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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245화 (245/375)

나 빼고 다 젊은이 245화

제245화

"이 아이 할애비다. 이 썩을 놈아."

그 거치면서도 오만한 선언은 모두를 충격에 빠트렸다.

앞에서도 뒤에서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시선들이 쏟아졌다.

침묵과 정적의 한복판.

앞에서는 브라질 양놈들이 눈을 비비고 있었고, 어쩌면 뒤에서 보고 있는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그러나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당연하게도 손녀인 미도였다.

"할…아버지…?"

그 목소리에 나는 살며시 뒤를 보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미도는 주저앉은 채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익숙한 복장의 나를 한 번 보고, 내 손에서 흩어져가는 다크울프의 가면을 한 번 보고는 다시 내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동공에 지진이 이는 듯한 떨림이었다.

이럴 때 보통 멋있는 말을 해야 하는데….

가족끼리 긴말이 필요하겠는가.

나는 그저 웃을 뿐이다.

"허허."

내 얼굴을 알아본 김현우와 은정혁이 동시에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이럴 수가…."

나는 그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숙이기 바빴다.

아무래도 지금 위기 상황이라는 걸 깜빡한 듯하다.

바깥에서 지켜볼 관객들에겐 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르겠군.

"아, 안녕하십니까!"

"또, 또 뵙습니다!"

난 그저 두 사람을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그리고 다시 눈앞에 주저앉은 손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살며시 한 손을 내밀었다.

미도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날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큭. 이런 미친 영감탱이를 봤나! 뒈져라!!"

어느새 작은 웨어울프로 변신해 달려드는 카를로스.

평소에 난폭한 웰시 울프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눈앞의 카를로스는 그야말로 귀여운 강아지로 보였다.

"이런 강아지 같은 놈을 보았나."

욕인지 칭찬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리며 나는 옷자락을 펄럭이며 보법을 밟았다.

다리에 깃든 해오름이 도깨비불처럼 움직였다.

회전하듯 접근해 순식간에 카를로스와의 거리를 좁힌 내 손엔 알렉서스의 포크 숟가락이 들려져 있었다.

"미식가의 눈."

[고독한 미식가의 눈이 당신에게 깃듭니다.]

눈앞의 카를로스는 어느새 식재료가 되어 있었다.

미식가의 눈은 눈앞의 웨어울프를 부위별로 감별했고, 내 손에 쥐어진 포크 숟가락은 그 부위를 냉정하게 찍어버렸다.

마치 음식을 맛보는 미식가처럼.

콰콱! 콱콱! 우드득.

가장 먼저 웨어울프의 갈비뼈에서 포크 꽂히는 소리와 함께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식재료 부위를 찍어버리면 두 배의 데미지를 입히는 미식가의 눈이 가진 효과가 제대로 터진 것이다.

그것도 치명타로.

"큭. 미친!"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카를로스를 나는 놓치지 않았다.

재빨리 접근해서 발등을 찍어버렸고, 이어서 튼실한 늑대의 허벅다리와 엉덩이에 위치한 우둔살을 내리 찔렀다.

그리고 발차기도 섞어서 놈의 이곳저곳을 두들겼다.

카를로스의 몸 이곳저곳에서 폭탄 터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콰쾅! 콰콰쾅!

"망할!"

어마어마한 데미지가 순식간에 꽂히자 당황한 카를로스가 눈을 부라리며 양손의 발톱을 날카롭게 세우더니, 나를 향해 스킬을 쏟아냈다.

"아이언 클로!"

카를로스의 발톱이 단단한 강철이 되어 눈앞으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 또한 예상했던 바였기에 가벼운 관절기로 녀석의 공격을 흘려냈다.

그리고 팔꿈치를 내려쳐 오른팔을 으스러트리고, 놈의 어깨와 목에 무차별적으로 포크를 찔러 넣었다.

그야말로 무자비한 손속이었다.

콱! 콱콱! 콱!

내 손은 고도로 훈련된 살인 병기처럼 움직였다.

순식간에 제압당해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카를로스가 소리쳤다.

"이건 말도 안…!"

콰직.

그것이 카를로스의 머리가 터지며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나는 그저 놈의 머리통을 짓밟았던 발을 몇 번 털고는 우두커니 서 있다가 다시 미도에게로 걸어갔다.

미도는 아직 주저앉은 채로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쩍 벌어진 미도의 입이 믿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씨…!"

미도가 눈시울을 붉히며 밉다는 듯 양 주먹으로 내 가슴을 두들겼다.

툭. 툭.

나는 그저 별말 없이 웃을 뿐이다.

"허허허."

미도는 머리를 몇 번 흔들고는 정신을 차렸는지 허공에 붓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고양이 캐릭터인 귀티가 검을 들고 적을 때리는 그림.

그것은 살아서 움직이더니, 내가 입고 있는 괴짜 정장의 오른팔 부분에 들러붙었다.

[당신의 인간 공격력이 소폭 증가합니다.]

그저 많은 말은 필요 없었다.

미도는 그제야 나를 제대로 바라본 것이다.

"할아버지는 역시 짱이네요."

미도가 글썽거리는 눈물을 감추려는지 하얀 치아를 보이며 씩 웃었다.

나도 그녀에게 엄지를 세우며 씩 웃었고, 조용하게 다시 뒤를 돌았다.

그곳엔 브라질의 남은 선수들이 흠칫거리고 있었다.

나는 주장인 임창용에게 말했다.

"자네들은 가만히 있게나. 저놈들은 내가 처리하지."

임창용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에는 존경심 어린 결기가 묻어 있었다.

나는 두 다리에 깃든 태양의 기운을 지우고 다시 한번 춤을 추었다.

이어지는 것은 바람이었다.

"오늘의 날씨는."

쒸이이이익-!

두 다리에 깃든 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치더니 소형 태풍이 되었다.

"태풍일세."

나는 오른발로 중심을 잡은 채 그대로 왼발을 휘감으며 전방에 뒤후리기를 날렸다.

후웅!

곧이어 어마어마한 바람의 상처들이 눈앞을 수놓았고, 그 기세가 무척이나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허공에 수놓아지는 날카로운 바람의 손톱들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니 집에 돌아가서 발이나 닦고 자게나들."

일도양단(一刀兩斷)의 기세를 가진 수십 개의 바람이 세상을 가르며 적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 * *

- 아아! 놀랍습니다! 다크울프!!!

- 카를로스가 맥도 못 춘 채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 다크울프, 아니. 이젠 최춘택 선수라고 불러야 할까요! 믿을 수 없는 움직임입니다! 과연 누가 저 사람을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라고 볼까요!!

경기장은 이미 열광의 도가니였다.

"와아아아아!!!"

"미쳤뜨아!!!!!"

"할간지 가즈아!!!!"

"다크울프님!!!!!"

"춘택쓰 하드캐리!!!!"

"한국인이었어!!! 우린 전투 민족이다!! 가즈아!!!"

백무열이 지랄발광하듯 응원하는 관객들 속에서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그의 옆에는 당연하게도 손자인 백성찬이 함께였다.

주변에 있는 한국 관객들은 그야말로 갑자기 발동한 애국심을 분출하며 북을 두드리고 꽹과리를 쳤는데, 눈살이 찌푸려지는 장면이지만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그만큼 춘택이의 활약이 대단했으니까.

"이야. 역시 저 발차기는 다시 봐도 명품이에요. 크으으."

그런 손자에게 백무열은 어깨를 으쓱였다.

"소싯적에는 저거보다 더 대단했지."

"어느 정도였는데요?"

"글쎄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녀석의 발이 허공에 떠서 떨어질 줄을 몰랐지. 그 정도로 체공 시간이 높았어. 그야말로 바람 같았지."

백성찬은 언젠가 할아버지인 백무열의 과거를 들은 적이 있었기에 크게 놀라는 눈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눈앞에서 보고 있는 최춘택이라는 할아버지와 바로 옆에 있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치열한 삶을 살았다는 것은 직접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펼치는 무(武)에는 세월이 녹아 있었다.

그것이 목검이 되었든, 발차기가 되었든, 중요한 건 지금까지도 거의 녹슬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저런 바람이요?"

백성찬이 눈앞의 스크린 속 최춘택을 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순식간에 바람의 춤을 완성한 최춘택의 두 다리에 바람이 깃들어 있었다.

이어진 것은 수십 개의 바람의 칼날이 브라질 팀을 도륙하는 장면.

최춘택은 바람처럼 다리를 움직여 적들을 쓰러트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그는 바람이었다.

"그래. 저런 사내였지. 보아라 그는 바람이구나. 하하하!"

백무열이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고, 백성찬은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면서 내심 속으로 감탄했다.

'나도 저렇게 멋있게 늙어야지.'

그리고 백무열은 웃으면서도 누군가를 떠올렸다.

아마 그 녀석도 이곳에 있었다면 자신처럼 웃었을 테니까.

그는 어느새 입가에 만연한 미소를 지으며 최춘택이 나오는 화면에 집중했다.

어마어마한 바람이 브라질 팀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그는 읊조리듯 낭송하는 자신의 말이 하늘에 닿길 바랐다.

'동백아, 보고 있냐?'

어느새 백무열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는 흐르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려 애쓰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다리 없는 새가 다시 한번 바람에 앉아 잠들었다.'

백무열의 한쪽 뺨에서 떨어진 눈물이 볼을 적셨다.

그의 눈에 비친 최춘택은 고요한 바람 속에 눈을 감은 채 서 있었다.

그 고고한 모습이 마치 다리 없는 새의 재림이었다.

'가라. 춘택아. 다시 한번 날아봐.'

바야흐로 무각조(無脚鳥)의 비상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 * *

"흐읍!"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포크 숟가락.

아니, 어느새 소환된 솔라로 인해 포크 창으로서의 진짜 모습을 되찾은 날카로운 삼지창이 브라질의 마지막 유저를 향해 날아가 몸통을 꿰뚫었다.

푸확!

"미ㅊ…!"

[브라질 팀이 깃발을 빼앗겼습니다.]

[브라질 팀이 전원 탈락을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야말로 채 1분도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아무래도 마지막에 숨어있던 저놈이 깃발을 가진 기수였던 모양이다.

어쨌든 이것으로 우리 한국은 총 3개의 깃발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는 방금 빼앗은 브라질의 것.

그리고 하나는 기존에 가진 한국의 것.

그리고 황금 깃발까지.

현재 한국은 총 7점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무언가 올라오고 있군.

초감각으로 키워진 내 청각이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무수한 소리들을 감지했다.

두두두두.

그 수가 너무 많아서 아무래도 긴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없을 것 같았다.

"이보게 주장."

"아, 넵!"

그야말로 압도당한 임창용이 퇴역한 군인이 아닌 현역 군인이 된 듯한 대답을 하며 자신의 앞에 걸어왔다.

"입구는 내가 막겠네."

"네?"

"자네들은 원거리 지원하고 나머지는 미도를 지켜주게."

"아, 알겠습니다. 선배님!"

어느새 선배님으로 호칭을 정리해버린 임창용의 말은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미도를 힐끗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단의 입구를 향해 걸어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곧장 미간을 찌푸렸다.

"저놈들은…."

어마어마한 기세로 올라오고 있는 군단.

그야말로 군단이었다.

하지만 그 군단은 살아있지 않았다.

언데드 군단의 중심엔 저번에 만났던 죽음의 향취 길드원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네크론이 프랑스 깃발을 휘날리며 뼈로 이루어진 죽음의 말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흐음. 재밌군. 프랑스 선수였나?"

그리고 이어서 작열하는 태양을 가리며 그림자와 함께 다가오는 모래의 구름.

나는 그 위에 거만하게 팔짱을 낀 채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를 볼 수 있었다.

"…마이클인가."

그리고 피라미드를 암벽등반 하듯이 올라오는 독일의 라인하르트도 밑에 보였다.

프랑스의 뒤를 쫓는 레이나를 필두로 한 러시아도 보였고, 또 그 뒤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마 저 싸움의 승자가 이곳을 향해 달려오게 될 테지.

그야말로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있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의기양양했다.

"자, 어서 오거라. 어서."

나는 허공을 올려다보며 째깍거리는 시계를 보고 있었다.

그것은 아까 브라질 팀과의 싸움 도중에 나타났던 메시지였다.

[불과 예언의 신, '프로메테우스'의 부활이 5분 남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5분은 채 10초도 남지 않았다.

"10, 9, 8, 7…."

나는 오랜만에 만날 전우의 모습을 떠올리며 얼마 남지 않은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모처럼 만의 상봉에 내 기분은 무척이나 들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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