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183화
제183화
"그게 아니야. 예쁜 새야! 이렇게 해봐. 후우~"
"구후우우?"
"아니라고오~ 이렇게 이렇게. 후우우."
솔라가 뿜어낸 조그만 썬볼이 허공을 부유하며 날아다녔다.
춘자는 솔라가 하는 행동을 따라하듯, 입을 살짝 벌리며 불을 뿜어낼 기세로 소리를 질렀다.
"구화아- 꺼억!"
하지만 나오는 것은 트림뿐.
아까 먹은 생닭의 비린내가 코끝을 찔렀다.
어후, 냄새야.
이 녀석 양치라도 시켜야 하나.
장난 아니네.
"구루룩!"
하지만 그럼에도 춘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녀석은 날개를 퍼덕거리며 계속해서 시도를 했다.
아마 무슨 단서를 얻은 듯하다.
왜냐면 아까부터 이런 메시지가 뜨고 있거든.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력이 '춘자'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습니다.]
[부엉이 '춘자'가 '파이어볼' 습득에 대한 깨우침을 얻는 중입니다.]
[현재 '파이어 볼' 습득까지 얻은 깨우침 4%]
[100%가 될 경우, '춘자'는 '파이어볼'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확실히 레추자가 맞긴 하네."
만약 춘자가 보통의 부엉이였다면, 이런 메시지는 뜨지 않았을 것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력 또한 레추자의 특징 중 하나인 '달의 마력'이겠지.
평범한 부엉이가 파이어볼을 습득한다는 건 정말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썬볼이 아닌 파이어볼을 습득할 수 있다는 건 좀 아쉽네.
"뭐, 춘자가 태양이 아니니 어쩔 수 없는 건가."
어쩌면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썬볼을 쓸 수 있는 것은 솔라 뿐일지도 모른다.
녀석이 발산하는 태양 에너지는 신들 중에서도 프로메테우스 말고는 다룰 수 있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타고난 태생의 문제다.
최고신 유피테르도 태양의 불꽃은 다룰 수 없다.
"솔라야. 춘자 좀 잘 가르쳐놔라. 알았지?"
"알겠다. 주인아~"
"구룩-."
솔라와 춘자가 욕조에서 끄덕거렸다.
나는 지금 이 둘을 화장실로 데려왔는데, 그 이유는 아까 전 방에서 가르쳤다가 가구들이 살짝 그을려졌기 때문이다.
혹시나 이곳의 주인이 물어내라는 말을 할까 봐, 사전에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허겁지겁 둘을 화장실로 데려왔다.
"솔라야. 불나면 알지? 아까 내가 가르쳐준 것처럼 수도꼭지를…."
"그게 아니야! 예쁜 새야! 잘 봐. 후우우. 이.렇.게! 해봐!"
참나. 내 얘기는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네.
춘자가 생각보다 엄한 선생님을 만났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욕실을 나와 방을 나섰다.
계단을 내려와 1층을 향하는 그때, 귓속말이 도착했다.
- 백무열: 춘택아, 언제 들어왔냐.
- 잭슨: 아까 들어왔지.
- 백무열: 야, 여기 기자들 원래 이렇냐? 애들 만나서 사냥 가려고 건물 밖을 나왔는데, 기자 놈들이 진을 치고 비켜주질 않네? 망할 놈들 같으니라고.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이래서 내가 정체를 들키는 걸 싫어했는데.
- 잭슨: 네 녀석 복이지. 그러게 왜 그렇게 난장을 피워놨냐. 그래서 나도 정체를 숨기고 있던 건데.
- 백무열: 쯧. 소심하기는 남자가 호탕하게 살아야지.
- 잭슨: 어쩌려고?
그 말과 동시에 1층 현관이 나타났다.
저 멀리 옹기종기 모여 있는 무리가 보였다.
자세히 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저기 보이는 하얀 머리는 백무열이고, 까만 머리는 전부 기자들이었다.
그들은 어마어마한 질문 공세를 무열이 녀석에게 퍼붓고 있었다.
"콜로세움 8강전에 진출한 소감이 어떠십니까!"
"혹시 스타 프루츠 능력자이신가요?!"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현재 장년층과 노년층의 접속률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소감이 어떠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니, 좀 비켜 달…."
백무열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었다.
왼쪽으로 움직이면 기자들도 왼쪽으로 따라왔고,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오른쪽으로 따라왔다.
쯧쯧, 저래서야 사냥도 못 가겠군.
어느새 녀석의 옆을 지나치며 눈을 마주쳤다.
기자들은 내가 지나가도 전혀 감흥이 없었다.
그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고, 나는 곧장 무열이 녀석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이 꽤 약 올랐는지 백무열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안 좋았던 인상이 더욱 험악해졌다.
"히, 히익!"
"콜록! 콜록!"
"큼큼."
기자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무열이는 저게 제일 열 받았다는 뜻이거든.
"짜증 나게 하지 말고 비켜라."
위이이잉-!
그가 손에 쥔 마력 이발기가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백무열은 순식간에 기자 놈들의 머리에 고속도로를 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폭소가 터졌다.
"푸하하하!"
녀석의 말에 따르면 머리카락이 자라는 데는 현실과 똑같은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훈련소에서 시험해봤었다나 뭐라나.
어쨌든 저렇게 하면 기자들이 당분간 나타나진 않을 것이다.
속이 다 시원하네.
나도 하나 빌려달라고 할까.
"쯧, 이제야 좀 조용해졌군."
부리나케 도망치는 기자들을 보며, 백무열이 손을 털며 걸어왔다.
녀석이 내 옆에 마주 서자 물었다.
"사냥 갈래?"
"아니, 바쁘다니까."
"…바쁜 척하기는."
우리는 포트렌의 번화가를 향해 나란히 걸었다.
각자의 손에는 담배 한 개비가 쥐어져 있었다.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가 망연하게 나부낀다.
* * *
함께 걷던 백무열과 나는 광장에서 갈라졌다.
녀석은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는 포트렌의 서문으로 향했고, 그곳에 서식하는 거대한 '쥬얼 매머드'를 잡으러 갈 거라고 했다.
쥬얼 매머드는 내 기억 속에도 있는 몬스터였다.
그놈의 위장 속에는 보석처럼 빛나는 특수한 고기 부위 존재했는데, 500년 전의 알렉서스가 처음 발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어쨌든 희귀한 재료이기 때문에, 나는 있다가 무열이와 함께 잡을 예정이었다.
그나저나 쥬얼 매머드가 이곳에 서식했었군.
확실히 프로메테우스의 기억과는 많은 것이 달라졌구나.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드디어 내가 원하던 곳에 도착했다.
"여긴가?"
분명 헬레나가 말하기로는 포트렌에서 가장 큰 꽃집이라고 했었다.
가게의 이름이 '사라 플라워즈'라고 했었는데….
[당신과 맞는 운명의 꽃을 만나보세요. - 사라 플라워즈]
"…맞군."
나는 곧장 안으로 들어섰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게 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것도 특히 여자들.
아니, 나 빼고 전부가 여자들이었다.
간간이 중간엔 여자 NPC도 섞인 것이 내게는 좀 낯선 풍경이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가게의 직원으로 보이는 NPC가 상냥하게 물었다.
그녀의 명찰에 '사라 플라워즈'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름은 로즈.
영어로 장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꽃집 이름이랑 굉장히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꽃을 좀 사려고 왔는데…."
"아~ 그러시구나. 찾으시는 꽃 있으세요~?"
"음. 일단 좀 둘러보고 싶군."
"그러시겠어요? 그럼 전 저쪽에 서 있을테니, 필요하시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고맙네."
지금 내가 가면을 벗은 상태라 그런지, NPC의 행동은 굉장히 공손했다.
사실 쓸 수는 있었지만, 헬레나가 말한 그 귀족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사람이라고 했다.
아마 가면을 쓰면 만나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으니, 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곧장 인벤토리를 열었다.
"어디 보자. 그게 어딨더라…."
나는 한참이나 인벤토리를 뒤적거렸다.
분명히 헬레나가 헤어질 때 준 쪽지가 있었는데….
"아, 여깄구만."
조그만 쪽지라 그런지 겨우겨우 찾을 수 있었다.
나는 곧장 그것을 펼쳤다.
종이에 적힌 것은 꽃의 이름과 단어 몇 개였다.
-사야 할 꽃의 목록과 꽃말
로즈마리: 기억, 해바라기: 영원,
아젤리니: 기쁨 안젤로니아: 천사
시네라리아: 항상 빛남.
헬레나는 내게 이것을 주면서 5개의 꽃을 사야 한다고 했다.
이것으로 꽃다발을 만들어서, 사라 플라워즈의 사장에게 건네주면 잠깐의 신분확인을 마치고, 그 귀족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준다고 했다.
분명히 비밀통로가 있다고 그랬는데.
"어디 보자…."
제일 처음으로 찾은 것은 로즈마리라는 꽃이었다.
다행히 그것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마침 근처에 있었으니까.
나는 곧장 그것을 집어 들었고, 이어서 찾은 것은 해바라기였다.
그것 또한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설마하니 내가 해바라기를 사게 될 줄은 몰랐다.
무열이 놈이 제일 좋아하던 꽃이 이거였지 아마….
그놈이 여길 오면 입이 찢어지겠군.
"그리고 또 보자…."
나는 빠른 속도로 꽃을 찾았다.
주변에 있던 유저들과 NPC는 웬 할아버지가 꽃을 고르자, 로맨틱하다며 속삭이곤 했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할아버지 유저는 처음 본다며 신기하게 보았고, 나는 헛기침을 하며 빠른 속도로 다음 꽃을 찾았다.
하지만 종류가 너무 많아서 그런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아젤리니, 아젤리니….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내게 말을 건 것은 아까 전 만났던 로즈라는 여직원이었다.
나는 그녀를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좀 도와주겠나?"
"그럼요. 찾으시는 꽃이 뭐세요?"
나는 그녀에게 곧장 세 가지 꽃의 이름을 말했다.
남아있는 꽃은 '아젤리니'와 '안젤로니아'. 그리고 '시네라리아'라는 꽃이었다.
발음하기도 힘들군.
도통 무슨 꽃인지 알 수가 있나.
하지만 그럼에도 로즈는 꽃가게의 직원답게 빠른 속도로 꽃을 찾아 주었다.
지금 내 손엔 순식간에 그녀가 만들어준 다섯 가지의 꽃이 있었다.
로즈는 연보라색으로 된 헝겊으로 예쁘게 포장해 주었는데, 나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고맙네."
"뭘요. 또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언제든 얘기해주세요."
그녀는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다른 사람을 도와주러 갔다.
참으로 착한 NPC다.
요즘 말로 하면 1등 며느릿감이거늘….
유저가 아니라서 정말 아쉽다.
그랬다면 내가 어떻게든 꼬셔서 둘째 놈에게….
큼. 아니다. 수정이가 있구나.
내가 이러면 안 되지.
안 되고말고.
"아, 참. 내 정신 좀 보게."
나는 서둘러 계산을 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남자 직원에게 사장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2층으로 올라가 갈색 앞치마를 한 금발의 여성을 찾으라고 했고, 나는 그의 말마따나 2층으로 올라섰다.
나무로 만들어진 나선형의 계단을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남자 직원이 말한 여인을 만날 수 있었다.
곱게 묶은 금발 머리, 갈색 앞치마와 잘 어울리는 고운 치마.
명찰에 달린 그녀의 이름은 엘리스였다.
그녀가 내게 물었다.
"어머, 어떻게 오셨어요?"
"이것을 주려고."
나는 다짜고짜 꽃다발을 내밀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