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209화
제209화
"크하하하!"
이제는 한 사람의 관객이 되어 경기를 관람하던 라인하르트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의 옆에는 마이클을 제외한 제우스 길드의 간부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물론, 누군가 알아볼 염려가 있었기에 그들 네 사람은 전부 흑색의 후드를 뒤집어 쓴 상태였다.
"둘 다 장난 아닌데?"
카푸치노의 말에 데미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전 있었던 그 움직임들은 모두 고도의 한 수가 담긴 움직임이었다.
그들 또한 아크스타를 이끄는 선두주자였기에 두 사람의 실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저 두 사람은 딱 두 글자로 표현할 수 있다.
'고수야. 그것도 상당한.'
처음에 맨주먹을 빠르게 주고받는 모습은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몇몇 언론은 다크 울프를 가리켜 템빨이나, 스킬빨, 그리고 우연히 스타 프루츠를 먹은 행운아라 일컬었다.
그리고 대인전은 굉장히 취약한 자일뿐이라고 폄하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전면 수정되어야 할 것 같았다.
특히 마지막에 포크 숟가락을 던져 페이크를 주고는 쥐도 새도 모르게 뒤로 나타나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 방금 전 공격은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데미안은 아직도 등 뒤가 축축했다.
'근데 왜 굳이 포크 숟가락을 무기로…?'
설마하니 저 포크 숟가락이 미노타를 쓰러트렸던 그때 그 '창'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데미안이었다.
한편, 레이나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연기가 자욱한 경기장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혀가 입술을 핥았다.
"…갖고 싶다."
제법 큰 후드를 뒤집어썼음에도 다리를 꼰 그녀의 각선미는 유독 돋보였다.
그녀는 저 두 사람이 갖고 싶었다.
아니, 굳이 꼽자면 야성미 넘치는 가면을 쓰며 우월한 실력을 보여준 저 다크울프란 사내가 갖고 싶었다.
정말 미치도록.
'설마 그날 내게서 미노타의 심장을 사간 게 저 남자였을 줄이야.'
확실히 그때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긴 했다.
어디선가 본 것만 같은 알 수 없는 느낌이 그에게서 풍겨왔었다.
아마 그의 실제 목소리를 들어본 것은 세상에서 레이나 한 사람뿐일 것이다.
'그 중후함이 넘치는 섹시한 목소리…. 하, 진짜 미치겠다.'
참고로 레이나는 다크울프의 팬 카페인 '늑대의 유혹'에서 아주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회원 수가 무려 100만 명이 넘는 팬 카페에서 그녀는 우수 회원으로서 과감한 덕질을 하고 있었다.
이런 말하긴 좀 그렇지만 그곳의 대문 사진도 레이나가 직접 만든 것이었다.
그녀는 그날 미노타와의 전투에서 그 누구보다 가까이 있었으니, 많은 사진을 갖고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웃긴 건 그 대문 사진이 거대한 늑대의 엉덩이를 확대한 거라는 것.
공교롭게도 팬 카페의 이름과 아주 잘 어울리는 대목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이참에 내가 메테우스로 들어가 그의 뒤를 쫓으며 길드 가입 권유를….'
"꺄아! 역시 다크울프 님 짱 멋있어! 대에에에박."
"내가 저런 사람이랑 맞짱을 뜨려고 했다니…."
"운이 좋았네. 좋았어."
"그래. 태현아. 다행이었다."
"오빠. 다크울프 님이랑 맞짱 뜨려고 했었어?"
"아니, 그냥 우연히…. 아니다."
레이나의 시선이 바로 옆에 자리한 이들에게로 향했다.
공교롭게도 바로 옆에 앉은 것은 이카루스 길드였다.
그녀는 주로 커뮤니티를 많이 하는 편이라 그들의 얼굴을 잘 알고 있었다.
먼 나라 한국에선 제법 알아주는 이들이었지 아마.
물론 제우스 길드에는 한참이나 못 미치는 이들이지만.
'그런데….'
그녀의 시선이 미도의 상체로 향했다.
레이나는 미간을 좁히며 미도의 볼륨감 있는 그곳을 보았다.
그리곤 다시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씨."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 캐릭터를 만들 때, 상체에 볼륨을 좀 줄 걸 그랬다고 레이나는 생각했다.
'…수술할까.'
이런 방면으로는 진지한 그녀였다.
* * *
"…안 본 사이에 더 강해지셨군."
팔짱을 낀 채 유심히 경기를 지켜보기만 하던 케레노스가 한 마디 던졌다.
그의 옆으로는 크리스탈을 포함한 얼굴을 모르는 일행들이 대부분이었다.
듣자 하니 자신이 윈디아에 있는 동안 메테우스에 머물며 많은 일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크으. 역시 아버님 발차기는 천하무적이야."
바로 옆에 앉은 최정현은 어안이 벙벙했다.
"맙소사. 저게 진짜 아버지라니. 아직도 믿기지가…."
가면을 쓴 아버지의 정체가 밝혀지면 아마 세상이 발칵 뒤집어질 것이다.
다시 봐도 믿기지 않는다.
다크 울프가 아버지고, 아버지가 다크 울프라니.
이게 대체 무슨….
"역시 그 영감님 친구로군."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니죠."
"…바로크. 반했다."
묵찌빠 형제와 대머리 형제는 입구에서 팔던 옥수수 과자를 우걱거리며 흥미진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나마 놀란 것은 옆에 앉은 백성찬이었다.
"헐. 실력이 저 정도셨을 줄이야. 삼촌은 알았어요?"
"아니…. 알면 내가 지금 이런 반응이겠냐."
"와, 가족한테도 다 숨기신 거네요? 근데 왜 굳이 가면을 쓰신 걸까요. 유명해지려는 컨셉인가?"
"나도 잘 모르겠다."
"삼촌은 춘택이 할아버지에 대해 아는 게 뭐예요?"
"이 자식이 버릇없이."
딱!
최정현이 버릇없는 조카를 혼내듯, 백성찬의 머리에 딱밤을 쥐어박았다.
인상을 찡그린 백성찬은 아무 말이 없었다.
확실히 말실수를 한 건 맞으니까.
"와아~ 잭슨의 실력이 저 정도였어? 케레노스, 나 다시 그에게 기사가 되어달라고 하면 받아줄까?"
케레노스의 옆에 앉은 것은 윈디아의 영주 에드워드.
그는 오늘 결승전을 보기 위해 떼를 쓰며 이곳으로 마차를 이끌고 왔다.
물론 케레노스는 안 된다고 했지만, 약간의 삐진 척을 하니 그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동의를 했다.
케레노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글쎄요. 저분의 성정으로 보아선 영주님이 안 맞으신 것만 해도 천만 다행입니다."
"흥. 두고봐. 나 꼭 저 잭슨을 내 기사로 만들고 말 테니까."
"예. 예. 응원하겠습니다."
제법 의욕을 다지는 에드워드를 보며 피식 웃은 케레노스는 다시 경기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까 있었던 대폭발로 인한 연기가 조금씩 걷히고 있었다.
* * *
…끝인가?
엄청난 대폭발이었으니, 아마 소룡이도 제법 치명상을 입었으리라 생각된다.
나야 당연히 화염에 대한 내성 때문에 데미지가 없으니 괜찮다.
애초부터 그걸 계산하고 한 공격이었으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미쳤다고 가까이서 이런 대폭발을 일으키겠는가.
하지만, 그 순간 초감각이 발동했다.
치지지지직!
예민한 청각을 뚫고 들려오는 익숙한 소리에 나도 모르게 눈이 번쩍 떠졌다.
그리고 동시에 자욱한 연기를 뚫고 푸른 뇌룡 하나가 날아들었다.
반사적으로 피했지만, 아쉽게도 왼팔에 스치고 말았다.
[푸른 번개에 당했습니다.]
[상태 이상, '마비'가 발동합니다.]
[왼팔의 마비가 풀리기까지 남은 시간 2초, 1초….]
"젠장. 저 녀석 멀쩡하잖아."
이어서 날아드는 또 다른 푸른 뇌룡들.
나는 허공을 회전하듯 몸을 비틀며 두 번째 공격을 피해냈다.
하지만 또 한 번 연기를 뚫고 나타난 것은, 여태 봐왔던 뇌룡들 중 가장 거대한 것이었다.
"이런 미친…!"
순식간에 뇌룡의 형상을 휘감은 견소룡이 달려들자,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스톤 스킨을 발동했다.
그가 온몸을 실은 일권을 내지르자 엄청난 힘이 터지며 내 몸이 밀려나는 것이 느껴졌다.
콰르르릉-!
"끄윽…!"
천둥이 치는 소리와 함께 한참이나 튕겨져 나가던 나는 간신히 눈을 떴다.
내 몸은 아직도 부유한 채 장외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얼마나 강력한 공격인지, 한 방에 1/3의 생명력이 닳았다.
지금 내게 남은 생명력은 1/5도 채 되지 않았다.
…승부수를 띄울 땐가.
천장의 결계를 향해 거미줄을 뻗으며 속도를 감소시킨 나는 한 바퀴 허공을 돌아 결계를 딛고 수평으로 일어섰다.
또 다른 거미의 힘인 스파이더 클라이밍.
하지만 견소룡은 그조차 역시 예상했다는 듯 틈을 주지 않았다.
나는 재빨리 점프했고, 견소룡은 거대한 뇌룡의 형상과 함께 아까 내가 있던 곳에 주먹이 맞닿아있었다.
얼마나 강력한지 결계가 5장이나 파괴된 것이 보였다.
…미친. 라인하르트 놈은 이런 걸 대체 어떻게 견딘 게야.
만약 내가 스톤 스킨을 제때에 발동하지 않았다면 아마 한방에 가루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천장의 결계에 거미줄을 뻗으며 경기장을 가로질렀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거미줄이 모두 소모되었습니다.]
"이런 염병…."
하필이면 이 중요한 순간에 다 떨어지다니.
그 순간 견소룡이 방향을 틀어 허공에 뜬 나를 향해 공격을 해왔다.
엄청난 수의 작은 뇌룡들을 뿜어내는 원거리 공격이었다.
"…미친. 공중부양도 되는 거냐."
자세히 보니 견소룡은 허공에 떠 있었다.
강력한 푸른 번개가 땅을 지탱하는 것이 보였고, 지금의 그는 그야말로 한 마리의 뇌룡 그 자체였다.
나는 재빨리 거미줄을 놓으며 땅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스킬을 발동했다.
[성좌 스킬, '흑야랑 소환'을 사용합니다!]
경기장의 바닥이 짙은 흑색의 안개로 뒤덮이며 그곳에서 거대한 흑야랑 5마리가 솟아올랐다.
나는 그중 한 마리의 등에 가볍게 안착했다.
심장이 욱신거린 것은 그때였다.
"큭…."
[흑야의 심장이 펌프질을 시작합니다.]
[5분이 지나면 당신에게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나는 곧장 4마리의 흑야랑들에게 견소룡을 공격할 것을 명했다.
거대한 뇌룡과 거대한 늑대가 뒤엉켜 싸우는 모습은 마치 영화에서 보던 괴수들의 대결 같았다.
[늑대성, '로믈라나'가 당신을 지켜보는 중입니다.]
차마 로믈라나에게 인사를 할 시간도 없었다.
곧장 흑야의 화살을 발동했다.
[성좌 마법, '흑야의 화살'을 사용합니다.]
거대한 화살의 모습을 한 창이 오른손에 쥐어졌다.
그것은 마치 흑색 소용돌이와 하얀 고드름을 합쳐놓은 듯한 모습.
나는 다시 혈투가 벌어지는 곳을 바라봤다.
"썩을. 늑대들이 상대도 안 되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로믈라나가 지금 1등성의 힘을 가졌더라도 당시 내게 이 힘을 주었을 땐 2등성이었다.
그리고 지금 견소룡이 쓰는 '뇌룡강림'은 2등성인 레이트라의 필살기나 마찬가지.
더군다나 무술을 하는 견소룡에게 저 정도 놈들을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라인하르트 놈이야 워낙 무식해서 당했던 거지만.
순식간에 흑야랑 세 마리가 정리되자 나는 곧장 내가 올라탄 녀석에게 돌진할 것을 명했다.
빠른 속도로 달린 나는 그대로 손에 쥔 것을 앞으로 내밀었다.
피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가까이 접근해 던질 요량이었다.
이윽고 내가 탄 흑야랑이 뇌룡을 향해 뛰어오르자 놀란 견소룡의 표정이 보였다.
나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손에 쥔 것을 내던졌다.
쒸아아아악-!
바람을 가로지르며 날아간 흑야의 화살은 아슬아슬하게 그의 어깨를 스쳐가고 말았다.
하지만 애초에 목적은 그가 아니었다. 화살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거대한 늑대의 아가리로 변했고, 흑야의 화살은 뇌룡의 목덜미를 물었다.
푸른 번개와 흑색의 소용돌이가 휘돌며 경기장엔 자그마한 검은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이내 뒤엉키더니 거대한 폭발이 일으켰다.
콰아아아앙!
순간 엄청난 풍압에 몸을 가누지 못한 나는 그대로 날아가 경기장을 뒹굴었다.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장외는 아니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앞을 바라보니, 흑야랑들이 모두 사라져있었다.
동시에 심장을 옥죄는 압박은 자동으로 멈춘 상태.
"허억. 헉…. 이긴 건가?"
아쉽게도 아니었다.
"끄윽…!"
견소룡의 생명력은 아까보다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1/4은 남아있었다.
그는 피가 흐르는 왼팔을 부여잡으며 터벅터벅 걸어왔다.
"후우…. 정말 아찔했습니다. 반사적으로 뇌룡의 힘을 이용해 몸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위험할 뻔했어요. 역시 형님이십니다."
"…바퀴벌레 같은 놈."
그는 아직 힘이 남았는지, 걸어오며 다시 한번 푸른 번개를 끌어올렸다.
아까보다 미약하지만, 나를 쓰러트리기엔 충분한 힘이다.
하지만 나는 마력이 거의 다 소모된 상태다.
아까 흑야의 화살을 날릴 때 대부분의 힘을 쏟았기 때문이다.
이거 아무래도 진 것 같은데….
남은 것은 바람의 마력뿐이었지만, 그것을 쓴다고 해도 지금 저 녀석을 이길 것 같지는 않았다.
여전히 다리에 일렁이는 해 오름의 힘만이 내가 가진 전부였다.
일렁이는 두 다리의 태양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그래도 하는 데까진 해봐야지.
이대로 주저앉으면 천하의 최춘택이 아니다.
이래봬도 아직 발차기 실력은 건재하다.
스톤 스킨을 쓸 마력이 없고 속도도 훨씬 느리겠지만, 그래도 카운터를 노리면 어떻게든 반격이 가능할 것이다.
나는 다리를 피며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World. 메테우스에 새로운 '바람의 신전'이 완공되었습니다!]
"응?"
메테우스에 바람의 신전이 완공되었다는 메시지.
그것이 뜻하는 바는 명백했다.
[여신 퀘스트 <소생과 바람이 여신, 후에라의 부탁> 이 완료되었습니다.]
[소생과 바람의 여신의 축복이 부여됩니다!]
[여신이 당신에게 '바람의 눈'을 내립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