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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216화 (216/375)

나 빼고 다 젊은이 216화

제216화

구슬 조각을 본 마이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맞습니다. 저한테 주시겠습니까?"

"아니, 그러니까 네 녀석의 뭘 믿고?"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전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증명해봐라."

"제가 나쁜 사람이었으면 이곳의 몬스터들을 안 죽였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그리고 전 선생님께 가르침을 청하고 있습니다."

"흐음…."

백무열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턱수염을 쓸었다.

사실 그도 알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이 녀석이 지금은 아군임이 분명하다는 걸.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언제 달라질지 모르는 것이다.

지금은 저래도 구슬 조각을 가져가고 나서는 나 몰라라 할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그리고 그가 망설이는 이유는 또 있었다.

'왜 이걸 모으는 거지?'

춘택이에게 듣기로 이것에는 사악한 힘이 들어 있어서 잘못하면 조각의 힘에 취해 폭주할 수 있다고 들었다.

당연히 온전히 만지려면 최소한 스타 프루츠의 능력자는 되거나, 자신처럼 한 성좌가 지켜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는 건 지금 이 녀석이 능력자라는 얘기인데….

"너 능력자냐?"

"어떻게 아셨습니까?"

"내가 아는 게 좀 많지."

"역시 검성이십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 검성이 뭐냐고."

"끝까지 모른 척하실 겁니까?"

"아이, 진짜…."

백무열은 진득한 욕지거리를 한바탕 내뱉으려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아직 얼굴도 모르고 초면인 이에게 욕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을 잘 따르기도 하고.

'이놈을 좀 이용해야겠군.'

백무열이 한쪽 입꼬리를 씩 올리며 말했다.

"이건 지금 줄 수 없다."

"그럼 언제 주시겠다는 겁니까."

"나도 네 녀석처럼 찾는 게 있다."

"…대충 알겠군요. 그걸 찾아달라는 겁니까?"

"그래."

"그게 무엇인지요."

"스타 프루츠다."

"……!"

마이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백무열도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순 없지만, 꽤 놀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이클이 더없이 진지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저 같은 불사의 인간만 먹을 수 있는 겁니다. NPC인 당신이 그걸 먹으면 죽고 말 겁니다."

그 말에 놀란 것은 백무열이었다.

'이 녀석 날 NPC로 알고 있는 건가…?'

추측하건대 아마 꽤 강한 NPC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눈앞의 마이클이 자신보다 레벨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가르침을 청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장난기가 발동한 백무열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돕기나 해라."

"방법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그래. 내가 그 검성인지 검정인지 아니냐."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마이클은 잘 알겠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백무열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꾹 참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주변을 둘러보며 덤벼오는 몬스터는 없는지 살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살핌과 동시에 말했다.

"아마 내가 찾는 것은 '라돈'이라는 용이 지키고 있을 거다."

"용이요…?"

"그래. 황금 사과나무를 지키고 있다더구나. 아마 스타 프루츠도 그곳에 함께 있는 모양이야."

"그렇군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놈이 어떻게?"

"이래 보여도 제가 다재다능합니다."

그러면서 마이클은 자신의 모래를 갈무리해 어떠한 형상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바로 모래로 만든 눈알.

일명 '모래 눈'이라는 이름을 가진 안타라스의 성좌 스킬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백무열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빌어먹을 미지의 힘이 마이클이 가진 능력을 왜곡하여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자신의 눈알을 뽑아내는 악령의 모습이었다.

'…징그러운 놈일세.'

새삼 마이클이 진짜 스타 프루츠 능력자가 맞는지 의문을 가지는 백무열이었다.

"얼마 걸리지 않을 겁니다."

마이클은 그렇게 말하며 수백 개의 모래 눈을 만들어내 사방으로 흩어 보냈다.

물론, 백무열의 눈에는 눈알을 뽑아낸 악령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으로 보였지만.

그렇게 10분이 흘렀을까.

"찾았습니다."

"……!"

* * *

나는 에드워드의 끈질긴 집착을 뿌리치며 그가 준비해준 귀티 나는 정장을 입었다.

거울을 보며 나는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역시 새 옷을 입으면 기분이 언제나 상쾌하다.

"이것이 마음에 드십니까?"

"음, 이걸로 하지."

"알겠습니다."

나는 다시 정장 상의를 벗어, 에드워드의 전속 디자이너에게 건네주었다.

재봉실로 사라지는 그를 보며 새삼 어떤 한 사람이 생각났다.

그는 바로 드레인.

최근 몸이 안 좋아서 접속을 잘 하지 못했다고 들었다.

그러다 얼마 전에 메테우스에 나타났었는데, 그는 오르카 왕국으로 갈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는 홀연히 떠났었다.

그게 아마 한 달 전쯤이었을 거다.

…잘 지내나 모르겠네.

이왕 오르카 왕국으로 가는 김에 그에게 연락을 한 번 해보는 것도 좋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드레스 룸을 나왔고, 소파에 볼을 한가득 부풀린 에드워드가 토라진 채로 누워있었다.

참나 애도 아니고.

"아, 애였지 참."

"뭐라고? 잭슨?"

"…아닙니다. 그나저나 그 녀석은 어디 갔습니까?"

"그 녀석?"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이쯤이면 나타나야 할 녀석이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케레노스 말입니다. 이쯤이면 나타날 때가 됐을 텐데. 이놈이 어른이 왔으면 인사를 해야지. 어딜 간 게야."

그 말에 에드워드가 코를 슥 문질렀다.

그리고 그는 "에헴."하며 일부러 자신을 보라는 듯, 양어깨의 봉우리를 한껏 높이 세웠다.

"뭐하시는 겁니까?"

"보면 몰라? 설명해준다고."

그리고 에드워드가 장황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주 내용은, 오르카 왕국 부근으로 가는 마법 포탈이 있는데 이는 최소 영주 이상의 지위를 가진 사람만 이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케레노스를 포함한 실피드 기사단은 쓸 수가 없으니 그들은 며칠 전 그곳에 미리 가 있는 상태라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들으며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저도 못 쓰는 거 아닙니까? 그 마법 포탈인가 뭐시기."

"아냐. 영주의 권한으로 딱 한 사람은 데려갈 수 있어. 그가 귀족이 아니더라도 말이야."

"흐음. 편리하군요."

나는 턱수염을 매만지며 흥미롭게 얘기를 들었다.

"그래도 왕국 부근으로 가는 거지, 왕국으로 가는 건 아니야. 아마 그곳에서 케레노스가 마차를 대여해놨을 거야. 그걸 타고 또 한참 가야 해."

"그냥 왕국에 포탈을 만들지. 왜 그렇게 번거롭게…. 쯧."

내가 고개를 저으며 혀를 끌끌거리자 에드워드가 고개를 저었다.

"그야 귀족이 배신할 수 있으니까. 괜히 왕국을 왕래할 수 있는 포탈을 만들었다가 배신한 귀족이 중요한 기밀을 빼돌리면 큰일 나지 않겠어?"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나는 고개를 주억였다.

"이해했습니다."

"바보."

"저 바보 아닙니다만."

"바보는 원래 기사를 해야 해. 그러니까 내 기사 하지 않을래?"

"아, 싫다니까요. 거 참."

나는 일부러 듣지 않겠다는 듯, 양손을 귀에 가져다 대며 빠른 속도로 두드렸다.

"아아아아아~"

"내 기사 하자! 기.사.하.자. 멍.충.아! 잭.슨.바.보!"

"아아아아아~ 안 들린다~"

때마침 수선을 마친 디자이너가 밖으로 나왔다.

그는 생각지도 못한 모습에 멍하니 서 있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손에 들려진 정장 상의를 폼 나게 입었다.

"가시죠."

"기사하자고!"

"아, 싫다니까!!"

도대체 몇 번이나 말해야 되는 거야.

* * *

헤스페리데스에 위치한 구름의 신전.

그곳에 아이글레, 에리테리아, 라레투사 삼 남매가 모여 수정구슬 속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새로운 인간이 끼었어."

"저 인간도 강해."

"…몬스터들이 당해내지 못하는군."

한날한시에 태어났지만, 나름 책임감을 가지며 맏이 역할을 하는 라레투사는 고심에 빠졌다.

그녀를 포함한 다른 동생들이 모두 이곳에 있는 이유는 아버지의 명에 따라 황금 사과나무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기 위해 아버지에게 구름에 대한 권능을 하사받았고, 그녀들은 각기 다른 구름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글레는 '수호의 구름'으로 이곳을 지켰고, 에리테리아는 '현혹의 구름'으로 몬스터들을 조종했다.

그리고 라레투사는….

"아무래도 언니가 나서야 할 것 같아."

"그래. 언니가 나서면 쉽게 해결될 거야. 언니는 우리 중에 제일 강하잖아."

라레투사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녀는 신전의 구석에 위치한 어떠한 곳으로 향했다.

문을 연 그녀의 눈에 다양한 구름들이 보였다.

각종 구름으로 만들어진 무기와 갑옷들.

그곳의 벽은 온통 구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라레투사는 오랜만에 들어오는 이곳의 이름을 되뇌었다.

'구름의 공방.'

삼 남매 중 가장 용맹하고 손재주가 좋았던 그녀는 아버지에게 구름의 공방을 하사받았다.

라레투사는 이곳에서 다양한 무기와 갑옷을 만들며 구름을 손으로 빚는 법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다.

또한 그것을 바탕으로 강력한 힘 또한 얻었다.

라레투사는 벽에 걸려있는 직접 만든 구름의 검과 채찍을 하나씩 거머쥐었다.

그리고 동시에 생각했다.

가급적이면 평화롭게 해결하면 좋겠다고.

하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면….

"…아버지의 이름으로 너희를 처단하겠다."

* * *

백무열은 마이클이 안내하는 곳으로 빠르게 달렸다.

하지만 가는 길에 달려드는 몬스터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만 갔다.

계속해서 죽이며 숫자를 줄이곤 있지만, 그 기세를 모두 꺾는 것은 힘들었다.

결국, 두 사람은 포위되고 말았다.

"너무 많습니다. 사부님."

"사부는 누가 사부냐!"

"제자로 받아주시기로 한 것 아니었습니까?"

"내가 언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제자가 생겨버린 백무열은 무척이나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이클은 아쉽다는 듯 투덜거렸다.

"그냥 모른 척해주시지."

"모른 척하기엔 너무 뜬금없었다고 생각하지 않냐?"

"일단 이놈들부터 처리하고 얘기하시죠."

"그러자. 이 썩을 놈아."

두 사람은 다시 한번 힘을 끌어올렸다.

마이클은 양손에 하나씩 전갈의 꼬리를 닮은 스콜피온 소드를 개방했고, 최대한 힘을 아껴가면서 싸웠다.

백무열은 어차피 몽둥이의 가호밖에 없었기에 빠른 속도로 검집을 휘둘렀다.

그리고 종종 파워 웨이브라는 무 속성의 검기를 방출해 날리며 몬스터 무리를 두 쪽으로 갈라놓기도 했다.

헤라클레스의 힘과 백무열의 검술이 합쳐지니, 가히 세상을 가르는 듯한 위력이었다.

콰콰콰콰콰-!

그 모습을 본 마이클이 뿌듯하게 웃었다.

'검성 맞구만. 아닌 척하시긴.'

스승의 강력함에 마이클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는 머리로, 그리고 마음으로, 백무열을 스승으로 모시기로 다짐한 상황이었다.

물론 백무열은 그 사실을 몰랐지만.

"에이. 귀찮은 놈들. 다 죽어라!!"

쉬쉬쉬쉬쉭!

백무열의 검집이 사방팔방으로 휘둘러지며 거대한 무 속성의 검기를 사방으로 퍼트렸다.

몬스터들은 그 엄청난 위력을 감당하지 못하며 무참히 쓰러져갔다.

백무열은 잘려나가는 몬스터들을 보며 태연하게 근처에 있는 나무의 과일을 하나 따먹었다.

이것은 마력을 회복할 수 있는 과일이었다.

[마력이 응축된 구름 맛 사과를 섭취하였습니다.]

[당신의 마력이 대폭 회복됩니다.]

순식간에 파워 웨이브로 소진된 마력이 회복된 백무열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과일을 한 번 더 씹었다.

아삭-!

그리고 그런 백무열을 마이클은 뿌듯하게 보고 있었다.

'역시 스승님은 대단….'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거기까지다."

"……!"

"……!"

백무열과 마이클의 시선이 동시에 하늘로 향했다.

그곳에 온통 구름으로 치장한 장대한 기골의 여인이 서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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