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178화
제178화
"크하하하! 좋아! 아주 좋아!"
만족스러운 에이단의 박수 소리가 콜로세움 2층을 울렸다.
그는 뭐가 그리 좋은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웃었다.
그 옆에 있는 최불룡 또한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이렇게 하면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이라구요."
최불룡은 그날 에이단의 저택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암살의 실패에 대한 문책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일 뿐.
불행인지 다행인지 에이단은 저번에 잭팟을 터트렸던 자를 기억하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를 암살해주면 실패는 없던 일로 해주겠다고 했다.
물론, 최불룡은 당연히 수락했다.
왜냐하면 콜로세움에서 봤던 영감탱이의 옷차림이 그때 잭팟을 터트렸던 자와 똑같았으니까.
그에겐 사업의 미래와 복수가 달린 절호의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그래. 그렇군. 진작 이렇게 할 걸 그랬어. 하하하. 자네가 심어놓았다던 그 매드독이라는 자는 믿어도 되는 거겠지?"
"물론입니다. 실력은 제가 보장하지요. 불사의 인간들 사이에서도 그는 특출난 인간이었습니다. 이곳 세상도 다르지 않더군요. 보시면 아실 겁니다."
김제복의 실력은 두말할 것도 없다.
조금 잔인한 손속을 가지긴 했지만, 전국에서 최고의 칼잡이였던 명성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니까.
처음 그가 고블린을 잡는 것을 봤을 때, 최불룡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과연 명불허전이다."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으니까.
"그래. 보면 알겠지. 기대하겠다."
에이단과 최불룡은 무대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옆에 있던 콜로세움의 주인 카이단은 귀를 후비며 물었다.
"아니, 저자의 정체가 뭐길래. 형님이 그렇게 기를 쓰고 죽이시려는 겁니까?"
"그냥 원한 관계다."
"흐음."
어젯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집에서 쉬던 카이단은 갑작스러운 에이단의 방문에 당황했다.
평소 사촌인 에이단과는 친하긴 했지만, 이렇게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적은 없었으니까.
지금은 좀 좋아진 것 같지만, 그날의 에이단은 조금 이상했다.
특히 엉거주춤하며 걷는 자세가 그랬고, 옆에 달고 온 저 최불룡이라는 자도 그랬다.
아무튼 별안간 들이닥쳐서는 한다는 말이 콜로세움에 있는 한 참가자를 죽이고 싶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의 입장에선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대체 무슨 관계길래. 돈까지 써가면서 참가자들을 매수한 걸까. 보통 원한은 아닌 것 같은데….'
카이단은 따로 직원을 불러 큰돈에 관심이 있는 참가자들을 불러올 것을 명했다.
그렇게 모인 참가자는 9명.
큰 이름이 있는 강자들은 아니지만, 모두 돈이 필요해서 모인 자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엔 에이단이 뒤를 봐주는 휴톤이라는 자도 있었다.
그렇게 그날 그 자리에서 한 참가자를 없애기 위한 암살단이 꾸려진 것이다.
"뭐, 자세하게 묻진 않겠습니다. 형님께서 카지노의 지분을 나눠주시겠다는 약속만 지켜주신다면요."
"그건 걱정 마라. 난 약속은 칼같이 지키는 편이니까."
"알죠. 알죠. 형님 성격을 제가 모르겠습니까. 하하."
자신의 입장에선 나쁠 게 없었다.
그냥 돈 되는 것만 받으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카이단은 경기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서로 눈치만 보던 참가자들이 절반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9대 7.
아마 7명인 저들도 생각이 있다면 싸움에 끼지는 않을 것이다.
카이단이 입꼬리를 올렸다.
웃는 모습이 에이단과 사뭇 닮았다.
"이제 피 터지는 싸움을 구경만 하면 되겠군요."
* * *
결계가 모두 쳐지자, 이곳은 정적만이 흘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해서 그런 것도 있었고, 서로가 눈치를 보며 누가 먼저 공격을 할지 살피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먼저 움직인 것은 의외의 인물.
아니, 인물들이었다.
"……."
갑자기 움직인 그들은 한 사람의 주위로 옹기종기 모였다.
그들은 아까 짙은 살기를 쏘아 보내던 이들이었다.
병장기를 둘러멘 채, 탐욕 어린 눈빛을 보내는 그들을 보며 나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지금 저들은 모두 한패다.
그것도 나를 죽이기 위해서 모인.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라니…."
그 말과 동시에 앞으로 나선 것은 내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
쓰레기촌에서 내게 약간의 굴욕을 주었던 휴톤.
잠깐이지만 저 녀석이 에이단의 수하였던 것을 잊고 있었다.
아마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에이단이 꾸민 짓이 분명하다.
빌어먹을 놈 같으니라고.
다음에 만나면 꼭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려놔야겠는데.
"어이, 형씨들."
휴톤이 나무 몽둥이를 어깨에 들쳐멘 채 거들먹거렸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어떤지 알겠어? 우리 지금 9명이 한 팀이야. 다른 형씨들은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구. 우리가 원하는 건 단 한 명이야. 저기 있는 가면을 쓴 사람."
흐르는 정적 속에서 녀석의 손가락이 나를 가리켰다.
그러자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내게로 꽂혔다.
끙. 난 이런 상황 싫어하는데.
"우린 저자에게만 볼 일이 있다. 우릴 막는다면 적으로 간주하지. 막는 사람은 우리들의 집중 공격을 받게 될 거다."
그 말과 동시에 9명이 동시에 무기를 빼 들었다.
같은 조였던 대검을 든 녀석과 마법사 놈도 있는 걸 보니,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던 모양이다.
[크하하하하!! 이거 재밌는 상황이군! 싸워라! 싸워!]
무두르의 웃음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나는 애써 녀석을 무시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바로 옆에 있던 백무열.
녀석은 재밌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입을 뗀 것은 미도였다.
그녀가 내 옆에 붙으며 소리쳤다.
"당신들 뭐예요? 너무 비겁한 거 아니에요?! 그런다고 우리가 무서워할 것 같아요? 덤벼 봐요. 우리도 그냥 당하진 않을 거니까!"
당찬 미도의 목소리.
역시 내가 손녀 하나는 잘 키웠다.
그녀의 손엔 오랜만에 보는 피의 도살자가 들려져 있었다.
"크흠. 저번에 구해주신 것도 있으니 도와드리겠습니다."
하얀 갑옷을 입은 김현우가 따라붙었고.
"아니, 야. 난 저 자식 싫…."
"시끄러. 길드장의 명령이야. 저번에 구해준 은혜는 보답해야지."
"쳇."
퉁명스러운 표정의 박태현도 붙었다.
그리고 이어서 붙은 사람은 견소룡.
녀석은 당연하다는 듯 이곳으로 걸어왔다.
"다수가 개인을 공격하는 건 의협이 아니지. 난 이쪽에 붙겠소."
그리고 남은 사람은 한 사람.
역시나 녀석에게 귓속말이 도착했다.
- 백무열: 하여튼 사고뭉치라니까.
- 잭슨: 미안하게 됐다.
- 백무열: 뭐, 한두 번이여야 말이지.
백무열이 피식 웃으며 내 옆에 붙었다.
그는 한 손에 거머쥔 흑단나무 목검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저번에 봤었던 그 꽃들은 시들어 버린 상태.
"친구 손녀가 여기 있으니, 이쪽에 붙어야겠지?"
"역시 무열이 할아버지. 짱!"
미도가 엄지를 추켜세웠다.
그렇게 만들어진 9대 6의 상황.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었다.
남은 것은 라인하르트.
녀석은 재밌다는 듯 호탕하게 웃었다.
"우하하! 어느 쪽이든 다 덤벼라!! 모두 상대해주마!! 나는 제우스 길드의 라인하르트다!!"
…저 바보 녀석은 알아서 하겠지.
"흐흐흐. 이것도 재밌겠군. 어차피 난 의뢰인의 명령만 수행하고 돈만 받으면 되니까. 좋다! 싸워 보자! 내 이름은 휴톤이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공격들이 이곳을 향해 퍼부어졌다.
제일 먼저 날아오는 것은 각종 무기들의 기운이었고, 그 뒤를 이어서 거대한 불의 파도가 이곳을 덮쳤다.
참가자들 중 유일하게 마법사였던 놈이 날린 공격이었다.
이름이 기억 안 나는데 아마 셀렌이었던가.
콰콰콰쾅!
콜로세움의 강자들답게 범상치 않은 공격들이다.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 같은데.
나는 요리조리 움직이며 공격을 피했다.
오랜만에 태양의 춤을 췄고, 발끝에 해오름의 기운이 찬란하게 타올랐다.
그와 동시에 우리들은 맞붙었다.
피어오르는 연기와 먼지들.
엄청난 난전 속에서 제일 먼저 덤빈 것은 1조의 잔당들이었다.
"죽어라!"
"천만 달러는 우리 차지다!"
"순순히 내 창을 받아라!"
아무래도 나를 죽이는 사람에게 돈을 준다고 했던 모양이다.
이젠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
"…지랄도 정도껏 해야지."
곧장 인벤토리에서 포크 숟가락을 꺼냈다.
"덤벼라."
찔러오는 창과 검을 피해 가볍게 점프를 했다.
그리고 허공에 도약한 상태로 불타는 발을 휘둘렀다.
3번의 공중 옆차기.
콰콰쾅!
그들이 나동그라지며 신음을 뱉었다.
나는 그대로 옷자락을 펄럭이며 착지했다.
"크윽. 미친."
"무슨 발차기가…."
"이 자식 대체 정체가 뭐야?"
그들은 당황한 듯했지만, 위기는 아니었다.
확실히 그들은 강자였고 레벨도 높았다.
아무리 해오름의 방어 무시 데미지가 있어도 기본적인 방어력과 내성도 무시 못했다.
그리고 그들에겐 물약이 있다.
아무래도 한 번에 많은 데미지를 주지 않으면 장기전이 될 것 같다.
여기서 거미줄을 쓰긴 좀 아까운데….
"……!"
갑자기 느껴지는 짜릿한 감각에 바로 고개를 숙였다.
머리 위를 지나가는 거대한 몽둥이.
하마터면 한방에 나가떨어질 뻔했다.
이만한 몽둥이를 다루는 놈은 한 명밖에 없다.
"하하하. 역시 대단해! 내 공격을 알아차리다니! 그때 못 냈던 승부를 다시 한번 내보자고!"
빌어먹을 휴톤이 빠른 속도로 몽둥이를 휘둘렀다.
나는 가까스로 녀석의 공격을 피했다.
허공을 도약하며 옆으로 몸을 비틀기도 했고, 허리를 옆으로 숙이며 재빠르게 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녀석이 휘두르는 몽둥이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결국, 한 대 얻어맞고 말았다.
나는 빠른 속도로 장외를 향해 날아갔다.
"…큭."
욱신거리는 배를 부여잡으며 머리 위에 있는 생명력을 확인했다.
한방에 빠진 1/4의 생명력.
가공할 만한 공격력이다.
그러고 보니 저놈도 무열이 놈처럼 몽둥이의 가호라는 스킬이 있었지.
"쯧."
아깝지만, 일단은 살아야 한다.
나는 거미줄을 땅으로 쏘며 날아가는 추진력을 상쇄시켰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다시 휴톤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녀석의 복부를 향해 있는 힘껏 옆차기를 날렸다.
하지만 내가 잊고 있던 것이 있었다.
"흐흐. 고맙게 받지."
휴톤이 왼손을 들었다.
촛불이 꺼지는 소리와 함께 일어나야 할 해오름의 폭발이 사라졌다.
나는 아차하는 표정으로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다시 받아라!"
휴톤의 왼손에 모인 해오름의 불꽃이 내게로 쇄도했다.
이윽고 그의 주먹이 땅에 균열이 일으켰고, 다시 거대한 불기둥이 되어 하늘로 솟구쳤다.
콰아아아아-!
불꽃의 정경이 나를 집어삼켰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