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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239화 (239/375)

나 빼고 다 젊은이 239화

제239화

아련한 과거의 기억을 지나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내 망막에서는 이미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동백이가 죽은 이후.

녀석의 유언에 따라 나는 지난 시절을 모두 청산하고, 평범하게 살아갔다.

그렇게 아내와 결혼을 했고, 장인어른의 도움으로 요리사가 되어서 번듯하게 월운정을 물려받았다.

아이들이 태어났고, 이제는 손주들이 태어났다.

매년 찾아오는 납골당이지만,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라 그런지 이상하게 눈물이 많아진 것 같다.

"우리도 울보가 다 됐어. 크흠."

옆에 선 백무열은 코가 시큰한지 한 번 훌쩍거렸다.

그의 눈에 눈물이 살짝 고여 있었다.

어쩐지 그가 무슨 심정으로 저러고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백무열이 다시 말을 이은 건 그때였다.

"춘택아."

"왜."

"그거 아냐."

"뭘."

"네가 무각회를 떠나 평범한 생활로 돌아갔을 때, 사실 그때 네가 조금 미웠다. 이해도 안 됐고."

난 그저 말없이 그의 말을 들었다.

우리 둘의 눈은 유골함 옆에 있는 동백이와 찍은 사진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것은 어느 여름날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

나와 선영이.

그리고 김동백과 백무열이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때의 우리들은 그야말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청춘이었다.

"…근데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다. 동백이가 말한 게 무엇이었는지."

"그거면 됐지 뭐."

"그땐, 미워해서 미안했다."

"뭘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가자. 춥다."

"그려."

우리 둘은 말없이 납골당 밖을 향해 걸었다.

여전히 이곳의 분위기는 엄숙했고,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 속에서 백무열의 나직한 음성이 옆에서 들렸다.

"네가 나가고 나 혼자 조직에 남았을 때 말이야."

"……."

"그땐 정말 막막했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랬겠지."

"고지식한 성격이었던 내가 과연 네 뒤를 이어 무각회를 잘 이끌어 갈 수 있을까에 대한 부담감이 컸지."

"……."

"그래서 성격을 고쳤다. 네가 동백이의 빈자리를 느낄까 봐. 만날 때도 최대한 동백이처럼 생각하고 행동했었어."

그러고 보니 그날 이후로 백무열은 변했었다.

왜 그런가 했는데, 설마 그런 속사정이 있었을 줄이야.

그런 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다.

"…넌 잘해왔다. 얼마 전에 자릴 물려준 마석두란 놈도 괜찮은 녀석이더만."

"음, 벌써 만났냐?"

"메테우스에 있길래. 자경단이란 걸 만들어서 하고 있더라고. 기특한 녀석이야."

"이놈의 자식이 연락도 안 하고…."

백무열이 입술을 우물거리며 심통이 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그는 나와 헤어지면 곧장 마석두에게 전화를 할 것 같았다.

뭐, 그건 그거고.

그나저나….

"내일 올 거지?"

"내일?"

"쯧쯧. 벌써 치매가 왔나. 월드 대항전 말이야."

"아아~ 가야지. 가야지. 그렇다고 40년 지기 죽마고우한테 치매라니 너무한 거 아니냐?"

"네가 저번에 게임 속에서 나 용암 처먹는다고 치매냐고 했던 건 기억 안 나는가 보지?"

"크흠. 어디 보자. 내가 차 문을 열어 놓고 온 것 같은데…."

무안해진 백무열이 빠른 속도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앞서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저 피식 웃었다.

그나마 백무열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이렇게 웃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언제나 나는 감사한다.

"똥 마렵냐! 같이 가자!"

* * *

대망의 크리스마스.

오늘은 월드 대항전이 열리는 날이다.

미도는 이미 얼마 전부터 다른 선수들과 합숙 훈련을 해야 했기에 숙소 생활을 하고 있었고, 이른 새벽부터 나와 정도. 그리고 정현이와 며느리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정도 준비 다 했니~!"

김미경이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칠하면서 소리쳤다.

그런 그녀가 있는 안방으로 정도가 들어섰다.

차림새가 멀끔한 것이 멋진 훈남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너 장가가니? 뭘 그렇게 차려입었어."

"엄마는 어떻고. 왜 그렇게 화장을 해."

"얘는. 남자랑 여자랑 같니?"

김미경이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번 파운데이션으로 빠르게 얼굴을 두드렸다.

그 모습을 보며 장난기가 발동한 최정도가 효과음 비슷한 소리를 냈다.

"뚜시뚜시."

"뭐야 그게?"

"반에서 여자애들 파운데이션 두드리면 이렇게 효과음 내면서 놀려. 뚜시뚜시뚜시."

"호호호, 웃긴 다 얘. 너 여자 애들한테 인기 많니?"

"당연하지. 누구 아들인데. 엄마 닮았잖아."

"호호호호!"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안방을 가득 울렸다.

그런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나와 최강현은 서로 나란히 앉아 소파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지금 이곳 서울 잠실 유니온 스퀘어 경기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리고 있습니다. 첫 경기는 12시에 치러질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금 TV에서는 아크스타 월드 대항전을 생방송으로 특별 편성해서 보여주고 있었다.

어느 정규 방송을 틀어도 생방송이 나오는 것을 보면 과연 전 국민의 관심을 받는 대중적인 게임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듣자하니 대통령도 관람하러 온다던데.

"미도는 지금 저곳에 있겠죠…?"

TV를 보던 최강현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어제 개회식하면서 입장을 했었으니까. 태극기 들고 있는 모습이 멋지더만."

어제 저녁에 특별 편성된 월드 대항전의 개회식은 그야말로 전 세계인들의 축제였다.

다양한 기수들을 앞세워 각국의 대표들이 입장했고, 미도는 당당히 기수로서 대한민국의 이름을 드높였다.

지금 당장 시내를 걸어 다니면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로 붐볐는데, 그들은 모두 월드 대항전을 관람하기 위해 온 이들이었다.

정부와 유니온에서는 다행히 그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특별한 경기장을 재작년 월드 대항전을 위해 지었는데, 올해는 조금 더 확장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마나 떨릴까요."

"글쎄. 그건 모르지만, 그래서 우리가 가는 거 아니겠냐."

"하하. 그 말도 맞네요."

최강현이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첫째 녀석은 오늘부터 경기가 열리는 일주일 동안 가게를 잠시 닫기로 했다.

뭐, 당연한 일이다.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

"자. 다 됐어요. 어서 가요."

순식간에 화장을 마친 며느리가 종종걸음으로 안방에서 나왔다.

아무래도 그녀는 빨리 경기장에 가고 싶은 모양이다.

그런 며느리를 보며 나는 인자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안 서둘러도 된다. 아가."

"네?"

"아직 10시야."

월드 대항전의 시작까지는 2시간이나 남아있었다.

* * *

서울 강남에 위치한 유니온 본사.

전면이 확 트여있는 널따란 창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던 유민석은 작년에 열렸던 월드 대항전과 비교하며 작은 감탄을 내뱉었다.

"어우. 올해는 엄청 많이 왔네요."

"후후. 기업 차원에서 광고에 돈을 좀 썼지."

바로 옆에서 함께 아래를 내려다보던 부장 이석준이 끝없는 사람들의 인파를 둘러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그는 작년 친형이 개최했던 월드 대항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로 붐비길 원했고, 아버지인 이건명에게 전권을 위임받아 수십 국가에 월드 대항전 광고를 때렸다.

그 결과 다양한 나라에서 경기 도중 자국의 광고를 써달라고 연락이 왔고, 몇몇 국가와 계약을 체결하며 천문학적인 수익을 남길 예정이었다.

그 또한 이석준의 공이었기에 그는 더욱 차기 회장의 자리에 한 발짝 다가갔다고 할 수 있었다.

이석준의 표정은 그야말로 의기양양했다.

하지만 유민석의 얼굴은 좋지 않았다.

"표정이 왜 그래. 설마 아직도 그 일에 미련이 남은 건가?"

"아, 그게…."

유민석이 살짝 말꼬리를 흐렸다.

이석준이 말한 미련이란 저번에 자신이 건의했었던 최춘택 어르신을 국가대표로 모셔오는 것이었다.

꽤 괜찮은 조건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전화 한번 없어서 그는 약간 의기소침해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자신이 매달려보자니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그분의 성정으로 보아 괜히 그렇게 자극했다가 아예 수가 틀릴 수도 있었으니까.

"하하. 이 친구. 내가 정곡을 찌른 모양이야."

"…크흠. 죄송합니다."

유민석이 무안한지 헛기침을 했다.

그런 그에게 이석준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두드렸다.

"…뭐.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그 어르신이 연락이 없다면서. 나도 이번엔 정말 찬성을 했었네. 지금 생각해보면 자네 조언으로 이렇게 통합 리그를 연 것이 지금 보면 신의 한수였지. 덕분에 나도 아버지께 잘했다고 칭찬을 듣고 말이야. 하하하."

"그렇습니까. 축하드립니다."

"힘내라고 힘. 응? 하하."

이석준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어깨를 두드리는 그의 손길에는 자상함과 카리스마가 동시에 느껴졌다.

그런데 그때, 사무실의 전화기가 울렸다.

따르릉-!

이석준이 재빨리 수화기를 들었다.

"네. 이석준 부장입니다. 네. 네."

유민석은 이석준 몰래 옅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어르신에게 얘기를 꺼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민석은 아크스타를 진심으로 좋아했고, 흔히들 사람들이 말하는 국뽕이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올해 정부에서 은퇴한 특공대원들을 국가대표로 쓸 것이라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유민석의 생각이 맞다면 그것으로는 올해 월드 대항전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둘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번에 열리는 월드 대항전은 그야말로 별들의 축제기 때문이다.

'그들을 감당할 수가 없을 거야.'

총 16개국이 참가하는 월드 대항전.

올해는 무려 8인의 초신성이 모두 나올 예정이다.

아무리 파르타 공국의 마도 공학으로 무장했다고 해도, 다양한 전술적 이점을 가진 다른 국가들을 이길 수가 없을 것이라는 게 유민석의 생각이었다.

더군다나 우리 한국에는 스타 프루츠 능력자가 단 한 명도 없다.

그것이 가장 큰 차이였다.

'하아. 백무열 어르신이랑 김수정이라는 여자도 거절할 줄은 몰랐는데….'

유민석은 그녀가 반딧불 성애자(星愛者)임을 알고 있었기에 얼마 전 그녀에게도 국가대표로 뛰어달라는 제안을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며 단칼에 거절했다.

그것은 백무열도 마찬가지.

그렇기에 유민석은 지금 더욱 의기소침한 상태였다.

'그래. 마지막으로 간곡하게 부탁해보자.'

그렇게 생각하며 유민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던 순간.

"네? 뭐라구요…?"

약간의 놀라움 섞인 이석준의 목소리가 유민석의 귀에 들려왔다.

무슨 내용이기에 저렇게 놀라는 것일까.

유민석은 전화의 내용이 궁금했지만 들을 수가 없었다.

이석준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끄덕거렸다.

"네. 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네~"

이석준이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런 그에게 유민석이 갸웃거리며 물었다.

"누구 전화입니까? 꽤 놀라시는 것 같던데요."

"음, 아버지 주치의야."

"주치의요…?"

뜬금없는 주치의라는 말에 유민석은 더욱 궁금해졌다.

이건명 회장의 건강이 안 좋은 것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한데, 도대체 주치의가 뭐라고 했기에.

"흐음. 아무래도 긴장을 좀 해야겠는데."

"예? 그게 무슨…."

"아버지가 경기장에 오시겠다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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