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181화
제181화
"이런 씨! 계속 쥐새끼처럼 피하기만 할래?"
나는 집요한 매드독의 공격을 피하기만 했다.
확실히 독이란 무서운 것이다.
그것만 아니라면 내가 이렇게 당하고만 있지 않았을 텐데.
무슨 독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함부로 공격을 당할 수는 없었다.
지금의 난 거미 독에 대한 내성만 있지, 모든 독에 대한 내성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독은 나도 아프거든."
퓨웃.
녀석의 얼굴에 거미줄을 쏘았다.
순간 시야가 가려진 틈을 타 엉덩이에 돌려차기를 꽂았다.
콰앙!
매드독은 입술을 퉤퉤거리며 거미줄을 떼어냈다.
이래서야 쉽게 끝나지 않겠는데.
"이 개새끼가…. 너 이리와. 이리 오라고!"
매드독이 다시 나를 향해 달려들려는 순간.
츠츠츠츳!
거대한 푸른 번개가 경기장의 끄트머리에서 터지며 바닥을 타고 흘렀다.
그것은 나와 매드독의 사이를 갈라놓았고, 우리들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주춤했다.
나는 푸른 번개의 근원지를 향해 눈을 돌렸다.
"저 녀석…."
그곳엔 한 마리의 푸른 뇌룡이 있었다.
아직은 크기가 작은 편이지만, 프로메테우스가 준 기억 속에는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나는 저것이 무엇인지 잘 안다.
"레이트라와 대화를 나눴다더니, 정말이었군."
설마하니 필살기를 전수해줬을 줄은 몰랐다.
견소룡의 몸은 뇌룡의 형상을 한 푸른 번개에 휩싸여있었다.
그 맞은편에는 라인하르트가 씩 입꼬리를 올리며 서 있었고, 이내 그는 호탕하게 웃었다.
"흐흐흐. 이런 힘을 숨겨두고 있었다니. 그렇다면 나도 진지하게 임해보도록 할까!"
라인하르트의 손에 있는 방패가 허공을 부유하더니, 그의 가슴에서 멈추었다.
곧장 방패는 흐물흐물해졌고, 그의 온몸에 슈트처럼 착 달라붙었다.
곧장 그의 키가 아까보다 2배는 더 커보였다. 마치 옛날에 TV 광고로 보던 펩시맨 같은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 모습이 조금 민망하고 망측스러워서, 나는 다시 앞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치지지직!
여전히 건재한 푸른 번개.
그것은 벽처럼 나와 매드독의 사이를 갈라놓고 있었다.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저 망할 삐에로 놈이 더 이상 미도를 공격하지 못할 테니까.
나는 다시 미도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뒤에서는 천둥이 치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또 신세를 졌군요."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김현우와 미도가 나를 향해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박태현은 여전히 뚱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마 어제 있었던 비누 사건 때문에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태현아."
"아, 알았다고. 고맙다고 하면 될 거 아냐. 땡큐."
별안간 박태현은 어색한 손짓과 영어로 감사를 표했다.
살짝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뭐, 아직 우리 사이엔 풀어야 할 것들이 많으니까.
콰르르릉-!
또 한 번 울리는 천둥소리.
나는 다시 견소룡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푸른 뇌룡과 강철의 표피를 몸에 두른 남자가 싸우는 장면은 어디서도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견소룡의 주먹 연타가 라인하르트의 몸 곳곳을 때렸다.
츠차차차찻!
하지만 그럼에도 라인하르트는 멀쩡했다.
저놈이 저리도 단단했었다니 새삼 혀가 내둘러진다.
나는 곧장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백무열과 휴톤이 힘 대결을 하고 있었다.
그 파장이 얼마나 거센지 땅이 울릴 정도다.
"……."
이건 뭐 완전 난장판이 따로 없군.
이제 한 명만 더 탈락하면 경기는 끝이 난다.
과연 누가 떨어지게 될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그 순간.
라인하르트가 튕겨낸 거대한 푸른 번개가 일직선의 궤적을 그리며 내 옆을 지나갔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그곳은 미도가 있는 곳이었다.
"이런…!"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지만, 이미 푸른 번개는 그들이 있는 곳에 닿아 있었다.
하지만 번개를 맞은 것은 미도가 아닌 박태현.
아무래도 일행들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 것 같았다.
"으아아악!"
"태현 오빠!"
"박태현!"
그는 그대로 푸른 번개와 함께 결계의 끝까지 밀려났다.
그렇게 박태현이 장외로 나가떨어지자 경기 종료를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사회자의 목소리 또한 들려왔다.
-끄, 끝났습니다! 8강에 진출할 콜로세움의 참가자들은 이들입니다!
어느새 나타난 수정구슬이 살아남은 이들의 얼굴을 허공에 비췄다.
그렇게, 16강전은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 * *
-아아, 안내 말씀드립니다. 8강전은 콜로세움의 주인이신 카이단 님의 개인 사정으로 인해 사흘 뒤에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안내 말씀드립니다. 8강전은….
사회자가 8강전의 일정에 관한 방송을 공지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콜로세움의 주인인 카이단의 개인 사정 때문이라고 한다.
경기를 관람했던 관중들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갑자기 변경된 룰도 그렇고, 돈을 잃은 사람들이 꽤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그런 것은 아니었다.
관중들은 거의 라인하르트나 견소룡이 살아남을 것이라 찍었을 테고, 그건 경기를 지켜보던 제우스 길드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야~ 저 단단한 라인하르트를 상대로 저 정도라니. 대단하지 않아? 데미안?"
"그래. 확실히 스타 프루츠의 능력은 대단해. 과연 8인의 초신성 중 한 명이었어. 근데 웃긴 건 라인하르트 저 녀석 원래 탱커 클래스가 아니지 않아?"
"아, 맞다. 쟤 원래 탱커 아니지?"
"그래. 격투가 클래스였잖아."
데미안은 카푸치노와 경기내용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잠깐 잊고 있었지만, 라인하르트가 처음 제우스 길드에 가입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는 평범한 격투가 계열의 클래스였고, 직업 이름도 '아이언 피스트'였다.
누가 보아도 탱커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름.
"저놈도 난 놈은 난 놈이지."
"싸우고 싶은데, 우리를 위해 얼마나 탱커로서 참아왔겠어."
라인하르트가 저렇게 단단한 탱커로 활약할 수 있었던 건, 그가 우연히 얻은 특수한 방패 때문이었다.
고대 거인족이 쓰던 방패.
아직 저 방패의 정체는 라인하르트도 길드원들도 알지 못했다.
그저 스타피스에 준할 정도로 대단히 단단한 방패라는 것밖에는.
"어머~ 다들 라인하르트만 본 거야?"
교태가 섞인 레이나의 목소리에 데미안이 반응했다.
"왜, 또 남자 봤어?"
"음~ 나 그렇게 막 훔쳐보는 여자 아닌데~"
"귀여운 척하지 말고. 맞잖아."
"치, 나 귀엽거든? 아무튼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아까 저 할아버지 봤어?"
그녀의 말에 데미안과 카푸치노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말하는 건 아까 전 흑색의 목검으로 굉장한 싸움을 펼쳤던 백무열이라는 할아버지.
"대단했지. 그 연세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검술이었어."
"대체 뭐하는 할아버지일까?"
"그러게. 원래 검도를 하셨던 분이 아닐까?"
"아냐, 난 이렇게 생각해…."
그렇게 각자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8강에 진출한 강자들이 대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관중석에 있던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고,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당연히 라인하르트와 견소룡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나타난 휴톤과 백무열이라는 할아버지도 그 못지않았다.
아마 곧 아.스.라 커뮤니티는 저 백무열이라는 할아버지로 인해 떠들썩해지리라.
"마이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데미안의 말에 마침 함께 경기를 관람했던 마이클은 팔짱을 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것도 아니다. 일어나자."
"그래? 그럼 다들 일어나자."
"나 쇼핑 도와줄 사람~?"
"난 싫어."
"카푸치노. 넌 맨날 그러더라? 라인하르트한테 일러버린다?"
"그러든가 말든가~"
그렇게 출구를 향해 가던 마이클은 문득 다시 뒤를 돌았다.
'저 남자….'
지금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라인하르트도 견소룡도 아니었다.
엄청난 힘을 뿜어냈던 휴톤이나 백무열이라는 할아버지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가 주목한 것은 검은 늑대의 가면을 쓴 남자.
마이클은 그에게서 왠지 모를 익숙함을 느꼈다.
'설마 아니겠지. 그가 이런 곳에 올 리가.'
아마 다크 울프를 따라한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요즘 커뮤니티에서는 다크 울프가 입었던 옷이나 가면을 똑같이 따라 하는 것이 유행이었으니까.
마이클도 한번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아마 저자도 그런 사생팬 중 한 명이겠지.
"다시 레벨업에 집중해야겠군."
오랜만에 마이클은 피가 끓는 것을 느꼈다.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강자들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것 같았으니까.
* * *
다음 날 아침.
나는 오랜만에 주말을 만끽하며 TV 보는 중이었다.
요즘 내가 관심 있는 건 딱 하나밖에 없다.
오로지 아크 스타에 관련된 프로그램과 정보들.
마침 어제 있었던 콜로세움에 대한 토크쇼가 나오고 있었다.
아크스타의 전문가들이 나와서 각자의 의견을 지껄이는 내용인데, 사실 전문가가 맞는지도 의문이다.
-역시 라인하르트의 명성은 명불허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8인의 초신성 중 하나인 견소룡도 대단했지요. 역시 그는 권왕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습니다.
-어제 그가 뿜어내던 푸른 번개는 정말이지 어마 무시했습니다.
-전 라인하르트가 보여준 새로운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더군요.
주된 내용은 어제 있었던 경기에 대한 내용이었다.
라인하르트와 견소룡의 이름이 여러 번 언급되었고, 여러 가지 의견이 오고 갔다.
그렇게 30분이 흘렀을까.
문득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TV에 등장했다.
-하지만 그 두 사람보다도 더욱 화제인 사람이 있습니다. 현재 커뮤니티는 갑자기 나타난 이분으로 인해 더욱 뜨거운 냄비가 되었죠.
이어지는 화면에 나온 것은 백무열의 모습이었다.
한쪽 손에 든 흑색의 목검과 이발기가 대조를 이루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그의 실력만큼은 절대로 우습지가 않았다.
백무열과 휴톤이 만나 형성된 힘의 파동이 영상에서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정말 놀랍습니다. 어떻게 할아버지가 이렇게 강할 수 있는지 저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그건 저도 동감합니다. 한눈에 보아도 목검에 대한 컨트롤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과연 이 할아버지의 레벨은 몇일까요? 그리고 직업은 무엇일까요?
-현재 할아버지에 대한 정보가 커뮤니티에 속속 올라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더욱 놀라운 건 저분이 훈련소를 마친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이죠.
-어제 저 백무열이라는 할아버지의 훈련소 영상이 잠깐이지만 SNS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실력이라는 말밖에….
이어지는 말들은 모두 백무열에 관한 것이었다.
휴톤 또한 대단한 힘을 보여주었지만 화제성만큼은 무열이 녀석을 따라가지 못했다.
하긴 나이가 나이니까. 확실히 주목을 끌은 모양이다.
띠링-!
마침 주머니 속에 넣어둔 핸드폰에 문자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곧장 그것을 꺼내 화면을 켰다.
[백무열: 나 여네인 대따.]
"…뭐라는 거야."
나는 곧장 통화 버튼을 눌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