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227화
제227화
아래에서 인사를 해오는 펜릴을 보면서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펜릴이라니, 내가 알던 그는 이 정도의 크기가 아니었다.
아니, 그것보다 대체 어떻게 이곳으로 온….
"많이 놀란 모양이군."
펜릴의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당장에 주변에 있던 스켈레톤들이 펜릴의 다리를 타고 기어오르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에게 물었다.
"도와주러 온 거지?"
"그래. 인사는 나중에 하자고. 꽉 잡아라."
그 말과 동시에 나는 펜릴의 갈기를 강하게 잡았다.
펜릴의 주변으로 형용할 수 없이 아득한 어둠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갈기에 달라붙기 시작하더니 마치 고슴도치처럼 사방으로 어둠의 가시들을 분출했다.
스파파파팟!
그 엄청난 위력에 일순 언데드들의 기세가 주춤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하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아니, 자세히 보니 그것은 익숙한 것이었다.
"난 아무래도 아버지를 닮은 것 같다."
펜릴은 하늘을 보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동시에 눈앞에 메시지가 떴다.
[흑야의 심장과 공명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공명하는 존재가 누구인지는 뻔했다.
[흑야의 심장이 빠르게 요동칩니다.]
[해당 존재와 멀어지지 않으면 부작용으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흑야의 기운이 온몸에 퍼지기 시작합니다.]
그 메시지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심장을 부여잡았다.
마음속 깊은 어둠에서부터 올라오는 듯한 고통이 심장을 옥죄는 느낌이었다.
잠깐이지만, 시야가 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거 잘못하면 진짜 죽겠는데.
"도와주지."
"윽…. 도와준다고? 어떻게."
나는 핏발 서린 눈으로 이를 악물며 펜릴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내가 여길 어떻게 왔다고 생각하나."
"그야…."
"나 또한 흑야를 타고 났기 때문이지. 흑야가 있는 곳이라면 난 어디든 나타날 수 있다. 그것이 네 심장에 있는 것이라도."
그와 동시에 하늘이 검게 물들며 뜨거운 대지에 까만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흑야 강림.
그것은 주변의 용암을 까맣게 식히기 시작했다.
레무스보다는 많이 못했지만, 충분히 지금 상황에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장에 언데드들의 움직임이 느려지고 있었으니까.
펜릴이 내 앞에 작은 흑색의 구슬을 하나 만들어낸 것은 그때였다.
"먹어라. 고통을 줄여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망설이지 않고 입에 넣었다.
이 빌어먹을 통증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진짜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차가운 흑야의 근원을 먹었습니다.]
먹는 순간 어마어마한 냉기가 몸속을 헤집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곧 검은 냉기는 내 몸 곳곳을 누비며 차갑게 식혀가기 시작했다.
팔, 다리, 허벅지, 가슴.
그리고 마지막으로 머리의 혈관을 한 바퀴 돌았다가 이내 심장에서 종착했다.
나는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수증기를 보면서 메시지를 확인했다.
[얼음 속성 내성이 50% 올랐습니다.]
[어둠 속성 내성이 50% 올랐습니다.]
[폭주하는 흑야의 심장이 안정되었습니다.]
[흑야의 심장의 부작용이 사라집니다.]
"하."
나도 모르게 어이가 없어서 감탄인지 한숨인지 모를 단어를 내뱉었다.
얼음 속성은 이제 100%가 되었으니 얼어 죽을 걱정은 없을 것 같다.
어둠 속성 내성도 50%가 되었고, 제일 기꺼운 것은 흑야의 심장의 부작용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성좌 스킬, '흑야랑 소환'이 사라집니다.]
"뭣이!"
청천벽력 같은 메시지에 나도 모르게 기함했다.
그나마 이것이 있어서 유용한 점이 그동안 많았다.
당장에 지금 이곳에서의 상황만 해도 그랬다.
앞으로도 많이 쓸 것만 같은 이 스킬을 필살기라고 생각했는데 없어지다니.
대체 이 무슨….
[흑야의 심장에 알 수 없는 존재가 깃듭니다.]
[그 존재의 이름은 웰시 울프의 왕자, '펜릴'입니다.]
"뭐, 모습이 약간 변하겠지만, 나쁘지 않겠지."
흑야로 이루어진 펜릴의 몸이 또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짧지만 냉독이 흐르는 날카로운 손톱과 거친 갈기.
당장에라도 먹잇감을 향해 뛰어들 것 같은 날렵한 뒷다리.
두 다리로 일어서 있는 펜릴은 저번에 내가 변했던 웨어울프와 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물론, 덩치는 그때의 나보다 훨씬 컸지만.
"가보자고."
펜릴의 주변으로 수십 마리의 흑야랑들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 * *
처음에는 손쉽게 이길 줄 알았다.
네크론은 수천의 언데드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세계 랭킹 1위인 마이클 말고는 없을 것이라 여겼다.
그 또한 월드 대항전에서 마이클이 가진 힘을 보았기에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 월드 대항전에서 네크론은 그에게 무참하게 깨졌으니까.
'한데, 지금 이 상황은 무엇이란 말인가.'
난데없이 나타난 다크 울프가 이끄는 다섯 마리의 거대한 늑대는 그림자 속을 종횡무진 움직이며, 사방에서 언데드들을 괴롭혔다.
다행히 보호막이 있어서 이쪽으로는 오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상대하기가 버거운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젠 합쳐지더니 더욱 거대한 늑대가 되었다.
그 늑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사뭇 엄청나서 주변에 있던 죽음의 향취 길드원들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건 또 무슨…."
"엄청난 크기의 늑대야."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그들 또한 영상으로만 접했던 다크울프의 위용을 막상 실제로 느껴보니, 직접 겪는 것은 더욱 엄청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늑대에게서 어두운 가시가 방사된 것은 그때였다.
스파파파팟!
"……!"
깜짝 놀란 네크론이 거대한 뼈로 이루어진 장벽을 세워 막아냈지만, 작은 어둠의 가시들은 그 작은 틈새를 통과해왔다.
자신을 포함한 길드원들은 치명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죽음은 피할 수 있었다.
죽음을 다루는 네크로멘서에게 죽음이란 그 자체로 치명상이나 마찬가지였는데, 특히나 네크론에겐 더더욱 그랬다.
그에겐 죽어선 안 되는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여기서 리치가 될 순 없지.'
그는 강력한 죽음과 어둠의 힘을 얻는 대가로, 죽을 사(死).
4번의 죽음을 겪으면 리치가 되는 저주 아닌 저주를 자신의 몸에 걸어버렸다.
그 때문에 그는 네크로멘서 랭킹 1위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아직 한 번도 죽지 않았지만, 그는 절대로 리치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 해골바가지가 되면 누가 잘생겼다고 좋아해 주겠는가.
그는 꼭 자신의 팬카페를 얻어보고 싶었다.
'다크울프. 네가 감히 내 팬들을 가로채?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네크론은 자신의 리치를 포함해 데스 나이트들을 움직였다.
모두 저 거대한 늑대를 공격하는데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근처에 있던 다른 길드원들도 네크론의 뜻을 알아차렸는지, 스켈레톤을 포함한 많은 언데드 대군을 한곳으로 몰고 갔다.
마치 포위하고 있는 듯한 모양새.
하지만 그 순간.
"엇, 저, 저기!"
한 길드원의 외침을 따라가 보니, 거대한 늑대가 그야말로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으로 일렁이며 또 다른 변신을 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변신을 마친 두 다리로 우뚝 선 그 모습이 마치 옛날 만화 영화에서나 보던 2차 변신 같았다.
'아니, 진화라고 해야 할까.'
보통 이런 경우에는 두 번째 진화를 한 존재는 어마어마한 힘을 뿜어내며 적들을 쓸어버리곤 한다.
어릴 때 그런 것들을 많이 보고 자란 그였기에 이런 전개는 그에겐 달갑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했다.
쿠르릉!
하늘이 어둑해지며 땅에서 수십 마리의 늑대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오싹한 소름을 느낀 네크론은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황급히 인벤토리에서 한 피리를 꺼냈다.
[☆스타피스, '천상을 연주한 악마'의 피리]
등급: 성유물
사용 제한: 참다운 지혜의 군주
지식 +50
*천상의 연주 - 신들조차도 감탄하게 만드는 천상의 피리 소리를 냅니다.
아군으로 인식된 대상의 모든 능력치를 일시적으로 1.3배 상승시킵니다. 연주가 멈추면 능력치 상승 또한 사라집니다.
-봉인된 스킬입니다.
-봉인된 스킬입니다.
쿠구구구구.
지진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늑대들을 보면서, 네크론은 지체하지 않고 연주하기 시작했다.
삐리리-♬ 삐리-♪
그러자 그가 이끄는 언데드를 포함해 길드원 전원의 언데드들이 일시적으로 강화되었고, 죽음의 향취 길드원들은 과연 길드장이라는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달려오기 시작하는 수십 마리의 늑대들을 향해 언데드를 이끌었다.
마침내, 두 거대한 세력이 맞부딪혔다.
"크워어어억!"
"죽음으로 돌아가라."
"크르릉!"
"우린 죽음의 기사다."
처음 시작은 양측이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백중세였다.
하지만 두 세력 간에는 거대한 차이가 있었다.
바로 눈앞에 있는 가장 거대한 흑색의 웨어울프.
아니, 진짜 웨어울프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저 존재는 손톱 한 번 휘둘러서 수십의 언데드를 다시 땅으로 돌려보냈다.
물론 다시 살아나긴 하지만, 그 속도가 가히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라서 오금이 저려왔다.
짧은 팔이라 그런지 휘두르는 속도 또한 발군.
저 거대한 늑대를 막을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그는 연주를 멈춘 채 부길드장을 맡고 있는 라군에게 말했다.
"라군. 카르탄의 소환 의식을 준비해라."
"…알겠습니다."
라군이 음침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다른 길드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라군을 포함한 네크로멘서들이 모두 중얼거리며 죽음의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네크론은 그런 그들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조소했다.
'질 수 없다. 내가 여기서 질 것 같아? 어림도 없지.'
전설의 데스 나이트라고 불리는 '카르탄'.
사실 이건 이번 월드 대항전을 위한 비장의 무기라고 할 수 있었다.
죽음의 향취 전원은 같은 국적을 가지고 있기에, 반드시 이번 월드 대항전에서 마이클에게 복수하고 싶은 것은 다 같은 마음이었다.
그오오오오-!
거대한 죽음의 늪에서 큼지막한 어둠의 손을 뻗으며 몸을 일으키는 아득한 존재가 있었다.
그리고 주변의 스켈레톤이 분해되더니, 그의 뼈를 이루고 이내 갑옷이 되었다.
또한 거대한 대검이 되기도 했다.
마치 지옥의 화염을 보는 듯한 푸른 눈은 네크론으로서도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Lv. 301 임모탈 나이트, 카르탄]
데스 나이트를 뛰어넘어 임모탈(Immotal), 죽지 않는 기사라는 수식을 얻은 카르탄.
물론, 세상에 영원불멸의 불사란 없다.
소환자가 죽으면 카르탄은 자연히 다시 죽게 된다.
네크론은 천상의 연주 범위를 카르탄에게로 확장했다.
삐리리-♬
더욱 강력해진 카르탄은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워어어억-!"
그리고 거대한 웨어울프 또한 그런 카르탄을 발견했다.
두 괴물은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두르고, 발톱을 휘두르며 그야말로 거칠게 싸워댔다.
괴수들의 전쟁.
그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부딪히기만 해도 힘의 파장이 이곳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우세한 것은 카르탄이었다.
피슉!
카르탄이 내려친 대검이 거대한 늑대의 팔 하나를 날려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죽음의 향취 길드원들이 작은 감탄을 했고, 네크론 또한 연주를 이어나가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잊은 것이 한 명 있었다.
쏴아아아아-!
그야말로 찰나였다.
잠깐 사이 하얀 형체의 날카로운 예기가 눈앞을 지나갔고, 네크론은 자신의 손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의 손에 있어야 할 피리가 잘려진 오른팔과 함께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그는 공격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를 잊으면 곤란하지. 애송이들아."
약 20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언데드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던 백무열이 네크론의 손에 있던 피리를 노리고 파워 웨이브를 날렸다.
원래는 저 피리를 든 녀석을 두동강 내버릴 참이었지만, 아무래도 힘이 조금 부족했던 모양이다.
"쯧, 조금 얕았던 모양이네. 다음에는 두 동강을 내주마."
네크론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떨어진 피리를 주워들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하지만 백무열이 그렇게 두지 않았다.
그는 한눈에 저 피리가 언데드들을 강화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했다.
열세였던 늑대들이 점점 언데드들을 으깨버리고 있었다.
"이이익…! 저놈을 죽여라!"
하지만 이미 늦었다.
콰직!
거대한 흑색의 웨어울프가 남은 한 손으로 카르탄의 가슴을 꿰뚫더니 머리를 통째로 씹어먹었다.
머리와 분리된 카르탄의 몸통이 땅으로 쓰러지며 지진과 흙먼지를 일으켰다.
쿠우우웅!
그리고 그 흙먼지를 뚫고, 수십의 늑대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언데드는 이미 상대도 되지 못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