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206화
제206화
다음 날.
늘 일상처럼 새벽에 눈을 뜬 나는 바로 운동을 가려다가 멈칫했다.
"…아차."
깜빡하고 있었다.
요즘 나는 미도를 피해 다니느라 곤혹을 치르고 있었다는 걸.
끙. 참된 할아버지의 길은 참으로 멀고도 험하구나.
내가 어쩌다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 건지.
"에휴. 어쩔 수 없지."
인상을 찌푸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바로 물 한잔을 마시고 게임에 접속하기 위해서.
요즘 나는 소식을 주로 하기에 아침은 주로 먹지 않는 편이었는데, 습관이 되니 배도 안 고프고 오히려 좋은 것 같다.
곧장 핸드폰을 든 나는 아직 울리지도 않은 알람을 끄기 위해 화면을 켰다.
그런데.
"응?"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문자가 와있네. 누구지."
곧장 스마트폰을 눌러서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피식 웃었다.
[백무열: 걱쩡마ㄹ ㅏ.]
"미친놈. 뭘 걱정하지 말라는 게야. 하여튼 뜬금없는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니까."
나는 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하는 신호음이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1분쯤 흘렀을까.
-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연결….
"자고 있나 보네."
곧장 물을 마시고 캡슐로 향했다.
익숙한 자세로 눕자마자 새로운 목표가 떠올랐다.
이제 내 목표는 단 하나.
아내를 만나는 것.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오로지 강해지는 것뿐이었다.
"우선 구름의 정령을 찾는 일부터 서둘러야겠지."
이제 그동안 미뤄뒀던 새로운 날씨 요리술을 최대한 빠른 속도로 습득할 때가 되었다.
우선 그 전에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다.
견소룡과의 콜로세움 대결.
아마 하루가 지났으니, 가상의 세계는 사흘이 흘렀을 터였다.
나는 바로 아크스타에 접속했다.
[아크스타에 접속 중입니다.]
[당신의 동공을 스캔합니다.]
[접속을 환영합니다. '잭슨'님]
밝은 빛과 함께 눈을 뜨니 익숙한 곳이 나타났다.
이곳은 바로 집무실.
어제 집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게임에 접속했었는데, 그 이유는 조셉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곧장 마을 정보창을 열어 제일 밑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칼슈타인 저항군이 마을에 아지트를 차렸습니다. 그들은 당신에게 감사하고 있으며, 언제든 위험할 때 기꺼이 당신을 도울 것입니다.
"좋아. 좋아."
마을은 아주 순조롭게 발전하고 있었다.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성장한 마을의 수치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치안이라면 이제 안심하고 소도시로 승격해도 되겠는데.
[마을을 '소도시'로 승격하시겠습니까?]
[승격에는 300만 달러가 소모됩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예를 눌렀다.
[메테우스가 '소도시'로의 승격을 시작합니다.]
[마을의 건축가들이 기뻐하며 새로운 건축 양식을 연구합니다.]
[쓰레기촌 주민들이 대거 거주 중입니다.]
[소도시 개발 비용이 절반으로 감소합니다.]
[소도시 개발 속도가 5배 상승합니다.]
[50일 뒤 공성전이 개방됩니다.]
"오호."
생각지 못했던 행운이다.
역시 그들을 받아주길 잘했군.
나는 빠른 속도로 소도시 관련 건축물 개발을 지시했다.
훈련소는 물론이고, 병사들이 머물 병영시설과 내친김에 마탑까지 세워버렸다.
꽤 돈이 많이 들어갔지만, 지금의 내게 돈은 넘쳐나고 있으니 상관없었다.
그리고….
[소도시의 주민들에게 거둘 세금을 정해주십시오.]
"세금이라…. 이걸 다시 거두게 될 줄은 몰랐는데."
살면서 누군가에게 세금을 걷어본 것은 젊었을 때 무각회를 운영하던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땐 최소한의 운영비를 거두어 상인들을 괴롭히는 조폭들에게서 지켜주었었다.
새삼스럽지만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는 부분이다.
"…우선 이건 콜로세움이 끝나고 생각해봐야겠군."
상인이 살아야 상권이 살고 경제가 활성화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형편을 살피고 적절한 세금을 매기는 것이 중요했다.
"일단은 이 정도인가."
창을 닫은 나는 곧장 친구 리스트를 불러왔다.
현재 접속해 있는 견소룡과 대결을 앞두고 대화나 할까 해서였다.
늘 새벽에 명상을 하는 습관이 있다고 했으니 아마 분명 들어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뭐야. 이 녀석. 언제부터 들어와 있었지?"
[현재 접속자: 백무열, 견소룡]
"이 썩을 놈이 들어왔으면 들어왔다고 얘기를 해야 할 거 아냐."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백무열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
- 백무열: 아무튼 그리 알고 걱정하지 마.
- 잭슨: 알았다. 너무 무리해서 게임은 하지 말고, 우리도 늙은 몸이야. 예전 같지 않다고.
- 백무열: 잔소리는. 알았으니까 석두 녀석 오면 좀 부탁한다.
- 잭슨: 그래. 몸조심하고 도움 필요하면 얘기해라.
- 백무열: 알겠다. 알겠어.
대화를 마친 나는 곧장 귓속말을 닫았다.
다행히 백무열은 잘 지내고 있었다.
그것도 무려 암브로시아를 먹었다고 한다.
헤라클레스 녀석 대체 무슨 꿍꿍인지 모르겠네.
"뭐, 무열이가 성장하면 나야 좋지. 그나저나 그놈한테 따라 잡히지 않으려면 나도 열심히 해야겠는걸."
우선 그건 소룡이와의 대결을 끝내고 나서 생각할 문제다.
"그나저나 3대 녀석이 온단 말이지…."
나는 무각회의 초대 회장이었다.
2대는 당연히 백무열이고, 3대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이름은 '마석두'라고 한다.
듣자 하니 무열이보다 훨씬 큰 덩치에 의리가 있는 녀석이라고 했다.
어쨌든 괜찮은 동생이라고 했으니, 만나면 내가 좋아할 거라고 한다.
미련한 곰탱이라나 뭐라나.
"웃긴 놈일세. 지도 곰이면서."
하여튼 덩치가 좋다고 하니 내심 기대가 되긴 한다.
불룡파 놈들을 견제하기 위해 백무열이 부른 것이지만, 나는 그들을 요긴한 곳에 쓸 생각이었다.
마침 소도시로 승격을 하며 치안 유지에 필요한 병사들이 더 많이 필요했고, 나는 그들을 고용할 생각이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 것은 그때였다.
"헬레나에요.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오게."
문이 열리며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헬레나가 들어왔다.
그녀의 복장은 이제 붉은 드레스를 입은 귀족이 아닌 평범한 주민과 같은 복장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미모는 죽지 않았다.
"옷이 잘 어울리는구나."
"호호. 키스가 사준 거예요."
"그래? 그놈 많이 좋아졌나 보구나."
"네. 이게 다 크리스탈 님 덕분이에요."
헬레나의 얼굴이 수정이에 대한 신뢰로 가득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지그시 보았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세요?"
"…아니다."
사실 할 말이야 많다.
그녀의 출생의 비밀에 대한 것부터 시작해서, 진짜 부모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지만 정작 헬레나의 앞에 서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제길.
아렌은 왜 내게 이런 걸 시킨 게야.
본인 입으로 얘기하지.
빌어먹을.
"아, 참. 저항군을 받아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이젠 더 이상 포트렌에서 도망 다니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다들 새로운 아지트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에요. 특히 레슬리 님이요."
"뭘 새삼스럽게."
"안 그래도 레슬리 님이 이따가 이곳으로 오신다고 했어요. 아, 그리고 오늘 경기 있으시다고 하셨죠? 꼭 이기세요. 스타 프루츠도 덥석 물어 오시구요."
"이를 말이냐."
오늘 나와 저항군들은 카이단의 스타 프루츠를 훔치기로 마음먹었다.
원래라면 조셉이 의심스러워서 허락하지 않았겠지만, 그의 사정을 알게 된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스타 프루츠가 많다면 내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니까.
똑똑-.
"…계시오?"
"레슬리 님인가 봐요. 전 나가볼게요."
헬레나가 내게 고개를 숙이고는 문을 열어 레슬리를 맞았다.
두 사람은 가볍게 목례를 한 후 헤어졌고, 레슬리는 안대를 차지 않은 오른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벅저벅.
그가 걸어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소. 칼슈타인의 총사령관 레슬리라고 하오."
***
한편, 그 시각.
견소룡은 레이트라와의 동조율을 높이기 위해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지금 그의 정신은 레이트라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바라나 일족의 서식지, 클라우드 바위산에 있었다.
그곳에 위치한 동굴 속에서 견소룡은 레이트라와 함께 명상에 잠겨있었다.
"……."
"……."
그렇게 10분이 흘렀을까.
꼬르륵-.
[…배고프다.]
온몸의 털이 푸른 번개로 이루어진 레이트라가 가부좌를 튼 채 나지막이 말했다.
견소룡이 눈을 뜬 것은 그때였다.
"나가자. 과일 먹으러."
[흐흐흐. 좋아. 좋아!]
레이트라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럴 때마다 푸른 번개가 파지직- 하는 소리를 내는 것이 신기한 풍경이었다.
견소룡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정신은 완전 어린아이나 다름없군.'
성좌와의 대화에서 중요한 건 서로 오랫동안 붙어있는 것이었다.
레이트라는 자신의 주변에만 나타날 수 있었기에 견소룡이 밖으로 나가기 위해 움직이지 않으면, 녀석은 배를 채울 수가 없었다.
둘은 동굴의 바깥으로 나와 거대한 과일나무가 가득한 곳을 향해 걸었다.
레이트라가 신이 난 듯, 거대한 나무를 타며 그곳에 있는 과일을 따 먹었다.
확실히 고향이라 그런지 익숙해 보였다.
[흐헤헤. 너도 먹어라.]
레이트라가 자신을 향해 있는 힘껏 과일을 던졌다.
하지만 그 크기가 너무나 거대했다.
레이트라에겐 한 주먹일진 몰라도 자신에겐 마치 자동차가 한 대 날아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견소룡은 오른손에 푸른 번개를 발현해 거대한 과일을 향해 뛰어올랐다.
그는 정권을 내질렀고, 푸른 번개는 과일을 찢어발기며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곧장 양손에 푸른 번개를 발현하더니, 빠른 속도로 과일의 잔재들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하나에서 두 개로, 두 개에서 네 개로.
잘라진 과일들이 먹기 좋은 크기가 되자, 그제야 견소룡은 주먹을 거두며 과일을 입에 넣었다.
[하하! 역시 제법이야.]
하늘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짙어졌다.
고개를 드니 레이트라가 떨어지고 있었다.
쿠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리며 레이트라가 착지했다.
그가 땅을 딛은 곳엔 거대한 발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장난이 지나치다. 레이트라."
[크헤헤. 이것도 수련이야. 네가 좋아하는 수련.]
"하아…."
그는 늘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장난을 쳐왔다.
원체 장난기가 많아서 견소룡이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심지어 저번에는 거대한 바위를 던진 적도 있었다.
'그나저나 여긴 정말 신비로운 곳이군.'
클라우드 바위산은 일 년 사계절 내내 꽃이 피고 과일이 가득하다고 한다.
산꼭대기에 안개처럼 보이는 저것은 사실 옅은 구름인데, 웃긴 것은 이것 또한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제법 맛이 좋은 솜사탕 같은 느낌이랄까.
[이번엔 구름 먹으러 가자!]
"넌 수련 안하냐?"
[이것도 수련의 일부다!]
"확실해?"
[그렇다!]
"하아."
그는 또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레이트라의 말이 진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살기인 '뇌룡강림'을 얻은 것도 레이트라를 따라 끝없이 과일을 먹으러 다니다가 깨닫게 된 것이었으니까.
띠링-!
"음? 귓속말이 왔나? 미안하다. 레이트라. 구름은 다음에 먹자."
[뭐? 안 돼! 아아악~ 가지 마~!]
메아리치는 레이트라의 외침과 함께 견소룡이 눈을 떴다.
그는 곧장 눈앞에 뜬 메시지를 확인했다.
[유저, '잭슨' 님에게 온 귓속말이 있습니다.]
"형님이셨군. 대결 전에 덕담이라도 하시려는 건가."
그는 바로 귓속말 창을 열었다.
자신과의 대결을 고대하며 레벨업도 포기한 채 기다려준 형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과연 형님은 동방예의지국 출신이다.
- 잭슨: 널 반드시 죽여버리겠다.
"……."
싸늘한 정적이 견소룡을 휘감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