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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177화 (177/375)

나 빼고 다 젊은이 177화

제177화

나는 옥상에서 담배를 핀 후, 시간에 맞춰 1층으로 내려왔다.

마침 그곳엔 콜로세움 참가자들 모여 있었다.

1조는 당연히 견소룡이 있었고, 녀석은 제법 비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2조는 나와 라인하르트.

그리고 이름 모를 마법사 하나와 대검을 든 놈 하나.

그들은 나와 같은 2조의….

"……?"

뭐야. 왜 노려보는 거지.

같은 조였던 그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동시에 먼 곳을 쳐다봤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하는 걸 보면서 게슴츠레하게 눈을 좁혔다.

그러자 그들이 헛기침을 했다.

"큼큼."

"커흠. 오늘 대검 수리가 잘됐나…."

마법사 놈은 모자를 매만졌고, 대검을 든 놈은 한 손으로 대검을 쓸었다.

저러고 있으니까 더 수상하다.

진짜 뭐지.

"와, 드디어 시작이네. 헤헷."

익숙한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3조의 미도가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뒤에는 김현우와 박태현이 함께 있었고,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움찔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저 망할 삐에로는….

"괘씸한 놈 같으니라고."

여전히 죽일 듯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다.

진짜 저놈은 그냥 둬서는 안 되겠다.

기회가 된다면 제대로 손을 좀 봐줘야겠는데.

"엇, 무열이 할아버지. 안녕히 주무셨어요~!"

별안간 미도가 고개를 꾸벅하더니, 백무열을 포함한 거구들이 등장했다.

저 중에서 제일 작은 게 저 녀석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진짜 세상은 참 넓은 것 같다.

"미도야. 안 본 사이에 더 예뻐졌구나? 하하하!"

"정말요? 역시 무열이 할아버지는 보는 눈이 있다니깐. 호호."

얼씨구.

죽이 척척 맞는구먼.

백무열은 이곳을 보면서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칭찬을 해달라는 건가.

나는 애써 녀석의 윙크를 무시했다.

마침 앞을 보니 저번에 봤었던 사회자가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대진표가 그려진 판이 있었다.

"자, 여러분. 오늘은 콜로세움의 16강전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그 전에 이곳에 이름을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본선은 정식 경기인 만큼 이름을 걸고 싸우게 될 겁니다."

그의 말에 따라 각자 한 사람씩 나와 이름을 써넣었다.

1조가 끝났고, 2조의 차례가 되었다.

라인하르트가 사회자를 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우하하! 내 이름은 라인하르트라고 한다!"

"직접 적으셔야 합니다만…."

"하하하! 그렇지! 그걸 까먹었군!"

그러더니 그는 손에 조그만 펜을 쥐었다.

손이 얼마나 크면 저 펜이 분필처럼 보이는 건지 모르겠다.

우지끈- 하는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

분위기를 타고 흐르는 정적.

라인하르트의 손에 쥐어진 펜이 가루처럼 부서졌다.

사회자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써드리겠습니다."

"음하하! 고맙다!"

고릴라 같은 기세로 다시 자리로 돌아온 라인하르트.

그는 뭐가 그리 좋은지 말똥말똥한 눈을 하고 있었다.

진짜 생각이 없어 보이는 놈이다.

이어지는 차례는 바로 나.

곧장 새 펜을 받자마자 정해진 자리에 이름을 써넣었다.

그리고 뒤를 돌았는데….

"……."

꽤 짙은 살기를 내뿜는 참가자들.

그들은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1조에 세 놈.

내가 속한 2조에 두 놈.

3조에 삐에로랑 박태현이라는 놈.

4조에는 백무열과 휴톤을 제외한 두 녀석이 나를 죽일듯한 기세로 노려보고 있었다.

"흐음…."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어째 오늘은 긴 하루가 될 것 같다.

* * *

각자 대진표에 이름을 써넣은 뒤, 우리들은 드디어 콜로세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모두 조별로 움직였고,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비밀통로를 통해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불길함을 떨쳐낼 수 없었다.

아까부터 주변에서 힐끔거리는 놈들의 시선이 계속해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젠 슬슬 짜증 날 지경이다.

"참가자분들은 이곳에서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 본선의 경기는 콜로세움의 주인인 카이단님의 연설이 끝난 직후. 곧장 시작될 겁니다."

그렇게 말한 사회자는 다시 어딘가로 사라졌다.

이곳 대기실은 침묵 속에 잠겼다.

모두가 결투를 앞두고 결의를 다지는 것 같았다.

- 백무열: 긴장 되냐.

- 잭슨: 별로.

- 백무열: 담배 피러 가자.

- 잭슨: 됐다. 그거 피면 잠깐 동안 능력치 떨어지잖아.

- 백무열: 아, 맞다. 그랬었지. 깜빡했구만.

무열이 이놈도 은근 골초라니깐.

그렇게 시시콜콜한 대화를 주고받던 중 또 다른 귓속말이 도착했다.

- 견소룡: 형님 건승을 기원합니다.

- 잭슨: 그래. 고맙다. 아마 네가 제일 첫 경기였지?

사회자의 말에 따르면 각 조별로 16강전이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제일 첫 타자는 당연히 1조에 속한 이들이었고, 견소룡의 경기는 그중에서도 가장 첫 번째 경기였다.

- 견소룡: 예. 하하. 그렇죠.

- 잭슨: 너도 힘내라. 꼭 이기고. 그래야 나랑 붙든가 하지.

- 견소룡: 물론입니다. 안 그래도 어제 중국 주석에게 연락이 왔더군요. 나라의 명예가 걸린 일이니 꼭 이겨달라구요. 커뮤니티에선 저와 라인하르트의 대결이 화제인가 봅니다. 중국과 독일의 대결이라더군요. 아마 관중석엔 기자들도 많이 와 있을 겁니다.

- 잭슨: 흐음. 그래?

중국의 주석은 대통령이나 마찬가지라고 알고 있는데….

그런 사람한테서 전화가 오다니 내심 그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기자들이 많이 왔다는 것은 별로 달갑지 않았다.

- 견소룡: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괜히 일이 커진 것 같아요. 가뜩이나 형님께선 매체에 노출되는 것을 싫어하시는데….

- 잭슨: 난 괜찮다. 이미 일어난 일을 어쩌겠냐.

내가 조금만 젊었다면 아마 엄청 싫어하는 티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세월이 흘러,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무던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뭐, 어떻게 보면 이제 칠순을 앞둔 노인네만 가지고 있는 스킬이라고나 할까.

- 견소룡: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잭슨: 뭘, 우리 사이에 새삼스럽게.

고개를 드니 저 멀리 견소룡이 엄지를 치켜들고 있다.

나는 피식 웃고는 미도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김현우와 박태현을 닦달하고 있었다.

나는 초감각을 청력에 집중해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아니, 그러니까 오빠들. 다크울프 아저씨랑 나랑 아는 사이라는 게 무슨 말이냐니까요?"

이건 미도의 말이군.

근데 나랑 아는 사이라고 했다고?

"어제 그 개자식이 그랬었다니까? 너네 할아버지가 다크울프한테 부탁했데. 널 지켜달라고."

"아니, 난 모르는 일이라니까요? 그리고 오빠. 무얼 지키려고 했다는 거예요? 제가 위험했었어요? 언제요?"

"아 몰라! 아무튼 나 그 새끼 죽여버릴 거야 진짜."

박태현이 얼굴을 붉히며 미간을 찌푸렸다.

마침 옆에 있던 김현우가 팔꿈치로 그의 옆구리를 쳤다.

"야, 조용해. 다 들리겠다. 다크 울프 지금 이쪽 본다."

"에이씨. 들을 테면 들으라 그래. 누가 무서울 줄 알고? 멀어서 들리지도 않겠구만. 무슨…."

…다 듣고 있다.

아무래도 저 박태현이라는 놈은 필히 손을 한번 봐줘야겠다.

어디 한번 붙어보자고.

이 썩을 놈아.

"자, 참가자 여러분. 이제 무대에 올라갈 시간입니다."

마침 어딘가로 사라졌던 사회자가 다시 나타났다.

그는 우리를 향해 말을 이었다.

"우선 간단한 공지사항부터 드리겠습니다. 저번에 한 선수가 무대를 무너트린 후. 참가자의 힘을 무대가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마법사를 초빙해 결계를 칠 예정이고, 그 안에선 어떻게 힘을 쓰더라도 무대가 무너질 걱정은 없으니, 참가자분들은 걱정하지 마시고 열심히 싸워주시면 되겠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것은 역시 라인하르트였다.

"좋아! 아주 좋아! 움하하!"

사회자가 다시 말했다.

"무대에 올라가는 즉시 콜로세움의 주인이신 카이단 님의 연설이 시작됩니다. 모두 경청해주시길 바라고, 오늘 관중석이 만석인 만큼 놀라운 경기 기대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올라가시죠."

스르륵. 철창이 열리자, 우리는 곧장 그곳으로 걸어갔다.

발걸음을 뗄수록 많은 환호성이 들려온다.

그럴수록 내 심장은 점점 빠르게 뛰었다.

쿵. 쿵.

이윽고, 끝에 다다랐을 때는 어마어마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아아아!!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함성.

마치 옛날에 있었던 2002 월드컵을 방불케 하는 듯하다.

그때의 나는 가족들과 함께 붉은 옷을 입고 응원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때 못지않은 열기였다.

"와아아, 사람 지~인짜 많다."

미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우리들은 빠른 걸음으로 무대 위로 올랐다.

그러자 더 큰 함성이 터졌다.

"라인하르트!!"

"견소룡!!"

제일 많이 들려오는 것은 딱 이 두 사람을 부르는 소리였다.

아무래도 양 국가의 명예가 걸렸다고 하더니, 그 말이 진짜였던 모양이다.

허허. 이것 참.

어디선가 카메라 소리가 들리길래 고개를 돌리니,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기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 이곳 사이의 거리는 꽤 멀어서 당장에 마이크를 들이대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것은 정말 좋았지만, 다른 문제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드디어 콜로세움의 개막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보고 계신 것은 16강에 진출한 참가자들로…."

제기랄. 생방송 중계라니.

아무래도 오늘 방송 무지하게 많이 탈 것 같다.

쯧. 이거 또 피곤해지겠는데.

-아아, 이거 나오는 건가?

별안간 마이크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웬 화려한 옷을 입은 남자가 콜로세움의 2층 귀빈석에 나타났다.

아무래도 저자가 사회자가 말했던 카이단이라는 놈인 모양이다.

-음, 콜로세움 참가자들 반갑다. 난 이곳의 주인 카이단이라고 한다. 다들 만나서 반가운 건 생략하고, 열심히 싸우고 관중들은 열심히 돈을 쓰길 바란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꽤 지루한 내용이었다.

관중석 사이에 닭튀김을 팔고 있는데, 하나당 10만 달러니까 많이 사 먹으라는 씨도 안 먹힐 소리와 혹시 대출이 필요하면 콜로세움 내에 있는 대출 상담소를 찾으라는 시시콜콜한 얘기들이 전부였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알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어지는 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 16강전은 지금 옆에 계신 사촌 형님인 에이단의 부탁으로 1대1이 아닌 다수가 한꺼번에 싸우는 데스매치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 말과 동시에 관중들이 술렁거렸다. 몇몇 선수들도 마찬가지.

하지만 생각보다 침착한 이들도 있었다.

나는 그것이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갑자기 에이단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당장 시작해보자고.

딱!

카이단이 손가락을 튕기자 무대의 끄트머리에 마법사들이 나타났다.

그들이 결계를 치기 시작하자, 우우웅거리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어째 불길하더라니…."

주변의 정경을 잠식하는 결계의 틈 속에서 익숙한 사람이 보였다.

카이단의 옆에는 내가 알고 있는 두 남자가 있었다.

나는 그들을 보며 오랜만에 이를 갈았다.

그곳엔 에이단과 최불룡이 사악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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