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213화
제213화
쿠웅!
무언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처 없이 숲을 헤매던 마이클은 앞을 막는 어떤 투명한 벽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모래 주먹을 휘둘렀다.
그가 가진 모래의 권능은 이제 숙련도가 높아져 거대한 주먹의 형상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였다.
"흡."
짧은 기합과 함께 마이클이 다시 한번 더 모래 주먹을 정면으로 휘둘렀다.
쿠우웅!
아까보다 더 떨림이 컸지만, 그럼에도 결계는 완고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마이클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이래도 안 뚫리나 보지."
마이클이 모래의 권능을 이용해 주변에 있던 자잘한 바위를 분해해 더욱 많은 모래를 빨아들였다.
어느새 그의 어깨 뒤에는 거대한 모래 주먹이 두 개나 만들어져 있었다.
그는 각각의 모래 주먹을 자신의 양손에 동화시켰다.
그가 직접 주먹을 휘두르는 것처럼 해볼 생각이었다.
그것도 무지막지한 연타로.
[전갈궁, 안타라스가 당신을 흥미롭게 쳐다봅니다.]
동시에 마이클이 날아올랐다.
그는 허공에 뜬 모래를 계단처럼 밟으며 공중으로 도약했다. 그리고 양손을 빠른 속도로 휘둘렀다.
지금 마이클의 머릿속엔 오직 눈앞의 것을 부수겠다는 일념만이 가득했다.
쿠쿠쿠쿠쿵!
마치 지진이 일어난 듯 출렁이는 결계에 약간의 균열이 생긴 것을 보며 마이클은 더욱 빠르게 속도를 올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은 칼을 쓰는 검사다.
마이클은 다시 한번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모래 속에서 이질적인 모래가 솟기 시작했다.
'될지 안 될지 확신이 없었는데….'
모래의 권능이 더욱 능숙해지며, 마이클은 혹시나 싶어서 써본 것이었다.
한데, 된다.
참고로 안타라스는 이런 능력이 있다는 걸 알려주지도 않았다.
[전갈궁, 안타라스가 새로운 모래에 관심을 보입니다.]
아마 안타라스도 처음 보는 것이겠지.
마이클 조차도 모래에 대해 공부를 하며 알게 된 사실이었다.
스으읏.
단단한 사금이 모여 한 자루의 검이 되었다.
이것의 이름을 무어라 지어야 할까.
"데저트 칼리버."
마이클은 방금 생각해낸 기술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거대한 모래 손으로 검을 쥐었다.
데저트는 당연히 사막을 뜻하는 영어였고, 칼리버는 위대한 왕이었던 '아서'가 썼던 '엑스칼리버'에서 따온 것이었다.
그는 곧바로 움켜쥔 검을 수직으로 내리그었다.
사아아아악-!
그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마이클은 자유자재로 모래 손을 움직이며 거대한 데저트 칼리버를 휘둘렀다.
그리고 마침내 결계가 선을 그리며 무너졌다.
쿠르르릉!
마이클은 무너져 내린 하얀 것의 정체를 확인했다.
"이게 뭐지?"
[전갈궁, 안타라스가 그것은 구름이라고 말합니다.]
[전갈궁, 안타라스가 새로운 모래인 '사금'에 관심을 가집니다.]
"구름?"
구름이 이 정도의 단단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마이클은 제법 놀라고 있었다.
그는 태연하게 결계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이어서 메시지가 떴다.
띠링-!
[당신은 성좌보다 뛰어난 모래의 경지에 들어섰습니다.]
[방금 창조한 기술에 당신이 이름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마이클은 간단히 '데저트 칼리버'라는 이름을 지었다.
[이제부터 '데저트 칼리버'라는 단어를 말하거나 속으로 생각할 때마다 손쉽게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모래의 경지에 새로운 길을 개척했습니다.]
[전설 칭호, '샌드 마스터'를 획득하였습니다!]
[모래를 이용한 공격력과 방어력이 20% 증가합니다.]
'좋군.'
혹시나 될까 싶어서 시도해 본 것인데, 진짜 된 것도 놀라웠지만, 샌드 마스터라는 칭호를 얻은 것이 더 좋았다.
이제 그는 모래를 이용한 공격과 방어에서 더욱 견고함을 갖추게 되었다.
쿠구구구구.
뒤에서는 구름의 결계가 다시 수복되어 점차 제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그것에 볼일은 없었다.
그의 목적은 이곳 어딘가에 있을 구슬 조각을 찾으러 온 것이었기에.
그리고 겸사겸사 사냥도 하러 온 것이었다.
"크르륵."
그리고 지금 그를 반기는 것은 수백의 몬스터 떼였다.
* * *
백무열은 무아지경에 빠져 목검을 휘둘렀다.
다행히 이곳에서도 몽둥이의 가호는 쓸 수 있었기에,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 식인 식물 '라플레네'의 대가리가 터지자, 백무열이 중얼거렸다.
"콩나물 대가리 같은 게."
이어서 그는 거대한 고릴라와 맞붙었다.
제법 단단한 가죽을 가지고 있어서 네다섯 번은 휘둘러야 쓰러질 녀석이었지만, 그것은 백무열에겐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치열한 혈전 끝에 방금 전 '파워 웨이브'라는 스킬을 습득할 수 있었다.
[파워 웨이브][액티브]
등급: 영웅
오직 힘으로 만들어낸 무(無)속성의 기운을 전방으로 방출할 수 있다. 어떠한 속성에도 치우쳐 있지 않기에, 속성을 가진 대상에게 100%의 데미지를 입힐 수 있습니다.
설명은 짧았지만, 이것은 꽤 유용한 스킬이었다.
습득 방법은 까다로운 편이었는데, 무 속성으로 120레벨까지 올리는 것이었다.
'파워 웨이브.'
쉬쉬쉬쉬쉭!
순식간에 내지른 고릴라의 주먹을 피해 다섯 번의 참격을 휘두른 백무열은 동시에 팔을 타고 올라가 고릴라의 어깨에 올라섰다.
"이 망할 놈의 원숭이!"
그리고 또 한 번 빠르게 목검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펼쳐진 쾌속의 타격에 '뿔 고릴라'는 괴성을 질러댔다.
"크워어어억!"
"시끄럽다. 이놈아!"
백무열은 목검을 수평으로 휘둘러 놈의 뿔을 때려버렸다.
빠각-!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의 뿔이 바닥에 처박혔다.
뿔 고릴라는 그것을 보며 더욱 진노했다.
"크와아악!"
"에이, 귀 아프다. 이 녀석아!"
쾅쾅쾅쾅!
백무열은 뿔 고릴라가 죽을 때까지 사정없이 머리를 내려쳤다.
그리고 마침내 뿔 고릴라가 쓰러졌다.
쿠우우웅!
"거참. 단단한 녀석일세."
그는 떨어진 '고릴라의 원뿔'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동안 몽둥이의 가호를 쓴 자신의 공격을 이토록 많이 버틴 것은 이놈이 처음이었다.
그 외에 다른 몬스터들은 공격력은 강해도 방어력이 약한 편이어서 손쉽게 죽일 수 있었지만, 이 녀석은 아니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크와악!"
"이런 놈이 대체 몇 마리나 있는 거야. 제길."
끝을 모를 정도로 나오는 몬스터들이었다.
그리고 그중 고릴라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거 잘못하면 죽겠는데?'
백무열은 처음으로 게임에서 죽음이란 것을 각오했다.
물론, 춘택이에게 들으니 죽으면 다시 살아난다는 얘길 들었지만, 굳이 자처해서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어디서 살아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미지의 힘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일시적으로 당신과 연결된 존재가 있습니다.]
"음?"
['몽둥이를 좋아하는 성좌'가 화들짝 놀랍니다!]
['몽둥이를 좋아하는 성좌'가 그곳에서 탈출하라고 말합니다!]
"썩을 놈이 지가 여기로 보내놓고는 뭔 헛소리야."
['몽둥이를 좋아하는 성좌'가 자신도 이럴 줄 몰랐다고 말합니다.]
['몽둥이를 좋아하는 성좌'가 당신에게 성유물의 힘을 내립니다.]
우우웅-.
들고 있는 목검이 떨리며 붉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것은 기하학적인 어떤 형상을 빚어냈다.
"뭐야. 또 몽둥이냐?"
[일시적으로 당신의 무기에 '성유물'의 기운이 깃듭니다!]
[성유물, '올리브 나무 몽둥이'가 의지를 발산합니다.]
쿠구구구구!
아무래도 평범한 몽둥이가 아닌 듯하다.
이거 더럽게 무거운데?
"큭. 뭐 이딴…."
하지만 그 순간 몽둥이가 하늘로 두둥실 떠올랐다.
백무열은 놀란 표정으로 그것을 보았다.
주변에는 아직도 몬스터들이 들끓고 있었다.
허공으로 떠오른 몽둥이에 형용할 수 없는 힘이 모여들더니, 이내 수평으로 휘둘러졌다.
부웅!
마치 야구에서 4번 타자가 홈런을 쳤을 때처럼 깔끔한 스윙.
그것에 담긴 힘은 너무나도 거대해서 일순 백무열 조차도 오싹한 소름을 느낄 정도였다.
거대한 힘의 파장이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파아아아앙!
"이런 미친…!"
어마어마한 힘의 격류에 백무열은 버티다가, 몇 바퀴 돌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주변의 숲이 흔들리며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가까이 있는 나무조차도 거대한 풍압을 이기지 못하고 뽑혀버렸고,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도 이 지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백무열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대체 무슨…."
눈을 뜨니 보이는 것은 몬스터의 잔해였다.
방금 전까지 분명 살아있었건만, 잠깐 사이에 눈을 감았다가 뜨니 모두 잿빛을 휘날리고 있었다.
그것이 뜻하는 것은 명백한 죽음이었다.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위력이…."
그리고 동시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몽둥이를 좋아하는 성좌'가 빨리 탈출하라고 외칩니다!]
['몽둥이를 좋아하는 성좌'가….]
지지직.
메시지가 이어지다가 중간에 끊어졌다.
그리고 이번엔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미지의 힘이 복구되었습니다.]
[미지의 힘으로 인해 당신은 바깥과의 연결이 단절되었습니다.]
"…미치겠네."
도대체 저 미지의 힘이 뭔지 모르겠다.
무엇이기에 나를 이토록 짜증나게 만든단 말인가.
허공에 떠 있던 몽둥이가 자신을 향해 내려앉은 것은 그때였다.
몽둥이에 감돌던 빛이 흩어지며 다시 목검으로의 모습을 되찾았고, 이내 자신의 손 위에 가볍게 안착했다.
하지만 그 순간.
쩌적.
"응?"
쩌적. 쩍.
빠각!
[흑단 나무 목검의 내구도가 0이 되어 부서졌습니다.]
"……."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이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그동안 그 어떤 단단한 것에도 부서지지 않고 버텨왔던 자신의 목검이다.
스킬인 몽둥이의 가호에도 몽둥이로 취급되는 것은 부서지지 않는다고 적혀있었다.
한데,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몽둥이가 산산조각이 났다.
"…아니, 나보고 어쩌라고."
사실 목검이야 그리 비싼 건 아니다.
손쉽게 구할 수 있기도 했고, 필요하면 칼로 깎아서 만들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백무열은 왠지 모르게 서글펐다.
자신의 아끼던 것을 잃어버린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아…."
아무래도 자신의 추측으로는 한 가지 가능성밖에 없었다.
'아까 그 성유물인지 뭐시기 때문이겠지.'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비상식적인 힘이었다.
성유물이 무엇인지는 대충 춘택이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위력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짐작하건대, 흑단 나무로 만든 목검은 그것의 위력을 버티지 못했음이 분명했다.
"좀 더 튼튼한 걸 찾아봐야 하나."
언젠가 자신이 스타 프루츠란 것을 먹고 헤라클레스의 힘을 자유자재로 쓰기 위해서는, 무기의 단단함도 중요하단 사실을 백무열은 이제야 깨닫는 중이었다.
"흠, 그래도 잠깐 동안은 위험하진 않겠군. 목검 하나 만들 시간 정돈 충분해."
백무열은 인벤토리에서 작은 단검을 꺼내, 근처에 떨어진 적당한 나뭇가지를 깎기 시작했다.
저번에 미도에게 수련용 목검을 만들어줄 때 상점에서 산 것이었는데,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사각사각.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 어디선가 발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다.
이건 분명 사람의 발소리였다.
백무열은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선 한 코쟁이 청년이 걸어오고 있었다.
"누구신데 여기에 계십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