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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212화 (212/375)

나 빼고 다 젊은이 212화

제212화

시간은 흘러 다시 주말이 되었다.

오랜만에 새벽 운동을 갔다 온 나는 지금 꽤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래서 번호를 가르쳐줄 수 없다구요?"

"그, 그래."

"제가 이렇게 부탁하는데도요?"

눈앞의 미도가 한가득 볼에 바람을 넣어 부풀렸다.

그 모습이 너무도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잡아서 꼬집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지금은 그래서는 안 되는 분위기였다.

"미안하다. 그 친구가 절대 함구해달라고 사정을 하더구나. 나도 어쩔 수가 없…."

"됐어요. 저 삐졌어요! 흥! 할아버지. 흐응!"

미도가 눈을 질끈 감으며 양팔을 휘젓더니, 빼액- 소리를 지르며 쿵쾅거리면서 방을 나섰다.

나는 그녀를 잡을 틈도 없이, 허공의 손을 내렸다.

방안을 감도는 정적만이 주변을 휘감고 있었다.

"끙. 일이 이렇게 꼬여버리나."

깊은 한숨을 내쉬며 미도가 나간 방문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꽤 일찍 나왔기에 이번에도 들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설마하니 미도가 이 시간까지 기다리고 있었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아버님. 저예요."

"들어오거라."

끼익-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며느리인 김미경이었다.

그녀는 자다 일어났는지, 눈을 비비고 있었다.

평소 내가 새벽 운동을 갔다 오면, 그녀는 이 시간쯤 일어나서 밥을 차리곤 한다.

"혹시 미도랑 싸우셨어요?"

"아니, 뭐…. 큼. 그래. 아무래도 오해를 산 모양이다."

"꽤 오래 갈 것 같던데…."

"미도는 방에 들어갔니?"

"아뇨. 오늘 방송하는 날이라면서 일찍 접속해야 된다고 나갔어요."

"아…."

그러고 보니, 깜빡하고 있었다.

오늘이 바로 미도가 내게 출연해달라고 부탁했던, 그 윷투비인지 뭔지 하는 방송 날이었다.

설마 벌써 치매가 온 건가.

그 중요한 걸 까먹고 있었다니, 진짜 큰일 날 뻔했네.

"그리고 아버님께 이런 게 왔어요."

"응?"

그녀가 내민 것은 무언가 적힌 종이였다.

고이 접힌 것이 꽤 중요해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그것을 펼쳐 읽어내려 갔다.

"이건…."

읽자마자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건 차량 수리에 대한 견적서였다.

그것도 저번에 내가 교통사고를 냈던 람보르기니라는 차종에 대한 것.

뒤에 딸린 이름은 너무 어려워서 잘 모르겠다.

영어로 적혀있었으니까.

"…람보르기니 무엇을 싣을라고."

"무르시엘라고예요. 아버님."

"큼. 그래, 그거. 영어라 발음이 어렵구나."

핵심은 이랬다.

7억.

그 망할 놈들이 수리비로 7억을 청구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혈압이 올랐는지 뒷목이 당겨왔다.

내가 목을 주무르기 시작하자, 며느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왔다.

"아버님, 괜찮으세요?"

"…괜찮다."

"힘드시면 애 아빠한테라도…."

"아니다. 아직 그 정도까진 아니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 녀석한테는 입도 뻥끗하지 마라."

"정말 괜찮은 거죠?"

"그래. 내게 생각이 있다."

정 안되면 아크스타의 달러를 현금으로 환전하는 방법도 있다.

지금의 내게 7억은 갚을 능력이 충분했다.

문제는 내가 지금 굉장히 열 받는다는 거지만.

…역시 그때 배추김치로 더 때렸어야 했나.

* * *

나는 곧장 게임에 접속했다.

눈을 뜨니 나타난 곳은 메테우스에 위치한 집무실.

그런데 주변이 조금….

"뭐야. 언제 이렇게 변했지?"

집무실의 외관은 완전히 변해있었다.

전에는 칙칙하고 좁은 촌장의 집이었다면, 지금은 저번에 보았던 윈디아의 꼬마 영주가 업무를 보는 곳과 더 비슷했다.

나는 주변을 돌아보며 작은 감탄을 했다.

"대대적으로 공사를 할 거라더니."

현재 메테우스는 '마을'에서 '소도시'로 바뀌기 위한 대규모 공사를 진행 중이다.

돈은 충분했고, 얼마 전에 헬레나에게 이곳도 바뀔 것이라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이 정도로 바뀔 줄은 몰랐다.

나는 곧장 문을 열고 나왔다.

그곳엔 헬레나가 업무를 보고 있었다.

"어머, 오셨네요."

"고생이 많구나."

"아니에요. 저도 즐거워서 하는 거예요."

나는 아직 그녀에게 아렌이 부탁한 것을 말하지 못했다.

사실 도저히 자신이 없다.

괜히 말했다가 헬레나가 떠나버리면 내 입장에선 굉장히 난감한 상황이니까.

…지금도 이렇게 잘해주고 있는데, 헬레나가 떠나버리면 내가 없는 동안 이곳을 맡아줄 인재가 없어.

이거야 말로 진퇴양난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무엇을, 언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했지만, 도저히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참, 잊지 않으셨죠? 오늘 오르카 왕국으로 가시는 거요."

"알고 있다."

스타 프루츠를 훔쳐 콜로세움을 달아나던 날.

나는 일행들에게 메테우스에 있으니 그쪽으로 오라고 귓속말을 보냈다.

그리고 중간에 조셉과의 오해도 풀었다.

그는 카이단의 옆에 서 있던 마법사에 대해 설명해주었고, 나는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일행들이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 난 예상외의 인물을 만날 수 있었다.

"네가 대신 가면 안 되냐? 그놈의 면담인지 뭔지 거추장스러운데."

"꼭 본인이 직접 가셔야 해요. 윈디아의 영주님이 그랬잖아요."

"끙."

그 예상외 인물은 바로 윈디아의 영주 에드워드였다.

그는 내 경기를 친히 보러 마차를 대동하고 왔다며 으스댔는데, 사실 진짜 목적은 오르카 왕국에서 내려온 칙령을 내게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아까 얘기했던 영주 임명을 가장한 면담 때문이다.

어쨌든 메테우스 또한 윈디아에 속한 곳이었다.

이번에 소도시로 격상을 하며 내가 소영주의 지위를 가지게 되었으니, 그가 직접 찾아온 것은 나와의 동맹을 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나는 그 동맹을 약조했다.

"빌어먹을. 도대체 얼마나 거창한 지위를 주려고 직접 부르는 게야."

"음, 제가 알기로는 윈디아의 영주님은 백작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아마 잭슨님은 그 밑의 지위를 받지 않을까 싶어요."

"백작? 그게 어느 정도인데?"

나는 헬레나에게 귀족의 지위 순서에 대한 긴 설명을 들었다.

"…그러니까. 기사, 남작, 자작, 백작, 후작, 공작? 맞냐?"

"네. 그리고 그 위에는 오르카의 왕이 있구요."

"흐음…."

그렇다면 에드워드는 백작의 지위를 가지고 있으니, 생각보다 높은 귀족이라는 얘기가 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백작부터는 꽤 영향력이 있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케레노스 놈도 귀족이었군."

"기사단장님 말씀하시는 거죠? 맞아요. 그분도 엄연히 귀족 신분이라고 할 수 있죠. 제가 보기엔 그런 지위엔 연연하지 않는 분으로 보이지만요."

맞는 말이다.

케레노스는 전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는 놈이다.

돈에 대해서라면 몰라도.

"하여튼 알았다. 잠시 좀 다녀오마."

"또 사냥하러 가세요?"

"사냥이라고 하긴 뭐하고, 마실이지 마실."

나는 손을 내저었다.

사실 마실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진짜 마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요즘 나는 솔라와 풍희, 그리고 춘자를 데리고 다니며 몬스터 사냥을 가르치고 있는데, 춘자가 20레벨이 넘어서 더 이상 생닭을 먹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셋을 데리고 다니며, 협동이라는 걸 중점적으로 가르쳤다.

그래야 내가 필요할 때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성과는 아주 좋은 편이다.

"네. 조심히 다녀오세요."

"오냐. 메테우스를 부탁한다."

"걱정 마세요."

나는 그렇게 미련 없이 집무실을 나섰다.

그런데 그 순간.

띠링-!

[비밀 통신이 도착했습니다. - 발신인 '아렌.']

* * *

온 세상이 뿌옇게 안개로 뒤덮였다.

그곳에 나무에 기댄 채, 숨을 헐떡이는 한 노인이 있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오직 검은 나무 막대기 하나.

하지만 그는 그것만으로도 쉬지 않고 다가오는 몬스터를 충분히 때려죽였다.

그리고 지금 그는 숨을 고르는 중이었다.

언제 또 몬스터들이 몰려올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며칠이 지난 건지 모르겠군."

백무열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각양각색 몬스터들의 시체가 끝없이 널려있었다.

그것을 보며 그는 아마 지옥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이곳이야말로 지옥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망할."

이곳의 이름은 '헤스페리데스'라고 한다.

헤라클레스에게 들은 바로는 황금 사과가 존재하는 땅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곳으로 소환되자마자 백무열을 반긴 것은 수많은 몬스터 떼들이었다.

다행히 백무열의 실력으로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놈들이었고, 식량은 숲에 있는 과일들로도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문제는 이곳이 너무 넓어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또 어떻게 스타 프루츠를 찾아야 할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더욱 큰 문제는.

"헤라클레스."

[미지의 힘으로 인해 현재 모든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빌어먹을…."

망할 코쟁이 놈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좋은 점도 있다.

"레벨업은 엄청 했는데."

백무열은 쉬지 않고 사냥을 한 끝에 어느새 춘택이가 말했던 레벨을 다 따라잡았다.

물론, 점점 속도가 느려지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괄목할만한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대체 미지의 힘이 뭐야?"

아무리 떠올려도 그의 입장에선 알 턱이 없었다.

애초에 백무열은 이 게임에 대한 지식 자체가 전무한 편이었다.

그나마 지금도 많이 좋아진 것이다.

차라리 춘택이에게 물어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며칠 전부터 연락이 되지 않는다.

이 빌어먹을 안개 지대에 들어서고 난 뒤부터 모든 귓속말이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크르르르릉."

"젠장. 또 나타났군."

고릴라처럼 생긴 몬스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어서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식인 식물 몬스터가 나타났고, 기다란 뱀과 사마귀처럼 생긴 몬스터도 나타났다.

사실 너무 많아서 이놈들의 이름이 뭔지,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백무열은 이곳에서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울 뿐이었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해보자. 이 썩을 놈들아. 오늘 내가 쓰러지든, 네놈들이 쓰러지든 둘 중에 하나는 해야겠다!"

백무열이 즐거운 듯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 * *

덩굴이 어지러이 휘감겨있는 신전.

그곳에 마법이 빚어낸 수정구슬 속 인간을 보는 여인들이 있었다.

"대단한 인간이야. 얼마나 버틴 거지?"

"벌써 일주일째야."

"쉬지 않고 몬스터들에게서 살아남았어. 흥미로워."

그녀들은 이곳 헤리페리데스를 지키는 세 명의 님프들이었다.

각각 아이글레, 에리테리아, 라레투사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들은 형벌을 받고있는 아버지를 대신해 황금 사과를 지키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아버지를 닮아 구름을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었는데, 에리테리아는 그 구름을 이용해 주변 몬스터를 현혹해 조종하는 중이었다.

지성이 있는 것은 조종하지 못하지만, 몬스터는 충분히 지능이 낮아서 그녀의 힘으로도 충분히 조종할 수 있었다.

"그래도 얼마 버티지 못할 거야."

"구름의 결계는 단단하니 빠져나가지 못해."

"후훗, 난 그래도 저 인간이 마음에 들어. 저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하얀 털은 무엇일까? 구름일까?"

"모르겠어. 납치할까?"

"안 돼. 바보야. 죽여야 해. 그게 우리 사명이야."

"아버지가 힘들게 형벌을 받고 있어. 정신 차려 아이글레."

"미안해. 라레투사."

시무룩해진 아이글레의 표정을 보며 라레투사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들은 세쌍둥이로 태어났지만, 이 중에서 제일 어른스러운 것은 라레투사였다.

그녀는 다른 자매들을 올바르게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어…?"

"왜 그래. 아이글레."

에리테리아의 물음에 아이글레가 수정구슬을 가리켰다.

라레투사 또한 그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붉은 기운이 감도는 수정구슬.

그녀들은 동시에 놀랐다.

그것이 뜻하는 것은 하나였다.

"누군가 결계를 부수고 있어…?"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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