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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250화 (250/375)

나 빼고 다 젊은이 250화

제250화

삐이이이-!

경기 종료를 알리는 알림이 울리자마자, 나를 비롯한 다섯 사람은 일제히 숨을 헐떡이며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노려보았다.

"허억. 헉…."

"후우."

"…제길."

"벌써 끝인가."

"……."

미국의 마이클, 중국의 견소룡, 스페인의 토레즈,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까 영국의 코쟁이는 '데이비드'라는 이름을 가진 녀석이었다.

그는 왕관의 성좌 능력을 가진 자였다.

…저 영국 꼬맹이가 생각지 못한 복병인데.

그가 쓴 고대 엘프의 왕관은 나무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 있었다.

그 때문에 공교롭게도 우리들은 각자에게 천적이나 마찬가지인 관계가 형성되고 말았다.

내가 가진 태양이 데이비드의 나무를 불태웠고, 데이비드의 나무는 토레즈가 가진 물을 먹고 자라났다.

토레즈가 펼친 물의 힘은 마이클의 모래를 무겁게 만들었으며, 마이클의 모래는 다시 내 불을 꺼트리길 반복했다.

우리들은 그렇게 서로를 견제하고, 흡수하고, 강해지며 다시 싸웠다.

견소룡이야 워낙 여기저기 찝쩍거리느라 바빴고.

"…아무래도 우린 다음 경기에서 결판을 내야 할 듯 허이."

나는 그곳의 최연장자로서 그들에게 말했다.

어느새 눈앞에는 경기의 종료를 알리는 메시지가 뜨고 있었다.

[선수분들 고생하셨습니다.]

[3초 뒤에 로그아웃됩니다.]

[3, 2, 1…]

이내 경기 종료를 알리는 메시지와 함께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깜깜한 어둠.

바깥에선 끊임없는 환호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귀청 떨어지겠네."

나는 머리에 썼던 접속 헬멧을 벗으며 머리를 털었다.

오랜만에 박진감 넘치는 싸움을 했더니, 온몸은 땀투성이였다.

곧장 주머니에 넣어둔 고무줄로 하얀 백발 머리를 올려 묶었다.

"…흠."

그러면서 새삼스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당연히 가족들.

아마 경기를 보다가 너무 놀라 나자빠지는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특히나 코앞에서 속여 왔던 미도는 배신감이 크리라.

어쩌면 당분간 날 안 보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에이, 몰라."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후회하지 않는 게 제일이다.

이미 내 정체는 밝혀졌고, 이제 각종 언론과 세계가 나를 주목하게 될 것이다.

기자 놈들이 쫓아다닐 걸 생각하니 짜증이 몰려오지만, 그것이 또 손녀를 위한 길이라면 나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니까.

"끙."

곧장 캡슐 안에 위치한 버튼을 누르면서 바깥을 나왔다.

그와 동시에 함성이 쏟아졌다.

우와아아아-!

찰칵! 찰칵!

"……!"

너무 큰 함성에 놀라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휘청거리며 중심을 잡은 나는 천천히 무대의 앞쪽으로 걸어갔다.

걸을 때마다 수없이 많은 플래시 세례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으음."

이젠 적응이 되어서 그런지 기자들이 따라붙는 것도 어느 정도 태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완전히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자, 미친 듯한 함성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우와아아아아아-!"

"다크울프-!"

"최춘택 할아버지-!"

"정말 최고였어요-!"

"진짜 짱이에요-!"

우레와 같은 함성에 이은 박수 소리가 나를 향해 쏟아졌다.

그것은 보이지 않지만, 비처럼 내게 한없이 쏟아져 내렸다.

이런 비는 난생처음 맞아보았으나, 그 기분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할아버지!"

폭.

익숙한 포근함이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나는 얼굴을 파묻은 채 비비는 미도의 머리를 한없이 자상하게 쓰다듬었다.

우리 둘은 그렇게 말없이 서 있었다.

그런 우리 두 사람의 모습이 또 한 번 하이에나 같은 기자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팡팡! 팡팡!

"음, 미도야. 기자들이…."

"괜찮아요. 잠시만요…. 진짜 잠시만…."

그렇게 말하며 미도는 팔에 힘을 주며 내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나는 그녀의 뒤통수와 기자들의 카메라를 번갈아 보고는 체념한 듯 피식 웃었다.

내 팔이 그녀의 등에 포개지며 토닥였다.

***

유니온 스퀘어에 위치한 2층 귀빈석.

유니온 관계자 및 초대 손님들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에 빠져 있었다.

"이겼어! 이겼다고! 하하하!"

"1등이라니. 정말 대단해!"

"설마, 다크 울프가 한국 사람이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여기 유 팀장이 저분을 스카웃하려고 정말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이석준이 유민석에게 공을 돌리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유민석은 그저 반달 눈웃음을 지으며 앉아 있는 이들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중에는 현 대한민국의 대통령.

'강태산'도 있었다.

"잘하셨습니다. 저런 분이라면 마땅히 한국의 영웅 대접을 받아야지요."

강태산은 들끓는 애국심으로 눈앞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보며 활기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선 마이크를 쥔 최춘택을 향해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내는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퉁퉁.

그때, 최춘택이 마이크를 매만지자 경기장에 잠깐의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어서 그의 음성이 방송을 타고 경기장에 흘렀다.

- 안녕하십니까. 최춘택입니다.

와아아아아-!

약 5초간 이어진 함성.

최춘택은 그저 한 손을 들어 그런 관객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말을 이어 나갔다.

- 많은 분이 아시다시피 제가 다크울프입니다. 사실 오늘 이 자리는 안 나오려고 했지만…. 오늘 그 약속을 깨고, 제가 이곳에 나온 것은 여기 있는 손녀 때문입니다.

그러자 관객석에서 일제히 '최미도'의 이름을 외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최춘택은 다시 손을 들어 그런 관객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 여기 제 손녀를 노리는 늑대 놈들이 많군요.

관객석에서 일제히 폭소가 터졌다.

최춘택은 이어서 말했다.

- 사실 전 이런 여러분들의 관심이 부담스럽습니다. 아마 이렇게 말해도 기자들이 저와 손녀를 스토커처럼 쫓아다니겠지요. 하지만 좌시하지 않겠습니다. 제 성격이 워낙 지랄 맞으니까요.

이번에는 귀빈석에서도 작은 폭소가 터졌다.

최춘택이 하는 말은 기자들에게 전하는 간접적인 경고이기도 했다.

강태산은 바로 옆에 선 유민석에게 물었다.

"기자들이 저분을 많이 쫓아다닙니까?"

"아, 예. 사실 몇몇 기자가 게임 속에서 저분한테 두들겨 맞고 쫓겨난 사건도 있었습니다."

"아, 그래요?"

강태산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유민석을 보았다.

"저분이 세운 도시에서 기자는 돌아다니지도 못합니다. 그만큼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을 싫어하셨죠. 저분이 저렇게 직접 얼굴을 드러내시기까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셨을 겁니다."

"으음, 그래도 잠깐이지만 한국의 위상을 세워주신 분인데 불편하게 해드릴 순 없지요. 비서실장님."

"예."

"당장 전국의 언론에 전화해서 조치를 취하세요. 저분을 포함해 가족분들에게 불편함이 있어서는 안 될 겁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비서실장이라고 불린 중년의 남자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자리를 비웠다.

그런 강태산에게 유민석은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별말씀을. 저분의 노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오늘 아주 기분 좋은 경기를 보았습니다. 하하하."

강태산이 웃으며 다시 무대를 내려다봤다.

어느새 최춘택은 간단한 소감을 마무리하고, 한국 선수들과 함께 대기실로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심상치 않은 눈으로 보는 사람이 있었다.

'…저리 생긴 자였나.'

최춘택을 바라보는 이건명 회장의 눈빛이 먹잇감을 바라보는 호랑이를 닮아 있었다.

'드디어 찾았군.'

***

나와 미도를 포함한 한국 선수들은 대기실에 도착해 각자 악수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제일 먼저 주장인 임창용과 악수를 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선배님?"

"싸우시는 모습을 보고 한눈에 저희 선배님이신 걸 알았습니다."

"으음, 자네 UDT인가?"

"맞습니다. 지금은 전역했지만요."

긴말은 필요 없었다.

내가 UDT인 것은 아니지만, 내가 전에 있었던 곳이 UDT의 시초가 되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나는 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잘 부탁하네. 후배님들."

그렇게 김철과 박장소와 악수를 나누었다.

이어서 나는 아까 대기실에서 잠깐 마주쳤던 임사라를 보았다.

"설마하니 이렇게 대단하신 분인 줄은 정말 몰랐어요. 제가 약간 오해를 했었는데…. 하하, 미도 할아버님이실 줄은…."

임사라가 멋쩍게 웃자, 나는 피식 웃었다.

"이상한 가면을 쓰고 돌아다녔으니 그럴 수도 있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렇게 이어서 김현우와 은정혁을 보았다.

제일 먼저 김현우의 손을 맞잡았다.

그것도 힘을 가득 주어서.

"흡."

깜짝 놀란 김현우가 어깨를 들썩이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런 그의 귀에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를 속삭였다.

"목욕탕에선 아주 반가웠네."

"딸꾹…!"

"반갑네."

"아, 예에…. 딸꾹…!"

딸꾹질하는 김현우의 손을 놓고 은정혁의 손을 맞잡았다.

"자네의 경기는 선발전에서도 보았지. 정말 인상적이었어."

"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은정혁이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 그가 선발전에서 보여준 플레이는 정말로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도를 보았다.

그녀와는 아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미도가 내뱉은 것은 조금 색다른 의문이었다.

"근데 그 꼰대 아저씨들이랑 감독님은 어디 갔지?"

"그 세 놈들이라면 아마 나타나지 않을 게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뭐, 그렇게 됐다. 그리만 알아."

괜히 얘기했다가 눈앞의 젊은이들 사기만 떨어트릴 것 같아서 그냥 얘기하지 않기로 했다.

뭐, 사실 얘기하지 않아도 내일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만.

"그나저나 이제 다음 경기에 나갈 사람을 정해야 하는데…."

나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는 볼을 살짝 긁었다.

"이 늙은이가 좀 껴도 되겠는가?"

"물론이죠!"

"영광입니다. 선배님!"

"꼭 들어와 주세요!"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갑자기 들어온 나를 경계하지 않고 살갑게 대해주었다.

우리들은 그렇게 빠르게 세 번째 경기를 치를 주전 열 명을 뽑았다.

사실 크게 변한 건 없었다.

김동현과 한상혁이 사라진 자리에 내가 들어갔고, 아까 내가 들어가느라 못 들어갔었던 안승현이 들어왔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근데 조커는 누가 하죠?"

미도의 물음에 모든 선수들의 이목이 내게 집중되었다.

주장은 임창용 저 친구일 텐데 왜 날 보는 거지.

뭐, 어차피 내가 데려오려고 하긴 했다.

모든 조치는 아까 유민석이 다 도와주었다.

"큼."

나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대기실에 위치한 시계를 보았다.

이놈이 오기로 해놓고, 왜 이리 늦는 게야.

하여튼 지각하는 버릇은 여전하다니까.

"할아버지?"

미도의 부름에 상념이 깨진 나는 다시 그녀를 바라보며 말하려 했다.

"사실…."

또각또각.

그때, 복도에서 구두 소리가 들렸다.

선명하게 울려 퍼지는 발소리는 이내 대기실 문 앞에서 멈추었고, 발소리의 주인공은 곧장 문을 열어젖혔다.

끼이익-

그리고 나타난 사람은 나와 미도에게 너무나 익숙했다.

"내가 너무 늦었나?"

하얀 백발을 올백으로 넘긴 갈색 정장의 노신사.

"빨리 안 오고 뭐 하나. 하여튼 손모가지를 부러트리든가 해야지. 에잉. 쯧."

"그럼 난 뭘 휘두르나. 이 친구야."

"입은 뒀다가 뭐 하누."

"잘도 싸우겠다. 썩을."

나를 제외한 한국 선수들의 입이 다시 한번 쩍 벌어졌다.

그곳엔 한국에서 너무나도 유명한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다들 반갑다. 난 얘 불알친구여."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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