.

"아까 대통령님께서 경기를 보시고 무척 흡족하셨던 모양입니다. 어르신이 기자들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계신다고 말씀드렸더니 현실에서만큼은 불편함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흠."

사실 맞는 말이었다.

당장 아까 경기장을 빠져나오는 것만 해도 너무 힘들었다.

가까스로 뒷문으로 빠져나왔지만 기자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쫓아오면서 사진을 찍어댔다.

나는 괜스레 그들의 집요함에 혀를 내두르곤 했었다.

"아마 내일 아침부터 기자들이 집 앞에 바글바글할지도 모릅니다. 혹, 경호원을 거절하시려거든 그러지 마시고 그냥 받아들이십시오. 그게 손녀분에게도 좋을 겁니다."

손녀에게도 좋을 거라는 말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미도를 위한 최선이라면 그렇게 해야겠지.

"대통령께 감사하다고 전해주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유민석이 차를 타고 멀어졌다.

나는 그가 사라진 방향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렇게 그가 타고 온 차가 노을 너머로 사라지자, 나는 다시 방향을 틀어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부릉-!

"…음?"

동시에 도착한 차 두 대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린 건 너무나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아빠!"

"장인어른!"

막내딸 최서현과 사위인 구석현.

최서현의 품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외손자인 구민찬이 안겨져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내린 것은 둘째인 최정현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둘째 손녀 최서희까지.

그런 그들을 향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웃는 것뿐이었다.

나는 자연스레 뒷짐을 지었다.

"허허. 늦었구나."

아무래도 오늘 밤은 꽤 큰 잔칫상을 차려야 할 것 같았다.

오랜만에 요리 실력 발휘 좀 해야겠군.

* * *

다음 날.

가족들과 보낸 시간은 무척이나 보람찼다.

우리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모두가 강현이네에서 자고 다음 날 있을 경기를 보러 가기로 했다.

그렇기에 이른 아침부터 집안은 굉장히 분주했다.

"응애응애-!"

"여보. 찬이 배고픈가 봐. 가방에 우유 좀."

"여기."

"땡큐. 우리 찬이 배고팠어요~ 엄마가 금방 밥 줄게~"

막내딸과 사위가 배고픈 아기를 달래느라 정신없었고.

"정도야. 미도야. 밥 먹어~ 다들 식사하세요~"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며느리의 외침에 모두가 거실로 나와 밥을 먹었다.

정말 오랜만에 모이는 가족들과의 식사는 이토록 시끌벅적했다.

마침 TV에서는 어제 있었던 경기의 하이라이트가 나오고 있었다.

갑작스레 등장한 내가 위기에 빠진 한국과 미도를 구하는 장면.

[이 아이 할애비다. 이 썩을 놈아.]

"캬. 다시 봐도 명대사야. 난 저 때 진짜 미도가 끝인 줄 알았다니까."

"저두요. 삼촌. 진짜 저 때 할아버지 완전 멋있어요. 진짜 짱."

둘째인 최정현이 TV를 보며 웃었고, 미도는 그런 나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며 양 엄지를 추켜세웠다.

괜스레 민망해진 나는 그저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내 귀는 이미 김치만두처럼 익어있었다.

"크흠. 그만하고 다들 밥 먹자."

내가 먼저 수저를 들자, 온 가족이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5분이 흘렀을까.

"와, 할부지가 이리저리 날아다녀!"

여전히 TV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외치는 서희의 말에 온 가족이 빵 터졌다.

막내 딸 최서현이 간신히 찬이에게 우유를 먹이며 물었다.

"아빠. 언제부터 그렇게 잘 싸웠어요?"

"…글쎄. 아마 다섯 살 때부터였나."

"정말 멋있습니다. 장인어른."

"허허. 자꾸 추켜세우지 마라. 자네도 어서 들어."

"예."

그렇게 우리들은 빠르게 식사를 마쳤다.

모든 준비를 마친 나와 미도는 먼저 경기장으로 가야 했다.

마침 밖에는 미리 도착한 버스가 도착해 있었다.

나와 미도는 태극마크가 새겨진 국가대표 옷을 입고 바깥으로 나왔다.

가족들이 마중을 위해 함께 나온 참이다.

촤자자자작.

터지기 시작하는 플래시.

저 멀리 분주하게 사진을 찍어대는 기자들이 보였다.

입구에는 그런 기자들을 막느라 고생하는 경호원들이 눈에 밟혔다.

나는 마중 나와 있는 가족들을 훑고는 며느리에게 말했다.

"아가."

"네."

"경호원들 고생하는데 밥이라도 한 그릇 대접해야 한다."

"명심할게요."

"가자. 미도야."

"네."

나와 미도는 천천히 버스를 향해 걸었다.

사방을 호위해주는 경호원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간신히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나와 미도는 서로 나란히 옆에 앉았다.

"휴우. 경호원분들이 있어서 다행이네요."

"그러게 말이다."

부릉-.

우리가 올라탄 걸 확인한 버스 기사가 천천히 버스를 몰았다.

버스는 빠른 속도로 도시의 시가지로 들어섰다.

아마 어제 유민석의 말에 따르면 백무열의 집으로 향하는 것일 터다.

"할아버지. 오늘 종목 뭔지 아시죠?"

"음, 알고 있다. 그 뭐시냐. 석호필?"

"스타 필드요."

"그래. 알고 있다."

"모르시는 것 같은데…."

미도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날 보았다.

하지만 정말로 대충은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국가대표 선발전의 종목인 배틀필드의 룰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라면 국가 대항전인 만큼 팀전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랄까.

"설명해드릴 테니까. 잘 들으세요. 아셨죠? 오늘 캐리하셔야죠."

"카레?"

"아이참. 캐리요. 캐리."

"그게 뭐냐."

"음, 그게 뭐냐면요…."

나는 즐거운 듯 웃으며 미도의 말을 한참이나 들었다.

오늘 날씨는 쌀쌀했지만,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하늘이었다.

* * *

그 시각 러시아 대표들을 태운 버스가 고속도로를 가로질렀다.

그들의 숙소는 경기도에 있었는데, 무척이나 비싼 이 버스 안에는 선수들을 위해 마련된 캡슐이 한 대 있었다.

그리고 그 캡슐에는 지금 레이나가 접속해 있었다.

그녀는 게임에 접속해 커뮤니티 사이트를 보고 있었고, 그곳엔 온통 다크울프에 대한 기사뿐이었다.

<충격! 다크울프의 정체. '68세 할아버지'로 밝혀져!>

<다크울프의 국적은 '한국인'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나이!>

<믿을 수 없는 노익장! 그는 대체 뭐하던 사람인가!>

<엄청난 카리스마의 최춘택. 그의 발차기가 세상을 떨게 만들다!>

<그의 레벨업 비결은 경로우대 서비스였다!>

"……."

레이나는 여전히 믿을 수 없는 얼굴로 사진을 보았다.

백발이 성성한 주름진 얼굴.

찰랑이는 백발의 머릿결은 달빛을 머금은 것처럼 하얗게 셌다.

꽁지로 머리를 묶은 그가 허공에 발차기를 날리는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커뮤니티 1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아냐. 이건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어."

그녀는 진정으로 믿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매력적으로 느꼈던 남자.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중후한 멋이 있는 상상 속의 그가 중년도 아니고, 70세를 바라보는 노년의 할아버지라니.

그녀는 이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좌절하고 좌절했다.

아니, 부정하고 싶었다.

"큭…."

불안한 심정을 대변하듯 손톱을 물어뜯던 그녀는 커뮤니티를 통해 연결된 다크울프의 팬카페에 들어갔다.

그 이름은 '늑대의 유혹'.

대문짝만하게 클로즈업 된 늑대의 엉덩이를 캡처해 포토샵으로 만들었던 사진이 팬카페 대문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사진의 오른쪽 밑에 위치한 귀퉁이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Made By. Reina

"꺄악!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그것을 보는 순간 레이나의 흑역사가 하나 생성되는 것 같았다.

숲이 우거진 풀숲에서 양손을 불끈 쥐며 잔디밭을 내려치는 그녀의 손짓은,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지를 대변하고 있었다.

이내 침착함을 되찾은 그녀는 팬카페 회원들의 댓글을 살피기 시작했다.

└와, 진짜 생각도 못했다. 할아버지라니.

- 그래도 할간지 멋있지 않음?

└난 잘생긴 얼굴을 기대했는데 ㅜㅜ

└헐. 진짜 충격과 공포다.

└미안요. 난 얼빠라서 이만 탈퇴ㅠㅠㅠㅠㅠㅠ

이어지는 댓글들은 전부 충격적이라는 내용들이었다.

개중엔 할아버지라서 팬카페를 탈퇴한다는 이들도 있었다.

가면을 벗었을 때의 얼굴이 잘생긴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라서 싫다는 이유였다.

물론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었고 대부분은 멋있다는 반응이 가장 많았다.

그리고 응원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있었다.

심지어 팬카페의 이름도 바꿔야 한다는 의견까지.

그렇다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난.'

레이나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화끈해지는 지난날들을 떠올렸다.

처음 팬카페에서 덕질을 시작했을 때부터 시작해서, 대문 사진을 만드느라 밤 샜던 날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뜨거운 용암지대를 일주일간 쫓아다니며 낯 뜨거운 스토커 짓을….

"아아아아아악! 레이나 이 바보야아아아!"

그녀는 아무도 없는 풀숲에서 자신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외쳤던 말은 다시 메아리로 돌아와 자신의 귀에 꽂히는 것이 더 처량하게 느껴졌다.

"…하아."

레이나는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다시 눈앞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이 귀퉁이에 위치한 어느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탈퇴하기] 버튼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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