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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242화 (242/375)

나 빼고 다 젊은이 242화

제242화

웃음기 넘치는 미도의 각오가 지나가고, 이어서 다른 나라의 말들이 이어졌다.

모두 각자의 소망과 결기와 다짐이 어린 각오들.

당연하게도 제일 수고스러운 것은 사회자의 옆에 선 국제통역사들이었다.

다른 나라의 대표팀들은 모두 평범한 대답들을 내놓았지만, 미도는 그저 하고 싶은 말을 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어쨌든 그녀로서는 후회가 없는 발언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부님이 후회 없이 화끈하게 하랬으니까.'

여기서 말하는 사부란 당연히 백무열을 일컫는다.

아까 대기실에 있을 때 그에게서 문자가 도착했었는데, 그 내용은 이러했다.

[싸부님: 응원한다미도후회없이화끈하게.]

그녀는 백무열을 '싸부님'이라고 저장해놓았다.

띄어쓰기도 되어있지 않은 투박한 문자였지만, 미도는 그 문자를 보면서 각오를 다졌다.

반드시 후회 없이 화끈한 경기를 하겠다고.

미도가 주변의 경기장을 둘러보며 그를 찾았다.

아마 이곳 어딘가에 서 보고 계시겠지.

- 선수 입장.

"가기 전에 파이팅 한 번 하자."

주장 임창용의 제안에 한국 대표팀이 모두 모여 손을 한 곳으로 모았다.

하지만 어김없이 불협화음은 이어졌다.

"난 그런 유치한 거 안 하련다~"

"나도~"

먼저 캡슐로 들어가버리는 김동현과 한상혁을 보면서 모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임창용의 인상이 찌푸려지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저렇게 안하무인일 줄이야.

"신경 쓰지 말자. 우리만 잘하면 돼. 알았지?"

"네."

"자, 하나 둘. 셋."

"화이팅-!"

각자의 손이 하늘로 솟구쳤다.

선수들은 흩어져 마련된 캡슐로 향했고, 걸어가던 임창용이 몽크인 김해일을 불러 세웠다.

"해일아."

"예. 형."

"우리가 위험할 때 잘 들어와야 해. 조커의 역할이 그거야 알지?"

"알아요. 정말 위험한 순간에 나타날게요."

"그래. 그거면 됐다."

임창용이 중요한 조커 역할을 맡은 김해일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조커는 말 그대로 숨겨진 비장의 패 같은 것이었는데, 깃발 쟁탈전은 각 팀당 10명의 선수로 시작하지만, 한 팀씩 예비로 조커 선수를 등록할 수 있었다.

몽크인 김해일은 격투가와 사제 클래스가 합쳐진 하이브리드 직업을 가진 선수여서 그런 역할에 아주 어울렸다.

그는 대표팀 내에서 유일하게 광역 치료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고,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 팀을 구원하는 구세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제가 또 한다면 하는 놈이잖아요. 걱정 마세요."

김해일이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가는 제스처다.

"그래. 믿는다."

"저는 하느님을 믿지만요."

임창용이 피식 웃으며 뒤돌아 곧장 지정된 캡슐에 누웠다.

그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버튼을 눌러 접속을 했다.

캡슐의 뚜껑이 닫히며 어둠이 찾아왔다.

[아크스타에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제 시작이었다.

* * *

쏴아아-

한국 대표팀이 나타난 곳은 섬의 해안가 부근.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이곳이 무인도가 맞다는 것을 짐작하게 했다.

차례대로 한 명씩 접속했고, 그렇게 모든 나라가 접속을 마치자, 허공에 메시지와 함께 카운트다운이 나타났다.

곧이어 깃발 또한 생성되었다.

[기수가 되고 싶은 선수는 깃발을 잡으세요.]

[1:00]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카운트 다운.

"자 그럼 기수는 누가 할래?"

임창용이 모여든 선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최미도, 은정혁, 김현우, 박장소, 김철, 임사라, 김동현, 한상혁….

마지막으로 임창용의 시선이 멈춘 곳은 조커 선수로 등록된 김해일 대신에 들어온 후보 선수 중 한 명인 안승현이었다.

"저, 저는 안 할래요…!"

안승현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그래. 내가 봐도 넌 하면 안 되겠다."

선수들 사이에 가벼운 웃음꽃이 피었다.

어차피 안승현의 클래스는 서포터나 암살자에 가까웠다.

그는 마력으로 만들어낸 카드를 적들에게 던져 견제하고, 중력의 힘이 깃든 공을 던져 적들을 한 곳으로 끌어모으는 어그로 역할을 맡아야 했기에 지켜야 하는 기수로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가 기수를 해야 할 것인가….

"제가 하겠습니다."

앞으로 나선 것은 김현우였다.

"음,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요."

김철이 옆에서 거들었고.

"나도 찬성. 아니, 그냥 얘가 하는 게 맞아. 힐 있잖아. 성기사니까 단단하고 자기한테 힐하면 돼."

임사라가 확정을 지어버렸다.

과연 빠른 상황 판단력.

역시 자신의 동생답다.

"좋다. 그럼 현우가 기수를 하는 걸로 하…."

"어이쿠. 이런."

바로 그 순간.

갑작스레 튀어나간 김동현이 깃발을 낚아채 버렸다.

그는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손에 쥐어진 깃발을 내려다보곤 선수들을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발이 걸려 버렸네?"

[한국팀의 기수가 정해졌습니다.]

김동현이 야비한 입꼬리를 올리며 씩 웃었다.

잠깐의 정적이 선수들 사이에서 흘렀고, 이내 참아왔던 것들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임사라였다.

"당신 무슨 짓이야!"

임사라가 손가락질을 하며 김동현에게 삿대질을 했다.

그녀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했다.

"스읍. 어른한테 삿대질을 하면 쓰나. 그저 사고였다고. 발이 걸렸다니까?"

"뭐? 당신 그게 지금 말이라고…!"

"그만해."

"아니, 오빠.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 줄 알아? 저 자식이…!"

"임사라. 그만."

정색하는 임창용의 표정을 본 임사라는 그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정색을 할 때의 오빠는 무척이나 화가 난 상태라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임사라 또한 임창용의 말을 그대로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분해…! 저런 놈이 무슨 국가 대표라고…!'

임사라가 멀어지는 김동현과 한상혁의 뒷모습을 보며 이를 갈았다.

"이미 기수가 결정되었는데 어쩌겠나. 잘 좀 지켜주시게. 친구들."

"후후. 잘 지켜달라고."

김동현과 한상혁이 거들먹거리며 무리에서 이탈해 어깨를 돌리며 몸을 풀었다.

아마 저들은 이 장면이 관객들에게 송출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저러는 것이 틀림없었다.

지금 이 1분이라는 시간이 비밀이 되어야 관객들에겐 더 재미있을 테니까.

[0:19]

이미 카운트다운은 19초밖에 남지 않았다.

임사라는 분한 마음에 임창용에게 물었다.

"왜 막는 거야? 저런 놈을 왜 그냥 두고만 보는 건데!"

"……."

화를 내는 임사라에게 임창용은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오직 진실은 임창용만이 알고 있었으니까.

'하필이면 신태일 감독이랑 친척 관계라니….'

왜 그라고 저들이 아니꼽지 않겠는가.

하지만 신태일 감독은 한국 게임연맹에서 나온 사람이었다.

감독은 저들이 어떤 사고를 치더라도 그저 묵인했고, 임창용도 주장의 자격으로 감독에게 퇴출시켜 달라고 요구해봤지만, 연맹은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도리어 자꾸 그러면 자신들이 퇴출당할 수 있다며 협박까지 받았다.

그렇기에 임창용은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한술 더 떠서 이 사실을 다른 선수들에게 알려도 퇴출이라는 얘기까지 들었다.

거기에 임사라가 포함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제길….'

임창용이 양손을 부들부들 떠는 모습에 임사라 또한 착잡한 표정으로 입을 닫았다.

그때, 다른 선수들과 함께 온 미도가 그를 위로했다.

"이미 벌어진 일 어쩌겠어요."

"우린 우리의 할 일을 하면 되죠."

"전 괜찮습니다. 제가 기수를 잘 지켜볼게요."

"힘내요. 형."

어쩌면 절망적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선수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있었다.

내심 부끄러워진 임창용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선수들과 연습했던 명령을 내렸다.

"포메이션 A다. 기수를 지킨다."

"옛썰."

"라저."

"오케이."

한국 선수들이 김동현을 둘러싸고 포메이션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제 카운트다운은 10초를 채 남겨 두지 않고 있었다.

5, 4, 3, 2, 1….

[깃발 쟁탈전을 시작합니다.]

[그대들에게 행운이 함께하길.]

* * *

- 1년 같은 1분이 흐르고 있습니다.

- 과연 한국팀의 기수는 누가 될까요.

- 그 선택의 결과가 곧 밝혀집니다.

- 모두의 귀추가 주목되는 지금 이 순간….

- 경기 시작됩니다.

해설자들의 목소리와 동시에 화면 속 카운트가 사라지며 경기가 시작되었다.

보안상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기수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감독도, 관객도, 해설자도 모두가 그랬다.

"흠."

나는 팔짱을 낀 채 경기에 집중했다.

화면에는 각국의 선수들이 외곽지역에서 숲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나왔는데, 어떤 나라는 수풀에 숨어 매복을 했고, 또 어떤 팀은 가운데 위치한 피라미드를 향해 뛰어가는 팀도 있었다.

각국의 전략이 다른 것이 흥미진진했다.

과연 한국은 어떻게 하고 있으려나….

마침 한국팀의 화면이 띄워졌다.

- 이거 의외군요.

- 아무래도 한국팀의 기수가 김동현 선수인 것 같습니다.

- 전 김현우 선수가 하지 않을까 했습니다만.

- 아무래도 선수들 간의 회의를 거쳤으니 무슨 생각이 있지 않을까 싶군요. 그래도 나쁜 선택은 아닙니다. 진형이 단단해 보이는데요.

- 그렇습니다. 김동현 선수 또한 단단한 중갑을 입는 전사 클래스를 가지고 있죠. 김현우 선수가 김동현 선수를 지켜주고 조커인 김해일 선수를 응용한다면 충분히 길게 이끌어 갈 수 있으리라 봅니다.

- 우리 선수들의 단합력을 믿어봐야 할 시점이군요.

- 근데 큰일입니다. 지금 저곳은 브라질의 선수들이 매복을 하고 있는 곳인데요. 잘못하면 매복에 걸리고 말 겁니다.

- 아! 말씀드리는 순간 매복을 발견한 김철 선수의 저격총이 불을 뿜습니다!

- 타아아앙!

김철의 저격총이 수풀 어딘가로 겨누어지더니 불을 뿜어내며 관통의 마탄이 적들을 꿰뚫었다.

갑작스레 벌어진 전투에 관객들이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이며 소리쳤다.

"가즈아!"

"한국의 저력을 보여주는 거야!"

"힘내라. 한국!"

화면 속에서는 갑작스러운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방에서 야성미 넘치는 동물과 브라질 팀이 덮쳐왔고, 임창용과 임사라. 그리고 박장소가 가세하자 그야말로 특공대가 동물들을 학살하는 것 같은 장면이 나왔다.

- 대단합니다! 한국 선수들!

- 정부에서 오늘을 위해 서든 포스의 선수들을 영입했다던데 과연 놀라운 저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백발백중입니다. 특히 임사라 선수의 명중률이 놀랍습니다! 과연 전 국가 대표 사격 선수다운 모습이군요. 그녀의 마탄은 아무래도 유도 속성인 것 같습니다!

우와아아아-!

경기장을 가득 메운 한국인들의 함성이 귓전을 때렸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계속해서 경기에 집중했다.

…이상해. 뭔가 말려드는 느낌인데.

아니나 다를까.

예감은 정확했다.

- 아앗! 브라질의 주장 카를로스가 하늘에서 떨어집니다!

- 비스트 마스터가 거대한 새로 변신해 한국팀을 노립니다!

- 아! 아무도 주변을 신경 쓰느라 하늘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빠릅니다! 카를로스!

"아앗, 안 돼."

"어머나!"

"저런…."

옆에서 들리는 가족들의 탄식 소리와 함께 카를로스라 불린 브라질 선수가 날카로운 발톱으로 정 가운데 위치한 김동현을 노렸다.

당황한 김동현의 낯빛이 어둡게 물들었고, 모두가 그가 강력한 공격을 펼쳐 카를로스에게 반격을 가할 것이라 생각했다.

나 또한 그랬고.

관객들 또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장면이 나왔다.

- 앗! 김동현 선수가 김현우 선수를 밀치며 대신 잡혀가게 만들었습니다!

- 이게 무슨 일인가요! 큰일입니다! 포메이션이 무너집니다!

- 아아! 한국팀의 진형이 무너집니다! 큰일입니다!

- 김현우 선수가 공중에서 떨어져 즉사해버리고 말았습니다!

- 뒤늦게 김해일 선수가 조커로 등장합니다만 너무 늦었습니다!

- 아아! 김동현 선수!!

콰직!

순식간에 흑표범을 닮은 몬스터로 변신한 카를로스가 재빠르게 김동현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그 순간 시스템 메시지가 스크린 화면에 나타났다.

[한국팀이 깃발을 빼앗겼습니다.]

[한국팀이 탈락하였습니다.]

싸늘한 정적이 관객석을 휘감았다.

첫 경기부터 충격적이었다.

한국팀 첫 번째로 탈락.

승점은 빵점.

그야말로 최악의 스타트라고 할 수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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