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191화
제191화
어수선한 소란은 삽시간에 종료되었다.
그곳에서 일하던 에일린이라는 NPC에게 물어보니 그녀는 최불룡이 정말 착한 사람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꽃집에 이틀간 출근하며 그녀의 일을 성심껏 도와주었다고 한다.
정말 최불룡이 납치를 해서 인질극을 벌이려는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놈이 이렇게 쉽게 물러난 것은 내 입장에서도 환영이었다.
만약 싸웠으면 또 유저들에게 사진을 찍혔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아.스.라 커뮤니티라고 했던가.
어떻게든 기자들의 출입을 막았지만 유저들이 찍는 사진마저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둘째 녀석이 알려줬던 그 커뮤니티가 또 뜨거운 냄비처럼 달아오르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다.
망할 기자 놈들이 또 따라붙을 게 뻔했으니까.
"흐음. 그나저나 마을이 정말 많이 발전했는걸."
그리고 지금 나는 오랜만에 촌장의 집무실에 도착해 있다.
곧장 헬레나와 키스가 있는 진료실로 가고 싶었지만 조셉이 조금 일찍 도착했다는 귓속말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메테우스][마을]
군사: 351 / 경제: 283 / 문화: 169
기술: 155 / 종교: 92 / 정치: 10
위생: 87 / 치안: 89% / 발전도: 219
인근 지역 영향력: 38%
-현재 세금: 없음
-마을 재정: 3,513달러
-종합 평가: 당신은 현재 메테우스의 '촌장' 겸 '농부'입니다.
-쓰레기촌 주민 1만여 명이 임시로 정착한 상태입니다. 그들은 빠른 속도로 마을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실피드 기사단이 거주하며 치안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공사 중인 바람의 신전이 7일 안에 완공이 될 예정입니다.
-몇몇 마을 주민들이 당신의 요리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현재 999명의 유저가 당신의 마을에 판잣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대여비로 1달에 1만 달러를 내고 있습니다.
-'마을' -> '소도시'로의 승격이 가능합니다. 도시로 승격이 되면 주민들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일 수 있습니다. 병사들을 길러낼 수 있고, 성벽을 쌓을 수 있게 됩니다. 공성전 기능이 50일 뒤 오픈됩니다. (300만 달러 소요)
"뭐가 많네…."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전체적인 수치들이 상승했다는 것이었다.
전과 비교하면 거의 2~3배는 오른 것 같다.
과연 놀랍군.
"쓰레기촌 주민들이 이 정도였나…?"
그렇게 나는 차근차근 정보창을 읽어 내려갔다.
실피드 기사단은 여전히 이곳에 정착하며 지내고 있었다.
모두 올 수는 없으니, 윈디아를 지킬 기사들 반.
그리고 이곳 메테우스를 지킬 기사들 반.
현재 케레노스는 에드워드의 부름으로 윈디아로 간 상태였다.
"신전은 이제 공사가 끝나가는군. 그리고 내 요리를 그리워하고 있다라…."
촌장이 아닌 요리사의 마음으로 그들의 끼니를 몇 번 챙겨줬을 뿐인데, 이렇게 잊지 않고 그리워 해주니 감개가 무량하다.
조만간 또 한 번 마을 사람들에게 요리를 해줘야겠다.
기왕이면 마을도 좋아지고 있으니, 가게를 차려도 나쁘진 않겠지.
그리고 이건….
"허허. 헬레나가 여걸이라더니 과연 놀랍군."
사실 헬레나를 마을로 보낼 때 그녀의 손에 100만 달러를 쥐여주었었다.
그런데 그녀는 이런 큰돈은 받을 수 없다며 거절했고, 내심 마을 발전기금으로 준 것이었는데 필요 없다고 하니 걱정도 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판잣집을 이용해 유저들에게 돈을 받아 자급자족하는 걸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수정이가 그렇게 입이 닳도록 칭찬을 하고 멋있다고 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달까.
"계속 이렇게 메테우스에 정착해주면 좋으련만…."
우선 이건 좀 더 공을 들여야 한다.
시간이 해결해줄 일이니 우선 밑으로 시선을 옮겼다.
"도시로의 승격이라…."
사실 이건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다.
많은 중소 길드들 중에도 도시를 가진 이들이 있다고 들었다.
이건 저번에 미도와 그 호랑말코 같은 놈들에게서 들은 얘기다.
왜냐하면, 그들도 작은 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의 도시는 메테우스처럼 풍요로운 편은 아니었다.
오르카 왕국에서 내주는 퀘스트로 공헌도를 쌓아 작은 성 한 채를 어렵게 구했는데, 왕국에서 주는 성은 생각보다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한다.
각종 몬스터들의 습격과 도둑들이 활개를 치고, 그것을 지킬 NPC와 유저들이 부족해 돈 먹는 하마나 다름없다고 했다.
성을 지키는 건 이카루스의 길드원들이 전부라고 했었지.
그나마 그들이 그것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공성전과 세금 때문이었다.
다른 이들의 성을 빼앗으면 그나마 조금 풍요로워지고, 운이 좋다면 대박을 칠 수도 있다고 했다.
세력이 있는 만큼 사람이 모이고, NPC가 모이니 명예와 돈방석을 동시에 얻게 되는 것이다.
"흐음. 뭐 그게 어디 쉽겠냐만…."
저번에 TV로 봤던 공성전에서 이카루스 길드는 공성전에 실패했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는 잘 아는 사실이다.
"일단 돈 걱정은 없는데, 지킬 인력이 부족하단 말이지…."
쓰레기촌의 주민들은 전투에는 영 젬병이다.
실피드 기사단과 케레노스가 있다는 건 그나마 위로가 되지만, 내 생각에 그걸로는 조금 부족하다.
수성에 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건 물론이고, 지금의 내겐 세력 또한 없다.
"이건 콜로세움이 다 끝나고 생각해봐야겠군."
"…무슨 말을 그렇게 혼자 하십니까?"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드니 어느새 들어온 조셉이 나를 보며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가끔 집중하다 보면 주변이 안 들릴 때가 있는데, 지금의 내가 그랬던 모양이다.
"귀신이냐. 노크 좀 하고 들어오지."
"두 번이나 했는데요?"
"끙. 앉아라."
무안했던 나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 그를 집무실에 있는 조그만 탁자로 안내했다.
그리고 곧장 그의 맞은 편에 앉았다.
조셉이 웃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르신. 건강하신 것 같네요."
"…실없긴. 갑자기 만나자더니, 이런 말 하려고 부른 거냐?"
"하하. 그건 아니죠. 긴히 상의 드릴 일이 좀 있습니다."
"뭐냐. 본론부터 들어가자. 병문안 가야혀."
"알겠습니다. 제가 어르신 성격을 모르는 것도 아니니까요."
별안간 조셉이 심호흡을 하더니 말했다.
"마을에 저항군을 좀 받아주십시오."
* * *
4시간 뒤. 병문안을 마친 나는 지친 몸을 이끌며 숙소에 도착했다.
곧장 침대에 얼굴을 파묻었고, 옆을 보니 고풍스러운 조명 아래 지쳐 잠든 춘자가 보였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녀석. 꽤 힘들었나 보네."
솔라에게 속성으로 파이어볼을 배운 춘자는 빠른 속도로 파이어볼에 대한 원리를 깨우쳤다.
솔라를 계속 소환해놓을 수가 없어서 조금 걱정했는데, 그건 좀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현재 춘자는 87%까지 파이어볼을 깨우친 상태.
100%가 되어 파이어볼을 완전히 습득하면 그때부터 슬슬 사냥 연습을 시켜도 될 것이다.
사실 같이 사냥을 다녀도 되지만, 아직은 레벨이 낮아서 위험하다.
어떻게 얻은 레추자인데, 귀하게 키워야지.
"흐음. 근데 저항군이라…."
4시간 전.
조셉은 내게 저항군을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말하길 현재 포트렌에 저항군의 기지로 삼을 곳이 다 떨어져버렸다고 한다.
그들은 옛날 일제강점기 시절의 독립군들처럼 자유를 위해 싸우는 투사들이라고 조셉은 설명했다.
그 대상은 당연히 포트렌의 귀족들이고, 그들은 파르타 공국에서 들여온 총기를 굉장히 잘 다루기에 내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조금 당황했지만, 사실 속으로 나는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마침 메테우스를 지킬 인력을 고민하던 차였는데, 어쩌면 그들에게 부탁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근데 스타 프루츠를 훔치겠다니. 흐음…."
그는 카이단에게서 스타 프루츠를 훔칠 예정이라고 했었다.
웃긴 것은 조셉이 훔친 스타 프루츠를 아무런 조건 없이 내게 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순간 이놈이 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나 싶어서 일단은 생각을 좀 해보겠다고 했다.
그 비싼 스타 프루츠를 팔면 쌍둥이들 분유와 기저귀 값은 걱정도 안 해도 될 텐데, 이렇게 내게 선뜻 주겠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였다.
물론, 녀석은 전혀 바라는 것이 없다고 했지만, 그놈의 돈 욕심은 내가 더 잘 안다.
"에휴, 머리 아프다."
조셉이 얻은 정보에 따르면 스타 프루츠는 카이단이 결승전에서 공개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그것이 진짜일지, 가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는 내게 결승전에서 스타 프루츠의 판별을 부탁했고, 진위를 판단해 귓속말을 주면 저항군과 함께 진짜 스타 프루츠를 차지하기 위한 작전을 실행할 것이라고 했다.
아마 저항군은 아렌이 말한 그들이겠지.
칼슈타인인가 하는 뭐시기들.
"아, 헬레나에게 그걸 말하는 걸 깜빡했군."
문득 아렌을 떠올리자 그가 주었던 퀘스트가 생각났다.
사실 병문안을 가서 그 얘기를 꺼낼 분위기는 아니었다.
나중에 콜로세움이 다 끝나고 단둘이 있을 수 있을 때, 그때 헬레나에게 얘기를 해도 늦진 않을 것이다.
"정신없는 하루네."
그렇게 여러 가지 상념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귓속말이 도착했다.
- 백무열: 춘택아. 고맙다! 하하하!
단순한 귓속말이었지만, 백무열의 표정과 음성이 머릿속에 각인이 된 것처럼 뚜렷하게 들렸다.
아마 지금 함박웃음을 지으며 호탕하게 웃고 있겠지.
"짜식. 그렇게 좋은가."
병문안을 가기 전 나는 그에게 꽃집의 주인에 대해 알려주었다.
당연히 주인은 백무열이었고, 녀석은 입이 귀에 걸려 찢어질 것처럼 좋아했다.
그 모습이 제법 아이 같아서 나는 그를 애늙은이라고 놀렸다.
- 백무열: 네가 준 마력 발아도 최고다! 고맙다 친구야! 하하하하!
나는 그에게 플로라가 선물해준 마력 발아 비전서까지 건네주었다.
뭐, 어차피 빌려주는 거라 녀석은 다시 돌려줄 것이다.
꽃집을 운영할 때 유용하게 쓰라고 준 건데 괜찮은 선물이었던 것 같다.
- 잭슨: 그려. 좋다니 다행이네. 난 이제 그만 로그아웃하련다. 내일 콜로세움 늦지 않게 오는 거 알지?
- 백무열: 그래. 알지. 정말 고맙다. 내일 보자. 크하하하!
- 잭슨: 고만 웃어라. 썩을 놈아. 간다.
- 백무열: 그려. 조심히 들어가~
나는 곧장 로그아웃을 눌렀다.
종일 골머리를 앓았더니, 온몸에 진이 빠지는 느낌이다.
* * *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미도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반겨주는 것은 역시 엄마였다.
아빠는 요즘 운동을 다니느라 피곤해서 일찍 주무셨고 할아버지는 요즘 한창 아크 스타에 빠져 계시다.
"딸, 왔니? 오늘도 재밌었어?"
"응. 엄마. 오늘도 즐거웠어. 별일 없지?"
"그럼~ 어서 들어와. 밥 먹을래?"
"아니야. 오면서 대충 먹고 왔어. 우선 씻을게."
"얘는, 대충 먹으면 안 되지. 주스라도 만들어줄 테니까 샤워 끝나고 먹으렴."
"땡큐. 엄마~"
미도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방에는 조그만 샤워실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처음엔 동생인 정도와 방을 나눌 때 그걸로 많이 싸우곤 했었다.
뭐, 어렸을 때 일이지만, 정도의 입장에서도 섭섭했을 것이다.
자신이 여자라는 이유로 샤워실이 딸린 큰방을 배정받은 것이었으니까.
뭐, 이제는 그런 것도 없지만.
쏴아아아-
빠른 속도로 샤워를 마치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그녀는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주방으로 향했다.
마침 엄마가 해놓은 건강 주스가 식탁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미도는 엄마의 사랑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것을 꿀꺽꿀꺽 삼켰다.
"우윽…. 진짜 맛없어."
언제나 느끼지만 엄마의 사랑이 담긴 이 주스는 정말 맛이 없다.
몸에 좋은 거라 먹고는 있지만, 도저히 적응이 안 된다.
"꿀을 좀 더 타달라고 할까…."
그렇게 식탁 위에 빈 잔을 내려놓은 그녀는 다시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책상 위에 앉았다.
학교 과제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저번에는 노트북으로 커뮤니티에 들어가 각종 스타 프루츠 능력자의 정보를 수집하느라 바빴는데, 아마 마지막이 세계랭킹 1위 마이클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잠깐만. 이거 뭐야?"
미도의 눈이 놀란 듯이 커졌다.
그녀의 시선은 며칠 전 적다가 말았던 종이에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적힌 것은 저번에 자신이 썼던 것들이 아니었다.
조금은 투박하지만 거침없는 호방한 필체.
새로이 적힌 글들은 미도의 눈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방대한 양의 기록이었다.
그녀는 종이에 붙어있는 포스트잇을 뗐다.
그곳엔 자그마한 글이 적혀있었다.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오. - 다크 울프]
"에에에에에에엑?!"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