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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205화 (205/375)

나 빼고 다 젊은이 205화

제205화

그 말을 듣는 순간, 온 세상이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 밀려왔다.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졌다.

지금 이 녀석이 한 말이 사실이라면, 아니, 진실이라면.

그렇다면 조셉은 일부러 정체를 숨겨가며 아르고스를 운영해왔다는 것이 된다.

그것이 뜻하는 건 이놈이 그동안 했던 모든 행동들이 연기였다는 건데….

과연 녀석을 믿어도 되는 걸까.

"…르신. 많이 놀라셨습니까? 어르신?"

조셉의 부름에 상념이 깨졌다.

"어, 아…. 그래. 아니다.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하나도 짐작하지 못했다.

사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예? 정말입니까? 그렇게 숨기려고 노력했는데 이거 참 허탈하네. 연기 연습 좀 더 해야 하나…."

그렇게 중얼거리는 조셉의 말이 더욱 소름이 끼쳤다.

도대체 이놈은 뭐하는 녀석이기에 정체까지 숨겨가며 그런 단체를 운영했다는 말인가.

나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너 혹시 그거냐?"

"예? 뭐가요?"

"그 사이코패스인가 뭐시긴가…."

"하하. 농담이시죠?"

말도 안 된다는 듯 웃어넘기는 조셉.

하지만 내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다.

조셉 또한 내 표정을 읽었는지 정색하며 말했다.

"…저 지극히 정상인데요."

"확실하냐?"

"예."

"하나만 묻자."

"얼마든지요. 두 개 물으셔도 됩니다."

나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두 개 물어보라고 했지만, 사실 더 많이 물어볼 거다.

그리고 우선 첫 번째는 이거다.

"왜 네가 수장이면서 이런 번거로운 짓을 한 거냐."

사실 수장이라면 당당하게 조직을 운영해도 됐을 터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조셉 또한 내 말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그는 크게 숨을 들이쉬더니 진지한 눈빛을 띠었다.

"뭐, 간단한 겁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 아시죠? 그겁니다. 전 정체를 숨겨야 했으니까요."

"그러니까 왜?"

"제가 누군가를 찾고 있는데, 알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 있거든요."

"알아서는 안 되는 사람? 그게 누군데."

"이건명 회장입니다."

"이건명…?"

이건명이라면 누군지 알고 있다.

사실 모를 수가 없다.

최근에 보았던 뉴스에서도 그렇고, 내가 아크스타를 시작하기 전에도 그렇고.

뉴스는 언제나 이건명 회장의 업적이나, 사생활, 그리고 건강에 대해 뜬구름 잡는 괴소문들을 많이 내놓곤 했었다.

그만큼 이건명은 대한민국의 경제를 떠나, 세계의 경제를 되살린 거대한 업적을 가진 인물로 유명했다.

아크스타를 이용해 단시간에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우뚝 섰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반응을 보아하니, 아직 그가 어르신을 찾지는 못한 모양이군요. 다행입니다."

"이건명이 날 찾고 있나? 어째서?"

"음, 얘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조셉이 품에서 담배를 꺼내더니 입에 물었다.

그리고 불을 붙이려는 순간.

지나가던 카페 직원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손님. 여긴 금연구역입니다!"

"엇, 미안합니다. 습관이 돼서 그만."

고개를 까닥이며 사과한 조셉은 다시 품속에 담배를 집어넣더니, 앞에 있는 커피를 한 모금 홀짝였다.

그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러는 것일까.

"…어디서부터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모르겠군요. 일단 그 전에 하나만 확인하겠습니다. 꼭 진실만을 답해주셔야 합니다. 약속해주시겠습니까?"

"…그러지."

"일곱별의 선택을 받으셨죠?"

아무래도 그는 무언가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잠깐 고민을 했다.

과연 조셉에게 이것을 말해도 되는 것일까.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조셉이 다시 한번 말했다.

"절대 어르신께 피해가 가지 않을 겁니다. 단지, 이건 제게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야 저도 진실을 말씀드릴 수 있구요. 제 아내와 쌍둥이를 걸고 말씀드립니다."

"음…."

팔짱을 낀 채 1분 정도 고민한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다."

그 말에 조셉의 안색이 환해졌다.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제 차례군요."

조셉은 다시 앞에 놓인 커피를 홀짝이고는 나를 보았다.

그의 눈빛은 세상의 근심을 혼자 짊어진 사람처럼 낮고 무거웠다.

"본론부터 말씀드리죠. 어르신의 아내분은 장기기증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뭐라고…?"

도대체 지금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아내가, 선영이가 장기기증을 한 것이 아니라니.

청천벽력과도 같은 그의 말이 천둥처럼 두통을 몰고 오는 듯했다.

"유니온이 만들던 게임의 실험체였습니다."

* * *

온 세상이 환한 빛에 휘감겼다.

그리고 잠깐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나타난 곳은 익숙한 곳이었다.

하얀 구름의 위.

하지만 그럼에도 백무열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엄청 넓네."

명상을 했을 때 봤던 구름은 고작 두 사람 정도가 앉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하지만 지금 그가 밟고 선 곳은 너무나도 광활했다.

마치 끝없는 들판과도 같은 느낌이랄까.

[어서 와.]

익숙한 목소리에 백무열이 뒤를 돌았다.

그리고 그곳에 서 있는 것은 거대한 사람이었다.

"헤라클레스?"

[그래. 나다.]

"너 원래 거인이냐?"

[하하. 그건 내가 때려잡은 놈들이지. 난 거인이 아니야. 성좌지.]

"그래. 날 이곳으로 부른 이유가 뭐냐. 아까 나보고 황금 사과나무에 있는 스타 프루츠를 찾으러 가라면서."

[그랬지. 근데 말이야. 지금 그대의 수준으로는 아무래도 나무 근처에도 가지 못할 것 같더군. 그래서 이걸 주러 왔다.]

거대한 헤라클레스의 손에 쥐여진 포도알 하나가 빛에 휩싸이더니 조그만 형태로 바뀌었다.

그것은 허공을 부유해 백무열의 손에 쥐어졌다.

[천궁의 암브로시아 조각을 획득하였습니다.]

"암브…. 뭐야, 이게?"

곧장 아이템의 정보창을 열었다.

[천궁의 암브로시아 조각]

등급: 부분 신화

천궁에서 먹는 암브로시아 조각의 일부. 먹으면 일시적으로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으며, 배고픔과 피로를 느끼지 못한다.

-한 달간 획득 경험치와 숙련도 2배 증가.

-한 달간 피로와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고 포만감이 유지됩니다.

-한 달간 레벨이 오를 때마다 능력치가 6개가 주어집니다.

'뭐야 이 괴물 같은 아이템은.'

백무열은 아이템의 등급이 신화라는 것에 주목했다.

춘택이에게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앞에 '부분'이라는 글자가 들어갔음에도 이 정도 효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혀가 내둘러졌다.

'근데 천궁이 어디지?'

그런 궁금증이 생기려던 찰나.

헤라클레스가 입을 열었다.

[먹어. 원래 인간에게 주는 것이 아니지만, 이 정도 양이라면 불사신이 되지는 않겠지. 아버지도 이해해 주실 거다.]

"고맙다. 잘 먹으마."

백무열은 냉큼 암브로시아 조각을 입에 넣고 꿀꺽 삼켰다.

사실 인간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에서 이건 빨리 털어 넣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천궁의 암브로시아 조각을 섭취하셨습니다.]

[일정 시간 동안 경험치와 숙련도가 2배로 증가합니다.]

[한 달간 배고픔과 피로를 느끼지 못합니다.]

[당신의 성장 한계가 일시적으로 깨집니다.]

[레벨이 오를 때마다 주어지는 능력치가 6개가 됩니다.]

"맛있네. 더 주면 안 되냐?"

[안 된다. 그럼 들키고 말 거다. 사실 이거도 몰래 훔친 거니까.]

"쯧. 코딱지만큼 줘놓고 생색은."

[그걸로 만족해라. 원래 인간에게는 거의 내리지 않는 것이다. 더 먹었다간 들켜서 평생을 명계에서 노역을 하며 살아야 할 거다.]

"어쩔 수 없지. 그나저나 이걸 내게 준 이유는?"

사실 백무열은 아이템 정보를 살피며 지레짐작하고 있었다.

아마도….

[성장하라는 뜻이다. 배고픔과 피로를 느낄 필요도 없으니까.]

"역시 그랬나."

[나무를 지키는 것은 '라돈'이라는 괴물이다. 옛날에 내가 때려잡았는데 새끼가 있었더군.]

"그러니까 그놈을 때려잡을 정도로 성장하라 이거지?"

[정답이다.]

"쉽구만."

백무열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헤라클레스 또한 재밌다는 듯 이죽거렸다.

[무운을 빌지. 아, 몽둥이로만 싸우는 것 잊지 말라고. 지켜보고 있으니까.]

딱! 하며 헤라클레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다시 한번 백무열의 몸이 빛에 휩싸이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 * *

조셉과 대화를 마친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차가 막혀서 시원하게 뚫리지 않았다.

나는 운전대를 잡으며 깊은 상념에 잠겼다.

…믿을 수가 없군.

아까 조셉이 들려준 이야기는 너무나도 엄청나서 그 후폭풍이 생각보다 강했다.

그도 그럴 게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야기 투성이였다.

조셉은 바로 아크스타를 만든 강재성 박사의 가족.

진짜 핏줄로 이어진 가족은 아니지만, 조셉의 아내는 강재성 박사의 여동생이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그와 조셉이 굉장히 친했다는 것이다.

지금 그는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는 상태인데, 그가 쓰러지기 전 조셉에게 한 통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것의 내용은 이러했다.

[강재성: 성관아. 이건명을 조심해. 그리고 내가 쓰러지면 일곱 별의 선택을 받은 사람을 찾아서 그를 도와.]

'성관'은 조셉의 한국 이름이었다.

조셉은 그 한 통의 메시지를 받은 직후, 굉장히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그 뒤로 강재성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다음 날 식물인간 상태로 나타났다.

나는 아까 전 조셉의 말을 떠올렸다.

'저는 그 뒤 형님이 쓰러진 이유가 이건명에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조사를 하기 시작했죠. 하지만 아무런 자료가 없는 상태라 진척이 없었습니다. 형님의 컴퓨터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아크 스타가 만들어지기 직전 있었던 실험 지원자들의 신상명세서뿐이었어요.'

나 또한 그 목록을 확인해보았었다.

정말로 그곳엔 선영이의 기록이 남아 있었다.

프로젝트의 이름은 '뉴 월드'.

죽은 대상의 뇌를 연결해 가상현실의 세계에서 다시 살리는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아내는 그 프로젝트에서 최초로 실험을 받은 사람이었다.

물론, 성공적으로.

"…선영아. 너였니?"

나는 조셉에게 튜토리얼에서 가이아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얘기를 했었다.

그녀가 나를 기다렸다는 말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긴 것까지.

조셉은 이야기를 들으며 어쩌면 '가이아'가 아내와 동일 인물일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했었다.

그리고 그것에는 나도 동의했다.

그렇다면 앞뒤가 딱 맞아 떨어지니까.

애초에 알렉서스의 외모가 자신의 젊은 시절과 같았던 것이 아내가 만들어서 그랬던 것이라면 모든 것이 이해가 된다.

"후우. 뭐가 이리 복잡한 건지…."

만약 가이아가 정말 아내라면 지금 아내는 내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믿을 사람이 나밖에 없다고 그랬으니까.

"아무래도 안 되겠군. 좀 더 빨리 강해져야 할 필요가 있겠어."

마침 정체되어 있던 도로가 뚫리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액셀을 밟아 속도를 올렸다.

"조금만 기다리오. 금방 가리다."

흰둥이가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집으로 향했다.

저물어 가는 노을이 제법 아름다웠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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