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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240화 (240/375)

나 빼고 다 젊은이 240화

제240화

서울 유니온스퀘어에 마련된 한국 대표들을 위한 대기실.

지금 이곳엔 긴장감만이 가득했다.

차마 침 넘기는 소리도 조심스러운 이곳에서 선수들은 곧 있을 경기를 대비해 각자의 방식으로 파이팅을 다지고 있었다.

그들은 지난 시간 동안 합숙을 하며 나름의 지옥 같은 훈련을 거쳤고, 정부에서 마련해준 스케줄에 따라 종목에 따른 팀워크를 다지는 전략 연습과 개인 기량을 끌어올리는 실전 연습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실전에 들어서면 또 다를 것이니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은 그들로썬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그저 작년 월드 대항전처럼 한국 팬들에게 계란 투척만 안 당하길 바랄 뿐.

-휘~파람~♬ 파람~파람~♪

그리고 지금 미도는 그런 긴장감을 떨치기 위해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고 있었다.

그녀는 푹신한 의자에 몸을 뉘인 채, 눈을 감고 까만핑크의 노래에 맞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빠라바라빠라밤~♬'

언제나 느끼지만 이 걸그룹의 노래를 들으면 이상하게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치 상큼한 오렌지 탄산음료를 원샷 한 그런 느낌이랄까?

어쨌든 아까 얼핏 들었는데 경기 중간에 축하 무대로 까만 핑크가 초대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금 미도는 기쁨에 몸서리치며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다른 선수들 눈치 보느라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다.

팡팡!

그리고 그때, 이어폰을 뚫고 들어오는 파찰음이 있었다.

'아, 시끄러.'

미도는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한국 대표팀의 주장이라고 할 수 있는 서든 포스의 길드장 임창용이 있었다.

그는 구석에 마련된 샌드백을 구슬땀을 흘리며 때려대고 있었다.

한참이나 그를 째려보던 어느 순간.

갑자기 임창용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더니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미도는 화들짝 놀라며 못본 척 휘파람을 불어댔다.

우연의 일치인지 마침 나오는 노래 제목과 같았다.

잠시 뒤, 그녀의 어깨를 누군가 콕콕 찔렀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엄마야-!"

갑작스런 그녀의 비명에 모두의 시선이 꽂혔다.

미도는 얼굴을 붉히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도 그럴 것이 고개를 돌리자마자, 임창용의 얼굴이 5cm 간격을 남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마터면 뽀뽀를 할 뻔했다는 사실에 미도가 깊은 수치심을 느꼈다.

"무슨 짓이에요! 노, 놀랐잖아요!"

미도가 발끈거리는 표정으로 임창용에게 소리쳤다.

"하하하! 미안하게 됐다."

미도는 더 약이 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그는 전혀 미안해 보이는 표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

임창용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여인이 있었다.

빠악-!

"억!"

"이 미친 오빠야. 내가 그거 하지 말라고 했지. 굉장히 짜증난다고."

지금 한국 국가대표의 주장인 임창용의 뒤통수를 힘껏 후려치는 이 여자.

그녀는 바로 임창용의 하나뿐인 여동생이자, 서든 포스의 일원인 임사라였다.

참고로 말하자면 저번에 은정혁의 심장을 몰래 저격해 꿰뚫었던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미안해. 미도야."

"아니에요. 언니 괜찮아요."

정중히 사과하는 임사라를 보며 미도는 손사래를 쳤다.

사실 진짜 괜찮았다.

아까 임사라가 뒤통수를 후려갈길 때는 속이 다 뻥 뚫렸으니까.

참고로 임사라는 미도보다 4살 정도 위였는데, 그녀는 전 국가대표 사격 금메달리스트였다.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갑작스러운 병 때문에 은퇴를 했다던데, 자세한 속사정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녀는 아크스타 안에서도 익숙한 권총을 주무기로 쓰고 있었는데, 마탄의 속성은 의외로 사기였다.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유도'.

죽을 때까지 쫓아가거나 그런 건 아니었고, 그저 전방의 목표물을 기준으로 좌우로 60도만큼 휘어지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도 좋은 것임에는 틀림없다.

"아아! 아프다. 사라야! 오빠야. 악!"

"따라와. 오빠는 무슨. 넌 진짜 혼 좀 나야해. 딱 서봐. 샌드백으로 쓰게."

귀를 잡힌 채 샌드백으로 선 임창용이 임사라에게 복부를 강하게 두들겨 맞았다.

"억! 어억!"

그 모습에 선수들의 웃음보가 터지며 방안의 긴장감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

가끔 저렇게 여동생에게 잡 혀사는 모습을 보면 임창용이 주장이 맞나 싶다.

어쩌면 진짜 실세는 임사라 일지도.

'하여튼 웃긴 남매라니까. 나도 저렇게 정도를 때려보고 싶은데 나중에 언니한테 비결 좀 가르쳐달라고 할까.'

미도는 천천히 오늘 함께할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임창용, 임사라, 김철, 박장소를 지나 바로 건너편에 앉아서 낄낄 웃고 있는 김현우와 은정혁.

그리고 뒤쪽에서 게임기를 하고 있는 몽크 김해일.

또 저기 앉아서 신문을 보고 있는 꼰대….

"뭘 봐?"

마침 신문을 보던 자이언트의 길드장 김동현과 눈이 마주쳤다.

김동현이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

"뭘 보냐고 묻잖아."

"아니에요."

"하여튼 요즘 젊은 것들은 예의를 몰라요. 끙."

김동현이 곧장 신문을 접었고, 바로 옆에 앉은 자이언트의 부길드장 한상혁이 시끌벅적 웃는 대표팀을 향해 소리쳤다.

그 또한 손에 책을 들고 있는 상태였다.

"야. 조용 좀 해라. 집중 안 되잖아."

그제야 조용한 게 만족스러워진 한상혁은 다시 책 읽기에 집중했다.

미도는 그가 들고 있는 책의 제목을 보았다.

'러브 파라다이스? 저거 야설 아니야? 어휴, 꼰대에 진상에 변태에 아무튼 내가 싫어하는 건 다 하네. 다 해.'

미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난 합숙 동안 저들은 대표팀의 분위기를 자주 흐리곤 했다.

전형적인 꼰대 기질 때문이었고, 임창용도 두 사람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기 때문에 대우를 하고 있어 차마 뭐라고 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해 우리 이카루스와는 사이가 아주 안 좋았다.

아마 추측으로는 저번에 은정혁과 자신이 무참하게 그를 패배시켜서 창피를 준 것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아마 틀림없을 것이다.

이건 확신이다.

"다리 좀 치워라. 화장실가게."

갑자기 일어선 김동현이 미도의 앞에서 꼬장을 피웠다.

그녀는 또 한 번 머리에 힘줄이 솟았다.

"돌아가면 되잖아요."

김동현은 합숙 기간 내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시비를 걸어왔다.

마음 같아서는 한 대 때려주고 싶었지만 꾹 참아야 했다.

잘못해서 분란을 일으켰다가는 대표팀에서 퇴출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두 사람의 분위기가 싸늘한 정적에 휘감길 즈음.

구세주처럼 대기실의 문이 활짝 열렸다.

유니온 관계자였다.

"한국 선수들 슬슬 준비해주세요. 이제 곧 시작합니다."

* * *

요란한 소리가 가득한 경기장.

나를 포함한 가족들은 가까스로 경기 시작 10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간은 무려 2시간이나 남았고, 원래였다면 30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차가 무지막지하게 막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지하철을 탈 걸 그랬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죄송합니다. 들어갈게요. 죄송합니다."

며느리가 다른 관객들에게 사과하며 제일 앞 열에 위치한 특등석으로 움직였다.

우리들은 가까스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와, 엄청 잘 보인다. 그쵸?"

"그러게. 미도 때문에 우리가 이런 호사도 누려보네."

"우리가 딸 하나는 잘 키웠어요."

"엄마 나는?"

"너도 잘 키웠지~ 근데 좀 더 두고 봐야겠는 걸? 호호."

옆에서 가족들이 하하호호 웃었다.

그들은 잔뜩 기대감 어린 눈길로 눈앞의 무대를 바라봤다.

우리가 지금 특등석에 이유야 뻔하다.

선수들의 가족은 특등석에서 볼 수 있도록 유니온 측에서 배려를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순간.

우우우웅-.

품속의 핸드폰이 진동을 일으켰다.

…누구지?

나는 곧장 핸드폰 문자를 확인했다.

[유민석: 어르신. 경기장에 도착하셨습니까.]

…뭐야 이 녀석. 뜬금없이.

나는 귀찮아서 대충 답장을 보냈다.

저번에 손주들에게 배운 용어였는데, 문자에 써도 상관은 없다고 했다.

이거 두 개만 보내면 긍정의 의미라나 뭐라나.

참 살기 좋은 세상이다.

탁. 타탁.

[최춘택: ㅇㅇ]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여 답장을 보낸 나는 다시 무대에 집중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진동이 울렸다.

[유민석: 혹시 저번에 말씀드렸던 것 있지 않습니까. 다시 생각해주실 수 없으십니까?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언제든 어르신이 원하시면 지금이라도 제가 감독에게 전화를 해 대표팀으로 기용하겠습니다.]

아무래도 그는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린 모양이다.

…하아, 귀찮아 죽겠네.

끈질긴 면은 꽤 기특하지만 지금도 내 생각은 변함없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것.

나는 다시 핸드폰을 쥐고 문자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탁. 타탁. 탁.

이것도 손주들이 가르쳐준 말이었는데, 내 기억으로는 아마 거절의 의미였을 것이다.

내 손은 몇 번 두드리지 않아 문자 전송을 완료했고, 다시 뿌듯한 마음으로 무대를 바라봤다.

마침 사회자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지금부터 제2회 아크스타 월드 대항전을 시작합니다!

* * *

서울 유니온스퀘어 관계자 대기실.

유민석은 방금 도착한 문자를 보며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나도 냉정한 거절이었다.

아니, 시크하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유민석에게도 이렇게 성의가 없는 거절 문자는 처음이었다.

[최춘택: ㄴㄴ]

'아니, 이런 말들은 대체 어디서 배우신 거지…?'

상황에 맞게 사용하고 있는 걸 보면 지금 어르신은 무슨 뜻인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계셨다.

그것이 유민석은 더욱 당황스러웠다.

자신도 아내와는 아직 이런 카톡은 주고받지 않았으니까.

유민석은 다시금 문자 내용을 살펴보고는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마치 자신이 남편이고, 어르신이 권태기가 심하게 온 아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다시 한번….

탁타탁탁탁탁.

[유민석: 생각이 바뀌시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유민석은 체념하기로 했다.

아마 어르신이 나설 확률은 희박하겠지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지 않은가.

자신은 이미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고 여겼다.

지금부터는 하늘의 뜻일 테지.

"뭘 그리 열심히 보내나?"

마침 바로 옆에 있던 이석준 부장이 힐끔거리며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이석준이 빙그레 웃었다.

"아직 신혼이구만 신혼이야. 하하하."

"하하…."

아무래도 이석준은 아내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으로 착각한 듯하다.

뭐,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은 없지만.

"회장님 오십니다."

바로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문을 통과해 걸어오는 것은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었다.

'드디어 왔구나.'

유민석은 침을 꼴깍 삼키며 긴장했다.

아마 자신뿐만이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가 그럴 것이다.

이건명이라는 이름은 이제 비단 한국에서 뿐만이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이었으니까.

비록 말년이지만, 뒤늦게 피어난 하늘이라는 별명은 괜히 생긴 것이 아니었다.

그가 지금 가지고 있는 재력이라면 사실상 나라도 사고팔 수가 있었다.

만약 이건명 회장이 한국을 사려고 한다면 진짜로 살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유민석은 생각했다.

물론, 법 때문에 진짜 그러지는 못하겠지만, 어쨌든 뒤에서 돈을 이용해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하여튼 대단한 사람인 것만은 틀림없다.

"유 팀장은 오랜만에 보는군. 얼마만이지?"

이건명이 손을 내밀자, 유민석이 허리를 숙이며 맞잡았다.

"1년만입니다. 회장님."

"아아, 그래. 요즘 내가 시간 개념이 없어서 말이야. 죽을 때가 됐나보이."

"아직 정정하십니다."

"듣기 좋구만. 고맙네."

이건명이 기분 좋은 듯 씩 웃는 그때, 바로 옆에 있던 누군가가 굽신거리며 다가왔다.

2팀장 우성재였다.

"저도 있습니다. 회장님."

"오, 우 팀장이군. 그래. 자네도 반갑네. 고생이 많군."

"아닙니다! 항상 뼈를 묻겠습니다!!"

"하하하. 우 팀장은 여전히 충성심이 대단하이."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 충성심만큼 일도 잘 해야지. 잘못하면 뼈가 가루가 될 지도 모르니 말이야…."

뼈있는 이건명의 말에 우성재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명,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알아서 잘 하리라 믿네."

"네!"

이건명이 우성재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그 모습을 보며 유민석은 그가 건강이 좋지는 않지만, 정신력만큼은 놀라우리만치 대단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게 어디 죽어가는 자의 눈빛이란 말인가….'

이건명 회장이 말기 암에 걸린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실 지금 이렇게 걸어다니는 것도 원래는 안 되는 일이지만, 어째선지 그는 월드 대항전을 보러왔다.

어쩌면 이게 그를 볼 수 있는 마지막이 될지도….

-다음은 아크 스타를 개발한 유니온의 창설자. 이건명 회장님의 축하 말씀이 있겠습니다.

"다녀오마."

"제가 부축하겠습니다. 아버지."

"음, 그래."

이석준의 부축을 받아 무대로 향하는 이건명의 뒷모습을 보면서 유민석은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 모습이 어쩐지 마지막 생을 남겨놓고 스스로를 태우는 촛불처럼 보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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