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233화
제233화
미도가 내지른 회심의 찌르기에 자이언트의 길드장 김동현은 눈에 핏발을 세웠다.
"…큭. 두고 보자."
그 말을 마지막으로 김동현이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스르륵 흩어지며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는 파워스톤이 하나 떨어져 있었는데, 미도는 재빨리 그것을 주워들어 흡수했다.
"휴우."
마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한 전투에 미도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치열한 접전이었다.
아마 이런 걸 두고 번갯불에 콩 구워먹 듯 싸웠다라고 표현하지 않을까.
그때, 뒤에서 은정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생했어."
"아냐. 고생은 무슨. 고생은 오빠가 더 한 거 같은데?"
미도가 은신을 해제하며 나타난 은정혁의 피투성이 옷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은정혁은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그는 화살을 모두 화살통에 챙겨넣고는 미도에게 쓸만한 한손검 한 자루를 넘겨주었다.
"아까 싸웠던 녀석들 중 한 명이 떨어트리더라."
"오, 땡큐. 오빠. 잘 쓸게."
[잘 벼려진 쓸 만한 한손검]
등급: 희귀
내구도: 89/100
공격력: 30
제법 날카로운 철제 한손검이다.
무려 희귀등급을 가진 검이었다.
미도는 손에 쥐고 있던 나무 목검을 미련 없이 땅에 던져버렸다.
나무 목검이 손에 익긴 하지만, 그렇다고 높은 공격력을 포기할 정도로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슬슬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
은정혁이 숲을 돌아보며 말했다.
해안가에 자리해 있던 독 안개는 어느새 이곳 숲을 덮고 있었다.
머지않아 이곳은 독 안개에 침식되고 말겠지.
그것은 아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최종적으로 만나야 할 곳은 저 한라산 정상에 위치한 널따란 분지가 될 것이다.
"아직 지도 있지?"
"응. 멀쩡해."
미도가 떨어진 생명력을 채우기 위해 포션을 마시며 대답했다.
"지름길 찾을 수 있겠어?"
"크으으. 맡겨줘. 내가 그거 전문이잖아. 요즘."
미도가 맥주를 마시듯 포션을 깨끗이 비우며 자신 있다는 듯 해맑게 웃었다.
햇살 같은 그 미소를 보며 은정혁은 이유 모를 안심을 느꼈다.
언제나 느끼지만, 그녀의 저 해맑은 웃음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렇기에 미도가 여자지만 다른 길드원들과 잘 어울리는 것이겠지.
뭐, 사실 그녀에겐 아재 같은 매력이 더 크다.
"빨리 가자. 벌써 독 안개 넘어온다."
"헉. 벌써? 뛰자!"
미도와 은정혁은 섬의 깊숙한 곳으로 뛰기 시작했다.
뛰면서 은정혁은 그녀에게 당부했다.
"최단 루트로 가서 우리가 먼저 유리한 고지를 점해야 해."
"무슨 말인지 알거든요? 뭐, 한두 번 호흡 맞춰본 사람처럼 얘기하네. 섭섭하게시리."
"하하. 미안. 미안."
두 사람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저 높은 한라산의 정상을 향해 하염없이 뛰어갔다.
* * *
파사삭.
나뭇가지를 헤치는 소리가 산중에서 들렸다.
그가 입은 갑옷은 하얀 판금에 금칠이 정성스레 되어있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성기사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가 거머쥔 대검과 입고 있는 갑옷에는 치열한 전투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왔다.
"허억. 어디로 가야 하는 거야."
김현우가 숨을 헐떡거리며 땅에 주저앉았다.
이곳. 그러니까 자칭 한라산은 생각보다도 산세가 험했다.
마치 미로 같다고나 할까.
그냥 시작하자마자 그곳으로 가서 힐이나 쓰며 버텨야겠다고 생각한 김현우는 그저 쉽게만 생각하고 들어왔다가 큰코다치는 중이었다.
게다가 경기 중반 즈음에 만났던 박태현은 멍청하게도 혼자서 적들의 가운데로 들어가서 나대더니, 결국 탈락에 이르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적팀에는 치유를 해줄 수 있는 사제 클래스가 있었고, 또 다른 이들은 이런 생존에 유리한 여러 가지 암살 스킬들을 가지고 있었기에 김현우의 입장에서는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는 가까스로 이곳 한라산으로 그들을 피해 도망쳤지만, 아마 이대로 가다가는 따라 잡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길드원 대부분이 특수부대 출신이라니…. 완전 반칙이잖아.'
그들은 올해 처음 참가한 신인 길드였다.
듣자 하니 작년 월드 대항전에 부진했었던 것을 대비해 한국 정부에서 뒤늦게 전역한 특수부대원들로 구성해 만들어낸 길드가 있다는 것은 김현우도 뉴스거리로 접한 적이 있었다.
한데, 하필이면 처음 맞닥뜨린 것이 그들일 줄이야.
'하필이면 길드 이름도 서든포스라니….'
지금은 망했지만, 옛날에 한창 유행하던 FPS 게임의 이름이었다.
그런데 웃긴 것은 길드원 전원이 특수 용병들처럼 총을 주 무기로 쓰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마 그들은 전원 마도 공학의 성지인 파르타 공국 출신임에 틀림없었다.
"윽…."
김현우가 허벅지에 입은 총상을 느끼며 신성한 마력을 통증이 느껴지는 곳으로 흘려보냈다.
루페온의 기사로서 얻은 따사로운 자비의 힘이 상처에 깃들며 평온한 느낌이 들었다.
[따뜻한 자비의 힘이 당신의 몸을 치유 중입니다.]
"후우. 마력도 거의 다 써가네."
사회자의 설명에 따르면 너무 많은 스킬의 남발과 정확한 신체 능력의 검증을 위해 마력을 회복할 수 있는 포션은 이곳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했었다.
따라서 지금 마력이 다 떨어지면 김현우의 입장에서는 이제 버틸 수단이 더 남지 않은 것이다.
"상자도 하나밖에 못 찾고, 나도 참 운이 없네."
그렇게 김현우는 자신의 불운을 한탄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느새 총상을 입었던 곳은 불완전하지만 약간의 치료가 되어있었다.
그도 온전히 총상을 치료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맞았던 총알에는 출혈 속성이 걸려 있었다.
김현우는 다시 떨어지기 시작하는 생명력을 확인하면서 지친 몸을 이끌고 한라산의 정상으로 다시 움직였다.
그렇게 10분이 흘렀을까.
"여기가 정상인가?"
가까스로 한라산 정상에 이를 수 있었다.
실제로 제주도에 있는 한라산과는 그 모습이 게임 세상인지라 사뭇 달랐지만, 그래도 훌륭한 경치를 자랑하는 것만큼은 똑같은 것 같았다.
김현우는 밀려오는 독 안개가 마치 색깔 있는 구름처럼 보여서 생각보다 꽤 운치 있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왔군."
섬뜩하고도 낮은 목소리가 김현우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파사삭.
나뭇가지를 밟는 소리가 뒤가 아닌 앞과 옆에서도 들려왔다.
김현우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자신이 포위되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늦었구나…!'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저들은 특수부대 출신인 만큼 이런 미로 같은 산세를 금세 파악해 통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정확했다.
"많이 놀란 모양이야. 아까 말했듯 우리는 대부분 전역한 특수부대 출신이라네. 이런 산 하나쯤 파악해 지름길로 오르는 것쯤 우리에겐 일도 아니지."
'Sky-Dargon'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서든포스 길드장 임창용이 천천히 걸어오며 손에 쥔 권총을 장전했다.
찰칵.
"그래도 대단해. 이카루스의 길드장이라지? 같은 길드장으로서 그 끈질긴 생명력만큼은 본받고 싶을 정도야. 경의를 표하네. 뭐, 아마도 직업의 차이가 크겠지만."
그렇게 말을 이은 임창용이 권총의 총구를 김현우에게 겨누었다.
동시에 주변을 포위한 또 다른 4명의 서든포스 길드원들이 똑같이 총구를 겨누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총을 가지고 있었다.
대물 저격 총에 무슨 바주카포에….
'어후, 살벌하네. 난 여기 까진가.'
김현우가 체념한 듯 눈을 감았다.
임창용 또한 그런 김현우의 판단을 옳다고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적장에 대한 예우로 김현우의 머리를 겨냥해 한 방에 보내주기로 했다.
파르타 공국에서 총을 쓰는 사수들은 각기 다른 총알의 속성을 타고 나는데, 그는 아까 전 김현우에게 상처를 입혔던 '출혈'이라는 속성을 총알에 입힐 수 있었다.
이윽고, 김현우와의 거리가 2미터 남짓 남았을 즈음….
두두두두두!
김현우의 귓가에 익숙한 화살이 쇄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익숙한 궤도를 그리며 날아오는 화살을 보며 빙그레 입꼬리를 올렸다.
그 속도가 마치 머신건과 같았다.
* * *
김현우가 정상에 도착하기 바로 3분 전.
동시에 다른 방향의 지름길에서 올라온 미도와 은정혁이 조심스레 산 정상에 도착해 중앙의 널따란 분지를 살폈다.
은정혁은 은신으로 정찰해 그곳에 적들이 포위를 하고 있음을 눈치챌수 있었고, 조금은 돌아가도 습격에 대비할 수 있는 안전한 곳에 두 사람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고 있었다.
"뭐야. 저거 현우 오빠 아니야?"
"저 멍청이가 왜 중앙으로 대놓고 나오는 거야. 다친 거 같은데?"
"안 되겠다. 내가 나가서…."
"잠깐. 선제공격은 내가. 셋을 세면 곧바로 뛰쳐나가."
"알았어."
미도가 거머쥔 한손검에 힘을 주었다.
은정혁은 활에 화살을 걸고 활시위를 당겼다.
그리고 머신 에로우의 힘을 담아 활시위를 놓았다.
"셋."
두두두두두!
마치 화살이 줄지어 날아가듯 일직선의 궤도를 그리며 김현우의 앞에 있는 남자에게 화살이 쇄도했다.
은정혁은 활을 컨트롤해서 5발은 그리 보내고, 나머지 5발은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적들을 향해 날렸다.
"카운트가 너무 빠르잖아!"
투덜거리며 외친 미도가 가장 가까운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운이 좋게도 그곳엔 적팀에서 유일한 사제가 그곳에 있었다.
미도는 빠르게 화살에 맞은 사제의 등을 베며 목을 날려버렸다.
"아싸. 1킬!"
그렇게 외침과 동시에 서든포스의 길드장 임창용의 외침이 들렸다.
"제길. 죽여!"
"와, 미친. 다 총이네."
자신을 향해 겨누어지는 바주카포와 저격총을 보며 미도가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그런 그녀를 구하기 위해 김현우가 남아있는 마력을 쥐어짰다.
"그랜드 크로스."
쿠구구구구.
그가 땅에 박은 대검에서 피어오른 하얀 불꽃이 십자가로 퍼져나가더니 이내 원형을 그렸다.
범위 안에 속한 존재를 성스러운 별의 힘으로 태워버리는 전방위 범위 공격 스킬.
"내 길드원 건드리지 마."
"이런…!"
임창용이 김현우의 스킬 발동을 멈추게 하려고 그의 머리로 총을 발사했지만 이미 늦었다.
방아쇠를 당김과 동시에 김현우가 발동한 그랜드 크로스의 성화(星火)가 정경을 휘감았다.
화아아아악!
안타깝게도 김현우는 발사된 총을 피하지 못한 채 장렬히 전사했다.
"현우 오빠!"
미도의 외침은 백색의 불꽃에 닿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김현우가 죽었기 때문이었을까.
그가 발동했던 그랜드 크로스는 오래 유지되지 못한 채, 약간의 데미지만 입히며 서든포스 길드원들을 모두 살려 놓았다.
치명상을 입은 서든포스 길드원들이 이를 갈며 백색의 화염을 뚫고 나왔고, 그들의 손에 각기 거머쥔 총을 미도와 은정혁을 향해 내밀었다.
타아아앙!
관통 속성의 총알을 가진 서든포스의 부길드장 김철의 저격총이 불을 뿜으며 미도의 심장을 꿰뚫었다.
장전 속도가 느리지만, 그 파괴력만큼은 무지막지한 위력을 가진 총이었다.
파르타 공국 출신의 총사는 마법처럼 화려하고 광범위한 공격은 없지만, 이런 1대1의 상황에서는 굉장한 힘을 발휘하곤 한다.
미도가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탈락하고 말았다.
콰아아앙-!
그리고 연쇄의 속성을 가진 박장소라는 이름을 가진 거한의 바주카포는 은정혁이 있던 자리로 탄이 날아가더니, 그야말로 연쇄 폭발을 일으키며 어마어마한 범위 공격을 퍼부었다.
그는 서든포스에서 유일하게 넓지는 않지만 그래도 범위 공격이 가능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별명은 '박장대소'였다.
"으하하하하!"
박장소가 그야말로 박장대소를 하며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은정혁을 보며 무척이나 좋아했다.
하지만 은정혁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는 은신을 한 채, 자신의 마지막 세 번째 스킬을 발동하고 있었다.
"빛의 속도를 가진 화살을 맞아 본 적이 있나?"
순간 하늘에서 빛이 번쩍였다.
임창용이 경악 어린 표정을 지으며 이를 악물었다.
"이런…!"
"라이트 폴(Light Fall)."
쏴아아아아-!
은정혁의 모든 마력을 쏟아부은 빛의 폭포가 서든포스 전원에게 쏟아져 내렸다.
바야흐로 빛의 재앙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