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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211화 (211/375)

나 빼고 다 젊은이 211화

제211화

수만 관중의 목소리가 귓가를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너무 시끄러워서 살짝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그래도 저들은 나에게 찬사를 보내는 이들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을 향해 부지런히 손을 흔들어주었다.

저번처럼 중지를 들었다가는 자칫 생방송으로 곤욕을 치를 수 있었기에 이번엔 사뭇 조심스러웠다.

"사랑해요. 다크울프~!"

"너무 멋있어요! 꺄악!"

"가면 좀 벗어줘요!"

"얼굴이 궁금하다!"

"여기 좀 봐줘요~!"

초감각 때문인지 관객 한 명 한 명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 숫자가 너무 많아서 문제였지만.

"…어후. 귀청 떨어지겠네."

전후좌우, 동서남북으로 인사를 하던 나는 어느 한 곳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그곳을 보게 되자, 나도 모르게 흠칫거렸다.

"뭐야. 저건?"

[우윳빛깔 다크울프의 콜로세움 우승을 기원합니다. - 제1호 다크울프 팬카페 '늑대의 유혹' 운영진 일동]

그곳엔 웬 플랜 카드를 들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아니, 가상현실에 이런 것도 구현이 되어 있다니. 잠깐만, 근데 내 팬카페라고…?

"뭐하는 놈들이야?"

팬카페라는 개념은 대충 무엇인지 알고 있다.

미도가 한창 까만 핑크라는 걸그룹에 빠져 있을 때, 그녀 또한 팬카페에 가입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동안 미도의 방에는 까만 핑크라는 걸그룹의 사진으로 도배가 되곤 했었는데, 손녀의 말에 따르면 그 뭐시더라.

걸글렀씨인가?

아무튼 그거 때문에 좋아한다고 했었다.

발음도 더럽게 어렵네.

"나도 그 걸글렀씨 때문에 좋아하는 건가."

나는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러자 그들이 지랄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악!"

"사랑해요!!"

"손 한 번만 잡아줘요!"

"잘 생겼다!"

"멋있다!"

…완전 미쳤구먼.

더 가까이 다가갔다간 왠지 달려들 것 같아서 조금 거리를 둔 채 손을 흔들었다.

사방에서는 플래시 세례가 끝없이 터져 나왔다.

아마 이 장면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체통을 지켜야 한다.

잘못하면 국제적 망신이니까.

-아아, 카이단이다. 지금부터 스타 프루츠 증정식을 시작한다. 그 전에 간단한 축복 의식을 행하도록 하겠다.

별안간 카이단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뒤에서 꽤 많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자세히 보니 그들은 카이단이 이끌고 온 병사들이었다.

제일 앞에서 걸어오는 것은 역시나 카이단.

귀빈석에 있을 때 잠시 멀리서 본적이 있는데, 자세히 보니 에이단과 완전 판박이나 다름없었다.

사촌이라더니 그 말이 사실인가보네.

"우승을 축하하네."

"…아, 예."

"자넨 정말 대단한 자로군. 에이단에게 찍히고도 버젓이 살아있는 걸 보면 말이야. 뭐, 이제 그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걸 감사히 여겨야겠지만."

"예…?"

"몰랐나? 오늘 새벽 에이단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네. 후후. 차기 상왕 후보로 뽑힐 정도로 엄청난 부를 쌓은 자의 말로치고는 참으로 허무하지. 결국, 저항군의 손에 죽다니 말이야."

아무래도 레슬리가 에이단을 끌고 가 그를 공개적으로 사살을 한 것 같았다.

뭐, 내 입장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그래도 얼마 전까진 멀쩡하던 놈이 죽었다니 기분이 좀 그랬다.

사람의 죽음이란 참으로 덧없고 허망하다.

아마 나도 죽으면 저렇게 되지 않을까.

근데 사촌이라더니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로군.

"내 수하가 될 생각은 없나?"

"…없소."

"아쉽군. 그럼 스타 프루츠를 주기 전에 간단한 축복부터 내리도록 하지. 그냥 전통이라고 생각하게. 한쪽 무릎을 꿇게나."

나는 그의 말대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동시에 다가온 수정구슬이 내 모습을 실시간으로 화면에 띄웠다.

그리고 다가온 것은 흑색의 로브를 뒤집어쓴 마법사.

그가 무어라 중얼거리며 내게 주문을 외기 시작했고, 나는 아무런 의심 없이 그저 기다리기만 했다.

하지만 그때.

타아아아아앙-!

모든 것을 찢어발기는 거룩한 총성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동시에 내 앞에 있던 마법사의 심장이 순식간에 꿰뚫렸고, 마법사는 그 자리에서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절명했다.

NPC인지라 잿빛으로 물들어 버린 모습이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이건 또 무슨 염병할 상황이지.

- 조셉: 어르신.

- 잭슨: 너냐?

- 조셉: 정확히는 제가 아니라 레슬리님입니다.

- 잭슨: 이유는?

- 조셉: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스타 프루츠를 들고 튀십시오. 곧 연막탄이 터질 겁니다.

"…빌어먹을. 다짜고짜 이게 무슨 짓거리야."

순간 아까 엉덩이를 걷어찬 행동에 대한 복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경기장 위로 무언가 날아오더니, 그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푸쉬이이익-.

"연막탄이다!"

"칼슈타인 놈들이다!"

"주군을 지켜라!"

"카이단 님을 보호하라!"

타앙! 타앙!

연이어 울리는 총성에 카이단의 병사들이 픽픽 쓰러졌다.

일단 설명은 이곳을 빠져나가고 나서 들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능구렁이 같은 조셉이니 아마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스타 프루츠를 들고 있는 병사를 찾았다.

나는 연기 속에서 방심한 틈을 타 병사가 방석 위에 고이 모셔둔 스타 프루츠를 낚아챘다.

[스타 프루츠를 획득하였습니다.]

…뭐, 조금 요란스럽지만, 어쨌든 목적은 달성했군.

주변은 이미 아비규환이었다.

관객들도 그랬고, 경기장에 있는 카이단을 포함한 병사들 또한 그래 보였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그림자 단검을 꺼내 소리 소문 없이 칠흑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 * *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유니온 본사.

이번 콜로세움 결승전은 유니온에서도 큰 화젯거리였다.

가면을 쓰고 활약하는 고독한 늑대가 멋있다며 좋아하는 여사원들이 있을 정도였고, 그 못지않게 이유는 모르겠지만, 남성 사원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베일에 싸인 채 싸우는 모습이 무언가 잡아끄는 묘한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 바깥은 사원들의 환호 소리로 가득했다.

그들은 모두 콜로세움의 결승전을 보고 있었다.

지금이 점심시간이었기에 가능한 풍경이었다.

"…믿을 수 없군. 저게 정말 칠순을 앞둔 노인이라고?"

그리고 지금 전략기획 1팀장실엔 이석준 부장을 포함한 유민석과 차진철이 함께 결승전 영상을 보고 있었다.

이석준은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입을 벌린 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입니다."

유민석의 확언에 이석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아크 스타는 초기 개발 단계 때부터 몸이 안 좋은 노인들도 할 수 있다는 슬로건을 내걸며 노년층의 희망이라 불렸었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막상 노인들이 게임을 시작하자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젊은 층들의 기피 현상이었다.

"아니, 아무리 봐도 이건 평범한 노인의 움직임이 아니잖아?"

이석준은 믿을 수 없었다.

게임을 주도하는 젊은 층들이 노년의 유저들을 기피 했던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움직임이 굼뜨다는 것.

노쇠한 몸에 익숙해져버린 그들은 아크스타의 세계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몬스터들의 공격에 반응하지 못했고, 겁을 집어먹어 생산직을 택한 이들도 많았다.

그렇기에 전투직을 가진 노년층을 찾아보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었다.

아니, 사실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한데, 저 움직임은 뭐란 말인가….'

공격에 대한 반사신경은 물론이고, 경천동지할 격투술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다.

특히 눈을 즐겁게 만드는 발차기는 정말 어디서도 보기 힘든 기상천외한 묘기 같았다.

"…대체 정체가 뭐야?"

이석준의 중얼거림에 답한 것은 비서처럼 서 있던 차진철이었다.

"안 그래도 제가 찾아봤습니다."

그가 깔끔하게 정리한 포트폴리오 파일을 이석준에게 건넸다.

이것은 유민석의 지시로 차진철이 미리 조사를 했던 것이었는데, 마침 지금이 좋은 타이밍이었다.

"…어떻게 찾은 거지?"

파일을 열어 살피는 이석준의 물음에 차진철이 입술을 우물거렸다.

이석준이 그를 보며 어리둥절 하자, 유민석이 답했다.

"가이아로 정부의 서버를 해킹했습니다."

"들켰나?"

"아뇨."

"흠…."

사실 이건 엄연한 불법이었다.

그럼에도 이석준은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슈퍼컴퓨터 가이아는 정부의 전산망을 쥐도 새도 모르게 해킹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물론, 정부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럼에도 이걸 악용하는 사람이 없는 건, 본사 내 팀장급 전원의 동의 코드가 있지 않는 이상 가이아 자체를 실행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뚫어내 해킹까지 했다….'

이석준은 눈앞의 차진철을 다시 보게 됐다.

유니온 내에서 타고난 천재라는 얘기는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대단한 능력을 가진 친구를 두었군."

"감사합니다."

"이번엔 그냥 넘어가지만 다시는 그러지 말게. 이건 경고야."

"예. 죄송합니다."

"아냐. 어차피 나도 궁금했던 참이니까. 잘 했어."

크게 혼날 줄 알았던 차진철은 칭찬을 듣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처음 유민석이 이 일을 시켰을 땐 가슴이 철렁했다.

그의 입장에선 퇴사를 각오하고 행한 일이었으니까.

"흠…."

사락사락-.

이석준은 글을 읽어내려 갔다.

"고아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소년 북파 공작원으로 길러졌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별다른 특이사항 같은 것은 없었다.

가족 관계를 봐도 지극히 평범한 할아버지였다.

독특한 이력인 월운정의 최고 주방장이었던 것도 눈에 들어왔다.

"흠…."

그렇게 넘기던 중 한 사진이 나타났다.

그것은 두 명의 노인이 어깨동무를 한 채 찍은 사진이었다.

물론, 그 한 명은 요리사 복장을 한 최춘택.

하지만 그 옆에 있는 것은 이석준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이석준이 보고 있는 사람은 요즘 TV를 틀면 항상 화젯거리로 나타나는 노인이었다.

"백무열이라는 분 아니야? 아니 왜 같이 어깨동무를…."

차진철이 답했다.

"서로 친구입니다. 그건 오래된 기사를 스크랩해온 건데 두 사람은 40년 지기 친구라고 합니다."

"…맙소사."

이석준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한숨을 쉬었다.

"요즘 할아버지들은 다 이런 건가?"

"다 그렇진 않습니다. 이 두 분이 특별한 것이지요."

"그렇지? 내가 틀린 게 아니지?"

"네. 부장님."

자신은 틀린 게 없다는 차진철의 대답이 흡족했던 이석준은 보고 있던 포트폴리오를 접었다. 마침 TV에서는 결승전이 끝나있었다.

-끄, 끝났습니다! 콜로세움의 우승자는 바로 '잭슨'입니다! 그가 견소룡을 꺾고 새로운 스타 프루츠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유 팀장이 많이 바빠지겠군."

"…또 코드 제로 때문에 야근하게 생겼습니다."

"미안하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드릴 말씀이…."

"……?"

할 말이 있다는 그의 말에 이석준은 어리둥절했다.

유민석은 한층 진지해진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번 월드 대항전에 저분을 정식으로 참가시키고 싶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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