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226화
제226화
커뮤니티가 뜨겁게 타올랐다.
그것은 바로 굉장히 폐쇄적인 성격이라고 알려진, 매체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네크로멘서 랭킹 1위.
네크론이 올린 실시간 방송 때문이었다.
그것의 제목은 아주 자극적이었다.
[(Live) 제목: 죽음의 향취가 다크울프를 죽이는 법.]
사람은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방송은 순식간에 각종 포탈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고, 각종 별사탕들이 네크론에게 쏟아져 내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직접 언데드들을 조종하는 건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희귀 영상은 당연히 돈이 될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 생방송을 녹화하는 이들도 있었다.
-와, 제목 뭐임.
-제목 보고 들어왔습니다.
-다크울프를 죽이는 법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죠.
-아무래도 죽음의 향취랑 다크울프랑 싸우는 것 같음.
-오오, 기대된다.
-시작한다.
-가즈아.
아무리 라이브 방송이라고 해도 온전히 100% 실시간일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게임 속 시간과 현실의 시간 또한 차이가 있으니, 지금 나오고 있는 이 화면은 약 5분 전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이제 방송이 시작되었다는 거다.
-와 죽인다. 언데드 대군이네.
-역시 랭킹 1위 네크로멘서는 다르다는 건가.
-컨트롤 무엇.
-리치 보셈. 겁나 쎄 보임.
-나 옛날에 파티원들이랑 쟤들한테 덤볐다가 쓸려나갔음.
-ㅋㅋㅋㅋㅋㅋㅋㅋ 개불쌍.
-애도를 표한다.
-ㄱㅅㄱㅅ
네크론을 중심으로 한 죽음의 향취 길드 전원이 언데드 대군을 두 사람에게로 보냈다.
스켈레톤이 달리다가 다리가 부러지기도 하고, 어두운 기운을 뿜어내는 데스 나이트가 말을 타고 멋있게 달리기도 했다.
유령같이 보이는 레이스는 귀신같은 목소리를 내면서 으스스한 소름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런 언데드의 건너편에 나타난 한 사람.
그의 손에 있는 하얀 목검, 아니 꽃다발인지 알 수 없는 그것은 황금빛 몽둥이가 되었다가, 이내 거대한 힘의 파동을 만들어냈다.
쿠우웅!
그는 순식간에 목검을 전방으로 휘둘렀고, 수십의 무형의 검기 세례가 땅을 가로지르며 언데드들을 향해 쇄도했다.
콰콰콰콰콰-!
그 엄청난 무용에 방송을 지켜보던 커뮤니티의 유저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맙소사. 저게 뭐야?
-누구지? 누가 저런 힘을?
-잠깐만 저 사람 혹시 백무열이라는 할아버지 아니야?
-할아버지라고?
-왜 얼마 전에 포트렌 콜로세움에서 유명했던 한국인 할아버지 있잖아.
-아, 그때 그 할아버지?
-미친. 더 쎄진 거 같은데?
-근데 왜 다크울프랑 같이 있지?
그들은 모두 다크울프와 함께 있는 백무열이라는 할아버지에 대해 물음표를 띄웠다.
대체 두 사람이 무슨 사이이길래 같이 있는 것일까.
아니, 그것보다도 두 사람이 어째서 함께 죽음의 향취 길드와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인지 유저들은 궁금해했다.
하지만, 그런 궁금증도 찰나였다.
아우우우-!
짙게 깔리는 어둠과 함께 다크울프를 상징하는 검은 늑대가 땅속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 * *
첫 선공은 백무열이었다.
녀석은 오랜만에 몸 좀 제대로 풀겠다며 무척이나 좋아했다.
하얀 목검을 꺼내더니 조용히 헤라클레스의 힘을 일깨웠다.
쿠웅!
이제는 좀 더 많은 헤라클레스의 힘을 빌릴 수 있게 된 백무열은 전보다도 훨씬 많은 강력한 힘을 발산했고, 그것을 주체하지 않을 수 있음에 기뻐했다.
솨솨솨솨솩.
그는 전방에 부채꼴 방향으로 수십의 검기를 땅을 통해 흘려보냈고 엄청난 속도로 달려나가는 파괴적인 검기의 진군은 무차별적으로 언데드를 향해 나아갔다.
달려들던 언데드를 순식간에 토막내며 계속해서, 계속해서 뻗어 나갔다.
그리고 이내 끝까지 닿았다.
콰아아아앙!
"흐음. 좀 약했나."
하지만 언데드의 진군은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계속해서 살아났고, 백무열이 노렸던 네크로멘서들은 스켈레톤들을 이용해 방어벽을 세워 살아남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이젠 내 차롄가.
[성좌스킬, '흑야랑 소환'을 사용합니다!]
검붉은 용암의 대지에 짙은 흑색의 안개가 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올라온 건 내게도 익숙한 흑색의 늑대들이었고, 나는 위풍당당한 흑야랑들의 위로 자연스럽게 뛰어올랐다.
"가자."
곧장 그들을 이끌고 언데드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사나운 기세의 흑야랑들을 막기 위해 각종 흑마법과 죽음의 공격들이 난무했지만, 안타깝게도 흑야랑은 어둠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성장하는 만큼 흑야랑들 또한 성장을 했다.
슈우우욱.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하는 흑야랑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이 번쩍 뜨여졌다.
그때, 로믈라나의 메시지가 떴다.
[늑대성, '로믈라나'가 흑야랑은 레무스의 권능을 닮는다고 말합니다.]
그런 그녀의 말에 나는 생전 레무스가 그림자에 숨어서 공격했던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당시의 흑야랑들 또한 그런 능력을 가진 채 로믈라나의 백야랑들과 싸웠다.
그렇다는 말은….
[당신이 소환한 '흑야랑'들이 새로운 능력인 '그림자 걸음'을 새로이 깨닫습니다.]
[이제부터 그들은 그림자 속에서 적들의 목을 노릴 것입니다.]
내가 올라타 있던 흑야랑 또한 조금씩 땅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착지하며 뛰기 시작한 나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바람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불 속성의 몬스터만 아니라면, 눈앞의 언데드에게도 칼바람은 충분히 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정확했다.
"비천기상무. 칼바람."
사아아아악-!
주변의 바람을 하나로 끌어모아 바람과 바람이 만나는 그 틈 사이의 빛이 나는 곳을 정확히 이등분하며 수평으로 발을 그었다.
그리고 그것은 거대한 바람의 검이 되어 달려오는 언데드들의 전면부를 그대로 베고 지나갔다.
이어지는 것은 적의 중심부에 나타나 날뛰기 시작하는 흑야랑들의 폭주였다.
"호오. 이제 보니 제법인걸?"
한쪽 어깨에 목검을 짊어진 백무열이 뒤에서 걸어오며 말을 내뱉었다.
나는 그저 어깨만 한 번 으쓱일 뿐이다.
하지만 그 순간 하늘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도는 것이 보였다.
나와 백무열은 동시에 미간을 찌푸리며 서로 거리를 벌리며 멀어졌다.
꽈르릉-!
순식간에 내리쳐진 검은 번개는 우리가 있던 자리에 새카만 재만을 남겨놓았다.
그리고 더욱 빠른 속도로 우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나는 바람을 타며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저항군의 망토에 달린 은신을 사용하면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 뒤로 공격은 이어지지 않았지만, 나와는 달리 백무열은 난감한 상황에 빠져 있었다.
꽈르릉! 꽈르릉!
백무열은 언데드에게 둘러싸인 채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 공격을 받고 있었다.
아직은 사자의 갑옷을 입고 있어서 괜찮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계속해서 내리치는 검은 번개의 원흉을 찾았다.
그리고 이내 작게 눈을 빛냈다.
"죽…음…으로… 돌아…가라…."
유일하게 휘황한 흑색의 로브를 입고 있는 스켈레톤.
생전 사람이었는지 들려오는 알 수 없는 걸걸한 목소리는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리치라는 이름이 적힌 스켈레톤이 지팡이를 휘두를 때마다 번개가 내리쳐지는 것이 아무래도 제대로 찾은 듯싶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리치를 향해 다가갔다.
그렇게 몇 발자국 남겨두지 않은 순간.
콱.
"……!"
다리를 잡아끄는 검은 손들이 있었다.
나는 한눈에 내가 함정에 빠졌음을 직감했다.
"후후. 우리가 그리 허술해 보였나?"
네크론이 음흉하게 웃으며 죽음의 마법을 전개해 공간의 균열을 일으키는 수십의 검은 구체를 사방에서 날려 공격해왔다.
그림자 단검을 꺼낼 시간도 없어서 나는 순간 아차 싶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내가 디디고 서 있던 땅이 솟아올랐다.
[늑대성, '로믈라나'가 자신이 좀 도와주겠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검은 땅이었다.
아니, 그림자에서 솟아오른 흑야랑의 등이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약간의 이질적인 기운이 흑야랑에게서 느껴져 왔다.
내가 올라탄 늑대에게서 옅지만 영성(靈星)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각자 퍼져서 싸우고 있던 흑야랑들이 한자리에 모이더니 이곳에서 솟아올랐다.
그리고 합쳐지더니,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는 당황하고 있었다.
"뭐, 뭐야."
갈기를 붙잡은 채 간신히 버티고 있던 나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머리를 굴렸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머리 위로 붉은 번개가 내리쳐진 것은 그때였다.
꽈르릉!
[늑대성, '로믈라나'가 자애로운 미소를 짓습니다.]
점멸하듯 흩어지는 붉은 스파크의 영성 위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오랜만이다. 인간."
"넌…?"
로믈라나와 레무스의 첫째 아들.
"여긴 너무 덥군."
펜릴이었다.
* * *
이제는 소도시로의 면모를 조금씩 갖추기 시작하는 평화로운 메테우스.
이곳은 언제나 유저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렸다.
그리고 그런 메테우스에 작은 소란이 일었다.
"아, 안 훔쳤다니깐요!"
"확실해?"
"진짜라구요! 내가 거짓말하는 것 같아요?"
"그럼 이거 뭐야. 이거 내 돈주머니 아니야?"
"무슨…! 증거 있어요? 그게 당신 거라는 증거!"
웬 험상궂은 인상을 가진 덩치의 남자가 한 빼빼 마른 유저의 멱살을 움켜쥐고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주변의 유저들은 혀를 끌끌 찼다.
메테우스에서의 일방적인 싸움은 강제로 추방을 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머지않아 그 둘이 추방당할 것이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순간.
"무슨 일이십니까. 형님."
뒤에서 웬 건장한 인상파 청년들이 이곳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덩치의 남자를 형님이라고 불렀고, 그는 태연하게 그들을 향해 하대했다.
"왔냐. 이 자식이 내 돈을 훔친 것 같은데 증거가 없네."
"훔쳐요?"
"훔쳐?"
"감히 형님의 돈을?"
순간 엄청난 살기가 그 인상파 청년들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그 눈빛이 너무도 매서워서 멱살을 잡힌 유저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그 기세에 주변에서 구경하던 이들도 주눅들 정도였다.
'잘, 잘못하면 진짜 죽겠는데.'
사실 그는 소매치기라는 직업을 가진 도둑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것은 그가 훔친 것이 맞다.
많은 유저들이 모이는 이곳은 그의 입장에서는 돈을 털기 좋은 블루오션이나 다름없었고, 얼마 전에는 꽤 짭짤한 수입을 얻기도 했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안 걸릴 줄 알았다.
한데, 눈앞의 이 미련한 곰.
아니 그야말로 야생 곰같이 생긴 이 사내는 자신의 생각보다도 눈치가 빨랐다.
마치 이런 일을 제법 많이 겪어본 사람처럼.
"야. 창식아."
"예. 석두 형님."
뒤에서 들려오는 창식이라는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마석두는 주변을 쓱 둘러보더니, 눈앞에 멱살을 잡힌 채 발버둥 치는 남자를 어디론가 끌고 갔다.
그는 이렇게 사람이 몰리는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경찰과 비슷한 것들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조용히 처리하고 싶었다.
최대한 평화적으로.
마석두가 일행들 사이로 소매치기를 던지며 말했다.
"정직의 방으로."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