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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195화 (195/375)

나 빼고 다 젊은이 195화

제195화

"와아아아아아아!!"

잠깐의 정적에 휩싸였던 관객석이 들썩이며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바깥의 상황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지만, 이곳도 설마 라인하르트가 당할 줄은 몰랐는지 꽤 놀란 눈치였다.

그리고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었다.

"크하하하! 공약을 지켰구만!"

백무열이 화면을 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미도와 김현우 또한 '역시'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저 가면을 쓴 이의 정체를 알고 있었기에 크게 놀라는 눈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로 저 화려한 발차기를 보고 있노라니, 감개가 무량한 건 사실이었다.

"크으으으. 역시 발차기가…."

미도가 웬 아저씨들이나 낼 법한 걸쭉한 목소리로 엄지를 들었다.

김현우는 동영상으로만 보던 저 발차기를 실제로 보니 어안이 벙벙했는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와, 어떻게 저렇게 발차기를 하는 거지? 진짜 대박이다."

호기심 가득한 미도의 표정에 백무열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는 지금 보고 있는 저 사람이 바로 '네 할아버지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춘택이의 부탁이 있었기에 백무열은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씰룩거리는 입꼬리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그도 지금 이 상황이 웃겼기 때문이다.

'하여튼 춘택이 녀석 웃기다니까. 그나저나 발차기 실력은 여전하네. 죽지 않았어. 그 시절 그대로야. 과연 명불허전이구만.'

다리 없는 새,

무각조.(無脚鳥).

20대 시절의 최춘택은 분명 그렇게 불렸었다.

그 화려한 공중 발차기가 마치 다리 없는 새가 부리를 쪼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

물론 세월이 흘러 육신은 늙었지만, 지금 녀석은 그때 그 시절로 회춘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정정한 모습이었다.

이 모든 것은 오로지 이곳이 가상의 세계였기에 가능한 일.

백무열은 팔에 오소소 돋아난 닭살을 문지르며 환희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자신 또한 옛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 휴톤이라는 녀석을 넘어서야겠지.'

건너편에는 휴톤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화면을 보고 있었다.

그는 생각보다 까다로운 상대였다.

자신과 같은 힘을 갖고 있음에도 한참이나 레벨과 능력치가 높았으니까.

그 격차를 메우기 위해서는 백무열도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야 함을 잘 알고 있었다.

'오랜만에 검과 대화를 해봐야겠군.'

그는 대기실의 구석으로 향했다.

곧장 가부좌를 틀고 무릎에 목검을 올려놓으며 명상을 하기 시작했다.

이건 그가 항상 중요한 싸움을 앞두고 하는 습관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몽둥이를 좋아하는 성좌가 당신의 대화 요청을 수락합니다.]

* * *

쓰러진 라인하르트가 턱을 문지르며 상체를 일으켰다.

"으음, 이거 꽤 아프군. 하하하!"

뭐가 그렇게 좋은지, 라인하르트는 앉은 채로 고개까지 뒤로 젖히며 웃었다.

녀석의 생명력은 생각보다 많이 닳지는 않았다.

"미노타 때문에 화 속성 저항 세팅을 해놨었는데, 안 해놨으면 제법 아팠겠어. 하하하하!"

또 한 번 호탕하게 웃던 라인하르트가 갑자기 뚝 웃음을 그치더니, 나를 노려보며 웃었다.

그리고는 한쪽 입꼬리를 씩 말아 올렸다.

"설마 네 정체가 그때 그 녀석일 줄이야. 정말 깜짝 놀랐는걸?"

라인하르트가 한쪽 무릎을 짚으며 일어섰다.

그의 표정이 갑자기 한층 진지해졌다.

"오랜만이야."

"……."

나는 말없이 녀석을 노려봤다.

이제야 내 정체를 알다니, 이놈도 어지간히 눈치 없는 녀석 같다.

흐르는 정적 사이로 조용히 인벤토리에서 알렉서스의 포크 숟가락을 꺼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전에 한국 유튜버가 하는 방송에서 네가 쓰는 기술을 본 적이 있지. 그래. 이제야 기억이 나는군. 가면은 조금 다르지만, 방금 전의 움직임과 발차기. 그리고 뜨겁게 타오르는 양발. 그리고 손에 쥔 창…. 이 아니네. 음, 내가 잘못 본 건가?"

나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이 녀석은 바보가 틀림없다.

이렇게 힌트를 줬는데도 모를 수가 있나.

"오랜만이군. 라인하르트."

"오오, 역시 내가 잘못 볼 리가 없지. 하하. 음, 그나저나 네가 상대라면 나도 재밌어지는군. 그때 한번 붙어보고 싶었는데, 사라져버려서 못내 아쉬웠는데 말이야."

씩 웃던 라인하르트가 건틀렛에 붙어있는 방패를 들었다.

푸른 마력이 휘감기더니 방패의 크기가 약간 커졌다.

내게도 익숙한 것이었는데, 아마도 그는 저 방패를 자유자재로 조절을 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문제는 저 방패가 평범한 것이 아니라는 거지만.

"자, 다시 한번 붙어보자고!"

방패를 앞세운 채 달려드는 라인하르트가 보였다.

나는 곧장 솔라를 소환해 입에 포크 숟가락을 쑤셔 넣었다.

조금씩 커지기 시작한 포크 숟가락은 이내 창으로의 변모를 마쳤고, 나는 그것을 라인하르트의 방패를 향해 있는 힘껏 던졌다.

찌어어어엉-!

마치 같은 강도의 쇠가 부딪히는 소리.

창과 방패가 부르르 떨리는 느낌이 꽤 멀리 있음에도 생생히 전해져왔다.

그리고 눈앞에 뜨는 메시지는 과연 예상대로였다.

[알렉서스의 포크 창의 내구도가 하락하였습니다.]

"으음? 방패의 내구도가 떨어지다니. 이 창의 정체가 뭐지?"

라인하르트도 의문이었는지, 돌진해오던 기세를 멈추며 물었다.

하지만 굳이 대답해줄 의무는 없다.

나는 거미줄을 뻗어 창을 회수했고, 인벤토리에 집어넣으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건 지금 쓸 수는 없을 것 같군. 그렇다면 두들겨 패는 수밖에 없겠지.

나는 녀석이 방심한 틈을 타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곧장 허공을 박차며, 빠른 속도로 연속 앞차기를 날렸다.

라인하르트는 상관없다는 듯 웃으며 방패로 막아냈고, 우리들은 그 상태로 수십 합을 주고받았다.

"크하하! 좋아! 더 보여달라고! 이걸로는 부족해!"

소환된 솔라가 태양의 저주를 퍼붓고 썬 볼을 녀석의 뒤에서 발사했지만, 라인하르트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화 속성 저항이 달린 장비를 장착했다는 것이 허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썬 로드를 쓰는 것도 사실상 큰 의미는 없는 셈이다.

나는 재빠르게 다시 녀석과의 거리를 벌렸다.

"뭐야. 벌써 끝이야? 난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덤벼보라구!"

"……."

이거 참 난감하군.

케레노스에게 배운 바람의 칼날을 던지는 방법도 있지만, 라인하르트의 방패술이 워낙 뛰어나서 쉽게 막힐 것 같다.

거기다가 큰 데미지를 입히기엔 아직 내 바람은 불안정한 상태.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하아. 어쩔 수 없지."

약간 대놓고 내가 여깄다고 자랑하는 꼴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여기서 이놈을 이기려면 나도 모든 걸 드러내야 한다.

이건 미도에게 제일 먼저 쓰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지.

[솔로몬의 반지가 '판결의 눈'을 준비합니다.]

왼손에 있는 반지가 푸른빛을 띠며 빛나기 시작했다.

[반지가 유저 '라인하르트'를 관찰합니다.]

[라인하르트가 좋아하는 이성은 유저 '레이나'입니다.]

"음? 이번엔 또 뭐지? 하하하. 기대되는군."

그는 기대감이 어린 표정으로 웃었다.

나는 녀석을 향해 다가갔다.

"넌 레이나를 좋아하는군."

"어엉? 어떻게 알았지?"

"다 방법이 있다."

[당신은 대상을 '커플'로 판결내렸습니다.]

[대상의 모든 능력치를 20% 감소시킵니다.]

반지에서 뻗어 나온 푸른 아우라가 라인하르트의 몸을 올가미처럼 휘감았다.

그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눈빛이었다.

"뭐, 뭐야. 이게 갑자기 왜…."

그리고 내게는 아직 한 가지가 더 남았다.

[성좌 스킬, '흑야랑 소환'을 사용합니다!]

흑색의 안개가 깔린 듯 바닥이 진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땅에서 익숙한 형체들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것은 로믈라나가 내게 남긴 한 줄기 희망의 조각이었다.

칠흑빛을 띤 밤의 늑대들이 차가운 이를 드러냈다.

* * *

한편, 백무열은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저 잠시 눈을 감았을 뿐인데, 주변의 소음이 하나도 들려오지 않았다.

어쩌면 너무 집중해서 그런 것일까?

의문이 든 백무열은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 이내, 당황했다.

"뭐, 뭐여."

주변은 온통 깜깜한 어둠뿐이었다.

당황한 백무열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바닥에서 느껴지는 폭신한 감촉에 아래로 시선을 옮겼다.

"구름…?"

신기하게도 자신은 구름을 밟고 서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머릿속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콜로세움 대기실에 있었건만, 왜 이런 곳에 있는 것일까.

머릿속으로 추측해봤지만 나오는 답은 없었다.

"설마 이 천하의 백무열이 납치를…."

그 중얼거림에 화답을 하듯 들려오는 목소리.

[하하. 여전히 재밌는 인간이네.]

하늘에서 들려오는 말에 백무열이 고개를 들었다.

"뭐야 이건 또."

언제부터 저러고 있었는지, 허공에는 자신의 흑단 나무 목검이 두둥실 떠올라 있었다.

그것은 황금빛에 휩싸인 채 은은한 기운을 풍겨냈다.

백무열은 한눈에도 저것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때, 또 한 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지금 너의 몽둥이를 통해서 말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은은한 황금빛이 더욱 휘황찬란한 빛을 뿜어내더니, 익숙한 형상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저번에도 한 번 보았던 것.

사자 형상의 탈을 쓴 미남자.

백무열은 그가 누군지 이젠 알고 있었다.

춘택이가 자신에게 말해주었다.

"헤라클레스."

[호오. 용케도 내 정체를 알고 있었군.]

헤라클레스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그린 채 웃음 지었다.

과연 이 엉뚱한 인간은 자신을 보며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백무열은 그런 녀석에게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변태 놈이 여긴 어쩐 일이냐."

[하하하! 역시 재밌어. 이 헤라클레스를 보고도 이런 배짱이라니. 하하하하하!]

백무열은 자신을 앞에 놓고도 거만하게 웃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콜로세움 경기에 대비해 정신 집중을 해도 모자랄 판에, 갑자기 뜬금없이 나타난 놈이 훼방을 놓으니 심통이 난 것이다.

"이놈아. 할 말 없으면 썩 꺼져라! 바쁜 몸이시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가부좌를 틀며 명상에 잠겼다.

하지만 갑자기 머리에서 딱!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밀려오는 극심한 고통.

실눈을 뜨며 보니 헤라클레스가 때린 것이었다.

백무열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이이익! 썩을 놈이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앉아. 할 말 있으니까.]

헤라클레스가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강제로 자신을 주저앉혔다.

그 힘이 마치 태산과도 같아서 백무열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춘택이의 말대로 과연 힘 하나는 엄청난 놈이다.

아무래도 이놈은 얘기를 들어주기 전까진 보내주지 않을 생각인 것 같았다.

화를 가라앉힌 백무열이 씩씩거리던 숨을 골랐다.

"어디 지껄여 봐라. 코쟁이 놈아."

피식 웃은 헤라클레스가 반대편에 주저앉았다.

이제야 이 노회한 늙은이가 자신의 말을 들어줄 준비가 된 모양이다.

헤라클레스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긴 이야기를 위한 호흡을 마쳤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는 일단 말하기로 했다.

"내가 이곳에 나타난 이유부터 설명하지. 잘 들어. 우선…."

어딘지도 모를 꿈같은 공간에서 한 노인을 위한 이야기보따리가 풀어지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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