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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238화 (238/375)

나 빼고 다 젊은이 238화

제238화

"큰형님!"

장두칠을 포함한 일원들의 외침이 폐공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들의 눈은 전부 휘둥그레져서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장두칠이 쓰러진 박환의 볼을 때리며 깨웠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박환은 정신을 잃어 기절한 상태였다.

"이런 개 같은…!"

장두칠이 품속에 손을 넣더니 접이식 단검을 꺼내 버튼을 누르자 날카롭게 빛나는 날붙이가 드러났다.

그는 단검의 끝을 최춘택을 향해 내밀었다.

"넌 뒤졌어. 썅!"

성난 장두칠이 달려들자, 최춘택은 눈을 빛내며 다시 한번 옷자락을 펄럭였다.

좌에서 우로.

그리고 뒤로 피하면서 단검의 사정거리에 들어가지 않도록 요리조리 피했다.

그 모습이 흡사 우아하게 춤을 추는 새와 같아서 불곰파 전원은 넋을 놓고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최춘택은 박환에게 그랬던 것처럼 장두칠의 빈틈을 찾아내 뒤돌려차기로 그를 날려버렸다.

"끄억!"

땅에 떨어진 단검이 챙그랑하면서 소리를 냈고, 최춘택은 떨어진 단검을 살며시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위기를 감지한 불곰파 일당이 어디서 가져왔는지, 옆에 있던 천막 더미를 걷어내더니 목각을 하나씩 들기 시작했다.

원형으로 둘러싸여 빠져나갈 곳이 없는 최춘택은 좋지 않은 예감에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 순간.

"야, 이 개자식들아!!"

쿠우웅!

폐공장의 입구에서 석유통이 쓰러지며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최춘택에게도 익숙한 음성이었다.

"뭐야. 저 자식이 여길 왜…?"

그는 김동백이었다.

분명 선영이가 위험할 수 있으니 오지 말라고 했건만, 어째서 그가 이곳에 나타난 것인지 최춘택은 알 수가 없었다.

김동백의 몸이 바람처럼 움직이며 자신이 있는 곳을 향해 뚫고 들어왔다.

그의 무쇠 주먹이 한 방에 한 명씩 불곰파의 진형을 흔들었고, 그 기세가 마치 성난 코뿔소 같았다.

"으랴아아!"

"저 새끼 막아!"

부두목 장두칠이 김동백을 가리키며 외침과 동시에 또 다른 익숙한 목소리가 자신의 귓전을 때렸다.

"춘택아!"

"……?"

이번에는 최춘택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김동백이야 원체 말을 듣지 않는 녀석이라고 쳐도 백무열은 늘 자신의 말을 묵묵히 잘 따라주었던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곁에는 어느새 밧줄에서 풀려나 멀쩡히 서 있는 유선영의 모습이 보였다.

최춘택은 그녀의 얼굴을 발견하곤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무열이 너…."

"얘기는 나중에 하자."

백무열이 자세를 고쳐잡으며 목검으로 선영이를 보호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 눈빛이 마치 성난 호랑이였다.

저런 상태의 백무열이라면 나 또한 쉽게 녀석에게 접근할 수가 없다.

지금의 그라면 누구보다도 믿을 수 있다.

저 눈빛이 저렇게 믿음직스러웠나.

"맘껏 날뛰어봐. 최춘택."

"다 죽여!"

"드루와! 드루와!"

불곰파 전원이 자신과 김동백 그리고 백무열을 포위하며 일제히 덤벼들기 시작했다.

최춘택은 그야말로 날아다녔다.

폭풍 같은 발차기가 적들에게 퍼부어졌고, 바람처럼 움직여 적들의 머리 위를 날았다.

그리고 그의 손에 쥐어진 단검이 번개처럼 출수하여 눈앞에 있는 적의 어깨를 찔렀다.

푸욱!

"끄아아악!"

곧장 단검을 뽑아낸 최춘택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평생 단검은 안 쓰기로 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겠지."

그래야 수적 열세가 조금이라도 극복이 될 것이다.

이것은 선영이의 안전과도 직결된 문제였기에 최춘택은 평생의 금기를 단 한 번만 깨보기로 했다.

곧장 단검을 역수로 잡으며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 자세를 잡았다.

단검을 들자마자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살기에 불곰파는 덤벼들지 못하고 일순 움츠러들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최춘택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내려앉았다.

"2라운드다. 새끼 곰들."

* * *

불곰파 잔당들과의 싸움은 빠른 속도로 끝이 났다.

그야말로 순식간이라고 할 수 있었고, 그중 가장 많이 쓰러트린 이를 꼽으라면 단연 최춘택이었다.

그의 정장에는 피가 흥건하게 묻어있었다.

당연하게도 최춘택의 피는 단 한 방울도 없다.

"너 단검을 그렇게 잘 썼어?"

백무열이 으아하다는 표정으로 최춘택을 보았다.

그 또한 방금 전 싸움에서 그가 싸우는 모습을 얼핏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아주 고도로 숙련된 단검술이었다.

각종 관절기와 타격기를 써서 적들의 사지를 부러트리고 무자비하게 베어버리는 최춘택의 모습은 그야말로 악귀와 같은 모습이었다.

백무열로서는 처음 보는 모습이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 정도면 전국구 칼잡이로도 손색이 없겠는데….'

만약 저번 단우성과의 일전에서 단검을 썼었다면 아마 최춘택은 좀 더 쉽게 승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백무열은 생각했다.

"…뭐, 그렇게 됐다. 사실 단검 쓰는 걸 그렇게 좋아하질 않아. 내가 이걸 쓰면 누군가는 꼭 다치거든. 그래서 아까도 치명상만 피해서 휘둘렀어."

"미친. 그게 더 무서운 말이다."

백무열은 그저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하기로 했다.

그때, 뒤에서 김동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나저나 이 녀석은 어떡하지?"

김동백이 쓰러져 기절해 있는 불곰파 두목 박환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야말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놈들은 의리도 없나.

두목을 버리고 가버리네.

"일단 병원에 데려가요."

나직하고 고운 목소리.

바로 옆에 서 있던 유선영의 음성이었다.

그녀는 아까 전 납치를 당했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평온한 모습이었다.

보통 이런 일을 겪고 나면 트라우마라던가 이런 게 생길 텐데 그녀는 그런 것도 없는 모양이다.

뭐, 이런 여장부다운 모습에 자신이 반했던 것이지만.

"일단 차에 싣고 병원으로 데려가자."

"흠. 그래. 야, 일어나봐. 얌마."

김동백이 박환의 볼을 찰싹 때렸다.

안 그래도 주먹이 큰 김동백인데 얼마나 찰진지 폐공장이 메아리칠 정도다.

"야, 일어나라니까. 자냐?"

짜악!

"으음…."

다행히도 박환은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그의 양 볼이 갓 지어낸 빵처럼 부풀어 올랐다.

박환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상체를 일으켰다.

"큭, 여긴 어디야."

"어디긴 어디야. 네 방에 있는 것처럼 편하게 드러누우신 폐공장이시지."

김동백이 친히 박환에게 이곳이 어디인지 불친절한 설명을 해주었다.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파악을 한 박환이 얼굴을 붉히며 이를 갈았다.

그는 흙이 묻은 옷을 털며 말했다.

"그놈들이 날 버리고 갔나…?"

"어. 칼빵 몇 번 맞더니 나몰라라 도망가던데?"

"…큭."

박환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그런 그를 향해 최춘택이 다가갔다.

"미안하게 됐다."

"…동정하는 건가? 난 이제 끝이다. 아마 이 일이 우리가 속한 상위 조직에게 금세 귀에 들어가겠지. 난 아마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할 거다. 손가락 하나쯤 잘리면 감지덕지겠지. 아마 팔이 잘리겠지만."

박환이 이끄는 불곰파는 도끼파에 속한 하부조직이었다.

그들의 법은 무자비했다.

일을 벌려서 성공했으면 독차지하던가, 실패하고 손이 잘려 조직에서 버려지거나 둘 중에 하나.

그리고 박환은 지금 자신이 실패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씨발. 존나 억울하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그 순간 박환이 품에서 재빠르게 권총을 내밀었다.

흑색의 총신이 달빛을 받아 섬뜩하게 빛났다.

설마하니 권총을 숨겨두고 있었을 줄이야.

최춘택은 유선영을 뒤로 보호하며 앞으로 나섰다.

"추, 춘택 씨."

"괜찮아. 걱정하지 마."

"후후. 끝까지 여인을 보호하다니. 과연 대단하군. 신사라고 불러줄까?"

박환이 세상을 포기한 듯한 광소 어린 표정으로 입꼬리를 씰룩였다.

"총 내려. 박환. 아직 너에게 기회는 남아있다."

"기회는 개뿔. 이제 내 인생은 끝이야. 가는 길에 너 하나쯤 길동무로 데려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아니, 그래도 살고는 싶으니까 네 녀석들 다 죽이고 잠적이나 해야겠다."

찰칵.

박환이 빠른 속도로 권총을 장전했다.

섬뜩한 소리가 폐공장에 나지막하게 울렸다.

백무열은 차마 멀리 떨어져 있어서 접근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이 정도 거리라면 자신의 목검보다는 총이 훨씬 빨랐다.

그런데 그때.

"쏴 봐."

김동백이 최춘택의 앞을 막아섰다.

그는 그대로 박환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위협을 느낀 박환이 땅을 향해 위협사격을 가했다.

타앙!

"오지 마. 이 새끼야!"

잠시 멈칫했던 김동백이었지만, 그는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

위험천만한 긴장감이 폐공장을 가득 메웠다.

오직 김동백의 구두 소리만이 울려퍼졌다.

또각. 또각.

"쏴."

"진짜 쏜다."

"쏴 보라고."

"이이익…!"

박환이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백무열이 재빨리 거머쥔 목검을 박환의 머리를 향해 던졌다.

목검이 박환의 머리를 때리는 그때, 기다란 총성이 울려 퍼졌다.

타아아앙-!

"씹…!"

박환이 날아온 목검을 보며 얼굴을 붉히던 그 순간.

최춘택은 재빨리 그를 향해 뛰어올라 앞차기로 총을 날려버리고, 그대로 1080도 회전차기로 그의 머리통을 갈겼다.

"큭!"

휘청거리는 그에게 손에 쥐고 있던 단검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난자했다.

최춘택은 관절기를 이용해 박환의 사지 근육을 모조리 끊어버렸다.

탁타탁. 탁. 탁탁. 푸슈슛!

"큭."

마지막으로 어깨에 단검이 꽂힌 박환은 온몸에서 자잘한 피를 뿜어내고는 다시 흙더미로 쓰러졌다.

박환은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그리고 그때, 뒤에서 유선영의 비명이 들려왔다.

"꺄악-!"

최춘택은 재빨리 고개를 틀었다.

그리고 그곳엔 가슴에 총상을 입은 김동백이 있었다.

최춘택과 백무열은 그곳으로 달려갔다.

"동백아!"

"김동백!"

유선영은 김동백을 무릎에 뉘이고 가슴에서 울컥거리는 피를 막기 바빴다.

그런 그녀의 눈에는 벌써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도, 동백 씨. 괜찮아요? 구급차. 구급차 불러요! 빨리!"

백무열이 재빨리 전화를 걸어 구급차를 부르기 시작했다.

"너 임마. 왜 나서서…!"

최춘택이 울컥거리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김동백이 울컥거리는 피를 토하며 말했다.

"…시바. 존나 아프네."

"아프지 그럼 안 아프냐. 안 아프면 그게 비정상이지."

"그런… 가…."

김동백의 의식이 멀어져갔다.

그는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맞았다.

아무래도 총알이 심장 쪽을 찌른 것 같았으니까.

김동백은 숨쉬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것을 느꼈다.

"허억. 너네 둘…. 꼭 결혼해라…. 알았…냐? 헉."

김동백이 최춘택과 유선영의 양손을 포갰다.

그런 그를 보며 두 사람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할게. 할 거니까 죽지 마. 임마. 살아서 우리 결혼식 와야 할 거 아니야. 안 그래?"

"가…야지…."

"꼭 와요. 동백 씨."

"그래…요…. 웁."

김동백이 또 한 번 피를 토했다.

아까보다 훨씬 많은 양이었다.

최춘택은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설마, 아니겠지.

여기서 죽지는 않겠지. 천하의 김동백인데. 아니겠지.

내 친구인 김동백인데.

가족 같았던 녀석인데.

"행복…해…라. 평범하게… 남들…처럼…."

불길한 김동백의 한 마디가 최춘택의 전신을 뒤흔들었다.

최춘택은 떨려오는 입으로 김동백에게 말하려 했다.

하지만 좀 더 빨라야 했던 것일까.

투욱.

김동백의 고개가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날의 자신도 무너졌다.

눈이 펑펑 내리는 폐공장 안.

김동백은 그렇게 싸늘한 주검이 되어버렸다.

그날은 미치도록 슬픈 크리스마스이브.

구슬픈 울음소리만이 하늘을 향해 메아리치던 날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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