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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199화 (199/375)

나 빼고 다 젊은이 199화

제199화

나는 바로 경기를 치르고 있을 견소룡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이제 백무열이 깨어났으니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견소룡에게 최선을 다해 싸우라는 귓속말을 보냈고, 답장은 빠른 속도로 도착했다.

- 견소룡: 그 말을 기다렸습니다.

그것이 끝이었다.

짧은 한마디였으나, 그의 말에는 묘한 묵직함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녀석이 더 좋았다.

북극에서도 그랬지만 견소룡은 언제나 내 옆을, 그리고 뒤를, 또 어떨 때는 앞을 묵묵히 지키고 서 있었다.

새삼 느끼지만 참 좋은 동생을 얻었구나 싶다.

"아무 일이 아닌 것 같은데? 미도가 실려 가잖아."

미도는 들것에 실려가고 있었다.

사제들이 주고받는 얘기를 들으니 바로 옆에 병실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다시 앞에 선 백무열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희미하지만 그의 몸을 감싼 붉은 영성(靈星).

1등성을 상징하는 붉은색의 기운이었다.

이내 그것은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더니 사라졌다.

진짜 대화를 했던 게 맞았나 보네.

"좀 다쳤다. 독에 당했거든. 근데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

"으음, 내가 그렇게 조심하라고 일렀건만."

"상대가 너무 나빴다. 약간 우리 쪽이야."

"우리 쪽이라고…?"

백무열의 눈이 커지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단검을 쓰는 것이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단검으로 싸워본 경험이 있는 놈이야. 그럼 십중팔구 틀림없지."

"흥미로운 놈이로군. 자라나는 새싹인가?"

"그래서 내가 밟아 버리려고."

"크하하하하! 그놈은 죽었구만! 천하의 최춘택이 손녀를 건드렸으니 말이야! 하하하하!"

백무열이 호탕하게 웃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러자 수정구슬에 띄워진 화면을 보고 있던 휴톤이 이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흥미가 없는지 다시 화면을 바라봤다.

라인하르트와 미도는 부상이 심해 대기실 옆에 위치한 병실로 옮긴 상태였기에 이곳에 있는 것은 휴톤과 매드독 밖에 없었다.

근데 망할 삐에로는 어딜 갔는지 보이질 않는군.

골목 구석에서 매드독이 걸어 나온 것은 그때였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그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망할 놈 같으니라고.

왜 저렇게 꼬나보는 게야.

"뭘 보나."

"…쳇."

"하여튼 싸가지하고는."

매드독이 똥 씹은 표정으로 구석에 들어가 다리를 꼬고 앉았다.

저놈을 언제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가급적이면 제발 빨리 만났으면 좋겠다.

당장에라도 저놈의 면상에 발차기를 꽂아버리고 싶으니까.

뭐, 그건 그거고….

"무열아."

"응?"

"헤라클레스랑 무슨 얘길 했냐."

"음? 네가 그걸 어떻게…."

"말했었잖냐. 나도 대화를 해본 적이 있다고."

"아, 그랬지. 참."

백무열은 옅은 한숨을 내쉬더니, 진중해진 얼굴로 띄워진 화면을 바라봤다.

나 또한 녀석을 따라 시선을 옮겼고, 그곳에는 견소룡이 푸른 번개를 휘감은 양 주먹으로 김현우가 만들어낸 빛의 보호막을 두들기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견소룡이 봐주고 있는 듯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알아주는 랭커답게 김현우의 반격도 제법 만만치 않았다.

아마 사제와 기사가 합쳐진 직업이라고 했으니, 생명력도 많고 회복도 되니 쉽게 죽진 않을 것이다.

백무열은 휴톤을 한 번 힐끔 보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녀석과 나는…."

* * *

앉은 채로 다리를 꼬며 경기 화면을 유심히 보던 김제복은 여러 가지 상념에 잠겨있었다.

그는 아까 경기가 끝나자 여자에게 베인 검상을 치료하기 위해 포션을 마시는 중이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싸움에 김제복의 기분은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대기실에 도착했을 땐 귓속말을 받았다.

보낸 이는 바로 최불룡.

저번에 일을 망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꽤 쓴소리를 들은 이후, 김제복은 최불룡과의 사이가 그리 썩 좋지는 않았다.

그는 아까 전 나눴던 귓속말 창을 열며 대화 목록을 찬찬히 살폈다.

- 최불룡: 김제복.

- 매드독: 예.

- 최불룡: 작전을 변경한다.

- 매드독: 예…?

- 최불룡: 영감의 힘이 생각보다 더 강력하다. 아무래도 너 혼자만으로 이길 수는 없을 거야. 그래서 밖에서 하는 기습도 발만 걸쳤다가 빼기로 했다. 지금 진행 중인 담배 사업도 애들이 정리해서 뜰 준비 중이니까, 괜히 달려들어서 죽지 말고 몸 사리면서 싸우다가 그냥 장외로 떨어져.

"미친놈이. 쫄았으면 쫄았다고 하지. 뭘 이렇게 말을 돌려."

김제복이 입술을 짓씹으며 대화 기록을 닫았다.

다시 생각해도 열 받는다.

분명 아까 전 경기는 대단했지만, 그래도 자신은 이길 자신이 있었다.

김제복은 손에 쥐어진 단검 아라크네 송곳니를 들었다.

이것은 최불룡과 친한 성신 그룹의 막내인 윤서원이 일명 '현질'이라는 것을 해서 사준 아주 귀한 단검이었다.

원래는 그저 송곳니의 모습이었지만, 최불룡이 윤서원에게 부탁해 돈으로 괜찮은 대장장이 유저를 매수했고, 이것을 만들어 자신에게 주었다.

오직 그 영감탱이라는 작자를 죽이기 위해.

"하여튼 부자들은 통이 크다니까. 도대체 왜 최불룡이랑 친한지 이해가 안 되네. 그 성격 파탄자 새끼가 뭐가 좋다고. 쯧. 뭐, 그래도 이 선물은 썩 괜찮지만."

아라크네 송곳니의 검신이 보랏빛으로 반짝인다.

검 손잡이에는 거미 모양의 장신구가 붙어있었는데, 그것 또한 마음에 들었다.

듣자 하니, 원래 이 송곳니가 거대한 거미 몬스터의 것이었다고 한다.

그것도 엄청 크고 위험한 보스급의 몬스터.

과연 성능이 대단하다 싶었다.

'현실로 가져가고 싶은데…. 진짜 아깝네.'

혀를 끌끌 차던 김제복은 다시 영감탱이를 노기 서린 눈으로 바라봤다.

'도대체 저딴 가면은 왜 쓰는 거야?'

그는 독이 묻지 않은 검신을 핥으며 강하게 복수를 다짐했다.

최불룡은 일부러 장외 패로 지라고 했지만, 자신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아직 저 망할 노인네에게 갚아줘야 할 빚들이 산더미처럼 많이 있었으니 말이다.

'지가 다크 울프면 다크 울프지. 이 아라크네의 독 앞에서도 그딴 소리가 나오나 보자고. 기대해 망할 노친네야. 사지를 찢어 발겨주지.'

* * *

-경기 끝났습니다! 견소룡 선수가 4강에 진출합니다!

세 번째 경기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역시나 견소룡이 승리했고, 이것은 이미 내가 예견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레이트라의 필살기 중 하나인 '뇌룡'조차 강림하지 않은 상태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김현우는 잘 버텼다.

과연 한국인의 끈질긴 악바리 정신이 있다고나 할까.

기생오라비 같이 생겨서 근성 따윈 없을 줄 알았더니, 제법 사내다운 모습도 있었다.

나는 저 멀리 무대에 올라가기 위해 준비 중인 백무열을 보았다.

그의 옆에는 거대한 휴톤이 함께 서 있었다.

"몽둥이의 과업이라…."

아까 전 백무열은 많은 이야기들을 했다.

그가 들은 것은 각종 모험 이야기와 전설들.

그것들은 모두 헤라클레스가 이룬 업적들이었다.

네메아의 사자를 죽이고 아홉 머리 괴수 히드라를 죽였으며, 여신의 암사슴을 사로잡고 거대한 멧돼지를 잡았으며, 때로는 왕의 축사를 청소하기도 했고, 호수의 괴조를 퇴치하며 두 마리의 난폭한 황소를 힘으로 제압하기도 했다.

또한 인육을 먹는 말을 길들였고 여왕의 머리띠를 훔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황금 사과를 훔치기 위해 세상을 들었던 일화와 지옥의 파수견 케르베로스를 때려잡은 이야기는 당시 인간이었던 헤라클레스가 했다고는 정말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뭐, 유피테르의 핏줄이니 당연한 건가.

헤라클레스는 유피테르와 인간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쉽게 말하면 반신이란 거다.

뭐, 애초에 헤라클레스를 만들어낸 이유는 거인들이 천궁을 짓밟을 것이라는 예언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막는 것은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자밖에 없다고 했었다.

뭐, 결과적으로는 그 예언이 맞았지만.

"흠. 지금 보니 정말 몽둥이로 이룬 과업이 하나도 없군."

헤라클레스는 많은 시련을 이겨내며 과업을 달성했지만, 정작 그가 좋아하는 몽둥이로 이룬 과업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는 그것이 정말 아쉬웠고, 그의 별자리가 몽둥이가 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그가 백무열을 부른 이유 또한, 그런 자신을 대신해 몽둥이로 새로운 과업을 쌓아주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아까 전 백무열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후계로 3명을 골랐다더군.'

'3명?'

'그래. 그런데 제일 먼저 골랐던 놈은 이미 다른 성좌를 선택해버려서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거야. 그래서 몹시 화가 난다더군.'

'흠, 나머지가 너랑 저 대머리 놈이고?'

'그래. 그런데 휴톤은 몽둥이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가 봐. 그리고 원체 하는 행동거지가 정의랑은 거리가 멀어서 싫다네.'

'그럼 너는…?'

'훗, 있다가 보면 알 거다.'

나는 상념을 지우며 백무열의 등을 바라봤다.

과연 그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는 모르겠지만, 내심 기대가 되는 건 사실이다.

콜로세움 NPC가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네 번째 경기 선수들? 이제 입장하시면 됩니다."

마침내 백무열의 경기가 시작된다.

* * *

저벅저벅.

백무열과 휴톤은 터널처럼 어두운 길을 걸어 콜로세움 무대를 향해 걸었다.

두 사람은 키도 다르고 덩치도 완전 달랐지만, 서로의 보폭을 맞춰 걸었다.

사실 휴톤이 배려를 한 것이기도 했다.

강자에 대한 예우라고 할까.

"이번에야 말로 결판을 내자고."

휴톤의 말에 백무열이 피식 웃었다.

"좋지. 바라던 바다."

그 뒤로도 두 사람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사실 많은 말은 필요 없었다.

그저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말보다는 행동이 중요했다.

어차피 좀 있으면 백무열과 휴톤은 많은 대화를 나눌 터였으니까.

남자들만의 뜨거운 몸의 대화 말이다.

조금 더 걷자 익숙한 빛이 보였다.

이제 저것을 지나면 콜로세움이 나온다.

관객들의 함성이 밀려드는 파도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그것을 지나치는 순간.

"와아아아아아-!"

많은 이들의 함성이 귓전을 때린다.

그중에는 백무열의 이름을 연호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물론, 뒤에는 '할아버지'라는 단어를 붙여서.

새삼 이런 환대가 기분 나쁘진 않다.

춘택이는 싫어할지 몰라도, 젊게 살면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네 번째 경기들의 선수들을 소개합니다! 두 선수는 무대로 자리해주십시오.

사회자의 말에 백무열은 당당하게 계단을 올라갔다.

휴톤 또한 거대한 몸으로 성큼성큼 올라갔고,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이내 마법사들의 결계가 쳐지자,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이 울렸다.

부우우우우-!

"흐흐흐. 몽둥이의 가호!"

먼저 스킬을 사용한 것은 휴톤이었다.

그는 양 입꼬리를 길게 만들며 흥분이 된 듯 보였다.

거대한 힘의 파동이 땅에 지진을 일으키며 퍼져나갔고, 결계는 일시적으로 흔들렸다.

백무열은 그 모습을 보면서도 고요했다.

마치 잔잔한 호수처럼.

"어이, 왜 몽둥이를 뽑지 않지?"

"난 괜찮으니까 들어와라."

"흐음. 뭐 그렇다면야."

휴톤이 어깨를 으쓱이더니 백무열을 향해 돌진했다.

백무열은 허리춤에 있는 목검을 향해 손을 올렸고, 손가락을 가지런히 감아쥐었다.

그리고 이내 휴톤과의 거리가 2미터 남았을 무렵.

"…몽둥이의 가호."

터져 나오는 힘의 파동과 함께 빠른 속도로 목검을 휘둘렀다.

백무열은 몽둥이의 가호를 쓸 때마다 터져 나오는 힘의 파동을 공격에 이용할 생각이었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힘의 파장이 두 사람 사이에서 터졌고, 나가떨어진 것은 휴톤이었다.

"으으윽…."

어떻게 된 영문인지도 모른 채 튕겨 나가 머리를 흔드는 휴톤에게, 백무열은 목검을 늘어트리며 저벅저벅 걸어갔다.

"혹시 스틱스강이라는 것을 아나?"

"스틱스강…? 그게 뭐지?"

"사실 나도 잘 몰라."

['절대 맹세의 강물'이 약속을 이행할 것을 말합니다.]

츠츠츠츳.

작은 스파크와 동시에 허공에서 나타난 것은 작은 술잔이었다.

"근데 내가 방금 그거에 맹세를 했거든. 이 빌어먹을 몽둥이로 과업을 쌓기로 말이야."

하지만 맹세는 백무열 혼자만 한 것이 아니다.

[몽둥이를 좋아하는 성좌가 맹세를 이행합니다.]

['절대 맹세의 강물'은 공정한 대결을 원합니다.]

[두 사람이 가진 '몽둥이의 가호'의 힘이 동일해집니다.]

[당신의 힘이 조금 더 강해집니다.]

츠츳!

또 한 번 튀는 붉은 스파크와 함께 온몸의 힘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거머쥔 목검에 담긴 거력(鉅力)이 더욱 충만해지는 것을 느꼈고, 백무열은 어깨에 흑색의 목검을 척 올렸다.

"맴매 맞을 시간이다. 애송아."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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