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228화
제228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전투였다.
다시금 떠올려도 방금 있었던 상황은 너무나도 짜릿했다.
과연 펜릴은 레무스와 로믈라나의 아들이 맞는 것 같았다.
"퉤. 드럽게 맛없군."
펜릴이 카르탄의 해골을 질겅질겅 씹더니 왼쪽으로 뱉어냈다.
나는 현재 그의 양 귀를 붙잡은 채 스파이더 클라이밍으로 가까스로 서 있었다.
아까 전 펜릴은 하나 남은 오른팔로 카르탄이 약해진 틈을 타서 그야말로 온몸을 실은 회심의 찌르기를 날렸다.
그리고 곧바로 손을 뽑아낸 펜릴은 그대로 카르탄의 목을 잡고 물어뜯고는 이어서 머리통을 화끈하게 뜯어내버렸다.
그리고 이어진 상황은 지금 내가 보는 그대로다.
"크르릉. 컹!"
"컹컹! 컹!"
"크와아악!"
흑야랑들에게 물어뜯기고 냉독에 의해 느려진 언데드들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림자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공격을 퍼부으니, 지능이 거의 없다시피 한 하위급 언데드들의 입장에서도 당하기만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조종하는 네크로멘서를 견제하는 이는 다름 아닌….
"덤벼라. 이놈들아! 쫄았냐?"
저 멀리 네크로멘서들에게 사정없이 검기를 뿌려대며 접근하는 백무열이었다.
그야말로 일자무식한 돌진에 네크로멘서들도 혀를 내두르는 중이다.
"쯧쯧."
그 어떤 언데드도 백무열을 이길 수가 없었다.
각종 죽음의 마법이 퍼부어졌지만, 백무열은 모조리 갈라버리거나, 피해버리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어째 헤라클레스랑 하는 짓이 똑같냐.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에 있는 헤라클레스는 그야말로 무식한 힘자랑만 하는 녀석이었다.
문제는 그 힘이 얼마나 가공할 만한지 괴물의 목을 졸라 죽일 정도라는 것이지만.
어쨌든 백무열은 아직 성장의 여지가 엄청나게 많이 남아 있었다.
헤라클레스의 힘은 저 정도가 끝이 아니니까.
아직 진짜 힘의 절반도 나오지 않았고, 새삼 그때의 백무열은 얼마나 강해져 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을 정도였다.
달그락 달그락.
그때 죽은 줄 알았던 임모탈 나이트 카르탄의 얼굴이 움직이며 다시 달라붙으려는 것이 보였다.
이어서 다친 곳도 점점 수복이 되고 있었다.
어쨌든 저 괴물도 언데드니까 다시 살아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소환자를 잡으면 되는 일이겠지.
"음, 그나저나 저놈은 꼭 잡아야겠는데."
나는 아까 전 피리를 불던 녀석을 흘겨봤다.
초감각을 시력에 집중해 본 그 피리는 내가 잘 아는 것이었다.
천상을 연주한 악마의 피리.
언젠가 포트렌의 암시장에서 미노타의 폭염심장에 대한 경매를 하던 중 지금은 죽어버린 에이단과 나눈 대화에서 저걸 130코인을 주고 사간 사람이 있단 걸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근데 설마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미안하지만, 그건 들고 갈 수 없다."
츠츠츳.
나는 한 손에 흑야의 화살을 만들어냈다.
이젠 부작용이 없어지니, 더욱 강력해진 힘이 깃드는 것이 느껴졌다.
검은 냉기 폭풍이 휘몰아치는 흑색의 화살.
부작용은 없어졌어도 아마 마력 소모는 그대로일 것이다.
뭐, 그래도.
"상관없지만. 흐읍!"
쒸이이이익!
엄청난 회오리를 동반하며 수많은 얼음송곳들을 동반한 흑야의 화살은 그대로 피리를 줍기 직전인 네크론에게로 쇄도했다.
난데없는 고드름 폭풍우에 네크론을 포함한 죽음의 향취 길드원 전원이 당황했다.
"이, 이런…!"
"이건 막아야 해!"
"어둠의 장막을 펼쳐!"
하지만 소용없었다.
떨어지는 흑야의 화살은 그대로 네크론의 몸통을 관통했고, 이어지는 얼음송곳의 세례는 다른 네크로멘서들을 사정없이 공격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검은 폭발에 하늘로 솟구치는 얼음 폭풍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 모든 것을 찢어발겨 버렸다.
쏴아아아아-!
그 모습이 마치 믹서기를 보는 듯하다.
그리고 잠시 뒤, 폭풍이 흩어지며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네크론이 떨어트린 피리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언데드들도 모두 먼지가 되어 흙 속으로 사라졌다.
카르탄 또한 마찬가지.
"…끙, 나 너무 센 거 아닌가."
이러다 저번처럼 아크스타 개발자 놈들이 찾아오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을 살짝 해보는 나였다.
재빨리 땅으로 내려온 나는 피리를 주워들었다.
[☆스타피스, '천상을 연주한 악마'의 피리를 획득하였습니다.]
"이런 힘이 있었으면 진즉에 썼어야지. 뭐하다 이제 쓰는 게야?"
뒤에서 백무열이 목검을 어깨에 올린 채 혀를 차며 다가왔다.
나는 그저 피식 웃을 뿐이다.
그리고 그때였다.
띠링-!
[태양의 정령, '솔라'의 2차 진화가 완료되었습니다.]
* * *
아.스.라 커뮤니티가 충격에 휩싸였다.
다크울프의 힘 앞에 상위권 길드인 <죽음의 향취> 는 상대도 되지 않았고, 그야말로 농락당했다고 표현해야 옳을 정도로 철저히 짓밟혔다고 볼 수 있었다.
그 압도적인 무력은 커뮤니티의 뜨거운 냄비로 떠올랐다.
-와 미쳤다.
-역시 다크울프가 짱임.
-이 정도면 마이클에 견줘도 손색이 없지 않음?
-아니지. 이건 다 스킬빨이고, 템빨이지. 가진 능력이 워낙 대단해서 그렇지 싸우는 건 별로 못하잖아?
-윗님 콜로세움 못 보셨음?
-권왕이랑 삐까 뜨는 거 못 봄?
-헛소리 하고 있네. 다크울프가 싸움을 못한다고?
-어디서 개가 짖나.
이제 언론은 물론이고, 커뮤니티나 게임 내에서도 다크울프를 실력으로 깔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물론, 스킬과 아이템이 받쳐주는 것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그렇다고 싸움을 못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콜로세움에서 이미 증명된 상황이었고, 실력자가 템빨과 스킬빨을 갖추고 있으니 사기캐나 다름없다고 유저들은 떠들어댔다.
네크론이 올렸던 실시간 영상은 커뮤니티 동영상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젠장! 젠장! 젠장!"
커뮤니티를 보면서 분개하고 있는 이 남자.
아크스타에서는 '네크론'이라는 아이디를 쓰지만, 그 실제 이름은 '루이 카셀'이라는 이름을 쓰는 프랑스 미청년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분노를 터트렸다.
"크으으윽! 다크울프…!"
루이 카셀은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몸이 떨려왔다.
그는 두 손을 모아 최대한 냉정을 유지하기 위해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후우…."
그렇게 숨을 내뱉으며, 그는 아까 전 죽었을 때 봤던 메시지를 떠올렸다.
[강력한 죽음의 기운이 당신을 잠식합니다.]
[리치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앞으로 3번을 더 죽으면 완전한 리치가 됩니다.]
[더욱 강력한 죽음의 힘을 다룰 수 있습니다.]
루이 카셀은 마지막 메시지에 희망을 걸었다.
'더욱 강력한 죽음의 힘을 다룰 수 있다라….'
어쩌면 이것은 그의 입장에서는 더 좋은 일이 된 것일지도 몰랐다.
스타피스마저 잃어버린 상황에서 더욱 강력한 죽음의 힘을 다룰 수 있게 된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이번 월드 대항전에서 더없이 좋은 일이 될 수 있었다.
물론 약간의 수치스러움은 감수를 해야겠지만 말이다.
[속보. 프랑스의 흑장미, 다크 울프에게 대패!]
이미 프랑스의 언론 또한 자신의 패배에 대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흑장미라는 것은 자신을 가리키는 별명이었고, 네크로멘서의 어두운 기운과 장미를 닮은 자신의 외모를 일컬어 흑장미라는 별명을 얻은 루이 카셀이었다.
그는 이 별명을 생각보다 엄청 좋아했다.
'그래. 이까짓 굴욕 참아주지. 다크울프. 네가 월드 대항전에 나오길 고대하겠다. 그땐 반드시 복수하겠다. 반드시!'
* * *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다시 한 주가 흘렀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계속해서 사냥을 반복했다.
당연히 백무열도 함께였고, 그는 나를 보조하며 착실하게 레벨업을 했다.
원래는 내가 백무열을 보조하던 입장이었지만, 솔라의 진화 이후로 우리의 관계는 완전 역전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솔라가 얻은 미노타의 능력이 그야말로 사기적이었다.
[폭염의 군세][액티브]
등급: 영웅
쿨타임: 1시간
지속시간: 40분
폭염으로 이루어진 불의 전사(타우루스)들을 불러낸다.
주변에 화염이 가득할수록 더욱 많은 전사들이 탄생합니다.
원래 이 스킬은 펜릴을 부르는 것보다는 약한, 완벽한 하위호환의 스킬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펜릴을 부르는 것에는 하루에 한 번이라는 제한이 있었다.
폭염의 군세는 그보다는 약하고 다시 살아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주변의 용암 지대 덕분에 거의 오백에 이르는 숫자를 한꺼번에 거느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당연히 펜릴을 부를 정도로 강력한 적은 현재 없었기에 폭염의 군세를 이용해 불칸 지대를 휩쓸고 다닌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내 레벨은 어느새 180을 넘기고 있었다. 백무열은 170 정도.
그리고 그런 우리를 따라다니는 불청객이 하나 있었는데….
"저 처자는 언제까지 우리를 따라다니려는지 모르겠군."
백무열이 뒤편에서 슬금슬금 따라오는 '레이나'라는 여인을 보며 못마땅하게 투덜거렸다.
그런 그의 투덜거림에 나는 뒤편에 있는 레이나를 힐끔 보았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더니, 까맣게 타버린 나무의 뒤로 몸을 숨겼다.
하지만 저런다고 숨겨지겠는가.
절대 안 숨겨진다.
"흐음."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지난 시간들을 떠올렸다.
네크론을 포함한 죽음의 향취 길드원들과의 혈전 이후.
그것은 커뮤니티에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그것은 둘째인 정현이가 알려준 내용이었고, 저곳이 어디인지 궁금해하는 유저들이 찾아오기도 할 정도였다.
당연하게도 좋은 의도로 찾아온 것은 아니었고, 싸움을 걸러 오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폭염의 군세로 쉽게 물리치긴 했지만, 그래도 썩 달갑지는 않았다.
하지만 설마 이 여인이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는 자신에게 싸움을 걸러 온 것이 아니었다.
"저기…."
레이나가 쑥스러운 듯 이곳을 향해 쭈뼛거리며 걸어왔다.
하지만 몸매가 노골적으로 훤히 드러나는 저 드레스는 나와 백무열의 헛기침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큼큼!"
"험험!"
그런 우리의 반응이 재밌는지, 레이나는 자신의 치마를 살짝 올려 하얀 다리를 드러냈다.
저 망할 미인계가 또 시작됐구만.
"우리 길드에 들어와요. 그럼 내가 정말 기쁠 것 같은데…."
검지로 아랫입술을 질끈 누르며 말하는 레이나의 고혹스러운 표정은 그야말로 위험천만했다.
잠깐이지만 심장이 쿵 내려앉을 뻔했다.
백무열의 귓속말이 온 것은 그때였다.
- 백무열: 야. 저 정도면 들어가 줘야 되는 거 아니냐. 정성이 갸륵하다 갸륵해.
- 잭슨: 거참. 안된다니까. 난 이미 길드에 들었어. 미도가 있는 이카루스인지 뭐시기에.
- 백무열: 에이 모르겠다. 네가 알아서 해라.
그렇게 말한 백무열은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몬스터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애초에 레이나의 목적은 나였지만, 백무열에게도 길드에 들어오라는 제의를 안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한 것처럼 백무열에게 집착하진 않는 듯했다.
아니, 애초에 내게만 집착을 하는 이유가 뭔질 모르겠네.
"저번에도 말했듯 나는 길드가 있소."
"어머, 탈퇴하면 되잖아요. 당신을 빼앗아간 그 나쁜 길드가 어디죠?"
"……."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 정도로 집착을 하는 여자라면 분명 미도가 있는 이카루스에도 해코지를 할 것이 뻔해 보였다.
여자란 한을 품으면 그 정도로 무서운 존재들이니까.
그런데 그때, 며느리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 아버님. 잠깐 캡슐 밖으로 나와 보시겠어요? 손님이 오셨어요.
- 손님?
- 네. 유니온에서 오셨다고….
유니온에서 대체 또 무슨 볼일로 온 거지.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일단은 만나 보면 알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알겠다고 말한 뒤 곧장 백무열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 잭슨: 손님 와서 잠깐 나갔다 올게. 사냥하고 있어.
- 백무열: 알았다.
나는 바로 로그아웃을 했다. 점멸하듯 흩어지는 내 몸을 보면서 레이나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도, 도망치는 건가요? 내게서?"
"그렇소. 그러니 헛된 집착하지 말고 그만 돌아가시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게임 세상에서 사라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