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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182화 (182/375)

나 빼고 다 젊은이 182화

제182화

몇 번의 통화음이 울리더니 백무열이 전화를 받았다.

-그래, 춘택아.

"그렇게 좋냐?"

-좋고말고! 아무래도 내가 말년에 인복이 좋은가보다. 하하하!

"…인복은 개뿔."

우리들은 늘 그렇듯 시시콜콜한 대화들을 주고받았다.

백무열은 8강전의 시작까지 사흘 정도의 시간이 남았으니 같이 사냥이나 하자고 했다.

하지만 난 지금 당장은 힘들다고 했다.

-왜? 바쁘냐??

"그래. 해야 할 일이 좀 있다."

-흐음,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생각보다 백무열은 쉽게 납득했다.

옛날 같았으면 같이하자면서 징그럽게 달라붙었을 텐데, 이놈도 나이를 먹은 건가.

되게 의외네.

"간단한 퀘스트니까 금방 끝날 거야. 그거만 끝내고 같이 사냥이나 하자고."

-그래. 그럼 이따가 보자.

"그래~ 조만간 한잔하자고~"

-그래그래~

그렇게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아, 참. 무열아."

-어, 응?

"네가 콜로세움에 들어올 때 봤다던 그 최불룡이라는 놈 있잖냐."

-아, 그 불도마뱀? 근데 그놈은 왜?

"아무래도 에이단이라는 놈과 손을 잡고 있는 것 같다. 어제 갑자기 경기의 룰이 바뀐 것도 최불룡이라는 놈이 꾸민 짓 같아."

-흠, 확실한 거냐?

"내가 그놈이랑 어쩌다 보니 원수 관계가 좀 됐는데 확실해. 어제 2층 귀빈석에서 떡하니 나를 보며 웃더라고. 망할 놈의 시키."

-음….

백무열의 침묵이 이어졌다.

그는 장고 끝에 입을 열었다.

-일단 내가 알아서 해볼 테니. 걱정마라.

확실히 백무열과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것이 있다.

어떻게 해달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녀석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는 듯했다.

나는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부탁한다."

-그래. 걱정 말고 있다가 보자.

"그래."

뚝-.

꺼진 핸드폰의 액정에 얼굴이 비쳤다.

나는 주방으로 들어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오늘 집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강현이 녀석은 아침 일찍 헬스장을 갔다.

저번에 함께 등산을 갔는데, 나보다 체력이 안 되는 게 생각보다 충격이 컸다고 한다.

코치인지 뭔지 아무튼 사람을 붙여서 한다던데, 아무튼 살 좀 뺐으면 좋겠다.

"음, 아마 여기 어딘가에 있을 텐데…."

며느리는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서 나간 상태였다.

저녁에 들어온다고 했는데, 나가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찜닭을 미리 만들어 놓았으니 냉장고에서 찾아 데워서 먹으라고 했었다.

근데 어딨는지 모르겠네.

아마 이쯤 찾아보면 있을….

"아, 여깄구만."

나는 너털웃음을 흘리며 찜닭이 담긴 냄비의 뚜껑을 열었다.

차갑게 식었지만 그 고유의 향만큼은 고스란히 남아 내 코를 찔렀다.

흥얼거리는 콧노래와 함께 곧장 가스레인지의 불을 켰다.

그리고 냄비를 올린 뒤 집안을 서성거렸다.

"흠흠~♬ 흐흠흠~♪"

오랜만에 이런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것 같다.

내겐 비밀스러운 취미가 하나 있는데, 아무도 없는 집에서 문워크를 추는 것이었다.

두둠칫 두둠칫.

리드미컬하게 뒷걸음질 치던 나는 문득 미도의 방문 앞에서 멈추었다.

"……."

그리고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역시 미도는 없는 건가.

요즘 미도는 학교 숙제인가 뭔가 때문에 아침 일찍 나간다고 했다.

학과가 가상현실 학과인가 그랬는데 그곳에서 아크 스타와 관련된 숙제를 내줬다고 한다.

아무튼 그거 때문에 요즘 매일 캡슐방으로 출근 도장을 찍는다고 했었다.

"…우리 미도가 고생이구나."

나는 곧장 방안으로 들어섰다.

언제나 느끼지만 미도의 취향은 확고한 편이다.

깔끔한 단색의 분홍색 벽지와 주변에 가득한 귀티인가 하는 고양이 인형들.

그리고 공주님 침대가 갖고 싶다며 침대 위에 하얀 천막 같은 것을 쳐놓곤 했는데, 내 눈에는 그저 귀여워 보일 뿐이었다.

나는 손녀의 책상으로 시선을 옮겼다.

"……."

그곳에는 하얀 A4용지가 있었다. 그리고 가장 위쪽에 이렇게 쓰여 있다.

"성좌들의 능력? 뭐지 이게."

미도가 이런 걸 왜 종이에다 써놨는지 모르겠다.

바로 밑을 보니 마이클에 대한 정보가 다수 적혀 있었다.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조사를 하는 모양이다.

근데 왜 이런 걸 쓰고 있었던 걸까.

그 의문은 머지않아 풀렸다.

"아, 숙제였구만."

종이의 끄트머리에 숙제라는 글자와 별표가 있었다.

아무래도 꽤 중요한 건가 본데.

"아차, 찜닭!"

나는 종이를 들고 부리나케 부엌을 향해 달렸다.

다행히 찜닭은 타지 않고 알맞게 끓고 있었다.

곧장 접시에 담아 식탁 위에 올렸고, 밥을 펐다.

다른 반찬도 있지만, 오늘만큼은 이상하게 고기가 땡긴다.

"아~웁."

입에서 사르르 녹는 찜닭.

달짝지근하게 매콤한 향과 닭 비린내를 완벽하게 잡은 촉촉한 식감이 아주 일품이다.

내가 전수해준 특제 소스까지 가미하니 과연 천하일품이었다.

곧장 입을 우물거리며 식탁위에 놓인 종이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꿀꺽 소리를 내며 한꺼번에 삼켰다.

"흐음, 우렁각시나 한 번 해볼까."

식탁 위에 굴러다니는 펜을 하나 집은 나는 종이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에 자리한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에 있는 모든 성좌들의 정보를.

* * *

꽤 오랜 시간을 공들여 종이에 모든 것을 작성한 나는 미도의 방에 살포시 종이를 올려놓은 후.

아크스타에 접속했다.

사실 종이가 부족해서 좀 더 쓰긴 했지만, 그 정도면 아마 학교에서도 괜찮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너무 완벽해서 문제지 사실.

몸이 붕 뜨는 느낌과 함께 눈을 뜨니 익숙한 방이 보였다.

어제 로그아웃을 했었던 콜로세움 참가자들을 위한 개인 숙소.

이곳은 요즘 내가 묶고 있는 방이었다.

"흐음, 이곳 세상은 이틀이 흘러가는 중인가."

확실히 현실과 가상현실의 시간개념이 다르니 헷갈리는 것이 많은 것 같다.

콜로세움의 시작은 사흘 뒤.

이곳에선 한 이틀 정도 남았으니 나는 그 사이 헬레나가 부탁한 의뢰를 완료할 생각이었다.

"우선 천천히 나가볼…. 응?"

"구루우욱."

아니, 이놈은 대체 언제 나왔데.

"춘자야."

"구룩?"

춘자라고 이름을 지어준 부엉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어떻게 새장에서 나왔냐."

"구루우욱?"

웃긴 것은 춘자가 새장이 아닌,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니, 수정이에게 새장을 자꾸 빠져나온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실제로 보니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다.

진짜 똑똑한 녀석인 건 확실하네.

과연 헤카티아나가 아끼는 부엉이답군.

"구룩! 구룩!"

춘자는 날개를 퍼덕이더니, 자신의 입을 가리켰다.

아무래도 배가 고픈 모양이다.

나는 곧장 생닭을 던져주고는 춘자의 정보창을 살폈다.

[Lv. 11 춘자][부엉이]

등급: 일반

포트렌의 카지노 1층에 있는 코인 환전소에서 기르던 부엉이. 보통 부엉이들은 한 명의 주인을 섬기며 따른다. 주로 물건 배달을 주 업무로 하며, 자랄수록 무거운 물건을 들 수 있다.

-현재 걸려있는 마법: [인식], [추적]

-아직 밝혀지지 않은 정보가 있습니다.

"음, 레벨이 좀 올랐네."

그래도 아직은 부족하다.

그 코인 환전소 주인의 말에 따르면 레벨 20까지는 생닭을 주며 키워야 된다고 했으니까.

그때부터는 사람이 먹는 것을 주어도 괜찮다고 했었다.

물론, 그때부터는 나도 본격적으로 요리를 해서 춘자에게 줄 거다.

"흐음. 근데 마법이 너무…."

달과 마법의 여신이 아끼던 신수라는 게 믿겨 지지 않을 정도로 초라하다.

내 기억 속의 레추자는 이렇게 초라한 마법을 쓰진 않았던 것 같은데….

"마법사 길드에서 마법서나 좀 사올까."

얼핏 들은 얘기지만 마법사 길드에는 각종 공격 마법에 대한 마법서들을 판다고 들었다.

어쩌면 그곳엔 춘자가 쓸 만한 괜찮은 마법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 나 마법서 하나 있었지."

곧장 인벤토리를 열어 보라색 표지를 가진 책을 꺼냈다.

그것은 바로 라그너스가 내게 주었던 하급 어둠의 화살 마법이 기록된 마법서.

지금은 사라졌지만, 라그너스의 해골 지팡이와 시너지가 좋았던 마법이었다.

혹시나 싶어서 가지고 있었는데, 이렇게 쓰게 되는군.

"자, 춘자야. 한번 읽어볼래?"

"구루룩?"

생닭을 뜯어먹던 춘자가 호기심을 보이며 내 쪽으로 걸어왔다.

나는 녀석에게 곧장 어둠의 화살 마법서를 내밀었다.

춘자는 호기심 어린 눈동자로 책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내 기억 속의 레추자는 각종 마법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그리고 마법서에 대한 욕심 또한 대단했지.

그러니 이깟 하급 마법쯤은….

"구루루룩…."

갑자기 춘자가 성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발로 마법서를 집어 들고는 날개를 퍼덕이기 시작했다.

뭐지, 얘 왜 이래.

뭘 잘못 먹었나?

"구루우우우욱!!!"

별안간 요상한 소리를 내던 춘자는 그대로 하늘을 날아 열린 창틈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곤 보란 듯이 어둠의 화살 마법서를 내다버렸다.

"이 녀석이…!"

나는 빠른 속도로 창문을 열어 거미줄을 발사했다.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마법서를 붙잡을 수 있었다.

곧장 인벤토리에 마법서를 넣었고 한숨을 쉬었다.

휴우, 완전 사고뭉치로군.

"구루룩? 구루룩?"

춘자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안을 서성거리며 날아다녔다.

이제는 이 녀석이 진짜 그 레추자가 맞는지 의문이다.

혹시 내가 잘못 본 건 아니겠지…?

그 순간 메시지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춘자의 지능이 해당 마법서를 읽을 수 없는 수준입니다.]

"끙. 미치겠군."

아무래도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다.

내 기억 속의 레추자는 똑똑하고 마법서도 읽을 정도로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 춘자는 아직 한글도 떼지 않은 아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인데….

"…근데 내가 어떻게 마법을 가르쳐."

남은 방법은 춘자에게 마법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지속적으로 보여주다 보면 레추자는 본능적으로 그 마법을 따라 할 수 있다는 정보가 내 머릿속엔 있었다.

문제는 내가 헤카티아나처럼 대단한 마법과 지식을 가진 여신이 아니라는 것.

더군다나 많은 일을 해야 하는 내 입장에선 한가하게 춘자에게 마법이나 가르칠 시간은 더더욱 없었다.

풍희도 길러야 하고, 솔라도 길러야 하고….

이렇게 보니 무슨 내가 사육사 같은데.

"아, 잠깐만."

'혹시 이 방법은 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내 머릿속에 강하게 맴돌았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듯, 어쩌면 해답은 위기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곧장 솔라를 불러냈다.

허공에 작은 불꽃이 휘몰아침과 동시에 녀석에게 말했다.

"솔라야."

"무슨 일이냐~?"

해맑게 웃는 솔라를 보며,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제발 잘되야 할 텐데.

곧장 손가락을 들어 생닭을 뜯어먹고 있는 춘자를 가리켰다.

"쟤한테 마법 가르쳐 볼래?"

춘자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구룩~?"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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