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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249화 (249/375)

나 빼고 다 젊은이 249화

제249화

사실 진작에 태양과 바람의 힘을 동시에 사용하면 더욱 강력한 힘을 낼 수 있단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그러지 않았던 것은 그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불칸 용암지대에 와서는 '해오름'을 쓸 이유가 없었고, 한동안 '칼바람'의 힘에 적응을 해야 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눈앞에 있는 이들을 상대로는 잠깐의 방심도 금물이다.

"큭. 어마어마한 힘이군."

"대체 레벨이 몇이야?"

뜨거운 연기 뒤로 당황한 눈빛의 루이스와 다리야가 나타났다.

그들의 뒤에 있던 다른 팀원들은 모두 아까 전 공격에 의해 전멸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눈앞의 두 사람이 기수라는 얘기.

역시 이 정도로는 저 둘을 쓰러트릴 순 없는 건가.

뭐, 상관없지.

[썬 로드의 힘을 개방합니다.]

[당신이 걷는 길에는 태양의 발자국이 남습니다.]

[주변의 바람이 꺼지지 않는 태양을 노래합니다.]

콰아앙-!

두 다리에서 폭주 기관차 같은 기세가 터져 나왔다.

바람의 힘이 가미하니 기존의 썬 로드보다 더욱 강대한 힘이 폭발하는 듯했다.

어차피 이제 썬 로드의 지속시간은 거의 무한에 가까웠기에, 나는 천천히 그들을 향해 걸었다.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등 뒤로 불기둥이 치솟는 광경은 무척이나 위압적일 것 같았다.

"실례."

"꺅! 이 변태가 뭐 하는 짓이야!"

그런데 문득, 갑자기 루이스의 혀가 길어지더니, 아홉의 꼬리를 가진 다리야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다리야가 날카로운 손톱으로 루이스의 혀를 자르려 했지만, 루이스는 입술을 움직이며 말했다.

"스킬 복사 좀 하자고."

"이 미친…. 혀 안 떼?"

"5초만."

나는 그저 팔짱을 낀 채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저건 브루케시아가 가진 독특한 능력이지.

브루케시아는 루이스와 함께하는 성좌의 진명(眞名)이었다.

별명은 '다재다능 주의자'.

딱 봐도 알 수 있듯 다양한 능력을 복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조건은 길어진 그의 혀가 5초간 닿아야 한다는 것.

그러면 해당 존재의 능력 중 하나를 복사할 수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으음, 좋아. 이걸 복사하지."

루이스가 혀를 날름거리며 말했다.

다리야는 그런 그의 모습이 못마땅한지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정말이지. 당신은 현실에서 보면 잘생겼는데, 게임 안에서는 정말 못생긴 거 알아?"

"후후. 남자는 외모가 다가 아니야. 츄릅. 분신술…."

자욱한 연기와 함께 루이스의 옆에 또 다른 루이스가 두 명 나타났다.

아무래도 그는 옆에 있는 여우 성좌 '은월'의 능력인 분신술을 복사한 듯싶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듯.

루이스는 또 다른 스킬을 사용했다.

"카라스의 날개."

촤아악.

익숙한 검은 날개가 루이스의 등 뒤로 펼쳐졌다.

그것은 아까 전 나와 싸웠던 파비앙의 능력.

하지만 이런 스킬을 복사하는 데도 단점이란 존재했다.

"역시 그 녀석처럼 완전히는 안 되는 건가…. 쯧."

딱 절반의 능력만 낼 수 있는 것.

그것이 브루케시아가 가진 복사 능력의 단점이었다.

그리고 딱 세 가지 능력만 복사할 수 있다는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그래도 무서운 능력인 건 마찬가지다.

"나 먼저 갈게. 허니."

날개를 펼친 세 명의 루이스가 잔상을 일으키며 날아들었다.

이것은 까마귀 성좌인 '카라스'의 날개가 가진 능력 중 하나.

아까 전 한 마리로도 어지러웠는데, 분신술까지 더 해지니 엄청나게 어지러웠다.

이어서 다리야 또한 분신술을 펼쳐 가세했다.

그녀는 루이스보다 두 명이나 더 많은 분신을 만들어 내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코웃음 칩니다.]

나는 프로메테우스처럼 코웃음 치며 그들을 향해 마주 달렸다.

"그래도 지금의 나한텐 안 되지."

혜안과 통찰은 두 사람의 분신을 꿰뚫고 단번에 본체를 찾아내었다.

하늘에서 펼쳐지는 날카로운 깃털을 피해냈다.

멀리서 쇄도해오는 여우 발톱과 꼬리 공격을 피해냄과 동시에 양손에 쥔 무기를 바닥에 떨어트리며 두 사람의 빈틈에 거미줄을 뻗었다.

촤촥.

"……!"

"……!"

당황한 두 사람의 동공이 커짐과 동시에 나는 몸을 회전시키며 두 사람과의 거리를 좁히며 보법을 밟았다.

이어서 가까이 달라붙은 그들에게 나는 불지옥을 선사했다.

"폭염주의보일세. 부채는 챙겼나?"

"이런…."

"당했…."

콰콰콰콰쾅!

이어지는 것은 태양의 존재감이었다.

끝없이 작열하는 태양의 힘이 주변의 정경을 집어삼켰다.

그곳에 남은 것은 잿더미와 떨어진 깃발밖에 없었다.

근데 왜 하나지…?

"큭. 두고 봐…요!"

저 멀리 꽁무니를 빼며 도망가는 다리야.

저것 또한 '은월'의 기술 중 하나다.

분신 중 하나와 자리를 바꾸는 것.

어쨌든 그녀는 가까스로 살아남은 것 같았다.

그래도 내가 나이가 많으니까 마지막에 존댓말을 하는 모습이 꽤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흠."

[깃발을 획득하였습니다.]

나는 바로 바닥에 떨어진 깃발을 주웠다.

루이스가 떨어트린 깃발이었다.

이걸로 한국 팀은 확실하게 1위.

문제는 아까 내가 싸우는 동안 마이클을 제외한 미국 놈들이 흩어지더니, 미도랑 애들을 쫓아갔다.

왠지 모르게 걱정된다.

"뭐 내가 남 걱정할 때는 아닌가."

당장 주변 상황만 해도 어지럽다.

내가 이 정도 해줬는데, 그들이 그때까지 버텨주지 못하면 나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저 다리야라는 처자는 더 쫓지 않아도 되겠고…. 이제 남은 곳은 저기인가."

나는 새로운 난장판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엔 견소룡과 마이클.

그리고 웬 영국 코쟁이 하나와 토레즈 놈이 뒤엉켜 개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3분.

그 안에 경기는 끝이 나리라.

나는 지체하지 않고 그곳으로 뛰어들었다.

***

"헉. 허억…. 이런 제기랄."

"…너무 강하잖아!"

"다들 좀만 버텨! 3분 남았다!"

한국 팀의 주장 임창용의 외침에 선수들이 남은 힘을 쥐어짰다.

지금 한국 팀은 마이클을 제외한 미국 팀에게 포위당한 채 속수무책으로 공격당하고 있었다.

단단한 수비 형세를 취해 간신히 미국 팀 두 명을 로그아웃시켰지만 그뿐이다.

은정혁의 은신은 통하지도 않아 금세 탈락해 버렸고, 몇몇 선수들도 갑작스러운 기습에 탈락했다.

남은 것은 임창용과 김현우 그리고 몽크인 김해일과 박장소.

마지막으로 미도뿐이었다.

지금 자신들을 김해일의 광역 힐인 '마야의 비구름'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

미국의 주장 데미안은 그런 한국 팀을 팔짱을 낀 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그들의 선전에 조금 놀란 탓이었다.

'지금까지 버틴 건 제법이지만…. 이젠 시간을 끌어줄 수 없겠군.'

이제 남은 시간은 채 1분도 되지 않았다.

슬슬 결착을 지을 때였다.

저 중 누가 기수일지는 뻔하다.

딱 봐도 저 미도라는 여자를 위주로 진을 짠 것을 보면 그녀가 기수였다.

고개를 끄덕인 데미안이 허공에 대고 말했다.

"나와라. 제임스."

위이이잉-!

[미국 팀의 조커가 등장합니다.]

"앗, 드디어 제 차례입니까? 저 오늘 못 나가는 줄 알았다구요. 너무 늦게 부르신 거 아닙니까?"

갑작스러운 동양인의 등장에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그는 '제임스'라는 아이디를 쓰고 있는 청년이었다.

"그래서 불렀잖아. 심심할 테니 저기 마무리해. 1분 남았다."

"흐음. 그래도 제 모국인데 생각보다 짓궂으시네요. 선배."

제임스는 데미안이 회심의 카드로 쓰기 위해 꽁꽁 숨겨놔서 아직 어느 누구에게도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개최식에도 참가하지 못했고, 그날은 데미안의 지시에 따라 하루 종일 기량을 끌어올리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다음 경기에 출전시켜 줄게."

"뭐, 그렇게 말하시면 어쩔 수 없죠."

어깨를 으쓱인 제임스가 허리춤의 권총을 뽑을 자세를 취했다.

그와 동시에 한국 팀에선 박장소와 임창용의 총이 그에게 겨누어졌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

마치 황야에서 만난 카우보이들 같은 긴장감이 두 팀 사이에서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피피융-!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자욱한 마탄의 연기가 두 팀 사이에서 흘렀고, 쓰러진 것은 제임스가 아닌 숫자가 많았던 임창용과 박장소였다.

그들의 머리에 총알이 뚫고 나간 자국이 선명했다.

"무슨…."

"컥…."

두 사람은 로그아웃 당하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제임스의 손을 보았다.

하지만 제임스는 총도 뽑지 않았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그런 그들을 향해 제임스가 걸어가며 말했다.

"총에 있어서 변하지 않는 불변의 진리가 뭔지 아세요?"

"……."

"……."

두 사람은 입을 열지 못했다.

그대로 로그아웃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제임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나지막하게 걸어갔다.

그곳은 한국 팀이 있는 곳이었다.

"빠르게 쏜 놈이 이긴다는 거죠."

철컥. 타타타탕!

"크윽!"

"읍…!"

제임스가 엄청난 속사로 남은 이들에게 총을 발사했다.

그가 가진 마탄의 성질은 속도였다.

거기다가 데스페라도라는 직업의 특성으로 빠르게 총을 뽑는 속사 또한 가능했다.

거기다가 헤드샷을 맞추면 낮은 확률로 즉사하는 것까지.

성기사와 몽크의 조합으로 오랫동안 버텨왔던 김현우와 김해일은 저항도 해보지 못한 채 머리에 총알구멍이 나버렸다.

이 모든 일은 30초가 채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10초가량.

제임스는 마지막 총알을 빠르게 장전하며 남아 있는 한국 팀 기수의 머리에 총을 겨눴다.

그런데 제임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은성 오빠?"

두 사람 사이에 알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쳤다.

미도는 아까부터 걸어오는 그를 보면서 심장이 격동 치는 것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는 바로 미도의 첫사랑이었으니까.

"네가 여긴 어떻게…?"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

"이런, 시간."

"……!"

그제야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깨달은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제임스는 총을.

미도는 손에 쥔 검을.

찰나가 두 사람 사이에 지나갔고, 챙- 하는 소리와 동시에 제임스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타아아앙-!

"……."

"……."

길게 이어진 총성 뒤로 두 사람은 서로를 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제일 먼저 소리를 낸 것은 미도였다.

"윽."

미도의 신음과 동시에 그녀의 허벅지에서 피가 울컥 솟았다.

제임스는 애초에 미도의 머리를 노리고 총을 겨눴지만, 미도는 애초에 그가 거머쥔 총을 쳐낼 생각으로 휘두른 것이었기에, 가까스로 총의 궤도를 비트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됐어. 성공했어.'

미도가 허벅지의 통증을 참으면서 억지로 좌우의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제길…!"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제임스가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미도에게 총을 겨눴지만, 이미 남은 시간은 끝나버린 뒤였다.

삐이이이-!

"……."

"……."

[두 번째 경기가 종료되었습니다.]

[제2회 월드 대항전 1종목 - '깃발대항전'을 종료합니다.]

[선수분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3초 뒤에 로그아웃됩니다.]

[3,2,1…]

미도와 제임스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이내, 두 사람의 시야가 하얀색으로 뒤덮였다.

지금 두 사람의 마음은 형용할 수 없는 것들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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