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222화
제222화
나는 미도를 포함한 이카루스의 간부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평소 노는 것을 좋아하는 박태현에겐 각종 보드게임 놀이들이 인벤토리에 존재했는데, 우리들은 그것을 가지고 놀며 파르타 공국까지 가는 동안 시간을 때웠다.
물론, 나는 그런 것들을 잘 몰랐기에 계속해서 벌칙에 걸린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지금도 벌칙을 받고 있다.
벌칙은 인디안 밥.
소란스러운 소리가 비행선 한 구석에서 들려왔다.
"인디안~! 밥!"
"밥!"
"밥밥!"
"팍!"
어윽. 마지막에 때린 놈 누구냐.
팔꿈치로 허리를 찍어버리네.
나는 다급히 허리를 일으키며 눈알을 부라렸다.
하지만 도저히 마지막에 누가 때린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푸하하. 다크울프 님 은근히 허당이시다. 원래 보드게임을 못하세요?"
미도가 나를 보며 깔깔거리며 웃었다.
차마 손녀라서 때릴 수도 없어서, 나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물론 눈앞의 이들은 알지 못했다.
"내가 이런 건 처음인지라…."
"그럼 아크스타는 어떻게 하시는데요?"
"뭐, 이건 그냥 때려잡으면 되는 니까…."
"풉. 그게 뭐예요. 완전 말도 안 돼."
미도가 다시 한번 폭소를 터트렸다.
김현우, 박태현, 은정혁도 실실거리며 웃었다.
내가 그렇게 웃긴 말을 한 건 아닌 거 같은데….
"정말 저희랑 월드 대항전 나가실 생각이 없으십니까?"
김현우의 물음에 분위기가 다시 한번 가라앉았다.
아까부터 그는 내게 월드 대항전 국가 대표 선발전에 도움을 줄 것을 요청했었다.
물론 내 국적은 밝히지 않았지만, 그는 외국인 용병처럼 내가 길드에 들어와주길 바랬다.
한 길드당 한 명씩 외국인을 쓸 수 있다는 룰이 있다나 뭐라나.
어쨌든 김현우는 철저히 내가 한국인일 것이라는 가능성은 배제한 채 말하고 있었다.
물론, 나도 내가 한국인이라고 밝힐 생각은 없으니 잘된 일이지만.
"미안하오. 아까 말했듯이 나는 전혀 생각이 없소. 내가 원체 사람들의 관심을 부담스러워 하는 지라."
"하아,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죠."
김현우는 그제야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나도 귀찮은 건 딱 질색이다.
"그래도 길드 채팅은 정말 못하십니까? 연락할 방법이 없는 건 좀 그런데…. 친해지고 싶어 하는 길드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김현우는 내심 아쉬움을 달래듯, 내가 거부 표시를 눌렀던 길드 채팅에 대해 말을 꺼냈다.
"그건 미도 양을 통해 연락을 주시오. 내가 비밀 통신 기능이 있는 지정 귀환석을 주었으니 쉽게 연락할 수 있을 것이오."
그런 내 말에 세 명의 남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마 그들도 이 사실은 몰랐던 모양이다.
"귀환석…?"
"뭐야. 미도 너 귀환석을 받았어?"
"헐. 대박."
그런 관심이 부담스러운지 미도는 허허 웃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가 준 귀환석을 꺼내 보였다.
"와-!"
세 남자는 일제히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방송이 울려 퍼진 건 그때였다.
- 아아, 안내 말씀드립니다. 저희 칼라모르 P-2호 비행선은 현재 파르타 공국으로 향하는 중입니다. 현재 중간 지점인 불칸 화산지대를 지나고 있는데, 혹 관람을 원하시는 분들은 바깥으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바람이 많이 부니 직원의 안내에 따라 안전띠를 꼭 착용해주시고 와 주십시오. 혹여나 미착용으로 인한 사고는 저희 측에선 일절 책임지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뚝-.
기장의 방송이 끝나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가기 시작했다.
하긴,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런 걸 해보겠는가.
"우리도 가 봐요!"
미도 또한 관심이 생겼는지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 말에 나를 포함해 일행들은 바깥으로 나왔다.
물론, 직원이 건네준 안전띠를 착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와씨, 바람 엄청 부네."
박태현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엄청난 바람이 나와 일행들을 휘감았다.
차마 눈 뜨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고, 앞서 걸어가던 직원 NPC가 마도 공학을 이용한 보호막을 펼치자 그제야 손쉽게 바깥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찬찬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어떤 생각이 스쳐갔다.
…잠깐만. 무열이 녀석이 분명 화산지대에 있다고 그랬는데?
앞에 있던 직원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파르타 공국으로 향하는 곳 중 유일한 화산지대입니다. 이곳은 불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직원의 설명 중 '유일한 화산지대'라는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지금 내가 이곳으로 온 이유는 무열이랑 같이 있는 마이클이란 녀석이 이렇게 왔다고 알려줬기 때문이었다.
백무열은 헤라클레스가 데려다줬기에 자신이 어떻게 왔는지도 모른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여기서 내려야 한다는 건데….
"아무래도 여기서 헤어져야 할 듯하오."
"예? 그게 무슨…?"
미도를 포함해 일행들이 모두 머리에 물음표를 띄웠다.
"친구가 화산지대에 있다고 해서 말이오."
그 말과 동시에 나는 난간으로 올라섰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었다.
보호막을 나오자 매서운 강풍이 흑색의 갈기를 더욱 거칠어 보이게 만들었고, 몇몇 유저들이 나를 알아보며 '다크 울프'라며 외쳤다.
"승객님 그러시면 위험…!"
탁.
그리고 그런 나를 만류할 새도 없이, 직원이 채워 준 안전띠를 풀어헤치며.
"또 봅시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 * *
불칸 화산의 남쪽에 위치한 거대한 용암 지대.
뜨거운 열기와 각종 마그마의 열기에 녹아 변형을 일으킨 돌들이 가득한 이곳에 단 두 사람이 마주 보며 서 있었다.
그들은 바로 백무열과 마이클.
두 사람은 지난 일주일간 함께 파티 사냥이란 것을 했다.
제법 호흡이 잘 맞았던 두 사람은 순식간에 작은 화산 하나를 통째로 쓸어버릴 수 있었고, 그곳의 보스 격이라고 할 수 있는 라바 드레이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마이클은 1레벨을 올렸고, 백무열은 무려 10레벨이 넘게 올릴 수 있었다.
"정말 가야 하는 거냐?"
그리고 바로 지금.
백무열은 마이클을 보내기 아쉽다는 표정으로 붙잡고 있었다.
주변은 작은 분화구 하나와 용암 호수.
그리고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유황 가스가 코끝을 찌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길드원들이 월드 대항전이란 것을 준비해야된다고 재촉해서…."
마이클도 백무열과 헤어지는 것이 무척이나 아쉬웠다.
첫 만남은 오해로 시작되었지만, 그는 백무열에게서 아버지의 투박한 따뜻함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차갑고 냉정한 친아버지와는 정반대였다.
"끙. 어쩔 수 없지. 썩 꺼져라. 훠이훠이."
손을 휘적거리며 축객령을 내리는 그의 모습에 마이클은 피식 웃고 말았다.
"혹, 월드 대항전에 나오십니까?"
"월드 대항전?"
"예. 크리스마스에 열립니다만."
"글쎄…."
백무열이 턱수염을 쓸며 생각에 잠겼다.
며칠 전 미도에게 길드에 들어와달라는 부탁을 받았었다.
월드 대항전의 국가대표로 뽑히기 위해 내 힘이 필요하다나 뭐라나.
어쨌든 그때는 별 생각 없이 거절했었는데, 마이클이 다시 한번 얘기를 꺼내니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꼭 나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유는?"
"활약하시는 걸 보고 싶으니까요."
"맹랑한 놈."
백무열이 입을 삐죽였다.
그는 내심 마이클과 붙어보고 싶었다.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화려한 경기장에서 말이다.
"어쨌든 전 이제 가보겠습니다. 또 뵙겠습니다."
"그려. 조심히 가라."
이제는 백무열에게도 익숙해진 마이클의 모래가 허공에 두둥실 떠올랐다.
마이클은 단숨에 올라탔고, 이내 자신과 점점 멀어지더니 하늘 높이 수직으로 상승했다.
제법 빠른 속도에 백무열은 작은 감탄을 했다.
"편리한 능력이군."
[몽둥이성, 헤라클레스가 자신에겐 저런 능력이 없다고 말합니다.]
"쓸모없는 놈."
[몽둥이성, 헤라클레스가 그래도 자신이 더 강하다고 말합니다.]
"그건 붙어봐야 아는 거지."
[몽둥이성, 헤라클레스가 자신은 일부러 궁좌에 오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스타 프루츠를 먹은 직후.
성애자(星愛者)의 자격을 갖춘 백무열은 얼마 되지 않는 1등성들의 관심을 받았다.
당연히 백무열은 '최초의 여장남자'라는 별명에 주목했고, 여장남자라는 단어가 조금 찝찝했지만 그 성좌를 골랐다.
그렇게 헤라클레스와 함께 하게 된 백무열은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열두 궁좌에 관련된 이야기.
지금 헤라클레스는 일부러 그 궁좌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쯧. 멍청한 놈. 왜 안 오른 건데?"
[몽둥이성, '헤라클레스'가 궁좌는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네놈의 아버지인 유피테르인가한테서?"
[몽둥이성, '헤라클레스'가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흠, 뭐 네놈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사실 관심도 없다."
그러다 문득, 백무열이 깜빡했다는 듯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런. 가기 전에 그놈이랑 꼭 붙어보고 싶었는데. 사냥하느라 정신이 없었군."
[몽둥이성, '헤라클레스'가 당신의 생각에 껄껄 웃습니다.]
"웃기는. 네놈도 언젠간 목검으로 패버릴 거다."
백무열의 손엔 다시금 나무 목검이 들려져 있었다.
아무래도 검집은 튼튼하지만, 나무가 아니라 그런지 속도가 훨씬 느린 감이 없지 않아 있어서, 화산지대에서만 나는 특별한 나무로 목검을 만들었다.
그 이름 '오히아 총각 나무'.
이런 화산지대에도 꽃이 핀다는 사실이 백무열은 기쁘기 그지없었다.
그가 만든 하얀 나무 목검에 옅은 분홍색의 장미를 닮은 꽃들이 듬성듬성 붙어있었다.
[몽둥이성, '헤라클레스'가 언제든 도전을 환영한다고 말합니다.]
"그때 가서 후회해도 난 모른다."
백무열은 사랑스러운 눈길로 줄여서 '오히아 꽃'이라고 명명한 꽃의 향을 맡았다.
그 향이 너무나도 향기로워서 백무열은 이것의 씨앗을 몇 개 인벤토리에 챙겨두었다.
나중에 메테우스로 돌아가면 춘택이가 마련해준 꽃집에 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순간.
퍼엉!
하늘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저 멀리 바람을 가르며 이곳을 향해 떨어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이 너무도 조그매서 백무열은 이마의 미간을 찌푸렸다.
"뭐시여. 저게?"
그 알 수 없는 형체는 매우 빠른 속도로 이곳을 향해 떨어졌고, 깜짝 놀란 백무열은 목검을 나무 방망이 쥐듯 잡더니, 4번 타자와 같은 폼을 잡기 시작했다.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타이밍에 맞춰서 다시 멀리 날려버리기 위해서였다.
이른바 홈런이란 거다.
'뭔지는 몰라도 지구 끝까지 날려주마.'
그리고 그 형체와의 거리가 20미터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
"나다아아아-! 이 썩을 놈아!"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꽂혔다.
그 음성을 듣는 순간 백무열은 한쪽 입꼬리를 씰룩 올리며 목검을 거두었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은 이내 거대한 먼지를 일으키며 땅을 부유한 채 안전하게 착지를 하더니, 이내 차분하게 학처럼 고고히 내려앉았다.
백무열은 그런 그를 향해 걸어가면서 나지막이 내뱉었다.
"왔냐. 춘택아."
"그래. 왔다."
그는 오랜만에 보는 40년 지기 죽마고우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