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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188화 (188/375)

나 빼고 다 젊은이 188화

제188화

잠시 후.

미도가 소속되어 있는 <이카루스 길드>  의 간부들이 도착했다.

공식적으로는 그렇고, 사실 사적으로는 미도의 대학 선배라고 들었다.

뭐, 그게 중요하다는 건 아니다.

어쨌든 내게는 호랑 말코 같은 놈들일 뿐이니까.

"오빠들. 인사해요. 내가 말했죠?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우리 할아버지."

미도가 그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새삼 '잘생긴'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손녀의 말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큼. 이러면 안 되는데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정신 차리자, 지금 내 앞에 있는 놈들은 늑대들이다.

"반갑네. 난 미도 할애비야."

내가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밀자, 제일 먼저 잡은 것은 길드장인 김현우였다.

가까이서 보니 제법 부드럽게 생긴 것이 역시나 TV에서 본 것처럼 기생오라비처럼 생겼다.

일단 기선제압을 해야겠지.

"으윽."

나는 일부러 손을 꽉 잡았다.

조금 갑작스러웠는지, 김현우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것이 보였다.

조금 더 세게, 그리고 오래 잡고 뼈마디를 으스러트리고 싶지만 미도에게 들키면 안 되니 이쯤 해야 한다.

"바, 반갑습니다."

"그래."

이어서 손을 내민 녀석은 역시나 안면이 있는 놈이다.

우린 꽤 악연으로 엮여있다.

저번에 온천에서 피 튀기는 싸움을 벌였었지.

나도 모르게 그때가 떠오르자, 손에 힘이 들어가고 말았다.

그때 이놈은 분명 미도를 훔쳐보는데, 가장 앞섰던 놈이었다.

내 기준에서는 제일 괘씸한 놈 중 하나다.

"……!"

박태현이 제법 놀랐는지 눈썹을 치켜떴다.

이윽고, 그도 지지 않겠다는 듯 내 손을 꽉 잡았다.

허허, 이놈 좀 보게.

나는 맞잡은 손을 더욱 꽉 쥐었다.

우리는 서로 허공에서 눈을 마주치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웃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맞잡은 손은 터질 것처럼 달아올랐다.

"…으음, 젊은 친구가 손아귀 힘이 좋구만."

"…하하, 제가 어렸을 때 운동을 좀 많이 했습니다. 지금도 격투가 계열의 직업을 가지고 있지요. 할아버님도 힘이 굉장하십니다만…."

"난 요리사라네. 생산계열 직업이지…."

"그, 그렇군요…."

미묘한 신경전이 나와 박태현 사이를 오갔다.

그는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

하긴 내가 생산계열 직업을 가진 것 치고는 힘이 비정상적으로 높긴 하다.

이렇게 전투계열의 직업을 가진 녀석과 악력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뭐, 해오름을 썼다면 이놈의 손목은 이미 부러지고도 남았을 테지만.

괘씸한 놈 같으니라고.

"…어쨌든 반갑네."

"…예. 저도 반갑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동시에 손을 놓았다.

내 눈은 웃고 있지만, 벌써 이놈은 내 머릿속에서 100번은 죽었다.

그리고 이어서 손을 내민 것은 은정혁이었다.

그의 등에 매달린 새하얀 활이 제법 인상적이다.

…음, 이놈은 저번에 미도를 구해주고 대신 죽었지.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그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다.

나는 은정혁의 손을 맞잡으며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아까와는 다른 부드러운 어조.

이번엔 손에 힘을 주지 않았다.

"고맙네."

"예?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

"아닐세. 이렇게 와줘서 고맙단 얘기야. 허허."

그렇게 모두 인사를 나누고 나서, 아까 모닥불이 있는 곳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세 사람은 일행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보석 고기를 하나씩 들었다.

사실 주기 싫었는데, 미도가 그들에게 건네주었다.

마음 같아선 독이라도 타고 싶었지만, 지금의 내겐 독이 없다.

저번에 차진철 독살 사건 이후로 음식으로 죽이는 건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는 게 지금 내 생각이었다.

까딱 잘못하면 미도에게 들킬 위험이 컸으니까.

김현우가 한입 물어뜯고는 감탄했다.

"와, 정말 맛있습니다."

"그쵸? 우리 할아버지. 왕년에 대단했다니까? 월운정이라고 들어봤어요? 거기 옛날에 최고 주방장이었는데."

"험험. 그 얘기는 뭐 하러 꺼내고 그러냐."

새삼스럽게 과거 얘기를 꺼내니, 나도 모르게 귀가 달아올랐다.

"오, 나 예전에 거기서 밥 먹은 적 있는데. 진짜?"

"아, 거기 유명하지."

"바로크…. 가보고 싶다."

제일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묵찌빠 형제였다.

바로 옆에 있는 호랑 말코 놈들도 마찬가지.

"과연, 어쩐지 맛이 예사롭지 않다 싶었습니다."

"맛있긴 맛있다. 음, 양념 죽이네. 냠냠냠."

"우물우물. 미도가 대단한 할아버지를 두셨구나."

그렇게 계속 고기를 굽던 중, 갑자기 미도가 박수를 쳤다.

"아, 맞다! 할아버지. 혹시 다크울프님한테 저를 부탁한다고 하셨어요?"

무슨 얘길 하나 싶었더니, 저번에 그 얘기인 모양이다.

나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부탁했었지."

"아하, 오빠들이 그러더라구요. 왜 물어봤는지는 아직 얘기를 안 해줘서 모르지만요."

미도가 그들을 째려보자, 나도 그들을 보았다.

김현우와 박태현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깨를 들썩이며 고기를 뜯었다.

아무래도 찔리는 게 있어서 그러는 거겠지.

은정혁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온하게 활을 정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미도가 입을 열었다.

"참, 오빠들. 나 당분간 바쁠 거 같아요. 검술 배우기로 했거든요."

"검술?"

"갑자기? 너 없으면 우리 사냥은 어떻게 하고?"

"누구한테 배우는데?"

미도의 시선이 백무열에게로 향했다.

세 사람의 얼굴이 그곳을 따라갔다.

아마 서로 안면이 있을 것이다.

미도가 그들에게 마르고 닳도록 설명을 했을 테니.

어쨌든 중요한 건 미도가 녀석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다.

"…내가 가르칠 건데, 불만인가?"

백무열이 뚱한 표정으로 그들과 눈을 마주쳤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의 험악한 표정.

내 친구지만 진짜 무섭게 생겼다.

마치 백두산의 정기를 듬뿍 받고 자란 거대한 곰을 마주하는 느낌이랄까.

한쪽 눈을 가로지르는 검상이 흉흉한 기세를 내뿜었다.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하하…."

"큼. 전, 전혀 없습니다."

"저, 저두요."

세 사람이 겁을 먹은 것처럼 말을 더듬었다.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좋은 생각이 있었다.

나는 곧장 백무열에게 귓속말을 했다.

- 잭슨: 친구야.

- 백무열: 뭐냐. 바로 옆에 있는데 말로 하지.

- 잭슨: 중요한 거라 그래.

- 백무열: 뭔 얘긴데?

- 잭슨: 쟤네들한테 시비 좀 걸어봐.

- 백무열: 뭐? 그건 또 무슨 개뼉다구 같은 소리야.

나는 백무열에게 저놈들에게 시비를 걸어야 하는 이유를 짧고 간략하게 설명했다.

긴말은 필요치 않았다.

그냥 미도가 목욕하는 걸 훔쳐보려 했었다는 말 한마디면 충분했으니까.

- 백무열: 괘씸한 놈들. 알겠다.

"아무래도 내게 불만이 있는 모양이군. 자네들 일어서게. 특히 거기 두 사람."

우리 나이쯤 되면 남의 자식도 내 아들딸처럼 느껴지곤 한다.

아마 지금 백무열이 느끼는 감정도 나와 같을 것이다.

분노.

그는 김현우와 박태현을 콕 찝어서 말했다.

은정혁은 저번에 미도를 구하고 죽었으니, 일부러 내가 빼고 얘기했다.

사실 그때 온천에 없었기도 했고.

"예? 저희는 아무런 불만이…."

"맞습니다. 저흰 정말 아무것도…."

"스읍."

백무열이 째려보자 그들은 쭈뼛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미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괘, 괜찮을까요…? 다칠 텐데."

"음, 나도 걱정되는구나."

"저래 보여도 현우 오빠랑 태현 오빠 한국 랭커인데…."

아무래도 미도와 내가 걱정하는 사람은 다른 모양이다.

나는 무열이 녀석을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 저놈은 헤라클래스의 비호를 받고 있으니까.

녀석이 가지고 있는 몽둥이의 가호는 그만큼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지금 걱정해야 할 건 저 두 녀석이었다.

아니지, 걱정하면 안 되지.

"자, 두 사람이 같이 덤벼보게."

"예? 아무리 그래도…."

"스읍. 덤비라니까."

김현우의 말을 자른 백무열이 목검을 쥐었다.

그가 몽둥이의 가호를 시전하자 어마어마한 힘의 파동이 퍼져나갔다.

그 기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활활 타오르던 모닥불이 한순간 꺼질 것처럼 흔들렸다.

다른 일행들은 재미난 구경거리가 생기자 보석 고기를 안주 삼으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난 영감님한테 한 표."

"저도요."

"바로크…. 마찬가지다."

묵사발 형제들이 그랬고.

"난 영감님이 이긴다에 다리털을 걸지."

"난 얼마 안 남은 옆머리를 걸겠어."

대머리 형제가 그랬다.

"우리 할아버지가 질 리가 없죠."

백성찬도 마찬가지로 백무열의 우세를 점쳤다.

그 모습에 미도는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아무 말 없이 그들을 지켜봤다.

박태현은 심상치 않은 기세를 느꼈는지 제일 먼저 백무열을 향해 덤볐다.

"에라, 모르겠다. 다쳐도 모릅니다!"

그가 오른손에 마력을 휘감았다.

무슨 스킬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강맹한 기세를 뿜어냈다.

이윽고, 그의 주먹이 백무열을 향해 내질러졌고, 거대한 마력 폭풍의 권격이 녀석을 덮쳤다.

"…제법이군."

백무열이 거머쥔 목검에 힘을 주며 짓쳐오는 폭풍을 향해 일검을 내질렀다.

콰아아앙-!

주변에 있던 흙들이 사방으로 튀며 먼지를 만들었고, 풀들이 시야를 가렸다.

이윽고 먼지가 걷히자 드러난 것은 멀쩡하게 서 있는 백무열이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구만.

"대에에에에에에박."

미도의 입이 땅까지 닿을 정도로 쩍 벌어졌다.

지금 헤라클래스의 힘이 저놈에게 있는 이상 아마 백무열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헤라클래스의 힘과 녀석의 검술이 만났다고 상상해보면서 내 머리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천하무적이라고.

"이럴 수가."

"마력의 절반이나 썼는데…?"

"내 차례군."

백무열이 박태현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엄청난 연속공격이 바람 소리를 내며 퍼부어졌고, 박태현은 몇 번 피하는 듯했지만 목검의 공격속도를 따라가진 못했다.

결국, 순식간에 곤죽이 된 박태현이 무릎을 꿇었다.

"…미, 미친. 이게 말이 돼?"

충분히 된다.

그리고 이제 네 녀석들은 다 죽었다.

왜냐하면 내가 죽기 직전까지 패달라고 그랬거든.

나는 박태현을 향해 사뿐거리며 걸어갔다.

"자, 내가 열심히 구운 보석 고기를 먹게. 생명력이 회복될 게야."

"예? 아, 아니…. 우읍."

"설마 내가 팔에 알까지 배겨가며 열심히 구운 고기를 남기진 않겠지? 응원하겠네. 열심히 싸우도록 하게나."

나는 그의 입에 강제로 보석 고기를 밀어 넣었다.

박태현이 울상을 지으며 보석 고기를 우걱거렸다.

아마 생명력이 회복되고 나면 또 매질을 당하겠지.

그리고 내가 노리는 것도 그것이었다.

이 녀석은 좀 쳐맞아야 된다.

나는 악마 같은 표정과 함께 문워크로 뒷걸음질 쳤다.

"화이팅하게."

그날 밤.

그들은 50번 넘게 죽다 살아나길 반복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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