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223화
제223화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백무열과 헤어진 마이클은 빠르게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더 높이, 더 높이. 쉬이이익-.
거대한 바람의 저항력을 이겨내며, 더 위로 하염없이 오르고 올라갔다.
'정말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운데.'
마이클은 처음으로 아버지의 마음이란 것을 지난 일주일간 사냥을 하며 느꼈었다.
그렇기에 그는 조금 더 이 감정을 오래도록, 가급적이면 많이, 최대한 이 행복을 느끼고 싶었다.
살면서 이렇게 진심으로 웃어본 적이 얼마 없었던 그였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헤어짐이 있으면 만남이 있는 법.
그렇게 다짐한 마이클은 다시 만날 것을 속으로 기약하며 지난 시간을 되새기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파라라라락-!
무언가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저 멀리 위에서 떨어지는 형체가 하나 있었다.
그 속도가 너무도 빨라서 마이클은 그것이 적인 줄로만 알았다.
그렇기에 그는 그것을 향해 작은 모래의 칼날을 여럿 날려 보냈고, 길게 뻗어내 호선을 그린 채 날아간 칼날은 그야말로 거대한 반월의 형태를 오롯이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대상과 부딪히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콰아아앙-!
모래가 대상을 집어삼키며 황토색 먼지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것을 뚫고 날아오는 것은 연녹색의 마력이 깃든 거대한 바람의 예기였다.
그것은 자신이 날렸던 모래의 칼날보다 그 속도가 훨씬 월등했다.
그리고 또 많았다.
생각보다 더 많이.
쉬쉬쉬쉬쉭!
"……!"
거대한 바람의 칼날과 수십의 작은 바람의 칼날들이 자신을 향해 날아들었다.
깜짝 놀란 마이클은 모래를 넓게 펼쳐 발판을 만든 뒤, 보법을 밟으며 피하기 시작했다.
마이클을 맞추지 못한 바람의 칼날들이 폭사하며 퍽! 거리는 폭음을 만들어냈고, 마이클은 그 속에서 춤을 추며 피해냈다.
하지만 아직 하나 남은 것이 있었다.
"이런…."
거대한 반월 모양의 바람의 검기 자신을 향해 내리꽂히듯 쇄도해오자, 마이클은 거대한 모래의 주먹을 하나 만들어냈다.
그리고 황급히 자신의 모래에서 사금을 채취하더니, 흑갈색의 데저트 칼리버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동시에 거머쥐며 내지르듯 휘둘렀다.
츠카칵-!
위에서 짓눌리는 거대한 바람의 검과 마이클의 데저트 칼리버는 작은 불꽃을 만들어내며 서로 사납게 싸우는 맹수처럼 날뛰듯 맞닿았다.
그 힘이 너무도 강맹해 일순 대기가 폭발하며 거대한 폭음을 만들어냈다.
쿠아아앙-!
그리고 흩어지는 흙먼지 사이로 자신의 옆을 지나치는 이가 있었다.
마이클은 잠깐이지만 그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다크울프…?'
어째서 그가 여기 있는 것일까.
혹시 잘못 본 것은 아닐까 싶었던 마이클은 황급히 그가 지나간 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미 그는 저 멀리 사라진 상태였다.
하긴, 자신은 멈춰있는 상태고, 그는 위에서 가속도가 붙어서 떨어지는 상태였으니, 마이클이 그를 붙잡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순리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어째서 여기에…?"
아니, 더 궁금한 것은 왜 그가 하늘에서 떨어지냐는 것이었다.
마이클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더 놀라운 것은 바로 그의 저력.
마이클은 모래 주먹을 조종했던 오른손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주변의 바람을 오시하듯 통제하며 짓누르는 거대한 풍압(風壓)의 향연.
모든 공기가 자신의 편이 아닌 것 같은 그 놀라운 바람의 움직임은 세계 랭킹 1위를 자랑하는 마이클로서도 혀가 내둘러질 경지였다.
"…과연. 아직 안심하긴 이르단 건가."
아직 자신의 밑에는 치고 올라오는 강자들이 많다.
아까 만났던 백무열도 그렇고, 방금 지나간 다크울프 또한 그랬다.
그렇기에 마이클은 더욱 승부욕이 생겼다.
"재밌군. 이번 월드 대항전은 정말 재밌겠어."
아직은 자신이 정상에 서있단 것을 모두에게 과시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자신은 태어났다.
1등이 아니면 세상은 의미가 없는 것이니까.
마이클은 싱글벙글 웃음 지으며 다시 하늘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이번 월드 대항전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 차 있었다.
* * *
용암 호수가 위치한 널따란 평지.
그곳에서 두 노인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한 사람은 일어서서, 또 다른 한 사람은 가부좌를 튼 채 앉아서.
연녹색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꽃잎이 떨어지는 그 모습이 주변 풍경과는 굉장히 모순적인 것이, 마치 화산에서 쉬고 있는 신선들처럼 보였다.
"그놈이 먼저 공격했었다고?"
"아, 그렇다니까. 건방진 놈."
지금 나는 아까 있었던 마이클의 선제공격에 대해 백무열과 열띤 토론을 벌이는 중이었다.
물론 아까 내려오면서 나는 그자가 마이클이란 사실을 초감각 때문에 금세 알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마이클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널 몬스터로 착각했겠지. 그놈 생각보다 착한 놈이야."
사실 그 생각도 안 한 건 아니다.
아니, 아마 그게 백프로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열 받는 건 열 받는 거다.
덕분에 지금 바람의 마력을 다시 충전하느라, 풍희가 만들어준 아네모네를 먹고 명상에 집중하고 있으니까.
풍희는 바람의 신수라 이런 뜨거운 곳을 싫어하기에 다시 환계로 돌아가버렸다.
바람은 불을 키워주니 속성의 관계로 봐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싸가지 없는 놈…. 저번에도 그렇지만 난 그놈 마음에 안 들어."
"쯧쯧. 하여튼 삐뚤어져서는."
"그게 아니라. 그놈이 날 대할 때 완전 그랬다니까."
저번에 다크울프로서 자신을 대하던 태도와 백무열을 대하는 마이클의 태도가 사뭇 다른 것이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사람 차별하는 것도 아니고. 참나.
[바람의 마력이 모두 충전되었습니다.]
[아네모네를 통해 바람의 마력 최대량이 소폭 상승하였습니다.]
이런 메시지와 함께 등 뒤에서 피어나 있던 아네모네 꽃잎 6장이 모두 떨어져 바람에 날아가더니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제야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설 수 있었다.
백무열이 신기하다는 듯 보면서 물었다.
"저건 무슨 꽃이냐? 생전 처음 보는 꽃인데."
"아네모네."
"오, 아네모네…. 꽃집에 좀 갖다 놓을 순 없냐?"
"……."
꽃집에 오지도 않으면서 무슨.
"메테우스에 오기나 해라. 그리고 이 꽃은 씨앗이 있는 게 아니라서 팔 수 없는 거야. 마력으로 이루어진 거거든."
백무열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나는 그제야 그와 함께 작은 활화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울컥거리는 마그마가 작은 분화구들 틈에서 쏟아져 나왔고, 나는 그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태연하게 용암을 걸어 다니며 몸에 묻히고 다녔다.
그리고 맛도 봤다.
백무열이 웬 미친놈 보는 것처럼 물었다.
"살다 살다 용암을 처먹는 놈은 처음 보네."
"이걸로 요리나 해볼까 싶어서."
"요리? 이게 드디어 치매가 왔나…."
나는 오랜만에 솔라를 불러냈다.
"솔라야."
"해해. 주인아 불렀냐!"
"그래. 요리하자."
"좋다!"
자연스럽게 꺼낸 공중부양 냄비 밑으로 솔라가 자리를 잡자, 이어서 나는 풍희를 부르려다가 멈칫했다.
"…얘는 안 되겠군."
아마 불러도 다시 금세 환계로 돌아가 버릴 것이다.
나는 굳이 나오기 싫다는 애를 불러내서 혹사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지금은 솔라만 가지고 요리를 해야 했다.
물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분명 태양의 레시피에는 용암을 요리하는 법이 있었지.
나는 오랜만에 알렉서스의 일기장을 꺼내 펼쳤다.
뜨거운 열기에 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리고 그곳에서 용암을 요리로 승화시키는 법에 대한 구절을 찾을 수 있었다.
거기엔 식용 용암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적혀 있었다.
또 바로 밑에는 요리 목록들이 기차처럼 나열되어 있었다.
-용암 맛 낚지볶음, 용암 맛 해물탕, 용암 스파게티, 용암 스테이크….
그 수가 너무 많아 헤아릴 수가 없었다.
물론, 스테이크라고 적혀 있다 해서 진짜 현실에 있는 스테이크가 아니다.
고블린 고기를 쓰면 '용암 고블린 스테이크'가 되는 뭐, 그런 이치다.
"배고프지?"
"크흠."
마침 백무열의 배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귀엽게 들려왔다.
민망한지 그는 기침을 두어 번 더했다.
그런 그에게 나는 파티 신청을 걸었다.
[파티가 결성되었습니다.]
그리고 파티창을 보던 나는 제법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 레벨 많이 올렸네?"
"네놈이 게을러터져서 노는 사이 좀 올렸지."
"하여튼 말본새하고는."
어쨌든 백무열이 강해진다는 것은 내 입장에서도 반길 일이다.
메테우스를 지킬 인력이 하나 늘어나는 것이니까.
이 녀석은 기사단장을 시켜줘야겠군.
그것보다….
"이제 파티 했으니까 식재료가 떨어질 거야. 가서 몬스터나 잡아와."
"뭐야? 너는 왜 안 가는데?"
"요리해야지. 생산직업이잖냐. 사냥은 전투직업인 네가 해야 하지 않겠냐."
"뭔 개소리야…."
그렇게 투덜거리던 백무열은 세상 누구보다 빠르게 뛰어다니며, 주변의 몬스터들을 때려잡기 시작했다.
천천히 기어 다니지만, 입에서 용암을 뿜어내 공격하는 낮은 레벨의 용암 달팽이부터 시작해서, 여섯 개의 꼬리를 자랑하는 난폭한 라바 폭스까지.
사이사이에 위치한 자그마한 라바 골렘은 식재료로 쓸 수가 없기에 조금 아쉬웠지만, 어쨌든 주변의 다양한 몬스터는 내 요리에 대한 창작 욕구를 무궁무진하게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백무열이 가져온 식재료들이 내 앞에 차곡차곡 쌓였을 무렵.
"힘들어 뒤지겠네. 배고프니까 밥 내놔라. 맛없기만 해봐. 볼기짝을 사정없이 때려버릴 테니."
그 말에 나는 속으로 웃으며 이렇게 되뇌었다.
먹고 자지러지지나 마라고.
물론, 맛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자지러진다는 뜻은 맛있어서가 아니라, 매워서 자지러질 것이라는 얘기였다.
나는 백무열에게 세상에서 제일 매운맛을 먹일 작정이었다.
당연히 화염에 내성이 있는 나는 화상도 입지 않을 게 뻔했고, 태연하게 맛을 음미할 수 있겠지.
후후. 상상만 해도 즐겁다.
백무열이 덜컥 화를 내는 모습이 말이다.
우리는 이렇게 둘이 있으면 종종 장난을 치곤 한다.
"자, 만들어 볼까나."
나는 공중부양 냄비로 용암을 퍼서 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곳에 오기 위해 경매장에서 미리 구입한 북극의 눈을 위로 뿌렸다.
현재 북극은 많은 유저들이 출입하며 다양한 아이템들이 경매장에 전시되어 팔리곤 했는데, 우습게도 북극의 눈을 퍼와서 파는 이들도 있었다.
거대한 강추위로 쉽게 녹지 않기에 팔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정말 우습게도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었는데, 내가 그것을 싹 끌어 모아서 사 왔다.
당연히 나는 요리사라서 필요하거든.
치이이이익!
북극의 눈과 닿은 용암이 차갑게 식으며 뜨거운 수증기를 뿜어냈다.
그리고 굳기 시작하자, 나는 그것을 꺼내 바닥에 내다 버렸다.
그렇게 몇 번 작업을 하자, 낮은 온도의 맑은 용암수만이 남았다. 이른바 용암 정제수란 거다.
막걸리로 치면 부유물을 제거하고 남은 투명하고 맑은 그 부분이랄까.
"허이짜."
나는 능수능란하게 냄비를 움직이며 솔라의 불을 조절해 정제수를 끓이며 매운맛을 끌어올렸다.
소금을 넣고 다양한 야채를 썰어 넣고, 백무열이 얻어온 고기들을 뭉텅이로 썰어 넣었다.
달팽이도 맛있을 거 같으니 조금.
그리고 파스타 면도 좀 넣어볼까.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나자 요리는 뚝딱 만들어졌다.
그 이름하여 '용암 달팽이를 곁들인 여우고기 스파게티.'
처음 한 것임에도 무려 '진국'이 나왔다.
그리고 별도 무려 5개짜리다.
생각보다 먹음직스러운 모습에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삼켜졌다.
그것은 백무열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이리 내놔봐. 어우, 맛있겠네. 후르르르릅."
그리고 백무열은 처음으로 후회란 것을 맛봤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