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221화
제221화
포트렌의 남서쪽에 위치한 칼라모르 비행 선박장.
이곳은 원래 파르타 공국에서 수입, 또는 수출을 하는 다양한 물건들을 실어 나르는 수송 비행선이 위치한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용도가 조금 달라졌다.
현재 많은 이들이 모인 이곳은 수송의 목적이 물건에서 사람으로 옮겨가며 더욱 다양한 방면으로 돈을 쓸어 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마탑에 있는 포탈이 고장 났기 때문이었고 나와 미도, 그리고 호랑말코 삼 형제가 이곳에 나타난 이유 또한 이 비행선을 타기 위해서였다.
"네 명… 아니, 다섯 명이구나. 표 5개 주세요."
미도가 매표소 직원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생각지도 못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50만 달러입니다."
"예? 뭐가 그리 비싸요? 원래 이 가격 아니었잖아요?"
"어제 가격을 올렸습니다."
"그, 그런 게 어딨어요? 그렇다고 10배나 오른다구요?"
"따질 거면 나한테 따지지 말고 여기 주인인 귀족한테 따지쇼."
"아이씨…! 망할 자본주의. 오빠들 돈 좀 있어요?"
미도가 포트렌의 체제에 신물이 난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돌아보며 세 사람에게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물약값이 많이 나가서…."
"난 수리비…."
"난 화살 값이…."
차례대로 김현우, 박태현, 은정혁이 내뱉은 말이었다.
김현우는 성기사라는 직업 탓에 물약값이 많이 든다며 대꾸했고, 박태현 또한 격투가 클래스다 보니 방어구는 물론 무기의 수리비가 많이 나가는 편이라며 투덜댔다.
궁수인 은정혁은 말 그대로 화살에 드는 비용이 천문학적이라, 늘 돈이 부족해서 노가다를 하는 입장이었다.
마력으로 빚은 빛의 화살을 쏠 순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들어가는 물약값 또한 만만치 않았기에 그도 돈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이런 한심한 놈들 같으니라고.
그리고 그런 그들의 변명을 듣고 있던 나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매표소에 돈 뭉텅이를 올려놓았다.
그 모습을 본 미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것은 호랑말코 삼 형제 또한 마찬가지.
"엇, 안 이러셔도 되는데…."
"괜찮소. 덕분에 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이건 수고비… 아니지, 감사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주시오."
그렇게 말하며 호랑말코 삼 형제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돌아보았다.
그들은 그런 내 모습에 멍하니 침을 꼴깍 삼켰다.
다시 앞을 보니 미도는 양 엄지를 치켜세우며 쌍 따봉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들을 외면하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비행선을 향해 걸어갔다.
뒤에서 속삭이듯 떠드는 그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카리스마 장난 아닌데."
"졸라 쿨해. 원래 저런 성격인가? 근데 좀 건방진데."
"저 가면 벗겨보고 싶지 않아?"
"오빠들 감사는 못 할망정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렇게 우리는 비행선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오, 역시 여기는 언제와도 멋있단 말이야."
미도가 비행선의 내부를 둘러보며 작은 감탄을 내뱉었다.
비행선은 마치 거대한 배처럼 생겼는데,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거대한 돔 형태의 유리로 감싼 것이 마치 어항의 물고기가 된 기분이 들었다.
"사람이 생각보다 많네?"
"이렇게 비싼데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긴 있구나."
"어쩔 수 없지. 포탈이 고장 났으니까. 여기서 오르카 왕국은 너무 멀기도 하고."
김현우, 박태현, 은정혁은 익숙한 듯 주변을 둘러보며 앉을 곳을 찾았다.
이곳은 원래 물건을 싣는 수송선이었기에 따로 앉을만한 자리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적당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나는 그들과 약간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미도가 그 모습을 보곤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떨어져 계세요? 이리 오셔요."
"난 이게 편해서."
"불편하지 않으세요? 이리 오시는 게 나을 텐데."
그녀의 물음에 대한 답을 하려는 찰나.
비행선 내부에 설치된 기계음이 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방송이 울려 퍼졌다.
- 탑승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 비행선은 '파르타 공국'을 목적지로 하고 있으며, 원래는 수송선이었지만….
방송이 나오자 다른 유저들도 하나둘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몇몇 유저들이 이곳을 향해 걸어왔다.
나는 그들로부터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약간의 몸을 틀었다.
그러다 마주친 것은 미도의 눈이었다.
"……."
"히히. 거봐요. 제가 불편할 거랬죠?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나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손녀가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 * *
- 이제 비행선이 뜰 예정입니다. 승객 여러분들은 당황하지 마시고, 편안하게 있어 주십시오. 혹시나 구토감을 느끼시는 분들은 기내에 있는 직원에게 말씀하시면 편의를 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도가 안정권에 이르면 바깥으로 나오실 수 있으나, 잘못하면 날아가실 수도 있으니 가급적이면 나오지 않으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상입니다.
쿠구구구구-
잠시 뒤, 비행선이 거친 기계음과 화력을 내뿜으며 두둥실 뜨기 시작했다.
거대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지붕의 가죽을 보며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살면서 열기구를 타본 적이 없는데, 이런 식으로 경험을 해보게 될 줄이야.
"와, 신기하다. 저게 마력석을 태워서 내는 불꽃이라며?"
"저 지붕의 가죽은 질긴 와이번의 가죽으로 만든 거래."
"이런 경험은 처음인데. 완전 신나지 않아?"
몇몇 유저들이 아이처럼 신나서 소리쳤다.
하긴 살면서 이런 구경을 어디서 해보겠는가.
나와 일행들은 서로를 마주 본 채, 빙 둘러앉아 점점 멀어지는 땅을 구경했다.
아래에 있던 포트렌은 순식간에 조그만 점이 되어 있었다.
…엄청 빠르네.
미도에게 설명을 들으니, 이 비행선은 파르타 공국의 마도 공학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새삼 이렇게 보니 파르타 공국은 굉장히 미래지향적인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5분쯤 흐르자 고도가 안정권에 접어들며 속도가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고, 미도가 내게 말을 건 것은 그때였다.
"혹시 파르타 공국엔 무슨 일로 가는 것인지 여쭤 봐도 될까요?"
"친구를 만나러 가는 중이오."
"오, 친구분이 있으시…. 아, 죄송해요. 당연히 있으시겠죠. 하하…."
어색한 침묵이 주변을 휘감았다.
이번에 입을 뗀 것은 나였다.
"그대들은 왜 그곳으로 가는 것이오."
"저희는 곧 있을 월드 대항전을 준비 하러 갑니다."
대답을 한 것은 김현우였다.
그는 이어서 내게 물었다.
"혹시 다크울프 님도 월드 대항전에 나가시나요?"
그의 물음에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미도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나를 보고 있었고, 박태현은 건틀렛을 매만지는 척하면서 이쪽으로 귀를 내밀었다.
은정혁 또한 활을 정비하는 척하며 이곳을 힐끔거리는 모습이 좀 웃기기도 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모두가 내가 그곳에 출전하는지 안 하는지 궁금해하더군."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갈 생각이 없소. 관심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렇군요."
"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휴우."
김현우, 박태현, 은정혁이 각자 다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가장 놀란 것은 미도였다.
"왜요?!"
그 소리가 너무 컸는지, 미도는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주변에 있던 유저들은 잠시 우리를 돌아보더니, 별일 아닌 것처럼 각자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미도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안 나가세요? 나가면 1등은 따 놓은 당상인데?!"
그 말에 태클을 걸듯 박태현이 끼어들었다.
"그건 아니지. 바보야. 마이클이랑 미국이 얼마나 센데. 독일은 또 어떻고, 라인하르트 그때 못 겪어봤냐? 중국에 견소룡은 어떻고. 러시아도 강국이야. 우리가 제일 약할걸? 스타 프루츠 능력자가 없잖아. 어우, 지지리 운도 없지."
"흥. 라인하르트야 다크울프 님이 한 방에 묵사발 냈는데 뭐. 권왕도 마찬가지 아니야?"
"그건 그렇지만, 그게 어디 쉽겠냐? 월드 대항전의 개인전은 마지막 날 PVP 종목 말고는 없다고. 나머지는 다 팀전이야."
미도와 박태현은 서로를 바라본 채 으르렁거렸다.
나는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헛기침을 "에헴." 한 번 했다.
미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것이 보였다.
"큼, 죄송해요. 저희가 너무 주책이었죠?"
"괜찮소. 나는 어차피 나가지 않을 거니, 싸우지들 마시오."
미도와 박태현은 서로를 향해 고개를 돌린 채 뾰로통하게 입을 삐죽 내밀었다.
나는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요리를 하고 싶었지만, 주변에 보는 눈이 많아서 할 수가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옅은 한숨을 내쉬는데, 미도가 의외의 제안을 해왔다.
"혹시 저희 길드에 들어오시지 않을래요…?"
그런 그녀의 말에 또 박태현이 끼어들었다.
"바보야. 다크울프 님이 이런 누추한 길드에 가입하시겠냐?"
"그, 그런가…?"
"그래. 제우스 길드 같은 거물에서도 눈독 들일 텐데. 당연히 안 들어오지. 나라도 속으로 미쳤냐고 할걸?"
"그래도…. 아니, 오빠는 왜 아까부터 나한테만 그래? 혹시 나한테 악감정 있어? 우이씨."
따발총처럼 퍼부어지는 박태현의 반박에 미도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순간 나도 모르게 욱하는 감정이 들었다.
이 썩을 놈이 감히 우리 손녀를 울려…?
"하겠소."
"네?"
"그 길드. 들어가겠다고 했소."
그 순간 미도를 포함한 네 사람이 전부 얼어붙은 표정으로 입을 쩍 벌렸다.
가장 먼저 소리친 것은 역시나 미도였다.
"꺄악! 정말요?! 이거 거짓말 아니죠?!"
미도가 신난 듯 폴짝거리며 방방 뛰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렇소."
"좋아요. 당장 초대해 드릴게요. 마음 변하시면 안 돼요?!"
[유저, '미도' 님이 당신을 이카루스 길드에 초대합니다. 승낙하시겠습니까?]
나는 망설이지 않고 승낙을 눌렀다.
[유저, '잭슨' 님이 이카루스 길드에 가입하였습니다.]
그와 동시에 활발한 길드 채팅창이 눈에 보였다.
- 오로라: 잭슨? 잭슨이 누구야?.
- 가니어: 새로운 신입인가.
- 비나이더: 어서 와요. 환영합니다!
…
이카루스 길드원들이 환영 인사를 해왔지만, 나는 그런 것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다.
바로 길드 채팅 거부 표시를 눌렀고, 내 정보 또한 비공개로 돌렸다.
다행히 정보를 들킬 염려는 없었다.
[이제부터 당신은 길드 채팅을 받아볼 수 없습니다.]
[이카루스의 길드원들은 당신의 정보를 볼 수 없습니다.]
"맙소사. 진짜 다크울프가 우리 길드에 가입하다니…."
박태현이 허탈한 듯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보며 중얼거렸다.
김현우가 다가와 내게 악수를 건넸다.
"환영합니다. 전 길드장 김현우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부탁하오."
나는 그의 손을 맞잡으며 위아래로 흔들었다.
이어서 옆에서 은정혁이 활기찬 표정으로 다가왔다.
"전 얘들 친구예요. 보시다시피 궁수구요. 잘 부탁드려요."
미도 또한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저, 저는 부길드장이에요. 잘, 잘 부탁드려요오오옷!"
얘는 왜 자꾸 말을 더듬는 거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